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06화 (307/448)

13권-06화

“빔 공격이 전부라면 디스토션 필드만으로도 충분하지. 자, 그럼 이제부터 강하 속도를 높여나간다. 그리고 인베이더들의 접근 공격이 발생하면 즉시 요격에 들어가도록.”

[예.]

공간을 왜곡시켜 모든 공격의 방향성을 뒤틀어버리는 시공왜곡장 디스토션 필드는 대부분의 공격에 대해 상성 우위를 보이지만, 특히 빔이나 레이저 같은 광선 계열의 공격에 대해선 가히 절대적이라 할 만큼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했다.

하이브의 대공 공격이 상당히 강력하긴 했지만, 그 종류가 빔 공격인 이상 디스토션 필드를 뚫는다는 건 어지간해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아우기스는 로버단 급 중형 전함 중에서도 가장 출력과 성능이 뛰어난 전열돌파형 특무함이었다. 그래서 유태진이 이곳에 타고 올 전함으로 아우기스를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놈들의 포격은 단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행성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만큼 에너지 차징은 금세 이루어졌다.

고오오오!

또다시 지상으로부터 밀려오는 눈부신 광망. 막대한 에너지의 분류가 또 한 번 아우기스를 노리고 치솟아왔다.

“멈추지 않고 이대로 돌파한다.”

[디스토션 필드 출력 전면에 집중. 능동형 전개 장갑 전개. 이대로 돌파합니다.]

유태진이 전진을 명령하자 아우기스의 디스토션 필드의 이지러짐이 더욱 짙어졌다. 이것이 바로 전열돌파 특무함인 아우기스의 진면목이었다.

디스토션 필드의 출력을 전면에 집중시키고, 외부 장갑의 변형으로 최대한 가속력을 높여서 상대의 공격이나 방어선을 돌파하는 것이다.

함체를 보호하던 장갑의 일부가 변형되면서 전면부의 방어를 더 강화시켰고, 일부는 슬라이드 형태로 전개되면서 각 부에 숨겨져 있던 추진 슬러스터가 활짝 개방되었다.

쿠오오오!

그 순간 함체에 무시무시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힘으로 하이브에서 솟구친 빔을 정면으로 밀어내면서 불도저처럼 지상을 향해 나아갔다.

물론 인베이더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하이브의 대공포격을 보조할 목적인지 저출력의 빔 다발들이 뒤이어 솟구쳐 올라왔으며, 그 뒤에는 다수의 인베이더 반응이 포착되었다.

[다수의 빔 에너지 반응 포착! 본 함을 타깃으로 뻗어옵니다. 그리고 추가로 다수의 비행 타입 개체 접근 중을 확인! 전부 E+랭크입니다.]

“슬슬 나올 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

현재 빔 공격을 막기 위해 디스토션 필드의 출력 대부분을 전면으로 집중시킨 지금이야말로 측면이나 후방이 가장 취약해지는 시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비행타입은 그런 이쪽의 허를 찌르기 위해 보내온 것이 분명했다.

유태진은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

“다가오는 비행 타입에게 놈들이 쏜 빔 다발 중 일부를 고스란히 되돌려준다. 디스토션 필드의 굴절률 변화!”

[예, 디스토션 필드의 표면 굴절률 다중 변화! 게마트리아 오차 범위 0.0731%. 적들의 빔 공격을 급속 접근 중인 타깃 473개체에게 되돌려줍니다.]

오퍼레이터의 외침과 함께 디스토션 필드를 맹렬히 두들기고 있던 빔 다발 중 일부가 접근 중인 비행 타입들을 향해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든 아우기스에 접근하려던 놈들에게 치명적인 한수가 되었다.

[전 타깃 명중! 비행타입 반응 소멸]

“좋아! 이대로 전진! 즉시 목적지로 향한다.”

현재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의 강하 포인트는 엘하운드 일종의 집결지 중 하나. 현재 그곳을 중심으로 인베이더와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비행 타입들을 제거하고 하이브의 2차 포격까지 디스토션 필드를 앞세워 우격다짐으로 밀고 들어서자, 더 이상 저지하는 적들이 없었다.

강하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지상의 정경이 확대되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프로메테우스에서는 오버러 훈련생들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이번 대기권 진입은 그냥 강하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현재 엘하운드는 인베이더와 한창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태.

그 말은 즉, 강하가 끝나자마자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마틴이 후보생들을 다그치듯 물었다.

“그동안의 훈련을 떠올려봐라. 지난 2개월간의 훈련이 여러분들에게 그렇게 쉬웠나?”

“아닙니다!”

“그래, 쉽지 않았겠지. 그러라고 굴린 거니까. 그리고 그만큼 실력도 늘었지. 그런데도 너희들은 자기 스스로를 믿을 수 없나? 그전보다 강해진 실력을 체감할 수 없나?”

어느 누구도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훈련을 통해 강해졌다는 건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대련 상대는 언제나 마틴 등 월등한 실력자들뿐이었으니 상향된 실력을 체감해볼 기회조차 없었던 것이다.

“물론 첫 전장의 두려움이 있을 거라는 건 잘 안다. 나도 그랬지. 하지만 너희들이 그동안 흘렸던 피와 땀을 믿어라. 너희들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인정할 만큼 훌륭하게 성장했지.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충분히 노력했고, 이 전장에서도 얼마든지 활약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것을 오늘의 전장에서 나와 함께 증명해보자.”

“예!”

그제야 조금은 긴장이 덜어진 듯, 후보생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 정도라면 곧 있을 전투에서도 당황해서 실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 마틴의 옆에 있던 엘레나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마틴 아저씨, 어울리지 않게 꽤 달변이시네요. 저 후보생들을 단번에 휘어잡았잖아요.”

