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24화 (325/448)

13권-24화

하지만 유태진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심드렁했다.

“좋은 벌이? 설마 위험한 일은 아니겠지? 용병 일도 누울 자릴 봐가면서 해야지. 아무리 돈 많이 줘도 내 목숨 날릴 벌이라면 사양하겠다.”

“이봐, 그렇게 수상쩍게 보지 말라고. 내가 일부러 자넬 생각해서 이야기를 꺼낸 거야. 그리고 그 실력이면 그렇게 위험한 일도 아니고. 그러니 일단 한번 들어는 봐야 할 것 아닌가?”

“그 실력? 내 실력이 어떤지 뭘 알고 하는 말인가?”

“자네 관리국에서도 C랭크에 준하는 오버러였다면서? 그 정도면 어디 내놔도 대접받을 수 있는 실력이지.”

“···거기까지 알아냈나?”

유태진은 내심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가 사용하고 있는 데니스란 신분은 베네트 국장이 만들어준 것이긴 했지만, 아예 없는 존재를 만든 건 아니었다.

관리국 출신 오버러들 중 사망한 이 중 하나로서, 만약을 위해 그 죽음을 은폐해두고 있던 인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관리국 출신의 오버러들의 신분과 정보는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는데, 이렇게 입수할 정도면 상당한 정보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정도 실력이면 실력에 맞는 일을 해야지. 아무데나 들이대서 헐값에 용병질 할 생각은 아니겠지?”

“글쎄, 구미가 당기다가도 내 뒷조사까지 한 걸 보면 그다지 믿음이 안 생기는데?”

유태진이 짐짓 꺼림칙하다는 듯 반응하자, 드워프 브로커가 계속 설득해왔다.

“허허, 믿을만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려면 그 정도 조사는 필수지. 그리고 이게 아무 때나 오는 기회인 줄 아나? 무려 할파스 상회와 관련된 일이라고!”

“할파스 상회?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니까.”

유태진이 관심을 보이자, 드워프 브로커가 신이 난 듯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최근 할파스 상회에서 경매를 연다고 하더군. 그런데 워낙 큰 건수라서 실력 있는 외부의 영능력자들을 대거 고용하고 있지. 물론 신분이 확실한 자들로 말이야.”

“그래서 날 그쪽에 소개시켜 주겠다 이건가?”

“뭐 좋은 일이잖나. 자네는 수당 두둑이 챙겨주는 고용주를 만날 수 있어 좋고, 나는 자네를 소개해준 대가로 짭짤한 중개료를 챙길 수 있어 좋고, 서로가 이득이지.”

애당초 유태진이 굳이 이 브로커를 선택해 밀항을 시도한 것도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이 욕심 많은 드워프 브로커가 바로 할파스 상회와 여러 차례 거래 했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자연스럽게 할파스 상회와 이어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아마 눈앞의 드워프 브로커는 그에 대해선 감히 상상도 못했으리라.

하지만 바로 응낙하면 수상쩍게 생각할 것 같아서, 짐짓 부정적인 투로 반응해줬다.

“설마 위험한 건 아니겠지?”

“큰 위험은 없을 거라고 들었네. 할파스 상회에서 이번에 비공식 경매를 여는데, 거길 지키는 게 임무라더군.”

“흐음··· 그런 중요한 일에 외부인을 고용하겠다니, 영 믿을 수가 없군. 할파스 상회라면 공화국 내에서도 경쟁자가 없을 만큼 아주 큰 곳이잖아. 그런 곳에서 인력이 부족해 외부 인력을 고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가는데?”

“말이 비공식이지, 상당히 큰 규모로 열린다고 들었네. 아마 그곳을 찾는 손님들이 적지 않을 거야. 전 우주에서 손님들이 모여들겠지. 그래서 경매 진행 중에 있을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머릿수를 잔득 늘릴 생각인 모양이더군. 낙찰 받지 못한 자들이 분쟁을 일으키거나 그런 일말일세.”

