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2화 (333/448)

14권-07화

경매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저 하늘의 위성에서 리겔과 할파스 상회의 여성 지부장과의 은밀한 거래가 시작될 것이다.

시기적절하게 놈들을 덮치려면 지금부터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현재 유태진은 경매장을 보호하기 위해 경계를 서고 있는 상황. 같은 처지인 견습 동료들과 직속선임들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여기서 몸을 뺀다면 자신의 부재가 저들에 의해 바로 상부로 알려지게 될 터.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손을 써둘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 경계를 서는 수호방위대원들을 신경 쓰는 자들은 없었다. 아니, 설령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다 해도 이를 커버할만한 수단을 여럿 갖고 있었다.

‘환영봉쇄진 개진.’

유태진이 의념을 일으킨 순간,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이 이 일대 전체로 번져나갔다. 그것은 현재의 최신형 관측장비로도 감지할 수 없는, 이질적인 변화였다.

요 며칠 동안 지부의 업무를 배우고 경계대응 요령을 익히면서 그냥 멍하니 있었던 게 아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여러 가지 수작을 부려놓았다.

그 중 하나가 몇 가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진법의 설치였다. 선임들은 이제 막 들어온 견습들에게 지부의 내부 구조와 업무의 동선을 숙지시키기 위해 곳곳을 돌아다녔고, 유태진은 그럴 때마다 보이지 않게 손을 써서 이 일대를 둘러쌀 수 있는 거대한 진법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발동된 순간, 모든 사람들이 할파스 상회의 지부와 경매장 안에 완전히 갇혀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올 수는 있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오고 나면 절대 외부로는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진법의 공능이 그들의 감각을 속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태진이 제 위치를 이탈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이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제 본격적인 단계로 넘어가야겠군.’

환영봉쇄진은 어디까지나 준비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저들의 눈을 속이고 나갈 수 없도록 일정 시간동안 가둬둔다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 시간을 버는 것에 그칠 뿐. 저들을 진짜 제압하려면 확실한 무력이 필요했다.

물론 단순 무력만이라면 유태진 혼자서도 부족함은 없었지만, 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엔 한계가 있었다. 이 자원행성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범죄자인 만큼, 유태진 홀로 손을 쓰다간 자칫 일부 범죄자들을 놓칠 수도 있었다.

경매장과 상회 지부를 진법에 가둔 뒤, 유태진은 곧바로 그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진법을 구축한 주체인 그만큼은 오가는 게 자유로웠던 것이다.

그는 밴더의 기능 중 하나를 활성화시켰다.

“워프 마커 송출. 대상은 연합 관리국 소속 특무함대.”

워프 마커란 바로 워프로 도착할 장소를 지정하는 좌표 포인트.

저편에서 워프를 시도할 함선이 바로 이 마커 정보를 입수함으로서 이곳까지 다이렉트로 이동해 올 수 있는 것이다.

끄그그긋!

워프 마커를 송출하기가 무섭게 곧 공간에 변화가 일어났다. 변동중력원에 의한 웜 홀 게이트가 형성되더니 다수의 전함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유태진이 기다리고 있던 관리국의 특무함대 바니아스였다. 관리국장의 직속 부대는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신속히 처리해야 할 일이 닥쳤을 때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함대인 것이다.

[여기는 관리국 소속 특무함대 바니아스의 사령관 오르트 메이슨. 본 함으로 워프 마커를 송출해 지원요청한 귀관의 응답을 듣고 싶다.]

“이쪽은 관리국 소속 독립함대 인피니티 킹덤의 사령관 유태진.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부터 곧바로 제압 작전을 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사정은 베네트 국장께 이미 들었으니까. 그럼 우리 바니아스 함대는 위성에서 거래를 시작한 자들을 제압하기로 하지.]

“부탁드립니다.”

유태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메이슨 사령관의 특무함대는 곧바로 위성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이 사태를 할파스 상회의 지부 인사들도 비로소 눈치 챈 건지, 위성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외부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한 대공 방어시설이었다.

하지만 그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위성은 어디까지나 곁다리였을 뿐, 방위시설의 대부분은 본성인 자원위성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리겔이나 할파스 지부의 고위층 일부가 보유한 전력들이 상당수 위성에 존재하고 있을 테지만, 베네트 국장이 엄선해서 보낸 바니아스 함대라면 충분할 것이다.

“그럼 나는 이쪽을 제압해야겠군.”

유태진은 혼란에 빠진 경매장과 할파스 상회 지부를 응시했다. 진법이 잠시간 눈속임을 해주긴 했지만, 완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이스터 급 수준의 영능력자라면 진법의 환상쯤은 이미 간파했을 터. 서둘러 놈들을 제압해야 했다.

물론 저 많은 인원을 놓치지 않고 제압하려면 혼자서는 손이 부족했을 테지만, 유태진은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바니아스 함대 말고도 자신을 도울 지원병력이 또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이이잉!

또 한 번 시공간이 뒤틀리는 이명과 함께 수십 척의 전함들이 쏟아져 나왔다. 관리국의 전함과는 전혀 다른 형태와 디자인을 하고 있는 저 함대는 유태진의 우군이라 할 수 있었다.

[여긴 레이스컬 소속 전위함대, 스타 브레이커. 베이나스 수상의 명에 따라 범죄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도착했다. 본 함은 현 시간부로 제압작전을 개시하며, 일체의 사정을 두지 않을 것을 선포하겠다.]

