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5화 (336/448)

14권-10화

그러자 다른 마이스터들도 별다른 이견을 꺼내지 못했다. 방금 죽은 그리안도 자신들과 별 차이 없는 실력자였다. 헌데 그런 이가 저항조차 못하고 순식간에 죽어버렸다.

그렇다면 자신들이라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지 말란 법은 없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유태진은 내심 혀를 차고 말았다.

‘쉽지 않군.’

그리안이란 자도 솔직히 말해 쉽게 죽인 건 아니었다. 적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심검으로 베긴 했지만, 기무드는 그걸 눈치 채고 재빨리 피해내지 않았던가.

평상시였다면 저들 다섯을 이번 기습만으로 제거했겠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했다.

‘경매가 수없이 개최되면서도 오랫동안 적의 침입을 용납하지 않았다더니··· 바로 이런 게 다 있어서였나.’

유태진은 자신을 보이지 않게 압박해오는 금제의 힘을 느꼈다. 이것은 자신이 저들에게 명백한 적으로 인지되는 순간부터 급격히 작용하고 있었다.

수호방위대의 신입인 데니스 크라이드란 신분과 고유의 영자패턴으로 활동할 때엔 이런 문제가 없었지만, 그가 유태진으로서 진면목을 드러내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건 자원행성에 머물기를 허가받지 못한 자에게만 따로 작용하는 특수한 중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전에 경매장과 지부 건물을 뒤지고 다닐 때도 외부의 침입자를 제약할 수 있는 설비나 의례법진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어.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유태진은 현경, 즉 그랜드 마스터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그리고 몇 가지 무공과 수단을 사용하면 생사경, 즉 오버 그랜드 마스터에 준하는 영역까지 다다를 정도다.

헌데 그런 유태진에게 중압이 걸릴 정도라면 보통 의례주법이나, 일반적인 설비만 가지고서는 안 된다. 지부의 지하에 숨겨져 있는 대규모의 정신제어설비조차 마이스터 경지부터는 제대로 먹히지 않는데, 하물며 그 이상의 경지에 있는 유태진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은가.

‘···적어도 행성 규모겠군. 이 정도 출력이라면 자원행성 전체에 외부 침입자를 금제하는 술식을 깔아놓은 건가?’

행성 규모의 술진이라면 유태진이라 해도 영향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물론 이 힘이 그의 역량을 수준 이하까지 깎아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상황이 곤란한 때라면 어느 정도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이스터 넷에 A랭크 20명이 포함된 고위 영능력자 300이라. 쉽지 않겠어.’

물론 그의 경지라면 제아무리 중압을 받고 있는 지금이라 해도 저들 전부를 상대 못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은 엄연히 환영봉쇄진에 의해 폐쇄된 경매장 내부. 이곳에서 마음껏 싸우다간 경매에 참가한 자들까지 죽어나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럴 순 없지.’

할파스 상회의 경매에 초대받아 온 사람들의 면면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높은 직위나 만만찮은 신분들을 가지고 있었다. 제국이나 공화국, 연합에서도 상당한 고위층이거나 혹은 막대한 재력을 소유한 자들로서 그 영향력은 적지 않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반드시 산 채로 사로잡아야 했다. 애당초 이런 불법 경매에 참가한 것 자체부터가 잘못된 일인 만큼, 저들을 사로잡을 수만 있다면 이를 약점 삼아서 많은 권한과 주도권을 빼앗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노아 수상이 레이스컬이 육성한 비장의 함대를 드러내면서까지 이번 작전에 가담한 것도 바로 그래서였다. 여기에 참석한 자들 중 공화국 출신의 고위직 인물들을 사로잡아 그들이 저질러온 비리나 악행에 대한 증거를 토해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가 목표로 삼고 있는 정풍운동의 진행은 수십 년 이상 앞당겨질 것이다.

‘완전히 포차 다 떼고 두는 장기판 같군.’

