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25화
“젠장! 먹히질 않아! 애당초 난 전투 쪽은 전문이 아니라고!”
드워프 브로커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무기를 난사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대 인베이더용 무기라 해도 그걸 제대로 활용할 실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물론 대 인베이더 병기들은 하나같이 최첨단 타깃팅 보정 기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어느 정도 전투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은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헛되이 허공을 가르는 레일건의 탄환과 빔의 사이를 누비며 해적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게다가 놈들 중엔 등급은 그리 높지 않아도 나름 한가락 하는 영능력자들도 제법 있어서 마구잡이로 난사하는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점점 접근해오는 해적들의 모습에 드워프 브로커가 이를 악물며 내심 생각했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비장의 수단이라도 꺼내야···.’
지금까지 수십 년 이상 음지에서 활동해온 만큼, 그에게도 나름대로 숨겨둔 비장의 한 수는 있었다. 단지 그것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드러내는 것이 껄끄러웠던 것이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그의 비장의 수단이 이 자리에서 공개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웅!
어느 순간 묵직한 무게감이 일대 공간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유태진을 중심으로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뭐지, 이 압박감은?”
“중력도 없는 우주공간에서 이런 무게감이라고?”
해적들의 눈빛이 경계심으로 물들었다. 지금까지 무수한 해적질을 해오면서 쌓은 직감이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경계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을까. 유태진의 일보가 텅 빈 우주공간을 밟는 순간, 그의 신형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로의 권격! 거기에는 무지막지한 무게가 실려 있었다.
투우웅!
“헉!”
“이 무슨!?”
공간이 짓이겨지는 듯한 압박감과 함께 해적들이 쏟아낸 모든 공세가 그대로 사방으로 꺾여서 튕겨 나갔다.
이것이 유태진이 창안한 천중무한신공에 근간을 둔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의 한수인 쇄격파혼붕(碎挌破魂崩)이었다.
무지막지한 무게를 공간상에 작열시키는 이 수법은 범위 안에 든 모든 것을 분쇄하고 밀어내버린다.
그리고 놈들이 공세가 튕겨지고 소멸된 틈을 타 유태진의 신형이 이젠 놈들의 지척까지 도달해 있었다.
쿠르릉!
우주 공간상에서 들릴 리 없는 우레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유태진의 좌수와 우수를 따라 곧 무수한 궤적을 그리며, 온 사방을 벼락의 그림자로 가득 채워버렸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3절. 둔중뢰격인(鈍重雷擊印)
비의. 환의성뢰(幻意晟雷)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극쾌 속에서 펼쳐지는 연환장법. 그것이 환의성뢰의 정체였다. 척력을 작용시켜 극쾌의 일격을 가한 후, 인력으로 다시 손을 회수하고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함으로서 지금과 같은 극쾌연환의 공격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크아악!”
“아악!”
해적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사방에 피를 뿌렸다. 놈들이 이런 저런 실전으로 다져진 실력을 갖추고 있다지만, 그래봐야 오버러 등급으로 친다면 E랭크에도 한참 못 미쳤다.
유태진이 작정하고 펼친 공세를 받아낼 리가 만무한 것이다.
‘이런 놈들을 상대로 일일이 손을 써야 한다니··· 실력을 숨기는 것도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야.’
허나 그렇게 해적들 수십 명을 한수에 쓰러뜨리고서도 유태진은 답답하기만 했다. 현재 그의 위조 신분인 데니스 크라이드는 C랭크의 오버러였다. 그러니 그 이상의 실력은 드러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나마 자신의 무공을 사용해 C랭크 수준의 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긴 했지만, 이마저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유태진의 놀라운 활약에 드워프 브로커가 턱이 빠지기라도 한 듯 입을 벌렸다. C랭크 오버러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자의 솜씨는 그가 아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고 있었다.
‘아니, 영력의 크기만 보면 분명 C랭크가 맞아. 단지 그것을 무척이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어!’
드워프 브로커는 딱히 전투적인 능력은 보유하지 못했지만, 타인의 실력을 감정할 수 있는 특별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브로커 짓을 수십년 동안 해올 수 있기도 했다.
‘대박이군. 이 정도 실력이면 그들도 확실히 만족할만한 거래가 되겠어.’
아직 위기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드워프 브로커의 머릿속에는 눈앞의 유태진이 돈다발로 보였다.
그만큼 유태진의 활약은 압도적이었다.
불과 몇 분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 수백 명에 이르는 해적들이 제압되거나 죽어나갔다. 이제 남은 놈들은 처음 인원수의 절반에 불과했다.
“어디서 이런 괴물이!?”
“이봐, 밀항함에 저런 녀석이 타고 있다는 정보는 없었잖아.”
“설마, 오버러냐?”
하지만 해적들은 두려운 눈빛을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쓰러진 자는 많았지만, 아직 머릿수는 그들이 크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
게다가 그들에게는 전함을 개조해 만든 해적선이라는 패가 남아 있었다. 해적들 중 하나가 발악적으로 소리 질렀다.
“쓰벌! 쏴! 쏴버려! 놈을 주포로 날려버리라고!”
우우우우우!
해적선의 선두가 유태진을 겨냥했다. 그 선두에는 해적선이 자랑하는 주포의 포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압도적이라 할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그곳으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주포라고? 판을 엎겠다는 거야?”
“젠장, 이놈들이 지금 밀항함이고 뭐고 다 날려버릴 생각이야!”
어지간해서는 해적들이 주포를 고출력으로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왜냐면 자신들이 털어야 할 재물까지 없애버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밀항함의 배리어 출력이 보잘 것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태진을 가장 큰 위협이라 판단한 이상, 더는 수단방법 가릴 이유가 없었다.
