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41화 (342/448)

14권-16화

한편 게리드의 그림자 공격을 무산시킨 유태진은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곧바로 결단을 내렸다.

‘길게 끌 것 없이 단숨에 끝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랜드 급 네크로맨서 한 명에 수만에 달하는 언데드 군단도 만만찮은 데다, 리겔과 레민티아, 그리고 소속불명함대까지 포함하면 어지간한 함대가 여럿 모여도 감당하기 힘든 전력이었다.

물론 자신이 가세한 이상 이기지 못할 리는 없겠지만, 적당한 수준으로 힘을 쓴다면 싸움이 생각보다 지지부진하게 길어질 건 불 보듯 뻔했다.

그렇게 되면 아군의 피해도 자연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전신으로 천룡무상신공이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웅혼하고 거대했으며, 방대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흐름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내공이 일제히 유동하기 시작하자, 주변의 우주공간이 마치 격변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건 그가 단순히 현경의 경지라서가 아니었다. 그의 깨달음은 반선지경에 도달했으며, 그것을 일부나마 재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이 그를 한층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기충혈대법과 만유합원신기가 발동하면서 외부의 기운을 끌어들여 크게 증폭하고, 각종 술법과 마법 그리고 신성력이 그의 전력 전반을 대폭 상승시켰다.

쿠구구구구!

“후우우···.”

단지 숨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크게 요동쳤다. 그만큼 현재 유태진의 역량은 전생 이후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반선지경에는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거의 그에 준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기세가 폭증했다고?”

휘몰아쳐오는 기세의 소용돌이를 목도한 게리드가 깜짝 놀라 외쳤다. 좀 전까지만 해도 자신보다 분명 하수로 보였거늘, 갑자기 이렇게까지 강해지다니!

하지만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그 순간부터 본격적인 유태진의 공격이 시작되었으니까.

짧은 호흡과 함께 내질러지는 검이 우주공간을 종횡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1식. 쾌룡무영(快龍無影)

비의. 섬룡광현(閃龍光顯)

눈부신 빛살 같은 궤적이 어느새 수천수만의 궤적이 되었다. 그것들은 언뜻 보기엔 멈춰 있는 것 같아도,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공간을 수없이 난자하고 있었다.

여기에 휘말린 언데드들이 졸지에 비명을 내지르며 소멸되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고 등급의 언데드라 할지라도 유태진이 작정하고 펼친 검격을 맞고 무사할 순 없었다.

-커으으

-케에엑!

단숨에 천에 이르는 언데드들이 박살나 흩어졌다. 물론 언데드 군단 전체에 비한다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놈들이 하나같이 C-랭크 오버러와 버금가는 수준의 전력임을 생각한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피해였다.

그렇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섬룡광현으로 시작된 유태진의 공세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었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2식. 천룡쇄공조(天龍碎空爪)

일절대라검인(一切大羅劍印)

무수한 쾌검의 궤적으로 천에 이르는 언데드를 없앤 그의 검 끝이 이번엔 고요한 듯 멈춰 섰다가 돌연 텅 빈 허공을 조용히 내리그었다. 언뜻 보면 적이 닿지 않는 엉뚱한 곳에 칼질을 하는 듯 보였지만, 그것은 곧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 번 휘두름으로 무려 팔만사천 가닥의 예기가 모든 방위를 점거하며 나타난다는 천룡쇄공조의 비의 일절대라검인.

제아무리 물량으로 압도한다 하더라도, 이 한 수 앞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뭐야 저건!?”

마이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신음을 터뜨렸다. 같은 관리국 소속의 사령관인 유태진이라는 사내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가 대단한 강자임은 깨닫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한번 검이 휘둘러진 순간, 이 일대의 우주공간을 가득 채우는 수만 가닥의 푸른 궤적들이 어지럽게 난립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용서 없이 언데드들을 무참히 베고 박살냈다. 미처 피하거나 저항할 새도 없었다. 아무런 조짐조차 없이 출현한 강기의 궤적은 바로 심검지도의 경지에서 펼쳐진 심의강(心意罡)이었으니까.

제아무리 급이 높다 하더라도 마이스터에도 미치지 못하는 언데드 따위가 감히 감당할 기예가 아닌 것이다.

“네놈이!”

게리드는 무참히 박살나고 있는 자신의 언데드 군단의 모습에 격분을 터뜨렸다.

상대가 강하다는 건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보유한 전력이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손실되는 것을 보면서도 태연할 순 없었던 것이다.

그 즉시 술식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대상을 강제적으로 고사시킨다는 8클래스의 마법이었다.

“죽어라! 호리드 윌팅(Horrid Wilting)!”

복잡한 구성의 술식과 함께 그것이 막대한 영력을 담고 쏘아졌다. 창백하게까지 보이는 회백색 섬광은 유태진을 향해 정확히 날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마이스터라 해도 한순간에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강력한 호리드 윌팅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법에 의해 저지되고 말았다.

“디스펠.”

“뭣!?

기세 좋게 날아가던 회백색 광채가 돌연 기세가 꺾이면서 소멸되기 시작했다. 그것이 유태진에게 거의 닿아갈 즈음에는 남아있는 기운조차 거의 없었다.

