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3화 (334/448)

14권-08화

갑자기 워프 반응이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 자원행성과 위성의 위치는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자원을 모두 소모하고 폐기된 이곳을 할파스 상회에서는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이동요새처럼 개조했던 것이다.

그래서 자원행성의 위치는 언제나 달랐다. 결코 같은 장소에 있지 않으니 이곳을 찾아 정확히 워프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경매에 초대받은 참석자들도 할파스 상회에서 직접 보낸 1회용 워프 마커가 아니었더라면 결코 찾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이미 다 참석한 상황에서 워프 반응이라니. 그 말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란 뜻이었다.

가면인이 여성을 돌아보더니 추궁하듯 물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도 모르겠어.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곳의 정보가 유출된 건가? 그럴 리가 없는데. 당신도 알잖아. 여기 위치는 항상 변한다고! 참석자들이 가진 워프 마커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시간엔 이곳으로 정확히 올 수가 없게 되어 있다고!”

그녀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서였다.

하지만 가면인은 그녀에 비해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럼 누군가가 여기서 워프 마커를 뿌렸다는 의미겠군. 사전에 침입자가 있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이곳에서는 좌표를 인지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대체 누가?”

그녀는 이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지부의 지하 깊은 곳에 자리한 정신제어시스템은 단순히 세뇌의 기능만 갖고 있는 게 아니었다. 자원 행성 내에 있는 모두의 기억 속에서 현재 위치에 대한 좌표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지부조화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불법 경매를 치르면서도 단 한 번도 외부의 위협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마이스터 급 정도 되는 고위 영능력자겠지. 그 정도면 인지 장애 따위는 무시할 수 있을 테니까.]

“···설마 밀항함을 타고 잠입한 놈들 중에 그만한 고위 능력자가!?”

밀항함을 통해 몰래 자원행성으로 기어들어오는 소수의 침입자는 여태까지 여럿 있었지만, 목적을 달성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정신제어시스템의 힘을 견디지 못했고, 자원행성의 좌표를 특정해 외부로 전송하는 데에 실패하고 말았으니까. 좌표를 특정해도, 그것을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래서 개중에는 직접 지부 안으로 침투해보려는 자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들도 결국 세뇌에 걸려든 뒤 역으로 자신들의 정보만 토해내고 말았다.

물론 마이스터 급 이상 되는 영능력자에게는 이런 세뇌가 통하지 않겠지만, 문명 레벨이 낮은 성계 하나쯤은 통째로 멸할 수 있는 성멸 급과도 대적할 수 있는 최고급 전력을 이런 위험천만한 곳에 투입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정말로 마이스터 급 영능력자를 침투시켰다고?

하지만 실제 결과가 이러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여성은 초조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자신의 손톱을 질근질근 씹던 그녀가 끝내 가면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까지 해온 사업을 이렇게 무너뜨릴 순 없어! 당신, 어떻게든 손을 써 봐. 이대로 가다간 당신이 인수해 가야 할 제물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여성은 가면인이 가진 능력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나서준다면 이곳을 침범하려 하는 적들이 대거 들이닥치기 전에 틀어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워프부터 틀어막도록 하지. 대규모 함대라도 몰려오면 곤란하니까.]

가면인은 자신을 닦달하는 여성의 태도가 영 맘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인수해가야 할 제물에 문제라도 생긴다면 자신의 입장도 곤란하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가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방대한 영력이 요동치는가 싶더니 위성 위로 드넓게 펼쳐진 우주공간이 삐걱대며 뒤틀리기 시작했다.

끄그그긋!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뭔가 이지러지는가 싶던 변화가 돌연 잠잠하게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공간의 늪이 먹히지 않는다고!? 설마 이건!]

가면인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시공간의 균형을 뒤틀어서 워프의 길목을 인위적으로 틀어막는 자신의 독자적인 수법인 공간의 늪은 파훼할 수 있는 수법이 아니었다.

이 우주에서 그게 가능한 사람을 찾는다면 자신의 동생인 리클 한 사람 뿐.

‘설마 그 녀석이 이곳에!?’

그럴 리가 없었다. 한 핏줄을 타고난 형제인 그는 동생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생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라인트라 대전 당시의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짐작가는 바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설마 디멘션 쿼츠? 그걸 공간의 늪에 대응하는 형태로 짜 올린 건가?]

아마도 누군가가 동생에게 건네받은 특수한 디멘션 쿼츠로 자신이 구사한 [공간의 늪]을 파훼한 것이라 짐작되었다.

‘일이 꼬이는군.’

상황이 좀 곤란해지긴 했어도, 동생을 원망하는 마음은 들지 않았다. 애당초 모든 존재들을 향한 분노와 증오가 어딘가 어긋나 있다는 것쯤은 자기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동생이 자신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고오오오!

마침내 웜 홀의 개방과 함께 전함들이 속속 워프 아웃하기 시작했다.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그것들은 하나같이 연합의 고유의 규격과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여성도 그것을 알아보았다.

“연합 함대!? 그들이 냄새를 맡은 거였어?”

