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9화 (340/448)

14권-14화

물론 마이스터 급 정도 되면 외부에서 침입하려는 몸에 유해한 기운 따윈 저절로 배출하거나 차단할 수 있지만, 이건 그런 차원을 아득히 넘어섰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강렬한 저주와 독기, 그리고 지독한 악념이 지금도 자신들을 침식하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급히 영력을 끌어올려 저항력을 높이긴 했지만, 침식해오는 지독한 악기(惡氣)를 완전히 차단하긴 어려웠다. 이런 식이라면 싸우면서도 일정량의 영력을 항시 이 기운을 차단하는 데에 할당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총체적인 전투능력은 상당부분 감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 무슨 괴물 같은!?”

덴켄이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상대방이 딱히 어떤 특수한 수법이나 고유한 영능을 발현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기운을 일으켰을 뿐인데도 자신들에게 이런 악영향을 미치다니.

그렇다면 이 힘으로 직접 공격을 펼쳐올 경우 얼마나 더 강하고 지독해진단 말인가?

“다들 조심해! 저 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랜드 마스터 급이야! 우리보다는 압도적으로 강자라고.”

덴켄의 다급한 경고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감을 표했다.

“관리국의 라이브러리 데이터에도 없어! 대체 이런 강자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무슨 은거 기인이냐?”

“아니, 이 정도 강자가 지금까지 조용히 숨어서만 살았을 리가 없어. 아마도 음지에서 활동하던 인물이겠지.”

이올데와 마이트는 좀 전보다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상대는 신분과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는 압도적인 강자였다.

자칫 일말의 실수가 죽음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가면인과 레민티아만 하더라도 자신들 세 명이 협공하지 않으면 쉬이 상대하기 어려운 강자들이었다. 거기에 정체불명의 그랜드 급까지 더해졌으니··· 이미 승산은 없는 거나 다름없었다.

한편 바니아스 함대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무려 그랜드 급으로 추정되는 강자가 새롭게 출몰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영력 규격 마이스터급을 초월했습니다. 추정 랭크 그랜드 급!]

[뭐야, 그랜드 급 강자라고? 대체 누구야? 데이터 조회해봐! 어서!]

[없습니다. 관리국의 라이브러리 데이터에도 없는 새로운 그랜드 급 영능력자입니다.]

안 그래도 소속불명함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상황이었다. 물론 전력만 본다면 바니아스 함대가 더 우세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린아이 팔을 비틀 듯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그랜드 급이라니! 이건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 물러서야 하나?’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일순 갈등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그랜드 급으로 추정되는 강자까지 단독으로 상대한다는 건 현재의 전력을 생각해 볼 때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 물러서기엔 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못했다. 이번 작전은 관리국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랜드 마스터 급의 적이 나타났다고 해서 싸워보지도 않고 후퇴한다면 분명 큰 질책이 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처벌받는 건 별 상관없지만··· 문제는 이 작전 자체가 본국에서도 아주 중요한 목적성을 갖고 있다는 거지.’

오르트 메이슨도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이번 작전이 인베이더의 최근 움직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 작전이 그 이유를 밝혀낼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르는데, 위험천만한 강적이 등장했다고 해서 그냥 물러설 순 없는 것이다.

레이스컬이 지원해준 스타 브레이커까지 가세한다면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어느 정도 싸워볼 수 있다는 말이지 반드시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레이스컬은 한창 자원행성의 병력과 함선들을 제압하고 있는 상황. 그들이 제 때에 시간을 맞춰 도와줄지는 미지수였다.

판단을 끝낸 그는 즉각 명령을 하달했다.

“지금 즉시 함대의 전력을 둘로 나눠 대응하기로 한다. 포메이션 T. A조는 최대한 버티는 형태로 소속불명함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한편, B조는 오버러들을 도와 새로 출몰한 그랜드 급 적성인물을 상대하도록 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니아스 함대의 전함들이 빠르게 둘로 나뉘기 시작했다. 특무함대란 이름을 갖게 된 만큼 그들은 여타 함대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거쳤고, 그 중에는 이런 상황을 상정한 훈련도 여러 차례 있었다.

분열된 전함들 중 소속불명함을 상대하기로 한 A조가 앞으로 나서더니 배리어 출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방어적인 대응 태세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랜드 마스터 급 적성인물을 격퇴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

그들이 방어적인 자세로 전진해 나아가자, 소속불명함의 공격이 인정사정없이 배리어 위로 내리 꽂혔다.

콰앙! 콰아아앙

거듭된 포격 속에서 배리어의 표면이 큰 파문을 일으키며 요동쳤지만, 쉽사리 뚫리진 않았다.

그것은 바로 연합의 전함에 공통적으로 적용된, 리스티가 개발한 출력공유 시스템 덕분이었다.

[아르마다 시스템 가동.]

[각 전함 인공제어체 멀티라운드 링크, 온라인!]

[전 함대 통합출력공명 스타트 컴플리트!]

배리어의 강도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견고해졌다. 이것이 바로 출력을 공유, 순환을 통해 한층 더 증폭하는 아르마다 시스템의 위력이었다.

바니아스 함대 단독으로는 아르마다 시스템의 최종 방어 형태인 라비린토스 필드까지는 구현할 수 없었지만, 지금 수준만으로도 어지간한 공격은 씹어 먹을 만큼 견고한 배리어 구축이 가능했다.

그 광경을 목도한 검은 로브의 사내가 흥미롭다는 듯 반응했다.

“재미있군. 저게 바로 출력공유 시스템인가? 들어는 봤지만 직접 보니 상당하군. 하긴 이런 게 연합의 저력이겠지.”