그건 바로 유태진이 발휘한 술식 무효화 마법인 디스펠에 의해 술식의 기본 구조를 파훼당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게리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예전부터 자신들의 대업을 방해해온 유태진에 대한 정보는 계속 입수해왔고, 그가 무공 외에도 마법을 비롯한 여러 영능을 다룬다는 내용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수준은 그리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대체 어떻게 8클래스 마법을 이런 식으로 파훼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같은 그랜드 급의 마법사가 아니고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7클래스 마법사라도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대신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해 놔야 그나마 가능했다.

“클래스 마법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나를 너무 얕봤군. 이렇게 엉성한 술식 구성으로 날 어찌할 수 있다고 생각했나?”

“······.”

조소와 같은 그 말에 게리드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는 유태진이 큰 걸림돌이라 여기긴 했지만, 그건 자신들이 진행하던 여러 계획들을 번번이 파탄 냈기 때문이었다. 유태진이라는 존재 자체가 위협적이라고 여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헌데 이건 대체 뭔가? 전공인 무공뿐만 아니라 마법이나 여러 기타 영능들까지 수준 이상으로 체득하고 있다니.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마이스터 급 이상. 아니 호리드 윌팅을 가볍게 파훼한 걸 보면 최악의 경우 그랜드 급에 준하는 수준일지도 모른다.

‘우린 지금까지 판단을 잘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일 줄 알았으면 유태진 저 자를 무엇보다 최우선적으로 제거해야 했었어.’

그제야 예전의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었다. 그토록 치밀하게 진행하던 계획들이 어째서 파탄날 수밖에 없었는지도 납득할 수 있었다.

게리드의 두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좀 전까지의 여유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좋아, 인정하겠다. 이제부터 네놈을 없애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그 말을 시작으로 폭발적인 언 홀리 파워가 게리드를 중심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역량만으로 낼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바로 음차원계, 즉 네거티브 플레인의 힘을 끌어들여야 가능한 막대한 부의 에너지였다.

그리고 그 힘은 그 옆에 있는 본 드래곤에게 집중되었다.

이것이 바로 게리드의 진면목.

그는 유태진처럼 직접 나서서 싸우는 자가 아니었다. 바로 언데드를 부리고 이를 강화시켜 싸우는 일인군단의 네크로맨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보유한 언데드 군단 중 가장 강력한 개체인 본 드래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집중시켰다.

자신의 언 홀리 파워와, 모든 것을 쥐어짜 연 음차원계의 힘을 몰아줌으로서 본 드래곤의 역량을 최대한 강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수십 수백 개에 달하는 여러 보조 술식들이 본 드래곤을 한층 더 강력하게 끌어올렸다.

그 결과, 본 드래곤의 기운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증대되었다. 좀 전에 바니아스 함대를 향해 브레스를 뿜어낼 때와 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본 드래곤이 불길하고 거대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휘두르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저 코웃음만 쳤다.

“고작 죽은 용 따위를 들이밀어? 내가 익힌 천룡무상신공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군.”

천룡무상신공은 인간이 승천하는 용을 닮기 위해 만든 신공절학이었다. 그렇기에 익힐수록 용의 기상과 힘을 다룰 수 있으며, 그 힘은 천지조화에 가까워진다.

그런 천룡무상신공이 고작 오래 전에 죽어 뼈만 남은 드래곤에게 뒤쳐질 리가 없었다.

“네놈이 자랑하는 그 용과 함께 바로 이 자리에서 장사지내주마.”

단언하는 그 말과 함께 유태진의 검 끝이 정면을 가리켰다. 팽배하게 부푼 음차원의 힘을 집결시킨 본 드래곤이 입을 벌리며 칠흑빛 광채를 이제 막 분출하고 있었다.

쿠오오오!

상상을 초월하는 거력이 우주공간을 뒤흔들었다. 준대형 전함의 주포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폭력이 유태진을 완전히 말살하기 위해 뻗어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응하는 유태진의 한 수는 간단했다.

우우웅!

마음이 이는 순간, 의념이 형체를 이루고 그것은 곧 무형의 검이 되었다.

현세에 존재하지 않으나 존재했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한계마저 뛰어넘어 작용하는 그것은 무인들이 추구하는 무도의 극의에 다다라 있었다.

본디 보일 리 만무한 무형질 무실체의 검이지만, 그가 마음먹는 순간 순리마저 뛰어넘어 천지자연마저 베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점창의 신공절학을 통해 재현되고 있었다.

화아악!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8식. 천룡무상(天龍無上)

이것은 어떤 투로나 동작이 존재하는 검초가 아니었다.

심검지도에 기반을 둔 천룡무상은 말 그대로 천룡무상신공을 통해 완성된 용의 기상으로 자신의 의지를 삼라만상에 관철하는 극의.

드러난 형(形)보다는 검공을 체득한 자의 의(意)로서 완성되는 검식이었다.

“아아···”

“맙소사!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마이스터 3인방은 물론 바니아스 함대의 모두가 전율에 떨며 경악했다. 방금 본 드래곤이 브레스를 쏠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절망하면서 자신들의 최후를 상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유태진의 검 끝이 돌연 정면을 가리키는 순간 정말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목도하고 말았다.

일직선으로 뻗어오던 거대한 칠흑빛 브레스가 어느 순간부터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분해되고 있었다.

허나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브레스가 소실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본 드래곤까지 부스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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