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03화 (304/448)

13권-03화

* * *

“···미쳤군.”

그것이 잠에서 막 깨어난 유태진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기가 막힐 일이야. 아서란 작자, 대체 어떻게 되먹은 인간인 거지? 먹고 자는 시간조차 없이 천년을 수련해? 그것도 아무런 재능도 없는 작자가?”

유태진이라도 그렇게까지 할 자신은 없었다. 아니 천년 동안 수련에 매진한다는 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아서처럼 재능이 밑바닥인 상태로 성과도 거의 지지부진한 수련을 천 년 씩이나 이어간다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수련이란 대부분 힘들고 고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얻는 성취감과 만족감이 있기에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조차 없이 수행을 이어나간다는 건 그저 고행일 따름이었다.

심지어 먹고 자는 시간조차 없이 수련하고 공부한 걸 생각하면, 이건 거의 2-3천년과 맞먹는 밀도의 수련양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미쳤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제노디안이란 작자가 다방면에서 만능이라고 알려졌는지 이제야 알겠군.”

무려 천년이란 세월동안 수많은 학문과 영능들을 닥치는 대로 파고들어간 자였다. 그러니 만능이라 불릴 만큼 다방면에서 높은 능력을 보인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기억을 왜 자꾸 보여주는 거지?”

그가 아서의 기억을 보게 된 것은 엑스칼리버를 얻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오늘 본 꿈에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아서가 멀린에게 배운 지식과 영능들이 익숙해서였다.

‘그래, 일정 부분 일치하고 있어.’

아르탈 행성 연합에 소환된 이후로, 유태진의 머릿속엔 이따금 배운 적도 없는 새로운 지식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법일 경우도 있었고, 과학 지식일 때도 있었으며, 혹은 정령술이나 갖가지 여러 학문들일 때도 있었다.

헌데 그 지식들이 지금 꿈속에서 아서가 배우는 지식들과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쪽이 불완전하다고 해야 하나?’

유태진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지식들은 그 폭은 꽤나 넓었어도 이곳저곳 누락된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지식들이 실질적으로 그의 경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고.

하지만 아서가 배운 것은 달랐다. 누락된 부분 하나 없는, 완전한 지식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 란슬롯이 나보고 적합자라고 했었지.”

아마도 그 말이 이를 두고 한 것일 가능성이 컸다. 아르탈 행성 연합에 소환될 당시부터 자신은 이미 엑스칼리버에게 선택 받았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둘의 연관성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전력도 한층 높아졌군.’

예전에도 마법이나 정령술 등 다양한 영능들을 다룰 수 있었던 유태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아서의 꿈을 통해 얻은 지식들이 불완전한 부분들을 메워주면서, 보다 높은 경지의 영능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마스터 수준이 한계였다. 그가 꿈속에서 본 아서가 도달한 경지가 바로 마스터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무공 수준에 비한다면 월등히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따름이었다.

“게다가 이게 끝이라 볼 수도 없고.”

그가 꾼 아서의 꿈만 해도 이것으로 두 번째가 된다. 또 한 번 꾸지 말란 법도 없었다.

연합에서 지금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는 제노디안의 명성대로라면, 그는 최소한으로 잡는다 해도 그랜드 급이다. 그가 가진 지식과 깨달음이 고작 마스터에서 그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엑스칼리버는 이런 기억을 왜 꿈으로 보여주는지 모르겠군. 자신의 주인이 그처럼 만능이길 바라나?”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사람처럼 입으로 직접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게 아닌 만큼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었다.

그는 이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안 그래도 오늘은 중요한 스케줄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 * *

미국 LA에 세워진 지구연방군사기지.

오늘 이곳에서 진수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다.

내륙 한복판에서 무슨 진수식이냐고 하겠지만, 오늘 진수식을 치를 대상은 바다에서 운행될 군함이 아니었다. 바로 우주를 누비며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탄생된 우주전함이 바로 진수식의 주인공이었다.

진수식이 시작되기 전 유태진은 듀렌 박사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완성된 전함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겨우 완성되었군요.”

“그러게 말일세. 여기까지 만드느라 참으로 고생이 많았지.”

그동안 해왔던 고생이 떠올랐는지, 듀렌 박사가 감회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함을 제조하는 지식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지구의 기술 기반에서 제조하려니 고생이 여간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끝내 성공했고, 이렇게 첫 프로토 타입이라 할 수 있는 전함이 진수식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인구 1억 이상이 사는 나라의 전력 소비량을 커버할 수 있는 초밀도 핵융합 제네레이터에, 각종 방어기능과 화기에 영력을 불어넣어줄 영자 제네레이터.

그리고 플라즈마 캐논과 전자장 배리어 등, 상상 속에서나 가능했던 무장들을 그대로 구현시켰다.

그때 누군가가 그들 옆에 나타났다. 바로 이번 프로토 타입 전함의 개발에 여러모로 보이지 않는 도움을 준 리스티였다.

그녀는 전함을 죽 훑어보고는 솔직한 감상을 내뱉었다.

“그럭저럭 나쁘진 않네요. 첫 작품 치고는 말이에요. 그래봐야 연합 기준에서는 구세대 유물 수준이지만, 그래도 로버단 급 중형 전함이라는 카테고리에 간신히 턱걸이로 넣을 순 있겠어요.”

“리스티 양. 평가가 너무 혹독한 거 아닌가?”

듀렌 박사가 어색한 얼굴로 조용히 항변했지만, 리스티의 평가는 가차 없었다.

