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04화 (305/448)

13권-04화

* * *

“그래, 몸조심 하고.”

“꼭 무사히 돌아와라.”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을 배웅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에 김진수는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짐을 느꼈다.

“밥은 꼭 챙겨먹고, 너무 위험하면 몸부터 사려. 남들보다 앞서 나갔다간 오히려 너만 다쳐.”

“그만 합시다. 이미 몇 번이나 말했잖소. 이 녀석도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요.”

김진수의 아버지는 아들을 차마 보내지 못하는 아내를 만류했다. 어차피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아들을 주저하게 만들 순 없었다.

“그만 가 봐라.”

“···예. 무사히 다녀올게요.”

김진수가 오버러가 된다고 했을 때 그들은 많은 반대를 했었다.

인베이더라는 괴물과 싸우는 직종이라니!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자식이 하게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의 집을 방문한 마틴의 설득으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되면 이 지구가 과연 안전할 것 같습니까? 최악의 경우 지구 전체가 전장이 될 겁니다. 그때가선 차라리 전함 안이 더 안전할지도 모르지요.”

인베이더가 지구를 침략할 목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면 안전한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놈들의 목적은 일반적인 정복전쟁이 아니라, 바로 인류의 멸망 그 자체일 테니까.

오히려 인베이더에게 저항할 힘조차 없는 일반인들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물론 침략이 시작될 경우 일반인들을 안전하게 대피할 방책도 마련되고 있긴 하지만, 인베이더의 침공 앞에서는 결코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진수 군은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로 성장만 한다면 오버러들 중에서도 상위 5% 안에 충분히 들 만한 재능이지요. 그런 재능을 이대로 썩히시렵니까?”

마틴의 입에서 그런 말까지 나오게 되자, 결국 김진수의 두 부모도 허락을 하고 말았다. 자신들의 고집으로 자식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허락은 했어도 여전히 자식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특히 마음 약한 어머니는 자꾸만 눈물을 보이면서 김진수의 발걸음을 떨어지지 않게 했다.

어찌어찌 집을 나선 김진수는 근처의 초인관리국 지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버러 후보생들의 소집 시간은 낮 12시. 지금부터 느긋하게 가도 시간은 넉넉했다.

“뭐라도 좀 마실까?”

집을 나설 때 부모님의 안타까워하는 모습 때문에 미처 물을 마실 겨를조차 없었던 탓인지 이상할 정도로 목이 탔다.

그는 누군가를 작게 불렀다.

“안젤라.”

[네, 마스터.]

그 순간, 아무 것도 없던 허공에서 누군가가 스르륵 나타났다.

하이레그 형태의 전투복을 입고 있는 여성 캐릭터였다. 애니메이션에 나온 유명 캐릭터들 중 하나였는데, 모듈밴더의 유질량 홀로그램을 통해 지금 이 자리에 구현된 것이다.

“마트에 가서, 음료수 좀 사다 줘. 내가 주로 마시는 거 잘 알지?”

[예.]

안젤라라 불린 김진수의 아바타(인공지능 비서)는 지면으로부터 십여 센티 정도 붕 떠오르더니 즉시 편의점을 향해 날아갔다.

요즘은 이런 캐릭터들이 유행이었다. 모듈밴더의 아바타를 실제 사람이나 동물을 대상으로 삼는 게 아니라, 서브컬쳐에 등장하는 캐릭터로 구현하는 것이다.

물론 이럴 경우 해당 저작권사에 일정 금액의 사용료를 지불해야 했지만, 어린 아이들 용돈만으로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저렴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애용하고 있었다.

[마스터, 여기 있어요.]

“그래, 고마워.”

김진수는 안젤라가 사온 음료수를 받아들었다.

아바타는 어느 정도 물리력을 갖고 있는 유질량 홀로그램으로 구현되기 때문에 음료수 정도의 가벼운 물건 정도는 들고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주인의 허락이 있으면 이렇게 알아서 물건을 구매하고 결제해주는 것도 가능했다.

그는 안젤라가 사온 음료수를 마시면서 거리를 바라보았다. 거리는 예전과 달리 너무도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내가 봐도 딴 세상에 온 기분이라니까.”

요 몇 달 사이 지구는 급속도로 발전을 거듭해왔다. 연합의 기술이 유입되면서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김진수처럼 서브컬처 캐릭터나 애완동물 등을 구현해 옆에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에는 로봇들이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고 청소를 하고 있었으며, 가게의 간판들도 죄다 홀로그램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횡단보도와 신호등, 그리고 거리의 표지판들도 전부 홀로그램이었다. 신호등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횡단보도 주변에 떠오른 선명한 홀로그램이 사람들에게 통행여부를 알려주었고, 각종 돌발 상황이 벌어질 시 즉각 반응해서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려주었다.

물론 이렇게 죄다 홀로그램으로 대체 되면 감각에 의존하던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젠 그들도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었다. 모듈 밴더에는 인간의 뇌에 직접 간섭해서 외부의 시각 정보를 직접 주입시켜주는 기능도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실제 눈은 보이지 않더라도 모듈밴더가 제공해주는 시각 정보를 통해 세상을 또렷이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청각장애인들도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고, 손발이나 전신, 하반신 마비 등의 장애를 겪었던 사람들도 모듈밴더의 뇌와 신경간섭 기능으로 다시 오체의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다만 팔이나 다리가 없어진 사람들은 의수나 의족을 사용해야 했지만, 그 기술도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연합의 기술이 일부 사용된 의수와 의족은 기존의 신체와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진 탓에 전혀 불편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동력원도 배터리가 아닌, 원격에너지 전송 방식을 도입함으로서, 배터리가 바닥날까봐 멀리 다닐 수 없었던 장애인들도 이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불과 1년 전의 세상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변해버린 지금의 세상은 사람들이 상상으로만 떠올려보던 가장 이상적인 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롭고 이상적인 현실도 그리 오래가진 못할 것이다. 지금 김진수가 초인관리국 지부로 소집된 것도 바로 그와 연관이 있었다.

