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30화 (331/448)

14권-05화

* * *

베네트 국장은 자신에게까지 올라온 보고를 확인하고는 일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빠르기도 하군. 잠입한지 며칠 되지도 않은 걸로 아는데 벌써 이런 걸 찾아냈어?”

연방공화국 내에 있는 비밀 지부에서는 보름마다 정기적으로 보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평소와 뭔가 달랐다. 누군가가 조사한 결과물이 여기에 데이터로 첨부되어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였군.”

내용을 살핀 그는 무겁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짐작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할파스 상회가 주관하는 비공식 경매가 불법의 온상지이며, 그곳에서 온갖 더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으니까.

단지 아직까지 직접 손을 대지 않았던 건, 그곳이 공화국의 관할 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주법 상으로 금지된 노예매매나, 혹은 금수품목들이 취급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유태진이 보내온 이 데이터대로라면 이쪽에서도 개입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된다.

‘인베이더와 결탁했거나 하수인으로 짐작되는 자와 거래하는 장면까지 찍혔으니, 변명의 여지조차 없지.’

제국과 연합, 그리고 공화국은 인베이더에 대적하기 위해 하나로 뭉친 동맹이었지만, 그 외의 사안에 대해선 서로에 대한 불간섭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간섭 방침을 무시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베이더와 관련된 문제일 경우였다.

이땐 기존의 모든 조약과 법을 무시할 수 있으며, 불문율이나 다름없는 서로에 대한 불간섭 방침조차 무효화 된다.

“그렇다고 해도 곧바로 저 자원행성으로 들이닥칠 수 있는 건 아니지.”

아마 그랬다간 공화국에 대한 연합의 침공으로 간주되어 두 세력 간의 전쟁으로 비화될 게 분명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연락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필리스, 연방공화국 수상과 연결해봐. 외부에 절대 감청되지 않는 핫라인으로 말이야. 지금 바로.”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베네트 국장의 명령에 필리스 부관이 곧 연결을 시도했다. 그러자 홀로그램 스크린이 떠오르더니 곧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허나 젊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그의 실제 나이인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인간처럼 보이겠지만, 그는 인간이 아니었으니까.

아인종으로 취급되는 하프 블러드(혼혈)로서 그의 한계수명은 천년을 훌쩍 넘는다. 덕분에 300년 이상 살아왔으면서도 언제나 20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베네트 국장.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오?]

사내가 눈살을 찌푸리며 용무를 물었다. 지금 시각은 벌써 저녁때를 넘어 10시에 가까웠으니 이런 늦은 시간의 연락을 불쾌하게 여길 만도 했다.

“미안하게 됐군. 늦은 시간이라는 건 알지만 사안이 워낙 중대해서 말이야.”

[중대한 사안? 내 프라이버시 시간을 이렇게 허비해야 할 만큼 중대한지 정말 궁금할 정도요.]

“너무 빈정대지 말게. 정말로 중대한 일이니까. 특히 베이노아 수상 당신에게는 더더욱 말이야.”

[혹시 그 중대한 문제라는 게 우리 공화국의 일이오?]

“그렇다네. 당신네 공화국에서 뿌리 깊은 할파스 상회와 연관된 일이지.”

할파스 상회가 언급되자, 베이노아 수상의 얼굴은 구겨진 채 펴질 줄을 몰랐다. 공화국에서도 거의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는 할파스 상회는 그에게도 가장 골칫거리였기 때문이었다.

놈들이 온갖 불법을 자행해도, 그걸 저지할 방도가 없었다. 공화국 내애서만큼은 가히 초법적인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베이노아 수상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체념적인 어조로 말했다.

[혹시 내게 뭔가 기대했다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할파스 상회는 나도 어떻게 하기 힘드니까. 놈들에게 손을 쓰려 했다간 콜베라 정당과 테트라가 가만있지 않을 거요. 아마도 불같이 일어나 내 퇴진을 요구하며 압박해오겠지.]

“당신의 그 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는 놈들을 압박할 좋은 명분이 있어.”

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베이노아 수상의 반응은 여전히 심드렁했다. 지금까지 그들을 척결하고 공화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수많은 시도를 해왔지만 번번이 실패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었다.

[명분이라. 어중간한 명분 따윌 내세워봐야 놈들에게 역공할 기회만 줄 게 뻔한데··· 설마 놈들이 인베이더와 연관되기라도 한 거요?]

“음? 당신 이미 알고 있었나?”

베이노아 수상의 입에서 튀어나온 인베이더란 단어에 베네트 국장이 잠시 놀라 되물었다.

하지만 정작 놀란 것은 베이노아 수상이었다. 그가 인베이더를 언급했던 건 그 정도가 아니고서는 할파스 상회와 공화국 내의 부패한 세력을 일소할만한 명분으로 부족하다는 뜻으로 내뱉은 푸념이었을 뿐. 정말로 인베이더와 연관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아니, 정말이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들이 인베이더와?]

“사실이네. 요 몇 년간 우리 관리국은 그런 조짐을 발견해 추적해왔고, 최근 들어서야 겨우 결과를 볼 수 있었지. 놈들이 인베이더와 거래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데 성공했네.”

[정말이라면··· 확실히 명분이 되긴 충분하겠군. 그렇다면 내게 원하는 게 뭐요?]

“이번 기회에 확실히 소탕을 할까 생각중이네. 근데 그곳이 하필이면 공화국의 세력권이더군. 물론 지금은 버려진 거나 다름없는 주역이긴 하지만, 거길 우리 쪽에서 무단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우린 공화국과 전쟁을 벌이고 싶은 게 아니거든.”