“흐음, 그래? 전 우주에서 손님들이 온다면 엄청나겠군. 아무리 큰 상회라도 인력이 부족할 만도 하겠어.”

드워프 브로커 앞에서는 처음 듣는 사실을 접한 사람마냥 대꾸했지만, 유태진도 할파스 상회의 비공식 경매에 대해선 베네트 국장을 통해 들은 바 있었다.

놈들은 비공식 경매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데, 여기서는 법적으로는 허락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경매에 내놓는다고 했다. 우주 각지에서 불법적으로 입수한 값비싼 물건들은 물론, 심지어 노예마저 취급할 정도였다.

그러니 그런 것을 원하는 우주 각지의 고객들이 경매에 참가하기 위해 대거 몰려올 수밖에. 우주에서 이런 종류의 경매를 이 정도의 대규모로 취급하는 곳은 할파스 상회가 유일했다.

“자,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인가? 받아들일 겐가?”

“좋아. 그 의뢰 받아들이지. 조금 수상쩍은 점이 없지는 않지만, 용병인 만큼 대가만 치른다면 얼마든지 응해줘야지.”

“잘 선택했네. 그럼 도착하는 대로 바로 연결해주도록 하지.”

유태진의 대답에, 브로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목적지를 향해 운항 중이던 운송함이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을 맞닥뜨렸기 때문이었다.

위잉! 위잉!

“뭐야?”

“이런 씨팔! 뭔가 느낌이 쎄 한데?”

“이거 일 터진 거 아니야?”

갑작스런 경보음에 운송함 내에 있던 자들이 짜증과 불안의 감정을 드러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하나같이 법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자이거나, 혹은 양지에서 활동할 수 없는 그런 자들이었다. 헌데 밀항 중에 갑자기 경보음이 울리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다들 무슨 일인가 싶어 긴장하고 있는데, 운송함의 함장이 대뜸 욕지기를 터뜨렸다.

“빌어먹을! 해적이다! 하필 이 주역에서 해적이라니!”

“뭐, 해적?”

“하, 진짜! 해적이라니! 이 미친 것들이 왜 밀항함을 노리고 난리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게 된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이를 악물었다. 공화국 정부의 단속함에 걸린 것이 아닌 게 천만 다행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우주에서 활동하는 해적들은 대부분 악랄하고 더러웠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취급하는데다, 심지어 원하는 물건만 강탈한다고 해서 그냥 끝내는 것도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선 최소한의 먹을 물과 식량까지 모두 빼앗고 우주공간으로 내버리는 경우도 숫했다. 결국 그렇게 버려진 자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아사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차라리 공화국 정부의 단속함에 걸린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젠장, 해적이라니··· 운이 좋은가 싶었는데 마가 끼었군.”

드워프 브로커가 씨근덕대며 자신의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 짐 안에는 온갖 무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하나같이 개인용 화기였는데, 어디서 구했는지 최신 대 인베이더 병기들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죄다 무장을 갖추기 시작했다. 해적들에게 붙잡이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으니, 어떻게든 목숨을 걸고 싸우려는 것이다.

“자네는 뭐 필요한 것 없나? 무기가 필요하다면 싸게 대여해주지.”

그래도 돈을 받고 무기를 빌려주겠다는 드워프 브로커의 악덕상인다운 그 말에, 유태진은 뚱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필요 없어. 그 딴 무기보다는 내 능력이 더 세니까.”

“아, 그렇지. 자네는 C랭크 오버러였지. 하긴 이딴 것보다는 자네 능력이 더 낫겠군.”

말이 C랭크지 그 정도면 어지간한 전술병기에 가까웠다. 오버러들 중에서도 그만하면 중상위권이라 할 수 있었다. 일개 용병을 하기에는 사실 상당한 실력자인 것이다.

우우웅!

그가 주먹을 쥔 순간 묵직한 기운이 어두운 형태로 뭉쳐졌다. 그것은 강력한 인력이었다.

