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40화 (341/448)

14권-15화

곧 무지막지한 언데드 군단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물론 언데드들의 수준이 대단하다 하더라도 화력까지 전함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함대전력은 이쪽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소속불명함 측에서 쏟아져 나오는 포화가 바니아스 함대를 뒤흔드는 한편, 이 시기를 틈탄 언데드 군단이 빠르게 근접해오기 시작했다.

“···결국 후퇴해야 하나?”

사태가 이렇게 되자,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자신의 작전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그랜드 급으로 추정되는 강자인 게리드도 모자라 그가 거느린 언데드 군단까지 더해진 이상 더는 승산이 없었다.

“후퇴한다. 적들을 지체시키면서 기회를 노린다.”

그는 명령을 내렸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자신이 적의 입장이었다면 상대가 도망가도록 순순히 놔주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그러니 어떻게든 버티면서 기회를 엿봐야 했다.

“젠장, 끝도 없어!”

덴켄이 초조한 얼굴로 빛을 뿌려댔다. 그것들은 종횡으로 현란한 궤적을 그리며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 언데드들의 접근을 차단했지만 그 효과도 아주 잠시 뿐이었다.

언데드들은 두려움을 모르고 덤벼들었다. 어차피 죽어 있는 존재니 상대방의 공격을 맞고 피해를 입더라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무슨 방법 없어? 이대로는 후퇴는커녕 전멸하게 생겼어.”

이올데도 슬슬 한계에 달한 듯 보였다. 애당초 그의 전문분야는 자신의 차원전환능력을 바탕으로 기습적으로 치고 빠지는 일격일탈전법이지, 이런 다수를 상대로 하는 대단위 전투에 적합한 게 아니었다.

물론 마이스터씩 이나 되는 만큼 어중간한 수준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라면 다수라 해도 큰 부담은 없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게리드가 이곳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온갖 악의와 저주가 우주공간상에 퍼지면서 평소와 같은 전력을 발휘할 수 없는데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언데드들은 동귀어진의 기세로 덤벼들었다.

그나마 버틸만한 건 마이트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가 방어에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어만 한다고 해서 해결될 상황도 아닌 만큼, 결국 튼튼한 샌드백 같은 처지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그건 바니아스 소속의 오버러 부대원들도 마찬가지. 점점 옥죄어오는 언데드 군단의 공격 앞에 슬슬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배틀 슈트의 응급구명기능이 그들의 부상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었지만 말 그대로 임시조치일 뿐이다. 사망자가 쏟아지는 것도 이제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바니아스 함대는 어떻게든 전함의 기능부진을 회복시킨 뒤, 아르마다 시스템에 근간을 둔 대출력 공격으로 후퇴할 빈틈을 만들어내려 했지만, 소속불명함대와 언데드 군단이 그렇게 놔두지 않았다.

그들도 바니아스 함대의 노림수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놈들의 맹공을 막기 위해 또다시 무리를 거듭해야 했던 바니아스 함대의 전함들은 기능부진을 회복하기는커녕 점점 출력이 감소하는 이상 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후퇴의 가능성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크윽!”

자신의 옆을 지나쳐가는 공격에 덴켄이 격통을 느끼며 물러서고 말았다. 옆구리를 살피니 깊은 상처가 생겨나 있었다. 중형 전함의 최대출력의 주포조차 한번이라면 너끈히 막아낼 수 있는 고 레벨 배틀 슈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방에 뚫려버린 것이다.

그의 시선이 저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을 향해 검지를 겨누고 있는 게리드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다.

“나서지 않을 것처럼 여유를 부리더니··· 이젠 직접 손을 쓰겠다는 거냐?”

“싸움이 너무 지지부진해지는 것 같더군. 그래서 덜 지루하게 슬슬 손을 쓰기로 마음먹었지.”

“빌어먹을!”

상대방의 느긋한 대꾸에, 덴켄은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공격인데도 이 정도였다. 제대로 적중되었으면 얼마나 치명적일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스친 공격조차 무시하기 어려웠다. 상처 부위로 침습해 들어오는 저주와 독기가 그의 내부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으니까.

‘···하필이면 데스 핑거인가.’

상대의 공격이 무엇인지 짐작한 덴켄의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졌다.

적중한 상대를 죽음으로 몰아간다는 흑마법 데스 핑거. 제대로 적중하지 않은 만큼 죽음에 이르진 않을 테지만, 제대로 이 기운을 몰아내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로 돌아올 게 분명했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인 이 상황에서 느긋하게 데스 핑거의 기운을 몰아내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덴켄의 전력이 급감하면서 그들의 열세는 더욱 가속화 되었다. 그나마 덴켄의 샤이닝 프리즌이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유리한 능력이었는데, 데스 핑거의 기운을 억누르느라 제 실력을 다할 수 없게 된 것이 컸다.

콰아아앙!

어느덧 열세의 끝이 다가왔다. 버티는 것도 이제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이미 바니아스 함대의 전함 중 일부는 반파 상태에 이르러 더 이상 저항조차 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그런 일방적인 광경을 오연히 내려다보면서 게리드가 입을 열었다.

“과연 너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슬슬 시간이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에 있던 본 드래곤의 입이 다시 한 번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심부로 몰려드는 막대한 저주와 악념의 흐름. 어느새 브레스의 리차징 시간이 끝난 것이다.

“망할! 벌써 재충전이 끝났다고?”

“끝장이야.”

그들의 얼굴 위로 절망이란 감정이 떠올랐다. 마이스터 3인방은 물론 바니아스 함대도 더 이상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을 여력이 없었다.

