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302화 (303/448)

13권-02화

수련은 처음부터 가시밭이었다. 나름 몸으로 움직여서 체득해야 하는 것은 그런대로 할만 했지만, 머리로 이해하고 깨달아야 하는 것들은 시작부터가 난관이었던 것이다.

“휴··· 어쩔 수 없지. 그냥 꾸준히 해 나가는 수밖에.”

그는 일과를 정해서 자신이 배운 것들을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다. 가상현실 속에서 그를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앞으로 공부해 나가야 할 지식만큼은 주입식으로 전부 배운 만큼 스스로 해나가는 데엔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단지 이것을 이해해서 자신의 것으로 제대로 소화 할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혼자서 학습을 해나가려 하니 모든 게 막막하기만 했다.

멀린이 주입식으로 때려 박은 지식들 중, 앞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을 곱씹고 직접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그 결과는 변변치 못했다.

“차라리 검술처럼 휘두르기만 해도 될 것 같으면 나을 텐데.”

검술에 재능이 없다곤 했지만, 그래도 이건 몸으로 움직이는 수련인 만큼 뭔가를 시도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식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분야들은 사정이 전혀 달랐다.

일단 이해를 하고 넘어가지 못하면 뭔가를 해볼 수조차 없었다. 그래도 억지로나마 수차례 시도를 해 봤지만 결국 쓴물만 삼키고 말았다.

그때 아서의 머릿속으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설마 내 기초가 부족해서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닐까?’

처음에는 그냥 의심에 그쳤을 뿐이지만, 한번 떠오른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결국 그는 이미 지나왔던 기초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결국 한 해가 지나고, 두 번째 해가 지났으며, 어느덧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수련하기 전과 비교해서 나아진 구석은 눈곱만치도 안보였다.

‘아니, 나아진 점이 아주 없진 않나?’

덕분에 기초 부분에서만큼은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해졌다. 아마 기초를 여기까지 갈고닦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기초만 열심히 갈고 닦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기초는 어디까지나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바탕을 마련하는 과정이다.

헌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거기에 머물기만 한다면, 그저 제자리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서는 그제야 깨달았다.

“난 정말 멍청한 짓을 했구나.”

기초는 어디까지나 기초일 뿐이다. 필요한 만큼 습득했으면 보다 높은 단계로 나아갔어야 했거늘, 자신은 기초가 충분한데도 거기에 계속 머무르면서 현실을 도피해 왔던 것이다.

“그래,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 이대로 계속 멈춰 있을 수만은 없어.”

아서는 이를 악물고 말았다. 애당초 이 수련을 시작한 목적이 무엇이던가? 장차 왕이 되어 멸망의 운명을 바꾸기 위함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이런 안일한 방법으로는 안 된다. 당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악착같이 달려들어서 앞으로 나아갈 자그마한 단서라도 손에 쥐어야 했다.

그때부터 아서는 각오를 다지며 더욱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계속 파고들었으며, 그것을 곧 행동으로 옮겼다.

하지만 언제나 실패의 연속이었다. 제대로 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 시도는 각종 사고로 이어졌다.

특히 그가 배운 것들 중 상당수는 영능에 기반을 둔 학문들. 제대로 된 제어나 구현에 실패할 경우 그 반동은 고스란히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들이 많았다.

특히 마법과 같은 경우 술식에 대한 이해가 잘못되었거나, 제어에 흐트러짐이 생기면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치달을 때가 종종 있었다.

바로 지금이 그러했다.

콰아아앙!

“크으!”

성대한 폭발과 함께 아서의 몸이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 죽지 않은 게 용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고통도 잠시 뿐, 그의 얼굴은 다른 이유로 일그러졌다.

“이번에도 또 실패인가?”

그는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재능에 낙담하고 말았다. 이미 실패한 것만 하더라도 수십만 번이었다.

그런데도 작은 실마리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어느 정도 수재 소릴 듣는 사람들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넘는 고비를, 목숨을 담보로 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이해하고 습득할 수 있다니.

