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18화 (319/448)

13권-18화

메이트룬은 일단 먼저 상황 파악에 나섰다.

“현재 상황은 어떻지? 연합인들은?”

“전부 무사하답니다. 하이브 공략은 성공입니다. 그리고 방금 인베이더들을 전멸시킨 빛의 폭우도 그쪽에서 손을 쓴 거라 알려왔습니다.”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는군.”

수하의 보고에 메이트룬은 재삼 혀를 내둘렀다. 그럴 거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확인하고 나니 그들의 저력에 경외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모로세움은? 그곳에서 들어온 소식은 없나?”

“모로세움도 무사하답니다.”

위기에 처했다던 모로세움도 다행히 무사했다. 유태진이 다행이 늦지 않고 시기적절한 순간에 도착했던 모양이었다.

다들 그 희소식에 안색이 밝아지는 가운데, 무르타룬만큼은 유독 그렇지 못했다.

‘무사하다고? 모로세움이!? 어떻게···.’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둡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마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을 목도한 자의 안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황이 흘러갈수록 그의 안색은 더욱 검게 물들어갔다. 엘레나를 아우기스의 의무실에 데려다 놓고 온 유태진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유태진 사령관님. 무사하셨군요. 소식 들었습니다. 정말로 모로세움을 지켜주시다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메이트룬은 감격에 찬 목소리로 고마움을 드러냈다. 사실 그가 모로세움을 지켜주겠다고 나설 때 일말의 희망을 갖긴 했지만, 큰 기대를 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자신이 한말을 확실하게 지켰다. 모로세움을 지켜낸 것은 물론 하이브를 다운시키고 리플 행성 곳곳을 파괴하고 다니던 모든 인베이더들을 쓸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린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런 과례를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짧은 겸양으로 그들의 감사 인사를 받은 유태진은 곧바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보다는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일이라니요?”

중요한 일이라는 말에 메이트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아직 모로세움에서 자세한 소식을 전해 듣지 못하신 모양이군요.”

“설마 모로세움이 또 위험해 지는 겁니까?”

간신히 인베이더를 무찔렀더니 또 뭔가 위험한 일이 벌어진 것 아닌가 싶어 우려의 표정을 짓는 메이트룬. 하지만 유태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모로세움의 위기는 끝났지요. 하지만 그곳에 아직 해결 못한 일이 남아있습니다.”

“해결 못한 일이라니, 저로선 무슨 말씀인지···?”

“인베이더의 침공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난데없는 질문이 계속되자 메이트룬은 당황해 하면서도 자신이 아는 바대로 답했다.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으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지성체를 멸망시켜서 그에 상응하는 업을 쌓으려는 게 목적이라고 들었습니다.”

“예, 상식적으론 그렇지요. 지금까지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고 말입니다. 하지만 리플 행성에서는 기존의 상식에서 예외인 것 같더군요.”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모듈밴더에 저장된 영상을 보여주었다. 모듈밴더는 마음만 먹으면 착용자가 보는 시점에서 모든 것을 녹화할 수 있었다.

“···이, 이건!?”

영상의 내용을 확인한 메이트룬이 말 그대로 경악에 빠졌다.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요. 인베이더가 포획을?”

“예, 모두 산채로 사로잡혔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더군요. 심지어 지중이동이 가능한 함선으로 그동안 납치해온 엘하운드들을 이송하려 했습니다. 아마 모로세움을 기습적으로 공격했던 건 엘하운드들을 추가적으로 포획할 의도였겠지요.”

“대체 무슨 이유로? 인베이더들의 목적이 대체 뭐였던 겁니까?”

메이트룬이 이유를 물었지만 유태진도 그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주긴 어려웠다. 아이틀란 행성의 사례를 통해 인체실험이 아닐까 짐직하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딱히 이번 일과 연관지을만한 단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거야 알 수 없는 일이지요. 한 가지 분명한 건 놈들이 기존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지금까지 놈들과 싸우면서도 전혀 몰랐습니다. 실종자들은 그저 죽었다고 여겼지, 설마 저렇게 산채로 포획 당했을 줄은······.”

“일단 놈들의 전함을 포획했으니, 찬찬히 조사해보면 뭔가 나올 겁니다.”

엘레나와 하이브에 진입했던 오버러들의 위기 때문에 기껏 제압해둔 전함을 놔두고 왔지만, 제네레이터를 망가뜨려놨으니 어디 도망가거나 하진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전함 내에 더 이상 남아 있던 인베이더들도 없었으니 수리는 더더욱 불가능할 테지.

“음?”

헌데 그때, 뭔가 기이한 느낌이 유태진의 감각에 와 닿았다. 워낙 흐릿해서 처음에는 몰랐지만, 방금 메이트룬에게 조사를 언급한 시점에서 살짝 반응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

‘저 자는?’

유태진이 그 방향을 향해 슬쩍 시선을 던지자, 거기에 무르타룬이라는 자가 보였다. 바로 하이브 공략 작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던 인물이었다.

엘하운드 일족의 2인자이자, 수장인 메이트룬의 정적.

‘그렇군. 설마 했는데, 바로 저 작자였나?

하지만 상대는 그런 유태진의 시선을 눈치 못 챈 듯했다. 상대가 눈치 챌까 싶어 주변을 돌아보는 것처럼 살짝 곁눈질했기 때문이었다.

‘뭐, 두고 보면 알겠지.’

* * *

하이브 다운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중간에 모로세움이 공격당하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인베이더 세력 전부를 리플 행성에서 전부 일소해낸 것이다.

엘하운드 병력과 유태진의 부대는 곧바로 모로세움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모로세움의 엘허운드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과 함께 개선행사에 참석할 수 있었다.