‘정보대로군. 중력과 질량을 다룬다더니··· 사실이었어.’

드워프 브로커의 눈이 유태진의 주먹에 어린 기운을 읽어냈다. 이미 입수한 정보를 통해 데니스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보니 더 확실해졌다.

쾅! 콰아아앙!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함체가 크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해적들의 공격이 본격화된 모양이었다.

그러자 밀항선 함장이 탑승객들을 향해 악을 쓰며 닦달하기 시작했다.

“젠장! 놈들이 빔포를 쏘고 있어! 배리어를 쳤지만 이대로는 오래 못 버텨! 다들 나가서 놈들을 요격해! 우주의 미아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이 빌어먹을 작자가!”

“믿고 밀항선을 탔더니 이게 무슨 꼴이야! 해적이나 만나고!”

“어디 두고 보자! 오늘 내가 살아나기만 하면, 저 선장 놈 가만 안 두겠어!”

다들 함장의 말에 분통을 터뜨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싸우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화풀이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해적들과 싸워 살아남는 게 시급했다.

그들은 곧장 해치 앞으로 향했다.

해적들이 탄 전함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일개 밀항선으로서는 버티는 것조차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접근해서 해적선 제압하든가, 함 자체를 망가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위이잉!

해치가 열리고, 사람들은 곧 우주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다들 기본적인 배틀 슈트 정도는 보유하고 있었기에, 맨몸으로도 주저하지 않고 우주를 향해 몸을 던졌다. 물론 오버러들이 사용하는 것에 비한다면 한참이나 수준 낮은 배틀슈트였지만, 기본적인 생존능력은 필수적으로 갖춰져 있었던 것이다.

‘좀 어색하군.’

항상 최고급 배틀 슈트만 써왔던 유태진으로서는 저급한 배틀 슈트가 어색하기만 했다. 게다가 플로트 윙의 성능마저 수준 이하라서 비행속도도 느려 터지기 짝이 없었다.

밀항선에서 사람들이 싸우기 위해 뛰쳐나오자, 해적선에서도 다수의 해적들이 우주공간으로 쏟아져 나왔다.

“하하하! 왔구나!”

“자,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 되어줄 호구들이 왔어! 자, 신나게 한탕 해보자고!”

놈들도 바보는 아니었다. 제대로 된 화기나 방어능력이 없는 밀항선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뻔한 만큼, 이를 경계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젠장, 이것들 보통이 아니잖아.”

“작정했군. 이미 놈들은 밀항선의 항로를 알고 있었어!”

해적들의 수나 질이 생각 이상으로 높았다. 처음엔 어중이떠중이들인가 싶었거늘, 실력은 물론 움직임과 연계까지 상당히 체계가 있었다.

퓨퓨퓽!

쾅!

밀항자들이 쏜 각종 화기가 우주공간을 수놓았다. 다들 양지에서 살지 못하는 처지인 만큼, 자위할만한 기본적인 수단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해적 놈들 중 누군가가 손가락을 까딱하는 순간, 몇몇 종류의 화기가 돌연 덜컥 정지된 것이다.

“뭐야, 총이 안 나가?”

“이··· 이건!? 설마 전자간섭?”

그들이 사용하는 화기 대부분은 그 내부가 복잡한 전자회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 인베이더 병기라면 그런 전자간섭을 방지하기 위한 처리가 되어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병기를 보유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었다면 이런 밀항선을 타지도 않았을 것이다.

“컥!”

“끄악!”

무기가 작동을 멈춘 순간, 빈틈이 드러났다. 해적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노련하게 움직이면서 밀항자들의 목숨을 거두고 있었다.

“칫, 이래서는 곤란한데.”

상황을 지켜보던 유태진이 조용히 혀를 찼다. 어지간해서는 나서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 되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밀항선이 해적들에게 나포되기라도 하면 곤란했다. 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할파스 상회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그곳과 연결해줄 드워프 브로커가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계획이 전부 틀어지게 될 터.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