유태진은 내심 쓴웃음을 흘렸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애당초 이런 곤란한 상황 따윈 수없이 많이 경험해 왔었다. 일이 조금 까다로워졌다 뿐이지, 그렇다고 해서 위기의 상황은 아닌 것이다.

그런 유태진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무드를 위시한 수호방위대는 만반의 태세를 갖춘 채, 비장의 패를 꺼내들었다.

“데스 필드 가동!”

우우웅!

기괴한 흔들림과 함께 방대한 중압과 저주가 유태진을 더 강하게 압박해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허락받지 않은 외부 침입자에 한해 작용되는 것으로서, 저주와 맹독, 그리고 각종 디버프 현상을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마이스터만 하더라도 이 데스필드의 영향력에 말려드는 순간부터는 총체적인 역량이 B랭크 이하로 격감하게 된다. 한 마디로 화경의 절대고수가 고작 최절정고수 수준까지 하락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그 이하의 영능력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심지어 D랭크 이하의 영능력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할 정도니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금제인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설령 술법같은 계열에 강한 저항력을 가졌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건 수많은 술식들이 중첩적으로 연쇄 작용하기 때문에, 강대한 항마력마저 완전히 깎아내기 때문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꽤 성가시긴 하군.’

수많은 종류의 독성과 저주가 자신을 옭아매려는 것이 여러모로 거슬렸다. 천룡무상신공이 운용되면서 외부의 해로운 기운을 차단하고 있지만, 그 덕분에 그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 자체도 일정부분 소모되고 있었다.

굳이 말하자면 행성의 모든 것이 그에게 적대적인 형태로 변했다고 보는 게 좋을 것이다. 숨 쉬는 것도, 피부로 와 닿는 외부의 기운조차 그의 통제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꽤 귀여운 장난질이지만··· 이 정도론 어림도 없지.

유태진은 사납게 웃으며 일보를 내딛는다. 그것은 심령을 흔드는 파장이 되어 수호방위대가 구축한 진형을 뒤흔들고 있었다.

“허억!”

“이건!”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세! 좀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과 다름없었던 자가 이젠 그들을 찍어누르는 패도의 기세를 드러낸 것이다.

“역시! 실력을 감추고 있었나?”

“그리안이 죽은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어.”

마이스터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전력을 일으켰다. 상대가 드러낸 존재감을 본다면 그랜드 마스터 급일 확률이 높았다.

“대체 이런 강자가 어디서 나타난 거지?”

“젠장, 어쩔 수 없지!”

그랜드 마스터 급이라 해도 이곳에 모인 전력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게다가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시작한 행성수호술식 데스 필드까지 있는 상황이니,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온전한 상태는 아닐 터.

충분히 승산이 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오산이었다. 유태진은 드러난 경지보다 더 높은 깨달음에 닿아 있으며 그것은 행성수호술식의 금제가 작용한다 해도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수많은 공격이 퍼부어졌다. 그것은 오로지 유태진 한 사람을 향해 집중된 폭거였다.

그렇지만 유유하게 전개된 유태진의 보보는 그것들을 흘려보내듯 거닐었다. 마치 그들의 공격 자체가 알아서 유태진을 피해가는 듯한 광경이었다.

“이동계열의 능력인가? 아니면 명중장애?”

“상관없어! 피할 수 없게 공간 자체를 공격하면 돼.”

그때부터 그들의 연합된 힘이 경매장의 중심을 짓눌러왔다. 마이스터를 포함한 324명이 쏟아낸 압도적인 거력은 유태진이 존재하는 공간 자체를 완전히 멸살하기 위해 온 사방에서 압박해오고 있었다.

그 힘은 그랜드 마스터의 그것을 훨씬 웃돌았다. 제아무리 경지가 높다 해더라도 개인이 수백 명에 달하는 다수의 고위 영능력자들의 힘을 넘어선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유태진은 압도적인 규모의 힘과 맞닥뜨렸으면서도 자신의 좌수를 들어보였다.

우우우웅!

