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4화 (335/448)

14권-09화

“결국 이렇게 되는군.”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즉각 명령을 내렸다.

“경고는 끝났으니 이제부터 사정 볼 것 없다! 눈앞에 있는 수상쩍은 것들을 철저히 응징해라!”

[전 함대! 주포 발사!]

이미 제네레이터와 주포는 충분히 예열되어 있었다. 별다른 차징 과정 없이 에너지를 받아들인 바니아스 함대의 전함들은 일제히 세찬 빛줄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출력은 지구보다 훨씬 큰 행성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기엔 충분한 수준. 특무함대라는 명칭에 걸맞는 화력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강력한 화력도 놈들을 쓸어버리지 못했다. 함대의 포격이 작열하려는 순간, 갑자기 공간이 이지러지는가 싶더니 모든 빔들이 죄다 소실되어버린 것이다.

그것을 본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이 갑작스런 돌발 상황에 살짝 눈매를 찌푸렸다. 인베이더 놈들과 숫하게 싸우다 보면 온갖 일이 벌어지는 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뜻밖이긴 했던 것이다.

“뭐냐!? 배리어 계열의 방어는 아닌 듯한데?”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이 오퍼레이터에게 묻자, 그가 관측기를 통해 분석되고 있는 결과를 내놓았다.

[현재 해석 중입니다. 디스토션 필드와 유사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공간단층에 더 가깝습니다.]

“공간단층이라고!? 설마 신기술인가?”

[아닙니다! 이건 전함의 기능이라기보다는 누군가의 이능일 가능성이 더 놓습니다.]

설명이 자세하진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오랜 전장의 경험을 토대로 오르트 메이슨은 즉각 대응책을 마련했다.

“그렇다면 오래 가지는 않겠군. 제네레이터 출력 상승. 에너지 차징을 멈추지 마라. 조만간 저 방어도 걷힐 터. 그때 다시 총공격을 펼쳐라. 그리고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오버러와 같은 특작부대로 근접 공격을 시도할 터. 오버러 부대는 지금 즉시 출격할 준비를 마치도록.”

제아무리 강력한 영능력자라 해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 급 이상의 강자라면 모를까, 그 이하라면 개인이 함대를 감당한다는 건 결코 불가능했다.

이번에 바니아스 함대의 포격이 막힌 건 사실 능력의 특성에 기인한 결과물일 뿐. 실제 방어의 출력이 함대의 포격과 비견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 상태를 장시간 유지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건 당연했다.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이 방금 명령도 바로 이점을 겨냥한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 공간을 격리시키던 현상이 스르륵 사라졌다. 물론 소속불명의 전함들은 그 틈을 타 배리어를 가동하고 한창 주포를 차징하고 있었지만, 이쪽은 이미 차징을 완료한 상태였다.

“자, 놈들은 아직 쏠 준비조차 끝나지 않았다. 놈들이 준비를 마치기 전에 먼저 유린하는 거다!”

콰아아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시무시한 빛줄기가 다시 한 번 우주공간을 살랐다. 바니아스 함대의 공격은 성대한 형태로 뻗어나가 소속불명함들의 배리어 위를 인정사정없이 두들겼다.

허나 놈들도 가만히 앉아 당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방어와 함께 차징 된 순서대로 빔포를 갈기기 시작했다.

그 출력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바니아스 함대의 배리어가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다수의 빔포 직격! 디스토션 필드 출력 꾸준히 감소합니다! 75%··· 72%!]

“생각보다 강력하군.”

소속불명함이라고 해서 그저 어중이떠중이인줄 알았더니 생각보다 제법이었다. 이 정도면 3대 세력의 주력함과 비교해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암중에서 흉계를 꾸미는 세력의 전력이라 보긴 어려울 정도야.”

유태진이 보내온 정보대로라면 저 소속불명함들은 할파스 상회나, 혹은 인베이더와 협력하는 자들의 소유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제아무리 암중 세력이나 할파스 상단이라 하더라도 이만한 전력을 갖춘다는 건 무리였다. 전함의 개발이란 것은 실로 무지막지한 재력과 기반을 필요로 하는 만큼, 우주의 3대 세력 정도가 아니라면 이 정도까지 성능을 갖춘다는 게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할파스 상회가 사실상 공화국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밑바탕으로 몰래 독자적인 전함을 개발해낸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베이노아 수상과 레이스컬의 역량이 만만찮았다.

게다가 부패한 군부세력인 테트라도 할파스 상회에게 돈을 받아먹을지언정,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의 밑천이라 할 수 있는 전함개발권한을 놈들에게 넘겨줬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3대 세력 중에 인베이더와 협력하고 있는 자들의 세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어.’

그렇지 않고선 저만한 전함들이 소속불명으로 튀어나와 바니아스 함대와 정면으로 맞서고 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지? 제국인가? 아니면 공화국? 그것도 아니면 설마 우리 연합 내에 존재하거나 3대 세력 전반에 걸쳐 있는 건가?’

의심은 들었지만 무엇 하나 단정 짓긴 어려웠다. 현재로선 추측할만한 단서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베네트 국장도 이걸 알기에 유태진을 따로 조사 보냈던 모양이군.’

거기까지 생각한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이제부터는 전투에 집중하기로 했다. 놈들의 저력이 만만치 않은 만큼 본격적으로 싸워야 할 때였다.

