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11화
“저 자의 말대로였어.”
“정말로 우린 나설 필요조차 없었나?”
엘하운드들은 유태진이 호언장담하던 것이 사실임을 깨닫고는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혼자서 인베이더들을 다 감당한다더니, 정말 그 말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베이더들은 끝없이 밀려왔다. 어떻게든 유태진을 물량으로 짓눌러 없애겠다는 인베이더들의 의도가 엿보였다.
허나 그 덕분에 인베이더의 무리는 하이브로부터 멀어졌다. 이제 하이브 근처에 남아 있는 인베이더의 수는 이젠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강하가 시작되어도 별 문제 없겠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 까마득한 상공으로부터 두 척의 전함이 빠른 속도로 강하하는 것이 느껴졌다. 하이브의 포격에 걸려들지 않기 위해 스텔스 모드를 가동시킨 두 전함은 인베이더들의 주의가 유태진에게 쏠린 틈을 타 무사히 강하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고오오!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주포에 막대한 에너지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른 순간, 거대한 섬광줄기들이 하이브의 윗면을 향해 그대로 내리꽂혔다.
콰콰콰콰!
두 전함의 주포가 작열하는 순간, 하이브의 상부가 붕괴되었다. 물론 이 정도로 하이브 전체가 내려앉거나 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대공포격 기능만큼은 상실된 게 틀림없었다.
덕분에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안전하게 하이브 위로 안착할 수 있게 되었다. 일부 비행 타입 인베이더들이 몰려들기도 했지만, 그래봐야 양산형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 그 정도로 두 전함의 배리어를 뚫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유태진의 표정은 약간 미묘해 보였다.
‘작전 자체는 성공적인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아.’
애당초 하이브의 대공포격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강하작전이지만, 놈들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제아무리 아군의 두 전함의 스텔스 모드가 고성능이라 하더라도 하이브의 일정 반경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센서에 걸려들 수밖에 없었다.
헌데도 놈들은 단 한 번도 대공포격을 가하지 않았다. 이건 예상했던 것과 너무도 다른 결과였다.
‘강하하는 동안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대공포격을 받았어야 했어. 그런데도 대응을 포기하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속인 거지?’
그렇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정도다. 정말로 하이브에 여력이 없어서 대공공격을 포기했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계획이 있어 대응을 그만뒀을 경우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직감은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유태진 사령관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갑자기 허겁지겁 달려온 메이트룬의 모습에 유태진은 뒤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메이트룬이 당황한 낯빛으로 외쳤다.
“당했습니다. 놈들이 우리의 후방을 쳤습니다.”
“후방을?”
후방이란 그 말에 유태진은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기감을 크게 돋워봤지만, 엘하운드 병력의 후방에는 아무 기척도 느껴지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기감이 최소한 수백 킬로미터를 아우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메이트룬의 저 말은 허튼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후방에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뭔가 잘못 아신 거 아닙니까? 아니면 환각을 봤다거나.”
인베이더들 중에는 악몽과 환상을 다루는 성좌 오르비나의 군단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이라면 메이트룬이나 엘하운드들을 환상을 보게 해서 속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제가 지금 말한 후방은 여기 있는 병력의 후방을 말하는 게 아니라, 최후방기지 [모로세움]은 말하는 겁니다.”
최후방기지 [모로세움]은 말 그대로 궁지에 몰린 엘하운드들이 멸망의 위기에 대비해 자신들의 모든 것을 집결시켜 만든 방공호와 같은 곳이었다.
싸울 수 없는 민간인은 물론, 설혹 병력들이 전멸하더라도 연합의 구조병력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틸 수 있도록 온갖 물자들을 비축해가며 만들었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지금 공격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태였다.
“아니, 철저히 비밀리에 만들어진 곳이 어떻게 놈들에게 발각된 겁니까? 그리고 인베이더들은 언제 그곳까지 갔고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지금 연락이 왔습니다. 인베이더의 대군이 갑자기 땅 속에서 쏟아져 나와 맹공을 퍼붓고 있다고. 이대로는 오래 못 버틴답니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메이트룬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사색이 되어 있었다. 엘하운드들이 가진 마지막 보루가 무너질 위기에 놓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다고 다시 그곳까지 되돌아가기에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아스피나 트리를 타고 이동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2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다.
그 정도면 모로세움이 멸망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사정을 파악한 유태진은 즉시 연락을 취했다.
“엘레나, 나 유태진이다. 그곳은 어떻게 됐지?”
[스승님, 지금 현재 인베이더와 교전 중인 상태에요.]
모듈밴더로 연락을 보내자, 곧바로 응답이 돌아왔다. 후보생들을 이끌고 있는 엘레나였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현재 하이브를 사수하고 있는 인베이더와 교전 중인 상태인데, 생각보다 적의 개체수가 적어서 좀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그래도 일단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서 거의 하이브의 코어 부근까지 당도한 상황이라고 하니, 엘레나나 후보생들이 함정에 빠지거나 위험한 일은 없을 듯싶었다.
그나마 조금은 안심하게 된 유태진이 무거운 목소리로 이쪽의 사정을 알렸다.
“아무래도 적들이 엘하운드의 모로세움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다.”
[모로세움을요? 거긴 거의 무방비 상태잖아요.]