“······.”

마틴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 본인도 이런 역할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놀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입을 닫고 있는 사이,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드디어 전장 한복판에 도달했다.

* * *

엘프의 먼 혈통으로 전래된 아종 엘하운드. 그들은 피튼 성계를 비롯한 여러 행성에서 크게 번성하고 있는 종족이었다.

엘프의 먼 혈통이라 해도 지금은 거의 별개의 종족이나 다름없어 그 고유의 특성도 많이 잃어버렸지만, 수목과 소통하고 다스리는 능력만큼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어 왔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엘하운드는 지금과 같은 성세를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인베이더의 침공이 시작되면서 멸망의 기로에 접어들게 되었다.

피튼 성계의 엘하운드 지도자 메이트룬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현재 전황은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이브를 구축한 인베이더의 무리는 그야말로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았다. 그리고 강력했다.

그동안 평화롭게 살아왔던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무방비하게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평화를 지키기 위해 평소 대비해 왔으며, 그 전력들을 모조리 꺼내들었다.

메이트룬이 명령을 내렸다.

“아스피나 트리, 일제 포격하라!”

[아스피나 트리. 포격 개시!]

다른 타 행성들이 과학이나 혹은 마도공학을 발전시켜왔다면, 피튼 성계는 독자적인 형태의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그것은 바로 수목과 소통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로 발전시키는 진화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스피나 트리]. 나무를 거듭 진화시키고 변화시켜서 살아 숨 쉬는 전함으로 만든 것이다.

콰아아아아!

마치 굵은 덩굴들이 서로 엉켜 만들어진 거대한 나무 방주와 같은 형태를 한 아스피나 트리들이 상공에 둥둥 뜬 채로 녹색 광선들을 뿜어내었다. 그 화력은 연합의 전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크어어!

-키에에!

인베이더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죽어나갔다. 어지간한 빔포에 버금가는 화력에는 놈들도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전함은 엘하운드 측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인베이더 측에도 그와 비견되는 전력이 대기하고 있었다.

“온다! 방어해!”

저 뒤편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형상들! 그것은 인베이더가 보유한 전함들이었다. 소형인 가프랑과 중형 전함인 가란드로 구성된 함대는 아스피나 트리들의 위용을 압도했다.

하이브의 침식률은 이제 이런 전함까지 생산하기에 이른 것이다.

고오오오!

곧 무시무시한 포화가 엘하운드 측으로 날아들었다. 인베이더 함대가 쏟아낸 플라즈마 캐논의 세례였다.

아스피나 트리가 녹색 역장을 전개해 방어에 나섰지만, 그것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초반에는 겨우 막아가던 역장 곳곳에 구멍이 생기더니, 곧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이럴 수가!”

메이트룬은 경악에 빠져들었다.

인베이더가 강력하다는 것은 이미 여러 경로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놈들을 두고 우주를 멸망의 공포로 몰아넣는 악몽이라더니, 그 말은 정녕 사실이었던 것이다.

자신들이 자랑하던 아스피나 트리까지 이렇게 무력하게 무너질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그 수는 지금도 빠른 속도로 격감하고 있었다.

현재 아스피나 트리가 그럭저럭 감당할 수 있는 적의 전력은 기껏 해봐야 가프랑 급 전함이 한계. 그것도 아스피나 트리가 셋 이상 모여야 가프랑 급 전함 한 척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물며 중급인 가란드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스피나 트리 백 채를 동원해봤지만, 여지없이 소멸 당했다. 가란드 급 전함이 뿜어낸 무시무시한 플라즈마 캐논은 그들의 상식을 넘어섰다.

“이대로 끝나는 건가?”

진한 절망감이 메이트룬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도 그동안은 어떻게든 겨우 버텨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하이브의 침식률이 높아지면서 그들의 저항은 무참히 짓밟히게 되었다. 적들의 전력이 그에 비례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가란드 급 전함이 출몰한 것도 바로 그런 사실들을 고스란히 증명해 주었다.

그래도 남은 전력을 쥐어짠다면 당장 오늘만큼은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날은? 그리고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미래가 없었다.

“그냥 이대로 멸망해 줄 수는 없지!

메이트룬은 죽음을 각오했다. 더 물러설 길이 없다면 차라리 이대로 싸우다 멸망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헌데 그때였다.

쿠오오오오!

갑자기 대기를 관통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얼마나 소리가 큰지, 전쟁터에서 일어난 소리들이 덮일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저 까마득한 상공에서 지상을 향해 강하해오는 거대한 물체를 볼 수가 있었다.

“저건!?”

메이트룬은 두 눈을 크게 부릅떴다. 하늘에서부터 내려오는 저 거대한 형상의 물체의 정체를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설마, 연합의 전함인가?”

얼마 전부터 연합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본디 리클 성계는 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곳들 중 하나였지만, 인베이더의 침공이 시작된 이후 역부족을 느끼면서 연합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어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지원군을 보내올 줄이야.

그렇지만 섣불리 기대하긴 일렀다. 인베이더들의 본진인 하이브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거대한 빛줄기가 치솟아 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를 목도한 메이트룬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안 돼!”

그 힘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가란드 급의 주포와는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는 수준.

메이트룬은 간신히 손에 넣은 마지막 희망이 꺼져나감을 느꼈다. 제아무리 연합의 전함이라 해도 강하 도중에 저런 강대한 포격을 정면으로 받아낸다면 순식간에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은 너무도 섣불렀다. 하이브의 포격의 빛이 한 차례 지나간 뒤에서도 그 자리에 상처 하나 없이 건재한 전함의 모습을 메이트룬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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