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권-05화
막상 전함에 탑승하고 나자 가슴이 떨렸다. 이건 흥분과 두려움이 뒤섞인 설렘이란 감정이었다.
모든 이들이 탑승하고 나자 프로메테우스는 빠른 속도로 대기권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 중에 막대한 충격과 압력이 가해졌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중력제어장치가 완벽하게 상쇄시키면서 함 내에는 어떠한 G도 느낄 수 없었다.
대기권을 벗어난 프로메테우스는 어느새 우주공간에 도달했다. 후보생들은 창밖으로 비치는 검푸른 우주의 모습에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
난생 처음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는 우주의 모습이었다. 오버러 훈련도 각 지부에 마련된 훈련장에서 받았을 뿐, 이렇게 우주로 나오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때 마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넋 놓고 볼 것 없다. 앞으로 너희들도 우주의 풍경은 질리도록 볼 테니까.”
자신들을 돌아보는 후보생들에게 마틴은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했다.
“프로메테우스가 피튼 성계를 향해 출발하기까지 앞으로 이틀 정도의 시간이 예정되어 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우주적응 훈련을 받으면서 인베이더와의 전투에 대비하기로 한다.”
“예.”
그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훈련이었다. 그동안 지부 내에 있는 인공무중력 시설 내에서 나름 훈련을 받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우주 적응을 끝냈다고 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히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과, 드넓은 우주 공간에서 생사를 건 전투를 벌이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다.
인베이더와의 전투가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모르는 만큼, 어떤 환경에서든 전투를 진행할 수 있도록 철저한 적응과정을 마쳐야 했다.
“우왓!”
“위험해!”
하지만 우주공간에서 전투를 진행한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지상의 무중력실에서 훈련한 것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서는 적어도 발을 디딜 지면이라도 존재하지만 우주에서는 정해진 기준이 없었다.
상하좌우가 전부 텅 빈 공간뿐이니 어딜 기준으로 해서 움직여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손발을 허우적대며 우왕좌왕하다가 자멸하는 녀석들이 태반이었다.
배틀 슈트의 플로트 윙은 우주 공간상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추진력을 부여해 주지만, 그것도 사용자가 잘 활용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방향감각은 물론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인지 못하는 녀석들이 사용해봐야 저 먼 우주공간으로 날아가 미아가 되어 버릴 뿐이다.
“멍청한 녀석들 같으니.”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오버러들이 그런 지구 출신 후보생들을 붙잡아 세웠다. 그리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일러주었다.
“여긴 지상이 아니야. 발을 디딜 지면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이 올려봐야 할 하늘도 없어. 예전의 기준을 머릿속에 담고 있으면 적응하기 더욱 힘들어진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 예전처럼 하늘이나 땅이 기준이 아니라 너를 중심으로 주변을 인식하는 거다.”
우주에서의 전투는 공간지각능력을 중요시했다. 사람이 주변을 인식하는 기준인 지표면과 하늘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공간에서는 사방을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입체적인 형태로 인식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공간을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다들 이 과정에서 상당히 헤매고 있었지만, 김진수는 금세 적응해냈다.
‘이런 식이군.’
어느 정도 감을 잡은 그는 우주공간을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았다.
“호오, 저 녀석은 확실히 다른데?”
“후보생들 중에서도 선두를 다툰다더니 우주에서 적응하는 것도 남달라.”
현역 오버러들도 김진수의 적응력에는 상당히 감탄했다. 저렇게까지 빠르게 우주공간에 적응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그리고 몇몇 오버러들은 그 이유를 알아챘다.
“대충 알겠군. 저 녀석, 자신의 발전 능력을 주변공간을 인지하는 데에 사용하고 있어.”
“어떻게?”
“레이더와 비슷한 원리지.”
