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13화
허나 지금은 그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 놔두면 놈들의 가루다 급 전함이 대기권을 탈출해 도망갈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방금 전까지 놈들의 기척을 전혀 못 느꼈었는데··· 전함 안에 숨어 있다가 기어 나온 모양이지?’
그렇게까지 철저히 숨어있던 걸 보면 유태진을 기습해 없앨 생각이었던 모양이지만, 그들과 유태진 사이에는 너무도 까마득한 격차가 존재했다. 하물며 제대로 된 암살수법조차 모르는 인베이더들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두 기의 성멸 급 인베이더는 포격 타입인지, 유태진을 향해 강력한 포화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구 퍼붓는 것 같아도, 광선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변화도, 무리도 담기지 않은 정직한 공격이 어찌 통하겠는가? 그 수가 많고, 한발 한발이 강력하다 해도 상대에게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이다.
투웅!
허공답보의 한 수로 공간을 가로지른다. 무겁게 일보를 내딛는 순간, 시공간이 일그러졌고 그는 어느새 놈들의 화망을 벗어나 바로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이에 소스라치게 놀란 두 성멸 급이 유태진을 향해 다시 포신을 돌리려 했지만, 그보다는 유태진의 출수가 더 빨랐다.
마음이 행하고자 하면 이미 몸이 행하고 있나니··· 이것이 바로 여의신행의 경지인 것이다.
분광십팔수검(分光十八手劍)
분광추혼(分光追魂)
대체 언제 뻗어낸 것일까? 빛보다 더 빠르게 번뜩인 유태진의 검광은 이미 두 성멸 급의 미간을 꿰뚫고 있었다.
[커어···.]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어버린 두 성멸 급은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해 버렸다.
허나 유태진은 이미 시체가 된 놈들을 더 이상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지금 그에게 가장 우선인 것은 대기권을 돌파하기 위해 빠르게 날아오르고 있는 가루다 급을 저지하는 일이었다.
‘그리 멀리는 못 갔군.’
이제는 까마득히 멀어져 저 위로 점 하나만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유태진은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는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즉시 그 자리에서 도약을 시도했다.
응조칠식경공(鷹鳥七式輕功)
비응등천(飛鷹登天)
허공답보의 묘리로 텅 빈 허공을 박찬 순간, 그의 신형은 말 그대로 한 줄기 선이 되어서 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실로 놀라워서 이제까지 보였던 속도와 차원이 다를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도약만으론 따라잡을 수 없다고 여긴 그가 여러 가지 수법을 동시에 사용했으니까.
어기충소의 묘리를 담은 비응등천에, 자신의 전신에 검풍을 휘둘러 돌진 시 대기의 마찰력을 최소화 시킨다는 급풍쾌검(急風快劍)의 1식 풍령추인섬(風靈追認閃)의 비의 광령질주(狂逞疾走)를 가미하였고, 그 외에도 관성제어나 질량 감소 같은 마법이나 술법들을 다수 더함으로서 지금 그는 대기권을 돌파하는 전함의 속도마저 초월해 버렸다.
이젠 저 멀리 대기권을 벗어나던 가루다 급의 형상이 점점 눈앞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유태진은 속도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는 검 끝을 겨누었다.
급풍쾌검(急風快劍) 제 3식. 노상전폭(怒商傳爆)
비의. 무음관전(無音貫箭)
그 순간,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무형의 힘이 검 끝을 떠나 솟구쳐 올랐다.
무음관전은 검풍의 경력을 보이지 않는 진폭의 파동으로 전환해 허공을 격하여 상대를 꿰뚫는 비의. 형태는커녕 기척조차 없이 단숨에 공간을 뛰어넘어 작열하는 만큼 피하거나 방어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콰아앙!
무음관전의 보이지 않는 힘이 가루다 급 전함의 제네레이터 기관부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을 파고들어갔다. 그 후 한껏 압축되었던 무형의 힘이 해방되면서 그곳으로부터 큰 유폭이 일어났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대기권을 벗어나려 했던 가루다 급 전함의 속도가 급격히 저하되었다. 물론 준대형 전함인 만큼 비상시를 대비한 보조 제네레이터도 다수 존재할 테지만, 유태진은 그것들을 가동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는 느려진 가루다 급 전함을 앞질러나가, 어느새 함의 선수에 도달해 있었다.
“더는 못 간다.”
그가 내뻗은 왼손이 함의 앞부분에 닿는 순간, 느리게나마 날아오르고 있던 함체가 우뚝 멈추어 섰다.
느려졌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메인 제네레이터가 터지기 전과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지, 감소된 속도만으로도 극초음속은 아득히 넘어선 수준이었다.
헌데 유태진은 전장만 무려 십수 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질량에 실린 막대한 운동에너지를 고작 한 손으로 저지한 것이다.
지금도 가루다 급 전함은 이제 막 가동된 비상 제네레이터의 출력을 최대한 짜내면서 유태진을 밀치고 대기권을 이탈하려 했지만, 마치 공간에 고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전혀 나아가지 못했다.
그가 차갑게 웃어보였다.
“내게 한 번 붙잡힌 이상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것이 바로 유태진이 창안한 지부현운신공에서 비롯된 절기 환유무원기(幻幽無援技).
그 중에서도 회연천류도(回延天流道)의 수법은 이화접목과 사량발천근의 극치로서, 가루다 급 전함의 막대한 운동에너지를 그대로 받아서 우주 공간상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유태진은 우주공간상으로 흘려보내던 운동에너지 일부를 다시 가루다 급에 반대로 작용하게 함으로서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하게 만들었다.
즉, 가루다 급 전함과 유태진은 지금 현재 서서히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음, 이대로 떨어지면 큰일 나겠군.”