하지만 그뿐이었다. 위협적인 연합의 최신 기술을 보고도 그의 표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층 더 기세를 끌어올렸다. 이젠 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악기가 이 일대를 뒤덮을 듯 점점 크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그가 오연한 얼굴로 선언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의미가 없음을 알아라. 내 이름은 게리드 루스카인더. 너희들을 장사지내줄 이름이니라.”

쿠구구구!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악기의 흐름 속에서 무수한 형상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공통된 것 하나 없이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크르르!

커허허!

“뭐, 뭐야 저건!?”

“미친! 언데드 군단이라고?

마이스터 3인방이 대경실색하면서 물러섰다. 자신을 게리드 루스카인더라 밝힌 자가 만들어낸 검은 소용돌이 속에서 나온 것들은 상상을 불허하는 언데드 군단이었다.

그 수는 감히 눈대중으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엄청난데다, 심지어 질적으로도 놀라웠다. 스켈레톤이나 좀비 같은 저급한 것들은 아예 거기에 끼지도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어둠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대한 형상이 고개를 쳐드는가 싶더니, 육중한 몸체를 우주공간으로 끄집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 일순간 할 말을 잃었을 정도였다.

“···맙소사.”

“심지어 본 드래곤까지?”

드래곤은 모든 지적 생명체 중에서도 정점에 올라 있는 최강의 생물이었다. 오래 살기만 하면 반드시 반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으며, 조금만 노력하면 진정한 초월(하급신)까지 도달할 수 있는 우주에서 유일한 생명체였으니까.

그런데 그런 드래곤을 감히 언데드로 삼았다고? 대체 저 자의 정체가 뭐란 말인가?

자기 입으로 직접 이름을 밝히긴 했지만, 관리국이 축적해온 라이브러리 데이터 안에는 게리드 루스카인더란 이름의 강자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과연 그 방어가 얼마나 단단할지 궁금하구나.”

비웃음 어린 그 말과 함께 본 드래곤이 숨을 들이마시듯 고개를 크게 젖혔다. 뼈밖에 남지 않은 본 드래곤이 우주공간에서 호흡을 할 리 만무하지만, 그 동작을 거치면서 주변의 막대한 영력이 빨려 들어가듯 집중되고 있었다.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이 대경하여 외쳤다.

“브레스다! 배리어 출력을 최대로!”

[디스토션 필드 출력 최대치로 상승! 현재 96%··· 98%!]

콰우우우우!

본 드래곤이 길게 호흡을 내뱉는 순간, 그 앞에 형성된 칠흑빛 구체로부터 뿜어진 어둠의 광채가 일직선으로 우주공간을 관통했다.

그것은 바니아스 함대의 모함인 게일바힌의 배리어 위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내리꽂혔다.

쿠구구구!

“크으으!”

무시무시한 충격이 함내를 내달렸다. 게일바힌은 특무함대의 모함답게 여타 준대형 전함들보다 더 강력하고 견고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충격이라니!

심지어 공격을 방어한 배리어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요동치고 있지 않은가.

오퍼레이터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 질렀다.

[배리어 출력 빠른 속도로 크게 감소합니다. 76%··· 54%! 이대론 못 버팁니다!]

“아르마다 시스템의 출력공유 에너지를 전면으로 집중시켜! 배리어의 출력을 최대한 유지해!”

[예!]

화기에 사용되는 기본적인 에너지마저 배리어에 집중시켰다. 그러자 흔들리던 배리어가 점차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1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런 뒤에야 브레스의 공격도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간신히 막아내긴 했어도 축적된 피해는 적지 않았다. 당장 전함에 손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러 기능부진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디스토션 필드 발생기 과열! 당분간 50%이상의 출력사용이 불가능합니다.]

[제네레이터 출력이 불안정해집니다. 안정화까지 앞으로 20분!]

“젠장!”

오르트 메이슨은 저도 모르게 욕지기를 터뜨렸다. 그만큼 상황은 암담했다.

설마 본 드래곤이라니! 저런 터무니없는 것을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젠 평범한 그랜드 급의 적성인물이라 평하기도 어려웠다. 경지야 어쨌든 본 드래곤까지 전력으로 포함한다면 반신 급에 가까운 파괴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본 드래곤도 더 이상 브레스를 뿜을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암담한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번 공격으로 바니아스 함대의 공격력과 방어력은 거의 반 이상 상실되었고, 그에 반해 게리드 루스카인더의 전력은 멀쩡히 건재한 상태.

본 드래곤이 더 이상 브레스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승산이 없기는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거창한 출력공유시스템도 이 정도군. 소모한 에너지를 다 채우기 전까지 브레스는 사용할 수 없겠지만, 이 정도 쯤은 내 군단만으로도 충분하지.”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게리드가 가볍게 손짓하자, 그 뒤에 도사리고 있던 언데드 군단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수는 실로 어마어마해서, 마치 메뚜기 떼의 재앙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끝났군.”

“저걸 어떻게 감당하라고?”

“저건 대충 어림잡아도 십만 단위는 훌쩍 넘겠는데?”

마이스터 3인방이라 해도 저런 압도적인 머릿수 앞에선 별다른 수가 있을 리 없었다. 함대라도 멀쩡했다면 주포로 수를 줄인 다음 상대해 볼 법 했지만, 그마저도 다 틀려버렸다.

게다가 언데드 군단을 어찌어찌 감당해낸다 해도, 그 뒤에는 언데드 군단의 주인인 게리드와 가면인, 레민티아가 있었다.

현재 있는 전력으로 저들을 모두 상대한다는 건 바위에 계란을 부딪치는 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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