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26화 (327/448)

14권-01화

해적선의 습격이 있던 이후로도 며칠 더 지난 이후에야 밀항선은 겨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열악하고 낡은 밀항함 속에서 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유태진은 여러모로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살짝 실력을 보여줘서 구워삶아놓은 드워프 브로커 때문이었다. 안 그래도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인데, 굳이 안 좋은 감정을 드러내서 관계를 뒤틀리게 할 이유가 없었다.

밀항선을 타고 도착한 곳은 공화국에서 공식적으로 폐기 지정한 행성 중 하나인 V-2580.

본래는 자원행성이었는데, 매장된 자원이 전부 채굴된 이후 폐기지정을 받고 버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공식적인 일이었고, 비공식적으로는 아직도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버려진 자원행성을 범죄자들이 차지해 자기들 마음대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 더 옳을 것이다.

“자, 거기. 물건들 좀 보고 가. 때깔이 아주 곱다니까. 그룬도 행성에서 갓 잡아온 것들이야. 말도 잘 듣고 순하지. 따로 길들일 필요가 없어. 게다가 관상용으로도 좋고. 그러니 한 마리씩 사가. 절대 후회 안 한다니까! 내 보장하지!”

“잘 봐. 이게 바로 영자회로 제조에 주재료로 사용된다는 그린다늄이지. 연합에서는 시중 판매가 금지된 전략물자라고! 내 어찌어찌 하다 보니 간신히 손에 넣게 되었는데, 혹시 살 생각 있나? 원한다면 값을 불러!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혹시 쾌락을 원하나? 그럼 날 찾아와! 전 우주의 마약들을 종류별로 다 취급하고 있으니까. 원한다면 특수한 레시피를 사용해 합성도 해준다네. 그러니 돈만 가져와. 얼마든지 해주지.”

“이게 뭔 줄 아나? 바로 제국에서 반출이 금지된 최신형 대 인베이더 병기 KP-N90이다. 왜 반출이 금지됐냐고? 너무 강력해서지. 이것만 있으면 일반인도 D랭크 인베이더를 격살할 수 있어.”

거리의 여기저기에서는 불법적으로 취득한 장물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었다. 그리고 양지에서는 합법적으로 매매할 수 없는 마약이나 각종 금수품목, 혹은 노예와 같은 인신매매까지 다양하게 취급했다.

이들은 우주 각지에서 몰려온 범죄자들로서, 이곳에서 대규모 경매가 벌어진다는 소식을 입수하고는 여기에 편승해서 한철 대목을 노리기 위해 이렇게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왁자지껄한 광경이 유태진에게는 그리 유쾌하기 보이지 않았다. 불법적인 품목을 취급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우주 곳곳에서 강제로 잡아온 다양한 종족들이 인신매매되고 있는 광경만큼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마음 같아선 저 너절한 것들을 죄다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이를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지금은 조사가 우선이었다.

허나 그런 마음을 알 리 없는 드워프 브로커는 허허 웃으면서 유태진을 어딘가로 이끌었다.

“자자, 이쪽으로 가지. 자네 공화국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지?”

“···혼자 온 건 처음이지. 내 주 활동영역은 대부분 연합이나 제국이었으니까. 전에 길드에서 발인한 대규모 퀘스트 때문에 단체로 와본 적은 있지만 공화국에 대해 제대로 아는 건 사실상 없다고 해야겠지.”

“흐흐···그렇군. 나중에 시간 되면 내 특별히 좋은 데로 안내해주지. 좀 난잡해 보여도 여긴 즐길 거리가 많거든.”

음흉한 웃음을 짓는 그 모습에 유태진은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그가 말하는 좋은 데가 대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동네 상황을 보면 일반적인 도덕관념과는 거리가 먼 곳일 가능성이 높았다.

“바로 저기일세. 저기가 바로 이번 경매를 주관하는 할파스 상회의 지부지.”

얼마쯤 걸어가자 어마어마한 규모의 건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이를 올려다본 유태진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미쳤군. 이건 거의 관리국 본부에 맞먹는 크기잖아?’

이것이 상회의 본부도 아닌, 일개 지부에 불과하다니··· 할파스 상회가 얼마나 막대한 재력과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일단 저 쪽으로 가세. 저기에 내가 아는 분이 있어. 할파스 상회에서도 중견 급 이상의 직위에 계시지.”

드워프 브로커의 뒤를 따라간 곳은 할파스 상회 지부의 고용센터였다. 할파스 상회가 필요로 하는 인력을 선별해 고용하는 부서였는데, 지금도 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드워프 브로커는 기존의 줄을 무시했다. 유태진을 잡아끌면서 사람들을 헤치고 저 안으로 발을 들이는 게 아닌가.

“뭐야, 이 자식은?”

“건방지게 새치기를 해?”

몇몇 인물이 그 행동에 발끈하면서 나서려 했지만, 오히려 주변에서 깜짝 놀라면서 그들을 붙잡아 만류하기 시작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냥 놔 둬. 지금 누굴 건드리려는 거야?”

“질서의식을 무시한 저 짜리몽땅한 드워프 새끼지 누구야! 나도 여기선 얌전히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따위 드워프가 감히 건방지게 말이야.”

“말조심해. 괜히 귀에 들어갔다간 큰 코 다친다. 그리고 고용문제 때문에 새치기 하는 건 아닐 테니 얌전히 있어.”

“왜 이렇게 조심스러워졌어? 대체 뭐 하는 놈인데?”

“알선 브로커인데 꽤 유명한 놈이야. 이 바닥에서 좀만 굴러보면 모를 수 없을 정도지. 심지어 할파스 상회의 고위층과도 연줄이 있다는 말이 있어. 그러니 건드려서 괜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가만히 있기나 해.”