가루다 급 전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질량 덩어리였다. 이런 게 중력에 이끌려 지상으로 떨어지면 인베이더의 침략 이상 가는 멸망의 재앙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 전에 먼저 손을 썼다. 그러자 전함의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가 창안한 지부현운신공은 힘의 방향성은 물론 가벼움(輕)과 허(虛)에 대한 이치를 고스란히 담아낸 신공절학.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제아무리 거대한 질량이라 하더라도, 무게를 일시적으로 감소시키고 물체에 직접 작용하는 중력의 힘을 흩어버림으로서 낙하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것도 가능했던 것이다.
쿠우웅
묵직한 소리와 함께 가루다 급 전함의 동체가 지면 위에 내려앉았다. 이토록 거대한 금속 덩어리가 까마득한 상공에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은 매우 적었다. 지표면이 살짝 가라앉고 흙먼지가 일어난 것이 전부였다.
“맙소사. 내 눈이 잘못 됐나?”
“지금 저 사람 전함을 제압해 가지고 내려온 거 맞지?”
“거대한 전함이 저렇게 가볍게 내려앉다니.”
모로세움 측에서도 난리가 났다. 인베이더 대군을 대부분 몰살시키고, 심지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던 전함을 끝까지 쫓아가 다시 지상으로 끌어내려올 줄이야.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못할 광경이었다.
“일단 제압은 끝났는데··· 대체 뭔 중요한 게 있기에 필사적으로 도망부터 간 거지?”
유태진은 이미 기능정지 상태나 다름없는 전함 앞으로 다가섰다.
이미 추락하는 동안 철저히 손을 써둔 상태였다. 주요 화기들은 물론 각부에 숨겨진 제네레이터까지 모조리 망가뜨렸다. 그러니 더 이상 도주하거나 저항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는 단단히 막힌 입구를 강기로 도려낸 뒤 안으로 들어섰다.
인베이더들의 전함 내부 구조에 대해서도 익히 배워둔 바가 있었다. 연합에서도 인베이더들을 더 효율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그들의 약점을 분석해 왔으니까.
[쿠어어!]
[카아아!]
전함 내부에 진입하자마자 곳곳에서 인베이더들이 뛰쳐나와 유태진을 공격해왔다. 제대로 된 이성조차 없는 저열한 것들이었지만 침입자에 대한 대응만큼 확실히 각인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귀찮게.”
유태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굳이 직접 손을 섞어가며 상대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의 전신에서 보이지 않는 막대한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평범한 무형지기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심검지도(心劍之道)의 기세였다.
제대로 발현한 심검에 비한다면 한참 못 미쳤지만, 이런 양산형들 따위에게는 충분히 과분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인베이더들이 마치 살충제를 뒤집어쓴 벌레들 마냥 바르르 떨다 그 자리에서 조용히 죽어나갔다. 그가 지나가는 곳곳마다 상처 하나 없는 인베이더들의 시체로 가득해졌다.
좀 전에도 모로세움처럼 지켜야 할 것이 없었다면, 유태진은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차근차근 편하게 인베이더들을 줄여나갔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놈들이 굳이 이 함선으로 도망가려 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아직까진 딱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 함선 안에 도사리고 있던 인베이더들은 죄다 양산형들 뿐이라서, 이유를 알고 있을 만한 놈들이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한 기척이 느껴지고 있어.”
함선에 들어설 때부터 느껴지던 기척들이었다. 처음에는 인베이더들인가 싶었지만, 지금까지의 인베이더들과는 어딘가 좀 다른 느낌이었다.
물론 자신이 알지 못하는 특수한 개체일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유태진의 직감은 그런 게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게다가 이쪽으로 오지도 않고 계속 한 곳에서 맴돌고 있군. 딱히 적대감이나 살기랄 것도 없고.”
인베이더들은 기본적으로 지성체들에게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 그건 양산형이든 고위 개체이든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뭐, 가서 보면 알겠지.”
어차피 성멸 급 둘도 처치한 지금, 이곳에 자신을 위협할만한 개체가 존재할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기척이 느껴진 곳에 당도하자, 웅장하면서도 커다란 문이 보였다. 잘 살펴보니 평범한 문이 아니었다. 제네레이터와 같은 전함의 핵심 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격벽들 이상으로 단단하고 두터워 보였다.
게다가 단순히 단단한 재질로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온갖 영적 방어수법들로 떡칠이 되어 있는 듯했다.
“대체 안에 뭐가 있기에 이놈들이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방비를 해놓은 거지?”
이젠 그 이유가 궁금하기까지 했다. 기존의 가루다 급의 구조 자체를 변경하면서까지 굳이 이런 장소를 왜 만들었는지를 말이다.
우우우웅!
그가 검결지를 취하자, 그 위로 강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것으로 크게 원을 그리자, 그렇게나 단단해 보이던 문을 사람 수십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크게 도려내 버렸다.
문을 보호하기 위해 부여된 영적 술식들이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지만, 그것이 유태진이 작정하고 구사한 강기를 견뎌낼 리가 없었다.
그렇게 도려낸 부위는 허공섭물의 흡자결(吸子訣)을 사용해 깔끔하게 뽑아내 버렸다. 그러자 문이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어디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을 해 볼까?”
유태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구멍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자 좀 전에 느꼈던 기척들이 격렬한 반응을 일으키는 게 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아무래도 이 장소를 둘러싼 방벽 전체에 기감을 방해하는 술식들이 다양하게 첨부되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안으로 완전히 들어선 순간, 유태진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이게 무슨!?”
처음에는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이 안으로 들어서면서 보다 명확해진 그의 기감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진실임을 재삼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유태진은 무겁게 신음을 내뱉었다.
“대체 인베이더 놈들이 무슨 생각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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