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19화 (320/448)

13권-19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냐?”

그 말에 무르타룬이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쥐어짜듯 내뱉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우리 일족이 살기 위해서···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일족을 팔아먹은 행위가 일족을 위한 일이었다고? 무슨 헛소리를.”

“네놈도 봤을 텐데! 인베이더의 강성함을! 하긴 수억에 달하는 인베이더들을 쓸어버린 네놈 눈에는 별것 아니었을지 몰라도 우리로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괴물들이었어! 지금까지 목숨 바쳐 싸워왔지만 결국 궁지로 몰릴 수밖에 없었지. 우리 엘하운드의 멸망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래서 일부를 희생해서라도 남은 모두를 살리려 했던 거다.”

놈은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지만 유태진은 냉소적으로 받아쳤다.

“그래서 연합 소속인 우리가 너흴 구하러 직접 왔지. 그러니 그건 변명이 못 돼.”

하지만 그 말에도 무르타룬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네놈들 활약으로 인베이더들은 모두 절멸했지. 적어도 우리 행성을 침략해 온 놈들은 말이야. 그에 대해선 나도 꽤나 놀랐어. 설마 그런 게 가능할 줄은 몰랐거든. 하지만 말이야.”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놈의 눈매가 날카롭게 변했다. 그것은 마치 다가올 절망적인 미래를 상상하면서 이를 악무는 듯 보였다.

“놈들의 침략이 정말 이것으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나?”

이쯤 되니 유태진도 놈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았다. 한번 물리친 인베이더가 두 번 침공하지 말란 법이 없으니, 멸망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일족을 팔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래, 네 말처럼 인베이더 놈들이 한번 침공했던 행성을 두 번 침공한 경우가 없진 않았지.”

“그놈들은 우리 일족을 노리고 있었어.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결코 좋은 목적은 아니겠지.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거다. 계속된 침략에 멸망할 거라면 일부를 희생시켜서라도 일족의 명운을 이어가는 길을 말이야. 이래도 날 비난할 건가?”

무르타룬이 무슨 생각으로 일족을 배신하고 인베이더와 내통한 건지, 어느 정도는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일족들을 인베이더에게 팔았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유태진은 차갑게 내뱉었다.

“꽤 비겁한 변명이군.”

“뭐?”

“그래서 네 심정이 그랬으니, 상황이 어쩔 수 없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그 말을 어디 인베이더에게 끌려간 네 동족들에게 해보지 그래? 엘하운드가 멸망하지 않기 위해 너희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니 기꺼이 희생해 달라고 말이야.”

“······.”

직설적인 그 말에, 무르타룬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유태진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차라리 그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산 제물로 바친 거였다면 이해라도 하지. 넌 그저 그들을 적들에게 팔아넘겼을 뿐이야. 일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네 안위를 위해서 말이야.”

희생된 것은 무르타룬의 동족들이었다. 놈은 고뇌 끝에 내린 결정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결국 같은 동족을 인베이더에게 팔아먹은 배신자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네 모습을 봐라.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해서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이렇게 행동하다니. 그렇게 일족을 위한 결정이었다면, 네 스스로 당당했다면 이쯤에서 모두에게 그 죄를 고백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러니 네놈의 말은 전부 구질구질한 변명에 불과해. 일족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건 모두 너 자신을 위해 저지른 배신이니까.”

“아니야! 난 모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거였다. 절대 그런 마음에서 한 게 아니야!”

강하게 부정하며 악을 쓰는 무르타룬. 하지만 유태진은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아니, 넌 이기적인 놈이다. 불과 며칠뿐이긴 해도 난 네놈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지. 그런데 넌 항상 메이트룬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더군. 작전 회의 때 반대의 목소리를 높일 때도 마찬가지였어.”

“으으···.”

마치 폐부를 꿰뚫어보는 듯 내놓는 그 말에, 무르타룬은 견딜 수 없다는 듯 신음했다. 자신의 내부를 속속들이 끄집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도 네놈은 이번 작전으로 메이트룬을 실각시키거나 죽게 만들 작정이었을 거다. 다만 그 계획에 예외가 있다면 나와 내 부하들이었겠지.”

인베이더와 내통한 무르타룬의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됐다면, 메이트룬은 죽거나 실각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태진의 실력이 부족해 하이브 인근의 인베이더 대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면 놈의 뜻대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유태진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었고, 심지어 까마득히 먼 곳에 있던 모로세움의 위기까지 막아냈다.

무르타룬의 입장에서는 심혈을 기울인 계획이 유태진 하나로 전부 파탄난 거나 다름없었다.

“증거를 인멸할 생각이었겠지만, 네놈이 배신했다는 증거는 이미 따로 확보해 뒀다. 네가 인베이더들과 어떻게 어떤 정보를 주고받았는지도 확인해뒀지. 이 함선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더군. 그래도 혹시나 싶어 전함을 언급하면서 네놈을 살폈는데, 역시나였어.”

“아··· 안 돼!”

무르타룬이 절망에 찬 얼굴로 부르짖으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멀쩡한 몸으로도 대적할 수 없는 유태진을, 두 팔이 잘려나간 상황에서 무슨 수로 해할 수 있단 말인가.

유태진은 차가운 냉소와 함께 손을 썼다. 마음 같아선 혈도를 제압하고 싶었지만, 엘하운드의 몸은 인간과 구조부터가 달랐다. 그래서 일부러 마법을 사용해 놈을 완벽히 구속시켰다.

“네놈이 저지른 죄목과 증거를 메이트룬에게 그대로 넘겨줄 거다. 그동안 같은 일족을 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팔아먹었으니, 이젠 같은 일족에게 처벌받아 마땅하지. 그러니 거기서 버러지처럼 기면서 심판받을 때를 기다리고 있어라.”