“그래, 놈들이 완전히 우리의 허를 찔렀다. 마치 이쪽의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들이 강습작전을 벌일 시간까지 예상한 듯 하이브를 지켜야 할 병력까지 상당수 동원해 가면서 엘하운드의 마지막 근거지인 모로세움을 노리다니.
심지어 강습작전 타이밍에 맞춰 행동을 개시한 걸 보면··· 인베이더들이 이쪽의 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했다.
‘게다가 놈들은 땅굴을 파서 이동했어. 심지어 내가 느끼지도 못할 만큼 깊숙이 말이야.’
어지간한 깊이의 지저 이동이었다면 유태진도 지표면까지 전해지는 진동을 읽어내 감지했을 것이다. 헌데 그가 느끼지 못할 정도면 기척은폐 수단을 동원해가며 최소한 수십 킬로미터 이상 깊게 파고 내렸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모로세움은 엘하운드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이 무너지기라도 한다면 인베이더들을 물리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일단 제가 가보겠습니다. 전력을 다해 날아간다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예? 어떻게 말입니까?”
메이트룬이 황당하다는 듯 되물었다. 아스피나 트리의 이동 속도로는 제 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려웠고, 그렇다고 하이브 강습 작전에 동원된 연합의 전함을 이쪽으로 불러서 가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하지만 유태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간단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날아서 가면 됩니다.”
“뭐라고요?”
더욱 해괘하게 일그러지는 메이트룬의 모습에 유태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일일이 설명하고 있을 시간조차 아까웠다.
그는 어기충소로 높이 날아올랐다. 수직으로 까마득한 상공까지 단숨에 치솟아 오르는 그 모습에 메이트룬을 비롯한 모두가 입을 떡하니 벌렸다.
“저 방향인가?”
모로세움이 있는 곳을 눈대중으로 가늠해본 유태진은 그 즉시 어기비행술을 사용해 공간을 가로질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무시무시한 파공성과 함께 그의 신형이 한 줄기 선이 되어 저 먼 곳으로 뻗어나갔다.
콰우우우우!
“세상에···.”
“진짜로 날아가잖아?”
엘하운드들은 두 눈을 비비며 자신들이 본 광경을 의심했다. 날아가는 것 자체가 놀라워서가 아니었다. 지금 유태진이 날아가는 믿기지 않는 속도가 놀라워서였다.
“극초음속을 아득히 넘어섰어.”
“대기권에서 맨몸으로 저런 이동이 가능하다고?”
저 정도라면 대기권에서만 한정할 경우, 연합의 전함보다 더 빠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모로세움이 무너지기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제발 부탁합니다. 유태진 사령관.”
메이트룬은 유태진이 사라져간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다. 이제 유태진의 두 손에 엘하운드 일족의 모든 명운이 걸려 있었다.
* * *
그야말로 전력을 다해 날아간 유태진은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하게 되었다. 하이브 인근에서 출발한 이후 대충 20여분 쯤 지난 시점이었다.
“저기군.”
유태진도 모로세움을 직접 보긴 처음이었다. 자료 화면으로 그 위치만 대충 확인해뒀을 뿐, 자세한 건 굳이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눈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세계수를 연상케 할 만큼 거대한 나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규모의 요새는 엘하운드들만의 독자적인 기술만으로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주변으로 인베이더의 무리가 개떼처럼 밀려들었다. 그 수는 적게 잡아도 하이브 근처에서 유태진이 상대하던 것의 5분지 1은 될 듯싶었다.
그는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곧바로 지상을 향해 빠른 속도로 강하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뒀다간 모로세움을 보호하는 장벽이 무너질 지경이었다.
그가 마음을 움직이자 그에 상응하는 의념이 세워졌다. 심중에 자리 잡고 있던 검이 오롯이 고개를 쳐든 순간, 현실의 검도 그 뜻을 따라 감응하였다.
우우우웅!
검집을 빠져나온 검이 유태진의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리곤 빠르게 분열되기 시작했다.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그렇게 계속해서 불어나던 검은 어느새 하늘을 빼곡하게 메울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심어검(心御劒)의 의(意)!
쇄천만검강(碎天萬劍罡)
마음 가는 곳에, 뜻이 있고, 뜻이 있는 곳에 검이 있나니··· 이것이 바로 의를 세움으로서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검리, 심어검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압도적인 폭력이 곧 인베이더들의 바로 머리 위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그야말로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꿰뚫리고 박살나 흩어졌다. 그 어떤 인베이더라 하더라도 이 앞에선 살앙남을 수가 없었다.
허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심어검에 담겨져 있는 강기는 기가 유형화 될 만큼 응집된 수준을 넘어, 안정된 물질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지고의 영역인 천무강(天武罡).
고작 양산형 인베이더 따위들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체 이건?”
“기··· 기적인가?”
죽음을 각오한 채 모로세움을 사수하고 있던 엘하운드들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와 같은 검우(劍雨)에 놀람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들을 멸망의 기로로 몰아넣었던 인베이더들이 저 검우 속에서 일개 개미떼처럼 죽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죽어나간 숫자만 해도 무려 수만 마리에 이르렀다. 그렇게 모로세움을 보호하는 장벽에 접근한 인베이더들을 단숨에 쓸어버린 유태진은 천천히 지면 위로 내려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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