“역시 도착했군.”

베이나스 수상이 보낸 레이스컬의 함대가 웅장한 기세로 자원행성을 향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자원행성 곳곳의 방위시설들이 자동으로 가동되면서 대응에 나섰지만, 고작 그 정도 포격으로 어찌될 전력이 아니었다.

쾅! 콰아아앙!

무시무시한 포화가 솟구쳐 올랐지만, 스타 브레이커 함대는 그 모든 것들을 배리어로 차단하거나 같은 빔 포로 맞부딪쳐 상쇄시켜버렸다.

“제법이야.”

빔 포를 같은 빔포로 맞서 정면에서 상쇄시키는 기술은 어지간한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화기제어기술을 무려 수십 년 이상 갈고닦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했다.

베이나스 수상과 레이스컬이 심혈을 기울여 전력을 키웠다더니, 이 정도면 가히 관리국의 정예함대 수준에 버금갈지도 모른다.

이를 목도한 사람들이 혼란에 빠졌다. 그들 대다수는 경매가 개최되는 이곳 자원행성에서 한철 장사를 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자들이었다.

“대체 이게 뭐야!? 뭔 난리가 벌어지고 있어?”

“갑자기 전함이 들이닥치다니. 설마 이거 할파스 상회 소속이 아닌가?”

“할파스 상회는 무슨! 지금 저 전함들이 이곳을 공격하고 있어! 할파스 상회의 전함일 리가 없잖아.”

“그럼 대체 뭐야?”

“PMC? 할라파고스? 대체 뭐야? 민간군사기업이 왜?”

대체 민간군사기업이 어째서 할파스 상회의 소유인 이곳을 공격하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공화국 내의 기업들은 대부분 할파스 상회에 굴복하고 충성을 맹세한 상황.

간 크게 이곳을 공격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헌데 그 불가능한 일이 지금 모두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쿠구구구!

자원행성 곳곳에서 함선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바로 경매에 초청받은 자들이 타고 온 함선들이었다.

정체불명의 함대에게 공격을 받는 상황이 오자, 즉시 대응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저항은 무력했다. 경매에 초대받은 자들이 타고 온 함선들은 수송함이거나 여객선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기본적인 무장은 갖추고 있긴 했지만, 전투함대에게 대적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콰아앙!

[항복하라. 저항하지 않으면 사살하거나 격침시키지 않겠다.]

스타 브레이커 함대는 저항하는 자들을 족족 박살내면서 항복할 것을 종용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레이스컬 소속의 함대라는 것은 밝히지 않았다.

아직은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어서였다. 만일 레이스컬과 베이나스 수상이 관련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정치적 입지가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젠장, 이래선 도망칠 수도 없어!”

“항복! 항복합니다!”

“안 돼! 여기서 죽을 수 없어!”

여기저기서 절망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타고 온 함선들이 죄다 격추되고 있는 이상 도망갈 길조차 없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까지 대적하거나, 혹은 앞으로 어찌 될지 알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일단은 항복해서 훗날을 기약하는 일 뿐이었다.

꽤나 허무한 결말이었지만,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지금 할파스 상회 지부가 보유한 전력의 대부분은 저 경매장과 위성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들어가 보실까?”

유태진은 환영봉쇄진 안으로 다시 발을 들였다. 이제 데니스 크라이드란 사람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본 모습으로 되돌아간 그는 진법 안에 갇힌 채 자신을 놀란 듯 응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정 범위 바깥으론 나갈 수가 없었는데, 갑자기 외부에서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 심지어 마이스터 급 무력을 가진 자가 손을 써봤는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그들이 놀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뭐냐, 네놈은!?”

“설마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나?”

그들은 유태진이 우연히 이 격리공간을 벗어날 방법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그가 격리공간을 만들어낸 원흉이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할파스 상회 소속의 마이스터인 기무드는 의심에 찬 눈으로 유태진을 응시했다.

“못 보던 놈이군. 내가 본 참석자들 가운데 너 같은 놈은 없었다. 누구냐, 네놈은!”

기무드는 이번 사태가 벌어지면서 이곳에 있는 참석자들의 얼굴과, 기존에 등록되어 있던 참석자들의 데이터를 서로 대조해본 바 있었다.

하지만 그 중 저 사내의 얼굴만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가장 먼저 의심하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내가 누구냐고?”

유태진이 조용히 웃었다.

“바로 네놈들을 잡아갈 사람이지.”

* * *

자원행성의 위성 아렌고타. 이곳에서는 가면인과 할파스 상회의 고위층 여성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일일이 거래 품목을 확인하던 가면인은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거래품은 확실하군.]

“당연하지. 나는 철저한 걸 좋아한다고. 상인에게 신용은 생명이니까.”

[좋아. 그럼 거래는 성사되었다. 대가는 곧바로 전송해주지.]

가면인은 여성에게 특정 데이터를 전송해줬다. 그것은 특수자원이 매장된 행성의 위치가 기록된 데이터였다.

우주에서도 찾기 힘든 특수자원들의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커서, 그 위치 정보만으로도 거래의 대가로 치르기엔 충분했다.

헌데 그때였다.

끄그그긋!

어딘가로 부터 공간이 뒤틀리는 이명이 울려 퍼졌다. 그것은 자원행성과 아렌고타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변동중력원 발생! 워프 조짐입니다. 대규모 워프 아웃 반응 관측!]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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