베네트 국장의 목적을 들은 베이노아 수상은 잠시 고민했지만, 딱히 의심할만한 부분은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들이 공화국을 침공할 생각이었다면 중요 요처가 아닌, 그런 쓸모없다고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주역을 노릴 리가 없었다.

[좋소. 정말 증거가 확실하다면 허가해주지 못할 것도 없지. 합동작전을 벌이는 것도 좋겠군. 단지 그 증거를 이쪽에서도 봤으면 하는데···.]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지금 보낼 테니 확인해 보시지.”

[으음···.]

베네트 국장이 보낸 데이터를 수신해 받은 베이노아 수상은 침음성을 흘렸다. 그곳에는 꽤나 많은 광경이 찍혀 있었다.

유태진이 목도했던 것들이 그대로 찍혀있는 적나라한 영상의 내용에 베이노아 수상은 참담한 얼굴이 되었다.

물론 할파스 상회가 얼마나 더러운 짓을 하는지는 여러 차례 정보를 수집해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선명한 영상으로 접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영상에서 드러난 통신 속의 가면인의 모습에. 베이노아 수상이 물음을 던졌다.

[그런데 저 가면인은 누구요?]

“인베이더의 하수인으로 짐작되는 자지. 지금까지 우리 연방 내에서 인베이더를 위해 수많은 공작을 벌여왔으며, 그 중에는 우리 연합에 치명적인 사건들도 여럿 있었지. 베이노아 수상 당신도 알겠지만, 1년 반 전에 벌어졌던 라인트라 대전도 바로 이자가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었음을 확인했네.”

[라인트라 대전까지!? 그런데 이 자가 할파스 상회와?]

설명을 듣고서야 베이노아 수상은 일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그런 큰 사태를 발발시킬 수 있는 자라면, 단순히 인베이더의 하수인이라 볼 수도 없었다. 아마 그 안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라인트라 대전이 요 수십 년 내에 벌어진 전쟁 중에서도 얼마나 큰 규모였던가. 그 덕분에 연합이 입은 피해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그렇다면 한시라도 빨리, 그 자가 할파스 상회를 상대로 무엇을 거래하고 있으며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서둘러 조치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방금 영상을 봐서 알겠지만, 놈들은 엘프의 아종들을 대거 포획해 가둬두고 있는 상황이야. 그리고 공교롭게도 최근 각 행성을 침공하던 인베이더들이 원주민들을 죽이지 않고 생포해 우주로 이송하는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 최종 목적지가 바로 할파스 상회의 지부 근처더군.”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 게다가 엘프의 아종은 왜?]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지. 인베이더 놈들은 엘프의 아종들을 아주 많이 필요로 하고 있으며, 그걸 안전하고 은밀하게 수송하기 위해 할파스 상회와 거래를 트고 있다는 사실 말이야.

그리고 방금 전 영상 속에는 실종된 걸로 확인된 아인종들 중 상당수가 그곳의 깊은 지하에 숨겨진 비밀 시설에 갇혀 있는 사실도 확인했지. 이 정도면 명분으로 충분하지 않나?”

[···충분하고 넘치지. 아니 오히려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한 사태야. 이게 정말이라면 공화국 전체가 뒤집어질만한 일이오.]

안 그래도 공화국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가진 할파스 상회였다. 그들이 정말로 인베이더와 손을 잡았다면, 무슨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

“어쨌든 2주 뒤에는 경매가 개최될 예정이지. 이쪽은 그때에 맞춰 움직일 예정인데··· 베이노아 수상 당신은 어쩔 생각이지?”

[나도 합류하겠소. 그리고 놈들을 처단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흐음, 당신네 사정을 보면 현재의 군부를 움직이긴 어려울 텐데.”

공화국의 군부에 소속된 자들 중 상당수는 일종의 군벌 형태로 뭉쳐 있었다. 그들은 [테트라]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군부를 지금처럼 부패한 곳으로 만든 주범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부를 동원했다간 이번 작전의 정보가 할파스 상회로 유출되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베네트 국장도 우려의 말을 내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베이노아 수상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의용조직을 움직일 생각이오.]

“레이스컬 말인가? 그냥 정풍운동을 주장하는 말뿐인 의용세력이 아니었군.”

[온갖 불법을 저지르는 자들을 상대로 맨주먹만 가지고 싸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니오. 자위행위를 위해 어느 정도 무력을 갖추긴 했지.]

그 말을 통해 베네트 국장은 베이노아 수상이 오랫동안 준비해 왔음을 깨달았다. 할파스 상회나 공화국 내의 부패 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칼을 갈아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의용정치단체로 알려져 있던 레이스컬의 실체였다. 그들은 외부로 알려진 것과 달리 정예화 된 군대였으며, 필요에 따라선 강력한 무력을 투사할 수도 있었다.

이를 위해 베이노아 수상은 무려 40년을 준비해왔다. 할파스 상회가 마음껏 전횡을 저지르는 공화국에서, 그들과 연줄조차 없던 그가 수상 직을 맡을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당신과 레이스컬의 활약을 기대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면서 베네트 국장은 이번 작전의 과정과 시간이 구체적으로 기입된 데이터로 전송했다. 이 작전은 유태진이 보낸 데이터에 첨부되어 있던 것이었다.

[기대에 어긋나진 않을 거요.]

그것을 받은 베이노아 수상은 결연한 표정으로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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