그곳에 맺힌 것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인력의 총화 그 자체. 천중무한신공을 기반으로 구현된 인광부(引廣敷)의 현현이었다.

그것을 본 수호방위대원들이 두 눈을 크게 뜨며 웅성거렸다.

“뭐야, 저건?”

“설마 중력자 반응?”

“그런 수준이 아니야! 이건 마이크로 블랙홀에 가까워!”

누군가가 비명처럼 내지른 그 말에, 다들 경악에 젖어들었다.

그리고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상대의 왼손 앞에 구현된 검은 구체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들이 가한 광역 합동공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콰우우우!

마치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이는 먼지마냥, 모든 공격이 유태진의 인광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소실되었다. 이젠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인광부를 왼손 위에 띄워놓은 유태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힘의 크기는 크나, 다루는 방식이 조잡하고 허술하군. 고작 이 정도 인력을 견디지 못하고 구성이 흐트러져버리다니. 이걸로 날 잡겠다는 거냐?”

“······.”

기무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수많은 강자들을 장사지낸 그들의 합동 공격조차 통하지 않는 적이라니.

그 앞에서 더 이상 지금과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지금 같은 방법을 앞세운다면, 저 자는 또다시 저 중력자를 다루는 수법으로 우리의 공격만 빨아들이겠지. 그렇다면 답은 근접전인가?’

그 외엔 방법이 없었다. 원거리에서 가하는 에너지 공격이 통하지 않는 이상, 상대에게 유효타격을 줄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그는 판단을 내리자마자 명령을 하달했다.

“그럼 시작한다! 포메이션 F-97. 자, 가자!”

“와아아!”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무드를 위시한 영능력자들이 일제히 뛰쳐들어왔다. 무절제하게 달려드는 것 같아도, 그들의 대형과 움직임에는 일정한 규칙이 숨어 있었다.

방금 전 공격이 힘을 공유한 상태로 상대를 짓눌러 압사시키는 공간공격이었다면, 이것은 차륜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서로 힘을 실시간 공유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B랭크의 영능력자라 하더라도 어지간한 A랭크 영능력자의 출력을 크게 웃도는 수준!

그것이 무려 300명을 훌쩍 넘어선다면, 얼마나 가공할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쾅! 콰르릉!

직접 몸을 던지며 달려드는 수호방위대의 공격이 유태진 한사람을 향해 쏟아졌다. 빠르고 강한데다 목숨까지 도외시한 합격 앞에, 그의 모습은 마치 폭풍 속에 휘말린 가랑잎과 다름없었다.

벼락을 두른 채 주먹을 내뻗는 영능력자의 손을 옆으로 흘려내고, 앞으로 전진한다. 그리고는 맹독과 저주의 화살을 날려오는 자의 공격을 오른손에 쥔 검으로 받아낸다.

위잉!

검이 원호를 그린 순간, 그것은 이화접목의 이치에 따라 다시 적들에게 되돌아간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놈들은 그야말로 숨 쉴 틈조차 없이 공격을 퍼부어왔다.

“으하하합!”

마이스터 중 하나가 거대한 해머를 휘둘러 왔다. 거기에는 상상하기 힘들만큼 무지막지한 질량이 담겨 있었다.

“질량제어능력인가?”

유태진은 사람 몸통만한 해머가 어지간한 중형 전함 이상과 맞먹는 질량으로 변한 것을 눈치 챘다. 거기에 담긴 막대한 힘과 에너지, 그리고 속도까지 생각하면 그 충격량은 상상하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강하고 무겁기만 한 공격이라면 그의 털끝 하나 상하게 할 순 없었다.

유태진은 가만히 좌수를 들어보였다. 그의 좌수에는 더 이상 인광부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해머를 그대로 정면에서 붙잡아 세우고 있었다.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충격과 무게감이 사방으로 내달리며 경매장의 바닥을 깊게 가라앉혔다. 유태진을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의 공간이 무려 2미터 이상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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