[아무래도 꼬리를 잡힌 모양이군. 레민티아 지부장. 최근 연합에서 엘프의 아종들이 실종된 일을 추적하고 있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책망하는 듯한 그 말에 여성의 얼굴이 일순 시뻘게졌다.

“불가항력이었어! 애당초 납치는 우리 몫이 아니었다고! 지저분한 인베이더 놈들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걸 왜 우리 탓을 하는 거야?”

[기밀에 신경 쓰지 않은 건 사실이지. 한시도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이곳의 위치가 이렇게 쉽게 들통 난 건 분명 당신의 과실인 것 같은데.]

“윽··· 설마 예상 못했지. 마이스터 급 이상의 고위 영능력자를 적진 내부로 잠입시키는 미친놈들이 있을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가면인은 그게 바로 방심이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그런 판단을 내렸던 것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할파스 상회의 자원행성 지부는 사실 용담호혈이나 다름없었다. 이곳에 갖춰진 전력만 해도 어지간한 그랜드 마스터 급을 넘어설 정도며, 자원행성의 방위 기능도 꽤나 삼엄했다.

사태가 이렇게 꼬이지 않았더라면 마이스터 급이 내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해도 금세 제압했을 것이다.

“이런 망할! 연락조차 안 돼! 수호방위대는 어떻게 된 거야? 경매는 또 어떻게 됐고!?”

레민티아 지부장은 어떻게든 대응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다 막혀버렸다. 제대로 연락조차 되지 않으니 뭘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게다가 문제가 발생한 즉시 나서야 할 수호방위대가 전혀 대응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본래 이쯤 됐으면 전함과 대공방어 시스템까지 총동원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지부와 경매장 쪽에는 직접 연락이 닿지 않아도, 외부에 있는 시설이나 자원행성 방위시스템 관리자들과는 연락이 닿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듣게 된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뭐야? 공간 자체가 격리되었다고?”

<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경매장과 상회 지부는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었습니다. 외부에서 안으로 들어갈 순 있지만,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구조인 듯합니다. 여러 차례 조사대를 차출해 안으로 들여보냈지만 한 사람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대체 누가! 언제 그런 짓을!?”

경매장과 상회 지부를 격리시키다니! 그 정도 규모로 공간을 격리시키려면 보통 준비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쪽에서는 그런 걸 준비할 때까지 전혀 감지조차 못하고 있었다니··· 그녀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니, 가능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어떻게든 극복할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옆에서 듣던 가면인이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누군지는 몰라도 솜씨가 대단하군. 이곳의 방어 시스템을 완전히 무력화시켰어. 대체 뭘 어떻게 했기에 이 정도까지 허를 찔린 거지? 단순히 방심만으론 일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텐데.]

“···아무튼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야. 지금은 이 위기부터 넘겨야 해! 그러니 당신도 도와! 적극 협조하라고!”

레민티아가 억지에 가까운 목소리로 가면인에게 조력을 강요했지만, 그녀의 말이 아니더라도 가만히 앉아 지켜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럼 일단은 저 함대부터 상대하는 게 좋겠군. 내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 테니, 그 사이 사태를 수습하는 게 최선일 거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위성 근처에서 비가시화 형태로 숨어 있던 전함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들은 가면인이 인수받은 제물들을 목적지로 이송하기 위해 은밀히 끌고 온 전함들이었다.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었다면 절대 외부로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유태진의 요청을 받고 도착한 관리국 소속 특무함대 바니아스에서도 관측되었다.

[위성 아렌고타 인근에서 소속불명의 함대 포착! 지금 현재 비가시화 모드를 해제하고 있습니다.]

[라이브러리 데이터에 없는 전함입니다. 언노운 타입!]

오퍼레이터들의 보고에 사령관 오르트 메이슨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말은 즉, 인베이더의 것도 아니고 연합이나 공화국, 그리고 제국 소속의 전함도 아니라는 뜻이었다.

[소속불명이라···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군.]

물론 우주의 모든 전함이 각 세력의 주력 전함이나 함선과 같은 특성이나 형태를 갖추고 있으란 법은 없지만, 이 정도 규모의 전함들이 한 번도 드러난 적 없는 타입이라면 의심할 여지는 충분했다.

하지만 의심 간다고 해서 무턱대고 공격부터 할 순 없었다. 그 전에 공용통신회선을 이용해 먼저 경고부터 보냈다.

[소속불명의 함대에 고한다. 우린 우주적인 규모로 아인종에 대한 인신매매와 다수의 금수품목을 대상으로 불법 경매가 벌어지고 있다는 정보로 폐기지정행성 V-2580을 제압하러 온 연합 소속 특무함대 바니아스다. 이제부터 이 주역은 우리가 통제할 것이며, 순순히 조사에 응해라. 이건 단 한번뿐인 통보이며, 만약 이를 거절하고 저항할 시엔 무차별 공격으로 격침시킬 것이다.]

[······.]

오르트 메이슨 사령관은 직접 경고를 보냈지만, 소속불명의 함대로부터는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활짝 개방한 포구를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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