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09화 (310/448)

13권-09화

* * *

그들이 세운 강습작전의 개요는 간단했다. 유태진을 선두로 한 엘하운드의 병력이 하이브 인근을 지키는 인베이더들을 공격해 유인하고, 그 소란을 틈타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곧장 하이브를 타격하는 것이었다.

처음 그 작전에 대한 내용을 들은 엘하운드 수뇌부들이 극렬히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 미친 작전을!”

“대체 무슨 생각인 거요? 우리더러 그 많은 인베이더들을 유인하라고?”

“죽으란 소리밖에 안 되는군. 이해할 수가 없어.”

결국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메이트룬이 나섰다.

“우린 어디까지나 적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미끼일 뿐이다. 이번 유인작전의 진짜 핵심은 연합에서 오신 유태진 사령관이시지. 우린 적당히 조력자 역할만 하면 되니 큰 걱정할 것 없다. 놈들과 실질적으로 싸우는 것도 바로 이분이니까.”

“뭣!?”

“아니, 무슨!?”

모두가 당혹해했다. 하이브를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는 인베이더의 수는 제대로 파악조차 되지 않을 만큼 천문학적이었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에도 인베이더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는 상황.

어떻게 보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이야기와 같았다. 하이브 인근의 인베이더들을 어찌하기 전에는 하이브에 접근할 방법이 없었고, 하이브를 다운시키지 않고는 그 근처에 포진하고 있는 인베이더의 미친 물량을 감소시킬 방도가 없으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인 것이다.

물론 이번 강하작전이 성공해서 하이브를 다운시킬 수만 있다면 그 물량의 증가세도 감소하게 될 테지만, 그동안 저 많은 인베이더들의 주의를 어떻게 끌어낸단 말인가!

엘하운드가 보유한 병력 전체가 나서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물며 일개 개인이 저 많은 수를 감당한다고? 그들의 상식으로는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들은 이번 작전의 의도부터 의심했다.

“지도자님. 이건 정말 허무맹랑한 소립니다. 혼자서 그 많은 인베이더들을 감당한다니요!”

“이건 분명 저 자의 속임수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놓고 우리를 미끼로 쓸 게 분명합니다.”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반발의 목소리. 그리고 이를 주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엘하운드의 2인자 무르타룬이었다.

“인베이더와 대적할 수 있는 연합의 강성함은 우리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닙니다. 지원병력이라고는 달랑 전함 2척밖에 보내지 않은 것만 봐도 그들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군요. 심지어 단독으로 그 많은 병력을 감당한다니요? 이건 우리를 기만하는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그날 이분의 무위를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건가?”

무르타룬의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 되묻는 메이트룬. 하지만 무르타룬의 생각은 완강했다.

“물론 대단하긴 했지요. 하지만 인베이더의 병력은 끝이 없습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수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가 제아무리 대단한 무력을 보유했다 하더라도 금세 한계가 올 겁니다. 그 뒤에는 결국 우리가 인베이더들을 죄다 감당하게 되겠지요.”

“그 말대로입니다. 이 작전을 따르게 되면 결국 우리가 그 희생양이 될 겁니다.”

“다시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무르타룬의 의견에 상당수의 수뇌부들이 동조하고 나섰다. 그들도 유태진의 무위는 물론, 이번 작전 자체조차 믿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메이트룬이 한탄하듯 말했다.

“어리석구나.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서야···. 유태진 사령관은 결코 허튼 소릴 내뱉을 그런 분이 아니시다.”

“물론 저희도 그가 우릴 의도적으로 기만하거나 속일 뜻이 있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그게 과연 정말로 가능한 일인지, 아니면 무모함에서 나온 만용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 않습니까? 만일 일이 벌어진 다음에 그가 감당 못하는 사태가 오면 그 대가는 우리들의 피로 치르게 될 겁니다. 그런 최악의 상황을 피하자는 겁니다.”

무르타룬의 주장은 어떻게 들으면 논리적이고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이건 궤변이나 다름없었다. 그날 당시 보인 유태진의 무위라면 하이브 근처의 인베이더들을 전부 감당할 순 없다 하더라도, 엘하운드의 조력까지 더해진다면 충분히 놈들의 주의를 이쪽으로 돌릴 수 있을 테니까.

메이트룬은 참담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무르타룬.”

“예, 지도자님.”

“그대의 말처럼 유태진 사령관 혼자서 그 많은 인베이더들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 치자. 허나 이 싸움은 애당초 우리의 것이었다.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타인의 도움을 받는 이 상황에서, 아무런 피도 흘리지 않고 그냥 거저먹을 생각이었던 거냐?”

“아니, 전 그런 의미에서 말한 게 아니라···.”

무르타룬이 당황한 얼굴로 뭐라 항변하려 했지만, 메이트룬은 그 말을 단호히 자르며 들어왔다.

“게다가 이분은 우리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 완벽한 타인이다. 그런데도 이번 작전에서 가장 위험한 역할을 자처하고 나서셨지. 감히 그 앞에서 희생을 운운할 수 있나?

그리고 무모함에서 나온 만용이 아니냐고 했는데, 지금 우리 피튼 성계는 멸망의 기로에 놓여 있어! 도박이나 다름없는 작전이라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시도해서 살길을 찾아야 할 판국인데, 이 상황에서 우리만 몸을 사리겠다고?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냐!”

“그건···.”

“으음.”

정곡을 찔린 얼굴로 신음을 내뱉는 수뇌부들. 여기에 메이트룬이 쐐기를 박았다.