“그럼 가 볼까?”

다 마신 음료수 캔을 손으로 구기기고는 그 자리를 떠나려던 그때, 무언가가 옆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거리의 작은 쓰레기들은 줍고 수거하는 로봇 중 하나였다.

납작해진 캔을 김진수로부터 건네받은 로봇은 멀리 떨어진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었다. 그리곤 다른 쓰레기를 찾아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저런 로봇들 덕분에 이제 도심의 거리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깨끗해졌다. 여기저기 바쁘게 돌아다니는 녀석들은 작은 쓰레기 하나 용납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세상 좋아졌다니까.”

작게 혀를 내두른 김진수는 곧 초인관리국 지부에 당도했다. 그곳에는 그와 같은 오버러 후보생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각성한 이능력자들 중에서도 특별한 재능을 보유했다는 자들만 선별해 모은 것이 오버러 후보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진수는 그런 후보생들 중에서도 매우 각별했다.

“다들 모였군.”

정해진 시간이 되자, 초인관리국의 지부장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는 후보생들을 죽 훑어보더니 단단한 표정으로 외쳤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TA-01A를 타고 아메리카 본부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신조함인 프로메테우스를 타고 첫 실전을 치르게 될 것이다. 다들 각오는 되어 있나?”

“예!”

“그럼 탑승하도록 한다.”

지부장이 말한 TA-01A는 대기권에서 운용할 수 있는 고속운송함이었다. 과거의 항공기들이 운송할 수 없었던 막대한 무게와 질량을 실어 나를 수 있으며, 수만 명에 이르는 인원을 한꺼번에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이것 또한 연합이 제공해준 기술 일부를 도입해 개발된 기체 중 하나로서, 대량의 물자나 인력 이송에 주로 사용되고 있었다.

“크다···.”

초인관리국 지부 옥상 위에 떠 있는 고속운송함의 모습을 본 후보생들이 다들 놀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확실히 크기만큼은 압도적이었다. 어지간한 대형 운동장만한 크기의 쇳덩이가 공중에 정박해 있는 광경은 가히 놀라웠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크고 압도적이었던 로버단 급 전함 아우기스를 직접 탑승해보기까지 한 김진수에게는 그리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우우우웅!

그들이 모두 탑승하자, 공중에 뜬 채로 정박해 있던 고속운송함이 더 높은 상공으로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게 끝을 모르고 치솟던 고속운송함은 어느 순간부터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마치 한 줄기 혜성 같았다.

콰우우우우!

“미쳤네!”

“이런 거대한 질량이 극초음속기나 탄도미사일처럼 날아간다고?”

“그런데도 아무런 G도 안 느껴져.”

“정말로 지구의 기술력이 달라졌구나.

후보생들은 고속운송함의 성능에 감탄과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런 거대한 물체가 탄도 미사일처럼 날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아메리카 지역에 위치한 초인관리국 본부에 당도할 수 있었다.

고속운송함에서 막 내린 그들은 한 번 더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게 그 우주전함이란 말이지?”

“이건 더 엄청나네.”

그들 앞에 드러난 형상은 믿기지 않을 만큼 거대했다. 방금 타고 온 고속운송함의 규모를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이게 그 프로메테우스란 거지?”

“지구에서 건조된 첫 우주전함···.”

이미 프로메테우스의 진수식 모습은 전세계에 방송되었었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건 또 느낌이 달랐다.

진수식 영상에서는 이 압도적인 위용을 채 절반도 표현하지 못한 듯싶었다.

“앞으로 여러분이 타고 싸우게 될 전함이다. 그러니 잘 봐두는 게 좋을 거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후보생들의 고개가 옆으로 움직였다. 그곳에는 건장한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그리고 김진수에게는 너무도 낯익은 인물이기도 했다.

“일단 내 소개부터 하지. 나는 마틴. 앞으로 여러분들을 인솔할 사람이다.”

일부 후보생들은 이미 잘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를 처음 본 이들은 낯설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2개월 동안 후보생들은 여러 무리로 나뉘어 교육을 받았고, 그 중 일부 후보생들은 바로 마틴 밑에서 교육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이다.

“다들 미리 전해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우리가 가게 될 곳은 바로 피튼 성계다. 이곳도 현재 인베이더의 침공을 받고 있지. 우리는 그곳을 도우며 싸우게 될 거다.”

마틴의 그 말에 후보생들의 얼굴 위로 진한 긴장감이 떠올랐다. 그들로서는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처음 겪게 될 실전이었다. 이렇게 긴장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 마음에 각오를 단단히 해 두는 게 좋을 거다. 앞으로 여러분들은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게 될 것인데, 그 중에는 참혹하고 끔찍한 것들도 꽤 많을 테지. 하지만 인베이더와 싸우는 자들이라면 언젠가는 겪을 수 없는 하나의 통과점일 뿐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인베이더와 싸울 자격도 없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여러분들은 다들 잘 극복하길 바란다.”

그 말을 끝으로 마틴은 후보생들을 이끌고 프로메테우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지구를 떠나 저 먼 외계의 행성에서 인베이더와 싸우게 될 것이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