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권-11화
“뭣!? 수 척의 중형전함도 날려 보냈던 내 일격을 한손으로 받아내?”
해머를 휘두른 마이스터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자신의 공격은 분명 확실하게 적중했는데, 어떻게 저걸 한 손으로 저지한단 말인가?
얼마나 놀랐던지 해머를 휘두른 당사자뿐만 아니라, 공세를 퍼붓던 주변의 수호방위대원들조차 일순 멈칫했을 정도다.
해머를 태연히 한 손으로 붙잡은 유태진이 느긋하기까지 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단순히 강하기만 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 부드러움의 이치를 알지 못하는 강함은 조금만 방향을 바꿔줘도 이렇듯 흘려보낼 수 있으니까.”
“설마 그 말은··· 질량증가 더해진 한수를 그대로 바닥으로 흘려보냈다고!?”
제아무리 무학에 대한 이치가 뭔지 모르는 자라 하더라도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해머에 강타당한 적은 멀쩡한 반면, 그가 밟고 있는 지표면 전체가 깊게 가라앉고 있는 상황.
그것이 자신이 휘두른 힘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작용한 결과라는 사실을 어찌 모를까?
하지만 계속 놀라고 있을 새가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유태진의 다음 공격이 그들을 덮쳐오고 있었으니까.
우수에 쥐어진 검이 휘둘러진 순간 수백 수천 가닥의 검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휘몰아쳐왔다. 그것은 마치 공간 자체를 저미는 듯한 광경이었다.
“막아!”
기무드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수호방위대원들의 힘이 일제히 집결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전면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화했다.
본디 B랭크 수준의 영능력자들이라면 대응할 수 없는 한수였지만, 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데스 필드라는 시스템에 의해 완벽히 공유, 제어되고 있었기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앙!
“크윽!”
“우욱! 이런 미친 충격량이!?”
수호방위대원들이 신음을 터뜨리며 물러섰다. 일개 개인이 펼친 공격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데미지였다. 그들 전체가 상대의 공격을 분산시켜 받아내지 못했다면 아마도 이번 일격에 즉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들을 후려쳤던 수백 수천 가닥의 빛이 순식간에 하나의 검광이 되어 공간을 집어삼켜오는 것이 아닌가!
중(重)과 붕(崩)의 묘리가 담긴 이 한수는 방어결계를 두들기는 것으로 모자라 그 충격을 고스란히 후방까지 전도시켰다.
대원들 중 몇몇은 내부를 뒤흔드는 충격에 입가에 핏물을 게워 올릴 정도였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기무드는 내심 기가 막혔다.
분명 데스 필드의 효과는 확실히 적용되고 있는 상황.
적의 본신 역량은 크게 감소했으며, 지금도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정도로 강하다고?
이건 단순히 힘의 크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영력을 다루는 묘리 자체부터가 차원이 달랐던 것이다.
적은 힘으로도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루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현란한 검영을 뿌리면서 빈틈을 파고드는가 싶으면 때로 웅장하면서도 압도적인 형태로 공간을 압박해왔으며, 혹은 빛살보다 더 빠른 검격으로 그들의 견고한 방어마저 베고 꿰뚫어왔다.
그나마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건, 데스필드의 공능과 그들 모두의 힘이 서로 공유되고 있다는 점 하나 때문이었다.
‘대체 이런 강자가 어째서 알려지지 않았던 거지?’
기무드가 그의 명성을 듣지 못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유태진이 제법 활약하면서 이름을 알리긴 했지만, 우주 전역에 널리 알려지기엔 활동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나마 연합 내에서는 인베이더를 격멸했던 여러 성계나 라인트라에서의 활약상 때문에 제법 알라졌을지 몰라도, 제국이나 공화국에서는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전무하다 싶을 정도였다.
‘데스필드와 여러 제약을 받는 지금도 이 정도인데, 본신의 실력을 다 드러냈다면 우린 순식간에 전멸했겠군.’
지금도 상대는 약한 부분만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이쪽을 공략해오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더욱 확고히 결심을 세우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싸운다면 결국 자신들의 필패는 정해져 있었으니까.
반면 유태진은 놈들의 방어와 공격을 흘리고 파훼하면서 적극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심검으로 전부 베어버리고 싶지만 여의치가 않군.’
좀 전에 마이스터 한 놈을 베어낸 것도 놈들이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심검은 하늘에 닿은 의념으로 외부의 기운을 동조시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대상을 베어내는 비기.
하지만 데스 필드의 영향에 의해 역량이 큰 폭으로 하락한데다, 놈들이 힘을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에너지는 심검의 발현마저 불완전하게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심검을 사용했다간 자칫 저 멀리서 두려움에 떨며 지켜보고 있는 엉뚱한 자들을 베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좀 더 까다로워졌다 뿐이지, 이기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내딛는 일보에 더욱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의식은 빛과 같이 가속하고, 검 끝을 타고 흐르는 의념은 더욱 빨라져 이젠 마이스터들의 눈에도 검속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거기서 더 빨라진다고!?
마이스터들은 아연실색하며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젠 방어가 따라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나마 마이스터의 경지에 이르면서 얻게 된 특유의 초인적인 감각 덕분에 어떻게든 본능적으로 방어하고 있긴 하지만··· 이게 과연 얼마나 갈 것인가.