그랬다. 지금 김진수는 전하의 흐름을 조종하여 자기장과 전자파를 방사해 주변 전 방위를 자신의 인지 하에 놓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편법이라면 편법이랄 수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 김진수는 공간지각력이 무엇인지 빠르게 깨우쳐 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한다면 이런 감지 방식을 동원하지 않고도 완벽하게 우주공간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틀간의 적응 훈련 끝에 후보생들은 드디어 피튼 성계를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아직 우주전에 미숙한 모습들을 보이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여유롭게 시간을 할애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미숙한 부분들을 실전을 통해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한편, 후보생들의 적응 훈련이 종료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유태진은 곧바로 준비를 마쳤다. 이제 약속했던 참전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갔다 올 테니 집 잘 보고 있어라.”
“네! 그럼 다녀오세요.”
평소와 다름없는 리스티의 쾌활한 대답에 유태진은 픽 웃고 말았다. 가끔 하는 행동들이 상식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이긴 해도, 리스티는 믿을만한 인재였다.
그녀에게 지구의 KM사를 비롯한 모든 것을 맡겨놨으니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다.
“그리고 아르페인. 함대를 부탁한다.”
“제가 있는 한 걱정 않으셔도 될 겁니다. 사령관님.”
“그래, 돌아올 때까지 자네만 믿지.”
아르페인은 지금까지 인피니티 킹덤을 지휘해온 실력자였다. 사령관인 유태진이 없다 하더라도 잘 운영할 수 있을 터.
그가 이렇게 후보생들을 데리고 다른 성계로 서슴없이 떠날 수 있는 것도 다 아르페인의 덕택이 컸다.
고오오오!
카멜롯 근처에 있던 전함 중 두 척이 출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유태진이 타고 갈 전함은 지구에서도 이미 몇 번 운용된 바 있었던 로버단 급 중형 전함 아우기스. 그리고 지구에서 건조된 최초의 전함이자 후보생들이 탑승하고 있는 전함 프로메티우스 두 척이었다.
사실 이번 전쟁이 참여할 인원수를 생각한다면 프로메테우스 한 척만 하더라도 충분하고 넘쳤지만, 문제는 프로메테우스의 성능이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지구에서 건조된 최초의 전함.
몇 번의 보완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완성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워프 기능은 탑재되지 못했다. 아직 지구의 기술력으론 해석조차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워프를 시도하려면 아우기스의 동행이 반드시 필요했다.
[전방 변동중력원 형성!]
[시공간 왜곡현상 증폭합니다.]
[좌표고정! 웜홀을 개방합니다.]
우주공간이 뒤틀리는가 싶더니 아우기스의 전면으로 커다란 균열이 생겨났다. 그것은 점차 커져나가더니 전함이 통과할만한 구멍을 형성하였다.
[웜홀 안으로 진입합니다!]
[워프 인!]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그 즉시 웜 홀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저 먼 공간까지 이어주는 기다란 시공간의 터널이 그들을 맞이했다.
[도착까지 37분 예정입니다.]
오퍼레이터들의 보고에 유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피튼 성계는 지구와 비교적 가까운 성계였다. 물론 거리상으로 따진다면 무려 수백 광년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워프 항법을 사용하면 바로 지척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예측 시간대로 37분 후 워프 아웃 과정에 돌입했다. 시공간의 터널 끝에 생성된 출구와 함께 아우기스와 프로메테우스는 무사히 현실의 우주공간으로 빠져나왔다.
“여긴가.”
[그렇습니다. 지금 전면에 보고 계신 행성이 바로 피튼 행성입니다.]
피튼 행성은 지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지구는 우주에서 내려다 봤을 때 전반적으로 푸른 모습이라면, 이곳은 녹색이 상당히 많았다. 수자원으로 짐작되는 푸른빛도 여기저기 보였지만, 그보다는 녹색 빛이 압도적으로 더 많은 편이었다.
‘하긴 피튼 행성은 수목 자원이 풍부한 곳이라지?’