“미친 새끼들! 해적질 하러 와서 최대 출력의 주포라니! 이젠 다 죽었군.”
대뜸 들이밀어진 주포의 모습에 드워프 브로커가 절망에 차 중얼거렸다. 제아무리 돈다발이 좋다 해도, 당장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돈 타령 할 수는 없었다.
헌데 그때 유태진이 그의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드워프 브로커를 살짝 돌아보면서 말했다.
“이봐, 잘 봐둬. 네가 어떤 사람을 중개하려 했는지 말이야.”
“뭐? 자네··· 무슨 소리야, 이봐!?”
드워프 브로커가 그에게 뭐라 하려 했지만, 유태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휘오오오!
그를 중심으로 휘도는 작은 소용돌이. 그것은 지금까지의 압박감하고는 전혀 달랐다.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허허로운 기운이 전신을 휘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창안한 또 다른 신공절학 지부현운신공.
천중무한신공이 무게를 다룬다면, 또 다른 신공인 지부현운신공은 허와 가벼움을 다룬다.
거기에서 비롯된 절학 환유무원기는 모든 것을 흩어내고 무산시키며, 흐름을 뒤트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콰아아아!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눈부신 빛줄기가 세찬 기세로 정면으로 뻗어왔다. 어지간한 소형 전함을 넘어 중형 전함에 가까운 출력으로 쏘아진 빔포의 위력은 일개 인간이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거대한 빔의 분출을 목도한 모두는 유태진이 그 앞에서 소멸되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다음차례는 자신들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예상 못했던 기적이 펼쳐졌다. 그 첫 시작은 유태진의 양 손끝이었다.
그의 우수와 좌수가 정면을 향해 원의 형태를 유지한 채 나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선을 그리는 동작은 보는 이로 하여금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건가 의문을 자아냈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무거움과 가벼움. 허와 실. 그리고 음과 양을 의미하는 천지건곤조화. 천지교태의 합덕의 완성을 뜻하고 있었다.
환유무원기(幻幽無援技) 제 3절. 회연천류도(回延天流道)
비의 만류천인(萬流遷引)
환유무원기의 회연천류도는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과 같은 힘의 흐름과 방향을 제어하는 무리의 극치. 이 앞에서는 제아무리 강력한 힘도 빗겨나갈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이건!?”
“빔포가 흩어진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저 녀석!?”
거대한 빔 줄기가 유태진이 그려낸 나선의 원 앞에 닿은 순간, 그것은 마치 무수한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치 거대한 빔 자체가 그 앞에서 뭔가에 의해 갈려나가면서 사방으로 뿌려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뿌려진 빔의 잔해들은 이곳저곳으로 뻗어나가다 힘이 다해 소실되었다. 그렇게 해적선의 비장의 한수가 완전히 무력화 된 것이다.
다들 크게 놀라 경악을 자아내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드워프 브로커만큼 놀라진 않았다. 남들보다 특별한 안목을 가진 만큼 더 많은 걸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이건 진짜 대박이군. 지금 그건 힘으로 막아낸 게 아니야. 빔의 흐름을 뒤틀어서 분산시킨 뒤 사방으로 흩어버렸어. 대체 능력에 대한 제어력이 얼마나 높으면 저런 게 가능한 거지?’
그는 유태진의 실력을 기존의 정보보다 크게 상향 평가하기로 했다. 영력의 크기나 출력은 분명 C랭크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다뤄서 내는 결과는 B랭크, 아니 A랭크에 버금갈지도 모른다.
이런 실력자를 중개해준다면 할파스 상회에서도 자신에게 상당한 자격과 권한을 넘겨줄 게 틀림없었다.
“주포를 막아내다니··· 이건 괴··· 괴물이야!”
“이번엔 텄다. 다들 튀어!”
도저히 유태진을 어찌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해적들이 즉시 도주하기 시작했다. 한 차례 주포를 가했던 해적선도 황급히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놈들을 붙잡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모조리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지금 그는 C랭크의 오버러에 불과했다. 더 이상 실력을 드러낼 순 없었다.
허겁지겁 도망치는 해적들을 뒤로 한 유태진은 밀항함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싸우러 나섰던 밀항자들도 속속 함 내로 발을 디뎠다.
“어디서 저런 실력자가.”
“대체 정체가 뭐야?”
“용병이라던데?”
“뭐? 용병? 일개 용병이 어떻게 저런 실력을 갖고 있어?”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이 두려움과 경외로 변했다. 그만큼 이번에 보인 그의 무위가 놀라웠다는 뜻이었다.
“하하하! 대단하더군. 자네,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잖아. 주포를 막는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했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유태진의 실력을 추켜세우는 드워프 브로커의 말에, 유태진은 픽 웃었다.
“뭐 대단한 건 아니야. 그냥 기교를 좀 부렸을 뿐이지.”
“그냥 기교라고 하기엔 대단하더군. 아무튼 자네의 실력을 보니 좀 더 위의 분들과 거래를 할 수 있겠어. 아마 상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거네. 그러니 기대해도 좋을 거야.”
위의 분들이라는 말에, 유태진의 두 눈이 살짝 가늘게 변했다. 안 그래도 놈에게서 나오길 기다렸던 말이 드디어 튀어나온 것이다.
“그래? 그럼 기대하고 있지. 돈만 많이 준다면야, 나도 사양하지 않겠어.”
그는 짐짓 태연스런 표정으로 대꾸했다.
그러자 그것을 수락의 의미로 알아들은 건지, 드워프 브로커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장담했다.
“걱정 말게. 실력만 확실하다면 크게 쓰는 분들이니까. 아마 윗분들도 자네 실력을 보면 크게 만족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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