“우린 이분이 나서서 도와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처지다. 설령 이번 작전에서 아군의 희생이 크다 하더라도 하이브만 다운시킬 수 있다면 결코 손해가 아니야. 얼마든지 다시 회생할 수 있어. 그러니 더 이상의 반론은 받지 않겠다. 앞으로 이런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다시 꺼낼 시 군법으로 처벌할 테니 각오하도록.”

그가 이렇게까지 강경하게 나오니 수뇌부들도 더 이상 반발하지 못했다. 엘하운드들에게 있어 지도자인 메이트룬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다. 평소 그들의 의견을 듣고 잘 반영해주긴 하지만, 한번 결정을 내리면 어지간해서는 번복하지 않았다.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기껏 모셔 와서는 안 좋은 꼴만 보여드렸군요.”

메이트룬은 자신의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태진에게 사죄의 말을 건넸다. 이런 몹쓸 광경을 당사자에게 여과 없이 보여줬으니, 망신살이 뻗쳐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유태진은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메이트룬께서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이번 일은 어디가지나 서로에 대한 신뢰나 믿음이 없어서 생긴 해프닝이니 말입니다. 하긴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나름 이해는 갑니다. 처음 보는 작자가 저 많은 인베이더들의 주의를 끌겠다고 나섰으니 믿기지 않을 만도 하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더욱 면목이 없군요.”

“하지만 저들에게 한 가지 묻고 싶군요.”

그 순간 메이트룬은 깨달았다. 지금 유태진은 수뇌부들이 저지른 무례에 개의치 않았던 게 아니라는 것을.

깊게 가라앉은 그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당신네들 상식에 맞춰 날 평가하는 건 좋은데,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언제 한번이라도 물어는 봤었나?”

“···아니, 그게···.”

엘하운드의 수뇌부들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들이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

유태진의 거침없는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도 없었지. 그저 불가능할 거라 단정 짓고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더군. 물론 작전을 시행하기 전에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두는 건 옳은 일이다. 하지만 네놈들이 과연 그런 순수한 마음에서 그 문제를 지금 이 자리에서 들먹이고 나왔을까?”

“······.”

“물론 이해 못할 바는 아니야. 그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희생이 있었겠지. 더 이상 동족을 잃기 싫어할 만도 해. 그래서 이런 식으로 나왔을 것이고.”

그렇지만 이해한다는 말과 달리 그의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 이젠 훈훈한 날씨인데도 한기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임을 우리에게 떠넘기지 마라. 우린 어디까지나 너흴 돕기 위해 온 조력자일 뿐이다. 이 전쟁의 주역은 바로 너희들 자신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해라.”

전장을 떠돌다 보면 저런 경우는 무수히 경험할 수 있었다. 너무 많은 것을 잃다보면 그 책임을 남에게 돌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죽어나간 동족들이 너무 많다보니, 이젠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더 이상 희생을 감수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베이더들을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지를 의심했었지?”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저 멀리 보이는 산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함께 그 쪽으로 향했다.

“저 산을 봐라. 그리고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확인하도록 해.”

그 순간, 그의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평범해게만 느껴졌던 게 믿어지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허억!”

“이 무슨!?”

말 그대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심지어 몇몇 엘하운드들은 그가 드러낸 존재감 앞에 호흡곤란마저 일으킬 지경이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굳이 그들을 배려해주지 않았다. 애당초 존재감을 드러낸 것도 저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우우웅!

그의 심상 위로 한 자루 검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가 이룩한 초월적인 무리의 결정체!

마음만 먹는다면 세상과 감응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베고자 한다면 실체와 비실체를 넘어 그 본질마저 베어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절대적인 한수가 모두의 앞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천룡무상검법(天龍無上劍法) 제 2식. 천룡쇄공조(天龍碎空爪)

비의. 일절대라검인(一切大羅劍印)

저 멀리 떨어져 있던 산 위로 무수한 궤적들이 나타났다. 그것은 미처 눈으로 다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찰나의 깜빡임 같은 궤적들이 나타났다 사라진 순간, 산의 중턱 윗부분 전체가 이변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 저!?”

“맙소사!”

다들 믿기지 않는 광경 앞에 경악으로 부르짖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멀쩡했던 산이 갑자기 수십 수백만 개 이상의 정사각형 형태의 파편이 되어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그 크기마저 하나같이 전부 똑같았다. 워낙 먼 거리라서 제대로 재볼 수는 없었지만, 눈대중만으로도 그 크기가 똑같음을 알 수 있었다.

쿠르르릉!

굉음과 함께 정사각형 형태의 파편들이 산 아래로 아래로 성대한 기세로 무너져 내렸다. 이제 저 산은 더 이상 산으로 불릴 수 없는, 조금 큰 구릉이나 다름없었다.

“······.”

이 자리에 있던 자들은 하나같이 질린 듯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저런 말도 안 되는 무위를 보여준 상대에게 더 이상 뭐라 말을 하겠는가.

첫날 보여준 무위도 놀라웠지만, 이건 가히 초월적인 수준이었다.

유태진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겠지? 그러니 당신들도 더 이상 토 달지 말고 작전에 따라. 또다시 항명한다면 나도 용납지 않을 테니까.”

그 말을 끝으로 유태진은 더 이상 볼일 없다는 듯 그 자리를 떠나갔다. 어느 누구도 감히 그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그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엘하운드들은 간신히 숨을 몰아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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