그렇기에 문명 발달도 독특하게 이루어졌다. 지구는 금속을 다루는 과학 문명이 발전해 있는데, 이곳은 수목을 제어하고 다루는 특이한 형태로 진화되어왔던 것이다.
‘하긴 원주민들이 엘프의 아종이라니 그럴 만도 하지.’
피튼 행성의 주인은 엘하운드. 아주 먼 조상이 엘프였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종족으로 갈려져 나온 별개의 종족이었다.
그렇지만 엘프의 몇 가지 특성을 물려받은 탓에 수목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며, 그 외에도 특수한 능력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 엘하운드들의 행성인 피튼 성계에 인베이더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침공이 시작된 지 3달 쯤 되었는데, 계속해서 밀리는 추세라고 했다.
“저 부분이 점령당한 지역인가 보군.”
유태진이 가리킨 부분에 유독 갈색 빛이 나는 지역들이 있었다. 오퍼레이터가 그에 답변을 내놓았다.
[예, 본국에서 보내온 데이터베이스에 의하면 인베이더에게 점령당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너무 급격한 행성 에너지의 고갈로 해당 지역의 수목이 말라죽거나 황폐화 되면서 저렇게 색이 변한 걸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긴 행성을 침식하면서 마구잡이로 에너지를 끌어다 쓰니 그렇게 됐겠지.”
인베이더들이 침략한 행성들의 사례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만 했다. 놈들의 하이브는 막대한 병력을 생산하기 위해 행성에너지를 무차별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 정도에 그친 걸 보면 아직까진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보기에는 많은 행성에너지를 소모한 것처럼 보여도, 수목이 말라죽고 황폐화 된 게 전부라면 표층 에너지가 사용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침식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면 행성의 중추 에너지까지 끌어다 쓰게 된다. 그때가 되면 절대 돌이킬 수가 없었다.
연합이 특정 행성을 폐기 지정하는 경우도 바로 이럴 때에 해당한다.
“그럼 예정했던 대로 강하 작전을 시작한다. 인베이더의 대공 공격이 예상되니 주의 하도록.”
[예!]
고오오오!
그때부터 프로메테우스와 아우기스의 대기권 진입이 시작되었다.
먼저 선두에 나선 건 아우기스였다. 아우기스의 성능은 프로메테우스의 그것을 훨씬 상회했다. 그래서 혹시 모를 인베이더의 공격을 방어해주기 위해 그보다 앞서 나선 것이다.
“디스토션 필드 출력을 80%까지 상승시켜라. 그리고 인베이더를 요격할 준비를!”
명령에 따라 필드의 출력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대기권 진입만이 전부라면 출력을 이렇게까지 높일 이유가 없었지만, 인베이더의 공격은 달랐다.
특히 행성에너지에 기반을 둔 하이브의 공격이라면 어지간한 방어로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지상으로부터 섬광이 뻗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초고출력의 빔 공격이었다.
[하이브의 공격으로 짐작되는 고출력 에너지 포착! 빔 포의 사격입니다.]
[디스토션 필드 피격 예상 지점에 출력 집중! 방어에 들어갑니다!]
쿠오오오!
무시무시한 빛이 아우기스의 반투명한 장벽을 강타했다. 그것은 마치 태양면의 폭발을 연상케 할 만큼 강렬하기 그지없었다.
그렇지만 디스토션 필드의 굴절방어벽은 그 공격을 굳건히 버티며 흘려내었다.
[필드 출력 76%로 감소. 하지만 현재 출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빔 공격이라. 아직 하이브 침식도가 우려할 정도는 아닌가 보군.”
하이브의 대공 공격은 침식도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해간다. 지금의 빔 공격도 상당한 대출력을 자랑했지만, 일정 수준 이상 침식된 하이브는 준대형 전함의 최대 출력 주포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심지어 빔 공격이 아니라, 더욱 더 강력하고 막아내기 까다로운 초밀도 중력파 공격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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