“단순 스펙만 보면 나쁘지 않지요. 하지만 효율이 별로에요. 핵융합 출력 자체는 괜찮지만, 에너지 전환 과정 중에 일어나는 손실이 만만치 않아요. 그리고 전자장 배리어도 그래요. 본래 전자장 배리어 자체가 그다지 견고한 편도 아닌 데다, 공격받는 지점에 방어필드를 집중시키는 핀 포인트 배리어 기능이 없으면 종잇장이나 마찬가지죠. 솔직히 말해 이건 움직이는 관, 그 자체라고요.”

“······.”

신랄하기 그지없는 평가에 듀렌 박사의 얼굴은 그야말로 핼쑥해졌다. 나름대로 전함을 완성했다고 자신감을 갖고 나왔는데, 졸지에 이런 혹평을 받게 되었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의 입에서 비판의 말이 나올 지도 모른다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리스티의 공방에서 일하면서 배운 기간이 작지 않았던 만큼, 그녀의 성격에 대해서도 나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동안 함께 해온 정이 있을 텐데도 이렇게 가차 없이 비평하는 걸 보면, 리스티는 마도공학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선 무척이나 냉정해짐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평가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뭐, 첫 시제품 치고는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양산에 들어가기 전에 제가 지적한 부분들은 꼭 수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전함 한 척에는 막대한 비용과 함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 오가니까요.”

“···고맙네. 리스티 양. 내 반드시 책임지고 보완해서 내놓도록 하겠네.”

그제야 간신히 안색을 되찾은 듀렌 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을 내놓았다.

‘정말 가차 없는 녀석이야. 그동안 함께 해온 정이 있을 텐데도, 저런 신랄한 비평이라니. 비평이야 할 수 있지만 적당히 돌려서 말을 했어야지. 하여튼 마도공학 쪽만 관련되면 냉정해진다니까.’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태진은 내심 혀를 차면서 단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진수식이 시작되었다. 연방의 수상인 메켈린이 단상에 올라 수많은 카메라들을 앞둔 채 연설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이것으로 우주 진출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이제는 개척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저 광활한 우주로 나아가 수많은 종족들과 협력하여 우주의 평화와 안녕에 이바지할 것입니다. 허나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메킬린 수상의 장황하기까지 한 연설과 함께 진수식 장면은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연방의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주전함이라니!]

[드디어 SF시대의 도래인가?]

[이젠 뭐 신기하지도 않네.]

[하긴 외계인 침략도 예고된 마당에 우주 전함은 기본이지.]

[우주함대를 보고 싶다! 연방은 어서 양산해라!]

[근데 저 전함 프라모델은 언제 나온데? 소장하고 싶은데.]

연설이 끝나자마자 드디어 우주전함의 출항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에서 완성된 우주전함의 첫 우주항행이라 할 수 있었다.

고오오오!

도크에 고정되어 있던 전함의 고정 장치들이 해제되더니, 함체가 서서히 비상하기 시작했다. 전장만 해도 무려 574m나 되는 거대한 함체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광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사람들은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저저···!”

“세상에! 정말로 날았어!”

연방의 시민들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인피니티 킹덤의 로버단 급 전함인 아우기스가 지구상에서 몇 번 운용되긴 했었지만, 비가시 모드를 활성화 시킨 탓에 그 실체를 본 사람은 말 그대로 극소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깨닫게 되었다. 정말로 우주시대가 도래했음을. 이젠 지구라는 좁은 요람을 벗어나, 저 머나먼 우주로 나가야할 때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서서히 부상해나가던 전함은 어느 순간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가속하기 시작했다. 전자장 배리어를 전개한 상태로 지구의 중력을 떨치고 나아가더니, 어느새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 공간에 다다라 있었다.

대기권 이탈에 성공한 우주전함은 곧바로 근처의 소행성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저출력으로 주포 등을 사용하여 첫 도입된 빔 병기의 위력도 과시해주었다.

프로메테우스

그것이 지구에서 제작된 첫 우주전함의 이름이었다.

진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유태진은 작게 중얼거렸다.

“전함도 만들어졌으니 슬슬 때가 됐군.”

“나갈 생각인 거죠?”

그 의미를 알아들은 리스티가 슬쩍 물음을 던졌다.

“그래, 예정대로 진행해야지. 실전 한번 겪어보지 않은 애송이들로 전쟁을 치를 순 없으니 말이야.”

지구의 영능력자들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대부분 실전 한번 치러보지 못한 애송이들인 만큼, 실제 인베이더와 싸웠다간 제대로 대응조차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살해당할 게 분명했다.

[황혼과 새벽]에서 전투 경험이 있다곤 하지만, 그건 죽어도 언제든 되살아날 수 있는 가상현실일 뿐, 현실이 아니었다. 목숨이 하나 뿐인 현실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까 준비해 둬. 곧바로 나갈 생각이니까.”

이미 지난 몇 달 동안 유태진은 지구의 영능력자들 중 김진수처럼 재능 있는 자들을 선별해 따로 훈련시켜왔다. 그 결과 성과는 나쁘지 않아서, 그 대부분이 80레벨을 넘어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성장도 이제 한계에 도달한 상황. 이제부터 그 이상 높은 경지를 바라보려면 배운 것들을 전부 쏟아낼 수 있는 실전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그에 걸맞는 전장을 제공해줄 생각이었다.

‘목숨을 걸지 않고 강해질 순 없는 법이지.’

물론 위험부담은 크겠지만, 그들에겐 그만큼 성장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유태진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는 한시가 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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