사실 유태진은 이런 대외적인 행사 자체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지만, 부대원들의 사기를 생각해 그냥 받아들였다. 게다가 엘하운드들이 유태진과 부대원들을 은인으로 여기고 있어서, 그 성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개선행사가 끝난 뒤엔 만찬이 벌어졌다. 유태진은 엘하운드들이 열어준 만찬에서 부대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먹고 마시고 편히 쉬어라. 오늘만큼은 내가 허락하지!”

“오, 사령관님이 웬일입니까?”

“자, 허락이 떨어졌다.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마시자!”

다들 그 말에 기뻐하면서 허겁지겁 술을 들이켰다. 엘하운드들이 차려준 음식은 지구인들도 먹을 수 있는 종류라서 다들 즐겁게 먹고 마시고 있었다.

유태진은 그런 부대원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하긴 다들 쉽진 않았겠지.’

오버러들은 물론 이번에 데려온 후보생들이 느낀 부담과 스트레스는 보통이 아니었을 것이다. 첫 실전에다가 하이브 코어의 폭주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까지 겪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차라리 이렇게 마음껏 먹고 마시면서 긴장과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만찬은 늦은 밤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다들 전쟁의 승리도 기분이 고조되다보니 밤새도록 먹고 마실 분위기였다.

심지어 그들의 유일한 적이라 할 수 있는 인베이더들조차 전부 소멸된 만큼, 주변에는 경계병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가까운 시점에서 유태진은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다들 취할 만큼 취한 상태로 흥청망청 즐기고 있었다.

엘하우드든 지구인이든 그들은 서로 뒤엉켜 놀았다. 종족의 차이 따윈 그들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싶었다.

헌데 그때, 누군가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메이트룬과 마찬가지로 단상 위에서 만찬을 주도하던 인물 하나가 슬며시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만찬 분위기 탓인지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은밀히 사라져가는 자의 뒷모습을 지켜본 유태진은 마찬가지로 소리 없이 기척을 죽이고 이동했다.

저 자의 뒤를 쫓아갈 생각이었다.

* * *

“젠장! 이게 무슨 짓이지? 하필이면!”

무르타룬은 욕지기를 내뱉으면서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발걸음을 뗄 때마다 신중을 기하는 것을 잊진 않았다. 자신의 움직임을 다른 이들에게 들킬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인베이더놈들 같으니라고. 기껏 도와줬더니, 그런 식으로 증거를 남겨?”

그는 으르렁대며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형상을 향해 다가갔다. 그것은 인베이더들이 모로세움을 공격하기 위해 움직였던 가루다 급 전함이었다.

유태진에 의해 제네레이터와 추진 부분이 망가지면서 추락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상처 하나 없을 만큼 멀쩡했다. 그 때문에 이렇게 무르타룬이 조마조마한 얼굴로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무르타룬은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전함을 지키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이번 승전을 축하하는 만찬에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하긴 인베이더가 전멸한 상황이니 굳이 전함을 지키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군. 일이 쉬워지겠어. 증거만 없애고 나면···.”

그는 전함 안으로 진입했다. 인베이더의 전함은 아스피나 트리하고는 전혀 다른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여기군. 그래, 여기였어. 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야.”

그가 도달한 곳은 바로 전함의 메인 브레인 시스템 룸이었다. 전함을 통제하는 시스템은 물론, 각종 항법 데이터와 통신 전술 등 다양한 데이터가 저장되는 곳이기도 했다.

“이것만 날려버리면 돼.”

무르타룬은 자신의 두 주먹에 힘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강력한 경화능력에 의해 크고 단단하게 변했다.

이제 이 주먹만 휘두르면 데이터 저장 장치 따윈 단숨에 박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이것을 복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부숴서 증거를 인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의 주먹은 미처 뻗지 못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들려온 난데없는 목소리 때문이었다.

“역시 그랬군. 당신이 배신자였나?”

“너는!?”

무르타룬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그도 잘 아는 인물이 서 있었다.

“대체 언제? 날 몰래 따라온 거냐? 어째서?”

“전부터 네 녀석을 눈여겨보고 있었지. 단순히 메이트룬의 정적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의심 가는 모습을 보였으니까.”

유태진은 심유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무르타룬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물었다.

“무르타룬. 엘하운드의 2인자. 대체 무슨 이유로 너희 일족을 배신하고 인베이더 놈들에게 붙은 거지?”

차가운 냉소와 함께 유태진의 시선이 무르타룬의 두 주먹을 향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의념이 시공간을 초월해 움직였다.

촤아악!

“끄아아!”

주먹을 뻗으려던 무르타룬의 팔이 그대로 잘려나갔다. 그건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에 절단된 듯한 광경이었다.

“괜한 섣부른 짓은 안 하는 게 좋을 거다. 이곳에서 내 의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으니까.”

유태진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다가갔다. 그러자 양 팔이 잘린 무르타룬이 겁에 질린 얼굴로 물러섰다. 하지만 데이터 시스템으로 가득 찬 이 안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나도 처음에는 혹시나 싶었지. 하지만 인베이더들이 하이브를 포기하고 모로세움을 공격할 때부터는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놈들의 목적이 엘하운드의 포획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 심증은 확신으로 변했지.”

“으으···.”

“모로세움은 생각보다 잘 은폐된 곳이었어. 인베이더들이라 해도 행성 전체를 장악하지 않는 한 쉬이 발견되기 어려울 만큼 말이야. 그런데 그곳을 정확하게 찾아내 공격하고, 엘하운드들을 닥치는 대로 포획한다? 이건 내통자가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무르타룬을 기세로 천천히 압박하면서 유태진은 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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