“이런 식이면 이긴다 해도 놈들 중 일부는 도주하겠군. 어쩔 수 없지. 준비된 것을 사용한다. 노이즈 채프, 이미지 벌룬 살포. 놈들의 센서를 혼란시키는 한편 대응할 수 없는 방위에서 기습적인 기동 포격을 개시한다.”

노이즈 채프와 이미지 벌룬은 최근 개발된 기술 중 하나였다. 상대의 센서를 오작동 일으키게 만드는 노이즈 채프는 매우 값비싼 촉매와 술식이 더해진 것으로서, 영자에 기반을 둔 센서를 말 그대로 먹통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미지 벌룬은 유질량 홀로그램보다 더 한층 발전된 것으로서 잠시나마 실체와 다름없는 질량과 존재감을 구현시킬 수 있는, 일종의 완전구현 홀로그램이었다.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이것으로 놈들을 혼란시킴으로서 확실한 승기를 가져갈 생각인 것이다.

“자, 순식간에 쓸어버려라! 한 놈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때부터 소속불명함은 혼란에 빠져 서로 분단되기 시작했다. 센서가 상당수 먹통이 되고, 일부 센서에는 좀 전까지 없던 다수의 적들이 사방팔방에서 출현해 둘러싸는 것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거기에 대응하다 보니 한데 뭉쳐 있던 전함들의 대열이 점점 분단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노련한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 이후, 거의 일방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 * *

수호방위대의 대장인 마이스터 기무드는 황망함을 금치 못했다. 자신들 앞에서 이렇게 당당히 잡아가겠다고 공언하다니, 제정신이란 말인가.

눈앞에 있는 사내가 범상치 않아 보이긴 했지만, 그래봐야 혼자뿐이었다. 이곳에 있는 전력을 생각하면 자살행각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여기 있는 마이스터만 무려 다섯이고 고위 영능력자만 해도 300을 넘는데, 이 많은 강자를 너 혼자 감당하겠다고? 미친 녀석.”

“어디서 기어들어온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용기가 가상한데?”

“저런 건 만용이라고 하지. 그건 그렇고 재주도 좋군. 어떻게 경매장을 봉쇄한 거지? 우리가 힘을 써도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라니. 이놈 설마 결계전문가인가?”

기무드를 위시한 수호방위대 출신의 마이스터들이 유태진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긴장한 기색조차 전혀 없었다. 각자 자신의 실력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오히려 이런 사태를 만든 유태진에게 호기심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호기심도 어디까지나 잠깐의 흥미에 지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별 일 없이 평화로웠던 자원행성에서 지내다 보니, 이런 돌발사건이 흥미로웠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가만있을 순 없었다. 경매에 참석한 고객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경매가 시작되기도 전에 갑자기 무슨 일이야!?”

“할파스 상회는 대체 뭘 하고 있나? 난입한 녀석을 어서 없애라고!”

“아니 어떻게 일처리를 하길래 이런 사태가 벌어져! 1분 1초가 아까운 마당에 말이야.”

“오래간만에 기껏 경매에 참가했더니··· 이거 위험한 거 아니야?”

“경호원, 어디 있나? 서둘러 탈출경로부터 찾아봐. 어서!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상황이 이렇게 되자 기무드도 짜증 어린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할파스 상회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앞으로 개최될 경매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네놈은 우리 손에 잡혀줘야겠다.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들어와 경매장을 봉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문하다 보면 배후가 어디인지 죄다 실토하겠지.”

“아, 그래?”

고문을 운운하며 압박해오는 그들의 모습에, 유태진은 여유롭게 검을 쥐었다. 수호방위대의 대원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영자무구 중 하나였지만, 이 하나만으로도 저들을 상대하기엔 충분하고도 넘쳤다.

“날 붙잡겠다는 희망사항은 좋지만, 너희들의 목숨부터 걱정하는 게 어떨까?”

그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힌 순간, 기무드는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드러난 존재감은 자신보다 못한데, 어떻게 이런 섬뜩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거지?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성보다 본능에 따랐다. 섬뜩한 느낌이 들자마자 바로 옆으로 몸을 피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생일대의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촤아악!

“뭣!?”

“그리안!”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서 있던 마이스터 중 하나가 허리 어림이 절단되면서 죽음에 이르렀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죽은 사실조차 인지 못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남은 네 명의 마이스터들이 당황하면서 즉각 전투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특히 섬뜩함을 느껴 자리를 피했던 기무드는 더더욱 그러했다.

‘본능적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나까지 죽을 뻔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우리보다 약하게 느껴지는데, 어떻게 이런 공격을!? 대체 이놈 정체가 뭐야?’

나름대로 강자라고 자부하던 수호방위대의 5인방이었다. 설령 그랜드 마스터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뭉친다면 죽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동료 한명이 정체도 알 수 없는 공격에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그렇다면 이 자가 그랜드 마스터이거나 그 이상의 강자라는 말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는 강하게 부정했다. 그랜드 마스터나 되는 자가 이런 곳에 직접 왔을 리가 없었다. 정말로 눈앞의 사내가 그런 강자라 해도 자신들을 소리 없이 죽일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자가 위험천만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결국 기무드는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데스 필드 시스템을 가동한다.”

“대장, 그래도 괜찮겠어?”

옆에 있던 마이스터 중 하나가 물었지만, 기무드의 결심은 이미 굳어진 상태였다.

“놈이 어떤 실력과 능력을 가졌는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그리안도 단숨에 죽어버렸지. 그렇다면 굳이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보다는 가진 전력을 다해 놈을 제거하는 게 옳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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