“그··· 그래?”

할파스 상회와 깊은 연줄이 있다는 말에 금세 움츠러들었다. 좀 전에 보여준 분노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만큼 할파스 상회의 악명은 높았다. 음지에서 산전수전 다 경험한 작자들조차 알아서 몸을 사릴 정도였다.

그렇게 사람을 헤치고 나아간 드워프 브로커는 한 사람을 찾아 움직였다. 그는 이곳을 찾은 사람들과 고용상담과 면접을 보던 자들의 상관이었다.

그는 그 자 앞에 다가가 허리를 크게 숙이며 인사했다.

“아이고! 안녕하셨습니까. 젠트 이사님. 그동안 편안하셨는지요?”

“음, 자네였군. 누군가 했지.”

말쑥한 사내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가 바로 이 고용센터의 센터장인 젠트 이사였다. 드워프 브로커와 나름 안면이 있는 건지 그를 바라보면서 용무를 물었다.

“그래, 무슨 일이지. 골리다인. 날 찾아온 걸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인 듯한데.”

“예, 말도 마십시오. 아주 제대로 된 자를 찾았습니다. 전에 한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상회의 행사 때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쓸 만한 실력자들이 다수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그럼 이 자가 그런 실력자라 이 말인가?”

“예, 물론입니다. 제가 보장하지요.”

“흐음···.”

드워프 브로커, 아니 골고다인이라 불린 드워프가 이렇게 호언장담하자, 젠트 이사의 눈동자가 그대로 유태진을 향했다. 심유하게 가라앉은 그 눈빛은 마치 상대의 폐부를 꿰뚫어볼 듯 날카로웠다.

유태진은 그 눈빛 속에서 뭔가를 느꼈다. 그것은 어떤 특정 이능의 발현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유태진은 자신의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무형의 파장을 뚜렷하게 감지했다.

‘대충 알 것 같군. 상대의 실력 수준을 측량하는 그런 종류의 능력인 모양인데··· 그러니 고용센터의 장을 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관측 능력이라 해도 대다수의 기운을 내부로 갈무리한 유태진의 실력을 알아본다는 건 지극히 어려웠다. 심지어 그는 반박귀진마저 넘어선 상태였다. 그가 원치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 실력을 알아보긴 어려우리라.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의 결과가 나왔다. 젠트 이사는 유태진이 드러낸 것 이상의 실력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충 C랭크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뭐, 이 정도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자네가 그렇게 호언장담할 정도의 실력자는 아닌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내게 직접 추천을 한 거지?”

그가 심드렁한 투로 골고다인을 흘겨보았다. C랭크 정도만 되어도 상당한 수준인 건 사실이지만, 자신에게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가면서 추천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골고다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이 자의 랭크는 C에 불과하지만, 그것을 커버하고도 넘치는 능력이 있지요. 놀라운 제어능력을 갖고 있는데, C랭크 수준의 이능으로 그보다 훨씬 고위 랭크의 실력자나 가능할 법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영력의 제어 효율이 그만큼 대단하단 증거지요.”

“그래? 그럼 그런 판단을 내린 근거는? 자네도 알겠지만 난 확실한 걸 좋아해. 입증도 할 수 없는 그냥 말 뿐인 능력 따윈 필요 없어.”

“하하하··· 젠트 이사님의 성향이야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바로 며칠 전의 전투 데이터지요. 해적들이 밀항선을 공격해 왔을 때를 기록해둔 것인데, 이걸 보면 아마 확실해질 겁니다.”

골고다인은 자신의 밴더에 저장된 어떤 데이터를 곧바로 젠트 이사에게 전송했다.

그것을 본 유태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지적하고 나섰다.

“그건 또 언제 찍어 둔 거지? 나에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그런 걸 기록해 만들었어?”

“아아,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말게. 다 자네를 위해서였으니까. 그리고 자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난 항시 주변 상황을 실시간으로 기록해두고 있다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든. 그래서 어쩌다보니 자네 전투 영상까지 걸려든 거지. 아무튼 미안하게 됐네.”

본인에게 말도 하지 않고 전투 영상을 촬영한 것도 모자라, 그걸 자기 마음대로 타인에게 양도까지 하다니.

이 드워프 브로커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제멋대로인 작자였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게 음지에서 오랫동안 굴러먹은 인물다웠다.

그래서 유태진도 더 이상 이 문제를 걸고넘어지진 않았다. 애당초 그가 전투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음을 익히 알고 있었던 데다, 지금 굳이 말을 꺼낸 것은 지금 상황에선 그게 더 자연스러워 보일 것 같아서였다.

만일 유태진이 위장 신분이 아니라 정말로 데니스 크라이드였다면, 자신의 허락도 받지 않고 몰래 전투 데이터를 만들어둔 것에 대해 적당히 불만을 내보였을 것이다.

골고디안이 전송해준 데이터를 확인한 젠트 이사가 조금 놀랍다는 표정이 되었다.

“음, 확실히··· 이게 정말이라면 실력 하나는 확실하겠군.”

“예, 저도 이 정도로 랭크의 격차를 무시할 만큼 제어능력이 뛰어난 자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럼 어디 확인을 해 봐야겠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젠트 이사로부터 무형의 기운이 묵직한 기세로 발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직 유태진 한 사람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적어도 A랭크에 버금갈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 수도 있었다.

유태진은 자신을 살벌한 기세로 짓눌러오는 기세의 압박에 내심 짜증스러웠다.

‘내 평소 실력이면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게··· 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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