일순간의 실수만 있어도 파탄이 나는 건 금방이었다.
헌데 그 순간, 기무드가 크게 일갈하며 외쳤다!
“데스 필드 오버 플로!”
쿠아아아아!
그 순간 수호방위대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던 데스필드의 공능이 지금보다 몇 단계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공유하던 힘의 규모는 단숨에 2배를 넘어 3배 가까이 치고 올랐고, 유태진을 짓누르는 제약도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그러자 도저히 인지할 수 없던 검속이 서서히 눈에 비치기 시작했다.
기무드가 손을 뻗으며 외쳤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칠흑빛 화살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수백 개 이상 전면에 생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뻗어라, 저주하는 필중의 화살!”
그가 다루는 건 극대의 저주. 그것을 반드시 대상을 명중시킨다는 형태로 고정화한 것이 바로 이 화살인 것이다.
평소라면 이렇게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한수지만, 데스 필드로 대원들의 힘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오버 플로를 가동시켜 남아있는 잠력까지 폭발시킨 지금이라면 이렇게 다수를 전개하는 것도 가능했다.
파파파팡!
저주의 화살들이 일제히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들 한발 한발의 위력은 가히 치명적이어서, 제대로 적중만 한다면 마이스터 급이라 해도 즉사를 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극초음속을 아득히 넘어 빛에 닿을 듯 쏘아진 화살들이 바로 유태진의 지척에 다다른 순간, 기무드는 기묘한 현상을 경험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저편에서부터 적의 목소리로 여겨지는 소리가 귓전에 선명하게 와 닿았다.
[필중이란 말을 함부로 쓰는 게 아니지.]
그것은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자들이 극도의 집중 상태에 돌입할 때 경험한다는 심적권청(心的勸請)의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를 처음 경험하는 기무드는 기묘하면서도 불길함을 느꼈다. 대체 어떻게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저 자의 표정과 들려온 말이 그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직감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스르릉!
상대의 검이 기묘한 궤적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리 빠르지 않았으며, 좀 전에 봤던 검로에 비한다면 복잡하거나 현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궤적이 기이할 만큼 모든 공간을 장악했다. 검로가 닿는 곳마다 칠흑빛 화살들이 그와 맞닿았으며, 마이스터 급조차 일거에 격살할 수 있는 화살들은 마치 분해되듯 사라졌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허나 이건 당연했다. 기무드의 이번 공격이 펼쳐질 때부터 유태진은 그와 다른 차원의 시간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는 주변의 모든 게 아주 느린 광경으로 펼쳐졌다.
의념이란 건 단순히 외부의 기운과 동조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베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신의 뜻과 의념이 현실의 물리법칙을 넘어서게 되면 바로 이와 같은 것이 가능했다.
심검지도(心劍之道)
의검무상제(意劍武狀提)
마음이 가는 데에 뜻이 일고, 뜻이 가는 곳에 육체가 행하는 경지.
이것을 두고 여의신행(如意身行)이라고 한다.
허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보다 한층 더 나아가 의념으로 자신을 제약하는 세상의 섭리와 물리법칙을 떨쳐내고 나면 말 그대로 초월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것이 가능했다.
지금 유태진이 보여주고 있는 것에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공격을 흘리고 막고 쳐내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기무드가 구현한 저주의 화살들은 거의 인과역전에 가까운 형태로 상대에게 적중하는 원리로 만들어졌지만, 그보다 상위의 섭리를 고스란히 담아낸 유태진의 검을 벗어날 도리가 없었다.
이것은 힘의 규모 문제가 아니고 깊이의 문제. 여기에 담아낸 격과 리(理)가 뒤떨어진다면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기무드의 목소리가 경련하듯 가늘게 떨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적들을 매장해왔던 비장의 한수였다. 심지어 수하들의 힘을 공유하고, 데스필드로 잠력까지 증폭한 비장의 한수를 이렇게 간단히 파훼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설령 그랜드 마스터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힘의 크기가 크다고 전부가 아니지. 깊이가 없다면 이렇게 허물어질 뿐이다.”
그 말을 마친 유태진의 검이 무수한 검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치 본래 그러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와 닿아 기무드와 그 수하들을 제압해 버렸다.
의검무상제의 경지에서 펼쳐진 검기점혈의 한수였다.
“여러모로 까다롭긴 했지만, 어떻게든 제압은 끝났군.”
데스 필드의 영향 아래서 싸우는 건 유태진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경매에 참석한 놈들을 생포하기 위해 강력한 공격을 지양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더더욱 그랬다.
만약 기무드와 그 수하들이 의검무상제의 한수에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더라면 좀 더 긴 시간을 싸워야 했을 것이다.
그들이 제압되자마자, 경매장 곳곳에 숨어 있던 참석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자신을 보호해줄 수호방위대가 허무하게 제압되었으니, 그 다음 차례가 자신들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제압이 시작되었군.’
경매장을 둘러싼 환영봉쇄진 너머로 격렬한 전투의 기척이 느껴졌다. 레이스컬에서 보낸 전위함대 스타 브레이커가 한창 제압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원위성에 배치된 할파스 상회의 전력이 격렬히 저항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못할 터. 수호방위대의 핵심 전력이 외부의 부대들과 함께 했다면 꽤나 까다로웠을 테지만, 지금 그들은 유태진에게 제압된 상황.
전투는 그야말로 일방적인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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