쿠아아아!

무시무시한 칠흑빛 광채가 다시 한 번 우주공간을 관통해왔다. 그것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악의의 결정체였다.

이를 본 순간 바니아스 함대에 속한 모두가 절망을 떠올렸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워프 항법조차 차단된 이 상황에서는 도망칠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절멸시킬 죽음의 그림자가 막 덮쳐오려던 그 순간, 마치 새벽과 같은 눈부신 광채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화아아악!

“이 빛은!? 세상에!”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이 크게 놀라 외쳤다. 외부의 상황을 비추고 있는 홀로그램 스크린이 온통 새하얀 빛으로 가득 찰 정도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빛이었지만, 그것은 강렬하면서도 온화했다. 본 드래곤의 저주로 가득 찬 브레스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은 칠흑빛 브레스를 말 그대로 불살라 버렸다. 마치 새벽이 밝아오면서 어둠이 물러가듯, 그 자리를 빛으로 가득채워나간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이 주역 전체가 한순간 빛으로 가득 차 버렸다.

“이건!?”

지금까지 여유로운 태도로 거의 방관하고 있던 게리드의 안색이 크게 경직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뻗어나갈 때만 하더라도 저들의 전멸을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걸 막은 저 빛은 대체 뭐란 말인가?

심지어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의 성질은 자신과 상극인 듯싶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역작인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이렇게 받아낼 리 만무했다.

빛이 사라진 뒤, 그 자리에는 한 사내가 우주공간 위에 떠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게리드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네놈은 누구냐?”

그 물음에, 사내가 무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관리국 소속 독립함대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 유태진이다. 그러는 네놈은 뭐지?”

“유태진이라고?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이라면···.”

게리드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이라면 사사건건 자신들의 일을 훼방한 작자 아니던가.

하지만 유태진이라니. 그 자가 그런 이름이었던가?

그런 기색을 눈치 챈 유태진이 대꾸했다.

“예전에는 이진운이라 불렸지만 이젠 본래의 내 이름을 되찾았지.”

“그렇군. 네놈이 맞구나.”

유태진이 예전의 이진운이라 불렸던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임을 확인한 게리드가 강대한 기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좀 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의 존재감이었다. 그는 여태껏 전력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는 느긋하게 손을 써 왔었는데, 유태진의 존재를 확인한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절대 내 아래가 아니다.’

방금 전에 본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은 것만 봐도 그러했다. 대체 어떻게 막은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정도만 해도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는 것뿐이지, 상대할 자신이 없다는 건 아니었다.

“하하, 차라리 잘 됐군. 몇 번이나 우리의 대업을 방해했다고 들었다. 설마 이렇게 마주칠 줄은 몰랐는데.”

“대업이라.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네놈은 지금까지 꾸며온 수작의 핵심인물이라는 소리겠지?”

눈앞의 게리드는 그랜드 급의 실력에, 리겔보다 더 윗선의 인물이었다. 심지어 대업이라는 말을 운운한 걸 보면 놈들의 꾸미는 음모를 구체적인 부분까지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유태진의 그 물음에, 게리드는 사납게 웃으며 살기를 드러냈다.

“그건 네 맘대로 생각해라.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말해주마. 네놈은 오늘 살아서 돌아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그게 과연 네놈 마음대로 될까?”

“지금까지 나 게리드가 마음먹은 것 중 어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은 게 없지. 네놈도 마찬가지고!”

빈정대는 듯한 그 말을 호호탕탕 받아친 게리드가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어내며 오른손을 뻗었다. 그러자 어둠보다 더 짙은 그림자가 마치 한 자루 검처럼 그 손에 쥐어졌다.

길게 뻗은 칠흑빛 그림자는 어지간한 전함의 전장보다 수십 배 이상 길게 늘어나 있었다.

촤아아악!

칠흑빛 궤적이 유태진을 노리고 우주공간을 광범위하게 쪼개 들어왔다.

그것은 그림자를 매개로 한 물질절단의 마법 쉐도우 베인(영파참影波斬).

그 절삭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 수준이었다.

스걱!

중간에 걸쳐 있던 커다란 소행성 중 하나가 그대로 베어졌다. 그러고도 멈추지 않은 그림자 참격은 어느새 유태진의 목전에 이르러 있었다.

물질이 아닌 만큼 무게조차 없는 그림자의 참격은 그야말로 빛보다도 더 빨랐다.

하지만 유태진의 검은 그마저도 넘어섰다.

마음이 일면 그대로 행하나니(心卽行), 그것은 이미 물리적 시간이나 속도의 개념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닌 것이다.

분광십팔수검(分光十八手劍)

섬뢰일정(閃雷一挺).

그의 검 끝에서 시작된 한 줄기 극쾌의 궤적이 시공간을 나눴다. 그것은 빛마저도 분단한다는 점창의 절학.

그게 설령 빛보다 빠르다고 해도 베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유태진을 베어내려던 그림자의 검이 그 앞에서 쪼개지는 광경을 목도한 게리드가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베어냈다고? 쉐도우 베인을!?”

극한의 절삭력과 속도를 자랑하는 쉐도우 베인은 이렇게 막아낼 수 있는 마법이 아니었다.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궤적을 인지할 수조차 없으며, 심지어 물질이 아닌 그림자인 만큼 이걸 막아낸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고작 한 자루 검을 휘둘러 맞받아치듯 베어내다니, 이게 정녕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눈앞에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으니,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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