유태진은 그렇게 내뱉으면서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등 돌린 장소에는, 구속마법에 붙잡힌 채 애벌레처럼 바닥을 기고 있는 무르타룬의 비참함 모습만이 남겨져 있었다.

* * *

무르타룬이 저지른 배신에 대한 사실은 곧 메이트룬에게도 알려졌다. 그 길로 전함을 나선 유태진이 수집한 증거와 함께 사실을 전했기 때문이었다.

충격에 빠진 나머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던 메이트룬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참담하군요. 설마 같은 일족을 팔아먹는 배신자가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그 배신자가 무르타룬이었다니··· 믿기지가 않는군요.”

하지만 그 사실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었다. 모든 증거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유태진이 인베이더 전함에서 무르타룬과 나눈 대화도 영상데이터로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놈이 배신한 이유는 명백했다. 일족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같은 일족들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인베이더에게 팔아넘겼던 것이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유태진 사령관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저 배신자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었겠군요. 아니, 저 배신자 때문에 멸망했을지도 모르지요.”

무르타룬은 인베이더와의 거래를 통해 일족의 멸망을 막을 수 있다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놈들이 그런 약속을 지킬 리가 없었다. 아마 유태진이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인베이더들은 엘하운드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사로잡았을 것이다.

“별 말씀을. 수상했기에 살짝 손을 썼을 뿐입니다.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죠. 그럼 무르타룬의 처분은 메이트룬께 맡기겠습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배신자를 그냥 둘 순 없지요.”

메이트룬의 두 눈동자 위로 독기에 찬 분노가 어렸다. 그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지만 일족을 팔아먹은 배신자에게까지 자비를 베풀 만큼 너그럽진 못했다.

결국 그 다음날. 모로세움에서는 긴급재판이 열렸다. 그 내용은 일족을 팔이먹은 배신자, 무르타룬의 처벌에 대한 재판이었다.

엘하운드들은 깜짝 놀랐다. 배신이라니! 그것도 일족의 2인자가 같은 일족을 인베이더에게 팔아넘겨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증거가 명백했다. 그의 죄를 부정할만한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인베이더를 물리치면서 축제 분위기였던 모로세움은 순식간에 분노로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제히 거리로 나가 크게 외쳤다!

“죽여라! 무르타 룬을 죽여라!”

“배신자에게 처형을!”

거센 민중들의 반응에 결국 무르타룬의 처형이 결정되었다. 물론 그가 일족을 배신한 죄목만 봐도 그의 사형은 처음부터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는 모든 일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광장에 모인 엘하운드들이 광기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배신자가 죽는다!”

“영혼조차 남기지 않고 타죽어!”

“더러운 배신자! 네놈 때문에 너무 많은 일족이 희생되었어.”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에, 무르타룬은 고통스럽게 타죽어 가면서도 외쳤다.

“끄아아아! 이럴 리가! 이럴 리가 없어! 난 모두를 위해서 그랬을 뿐이야! 배신한 게 아니라고! 그런데 어떻게 날!”

여전히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옳다고 외치는 그 말에 화형을 집행하던 자가 그의 입을 불로 거침없이 지져버렸다. 그러자 더 이상 무르타룬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참혹한 최후로군. 하긴 자업자득인가.”

유태진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곧 아우기스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부에 보고를 올려야 할 때였다.

평소였다면 이곳에서 있었던 사실을 관리국의 해당 구역 담당자에게 전하기만 하면 됐을 테지만, 이번 상황만큼은 예외였다. 리플 행성에서 보여준 인베이더의 움직임은 기존의 패턴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태진은 베네트 국장과 직통으로 연락을 취했다. 그의 핫라인을 알고 있던 만큼, 연락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베네트 국장은 유태진에게 리플 행성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받고는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니까··· 인베이더 놈들이 엘하운드를 산 채로 납치해 어딘가로 이송하려 했다 이거군.]

“예.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의 목적이 엘하운드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심지어 하이브마저 포기하고 사로잡은 엘하운드들을 수송해 행성을 탈출하려 했으니 말입니다.”

[휴우··· 정말이지 알 수가 없군.]

한 차례 무겁게 한숨을 내쉰 베네트 국장이 유태진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자네가 겪은 그 일은 리플 행성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야. 인베이더의 침략을 받은 여러 행성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더군.]

“그게 정말입니까?”

유태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자신만 겪은 일인 줄 알고 서둘러 보고를 올렸더니, 그게 여러 행성에서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정말이라네. 인베이더 놈들이 해당 행성의 원주민들을 산채로 포획해서 이송하는 것을 여러 차례 포착했지.]

“대체 놈들이 무슨 생각인 걸까요?”

기존의 상식과 전혀 다른 패턴을 보이고 있는 인베이더의 움직임을, 유태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성체 멸망을 목적으로 움직이던 놈들이 설마 처음의 목적을 바꾸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 유태진의 생각에 베네트 국장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놈들이 목적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 놈들은 특정 종족들만 노리고 있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특정 종족을 말입니까?”

[그래, 놈들이 원주민을 생포하는 식의 특이행동반응을 보이는 곳이 다 정해져 있더군. 죄다 하나같이 공통점을 갖고 있지.]

“무슨 공통점입니까?”

유태진의 물음에 베네트 국장은 무겁게 답했다.

[바로 엘프의 혈통이란 점이지. 자네가 지금 있는 리플 행성의 엘하운드 종족도 바로 그런 엘프의 피가 열화된 아종들 중 하나이고 말이야. 놈들은 그런 엘프의 아종들을 노리고 있어.]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