그래도 이번만큼은 다행이었다. 실패하긴 했지만, 어째서 실패하게 됐는지 그 이유는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왜 실패했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끝난 경우도 셀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가지 성과를 얻긴 했어도 그의 일그러진 얼굴은 그대로였다.

“정말이지 이 고통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질 않는구나.”

가상현실에서는 제아무리 큰 부상을 입더라도 죽는 일은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죽더라도 곧 부활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그 과정 중에 느끼는 고통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더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죽거나 정신을 잃기라도 하면 고통을 더 느끼지도 못하지만, 여기서는 절대 그렇지 않기 때문이었다.

죽거나 극심한 부상을 입어도 의식만큼은 또렷했다. 그 말은 그 과정 중에 느끼는 부상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아서의 정신력을 갉아먹었다. 그리고 거듭된 실패와, 가상현실 속에서 겪는 인간의 수명을 넘어선 세월의 흐름도 그를 마모시켜나갔다.

그래도 진전은 있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은 어떻게든 그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줬으니까.

하지만 그에 비례해 아서의 안색은 초췌해져갔다. 점점 말수가 적어지고, 예전의 활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것을 알아챈 멀린이 가상현실에서 돌아온 아서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서, 이쯤에서 그만두겠어?”

“무슨 소립니까, 멀린.”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처럼 보여서 그래. 하긴 성과는 별로 없는데, 감수해야 할 고통과 시련이 크다면 힘들 수밖에 없지.”

“······.”

아서는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예전이라면 성과가 있든 없든 우직하게 수련에 집중했을 테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가상현실 내에서는 이미 백년 이상의 세월을 보냈다. 이미 인간의 한계 수명에 달하는 시간을 수련으로만 채웠으니, 무리가 오는 것도 당연했다.

아니, 적어도 만족할만한 성과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정신이 마모되진 않았을 것이다. 거듭된 실패에, 지지부진한 성장이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멀린··· 재능이 없다는 게 이렇게나 무력한 거였던가요?”

“아서.”

“노력만 하면 될 거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도 있더군요. 남들이 몇 년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걸 전 100년이 지나고 나서야 얻었죠. 이런 건 너무 불합리합니다.”

그의 좌절과 한탄을 듣고 난 멀린은 잠시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재능이란 게 무엇일 것 같아?”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는 자질이겠죠.”

“그럼 그 자질은 어떻게 생겨난다고 생각해? 우리 왕은 그걸 꽤 불공평하다고 여기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냥 우연히 타고난 거겠죠.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없는 걸 테고요.”

아서가 푸념처럼 그렇게 내뱉었지만, 멀린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아. 특히 타고나는 재능만큼 공평한 것도 없지.”

“뭐라고요?”

“아서, 당신이 알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생명은 윤회를 거듭하고 있어. 생을 살아가고 죽음을 맞이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야. 또 다른 생명체로 탄생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게 바로 이 우주의 섭리거든.”

“···윤회전생 말이군요. 언젠가 들어는 본 것 같군요. 그냥 사람들이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였습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멀린이 하는 말이었다. 심지어 미래까지 내다보는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허황된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그래, 사실이지. 그리고 사람들은 그 윤회전생을 통해 업을 쌓아나가. 그게 바로 당신이 한탄했던 재능의 정체야.

전생에서 검을 수련해서 이류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그것이 후생에서는 재능이란 형태로 나타나지. 이류의 경지까지는 쉽고 무난하게 도달할 수 있는 재능으로 말이야. 그게 당신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했던 재능의 실체야.”

“그럼 사람들이 타고난 재능들이 다 전생에서 쌓은 업 때문이란 거군요.”

“그래, 그리고 재능은 전생을 거듭하면서 계속 누적되지. 지금 삶에서 천재라 불리는 자들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그런 재능을 손에 넣은 것이야.”

그제야 아서의 표정도 달라졌다. 그냥 운이 좋아 손에 넣은 재능이 아니라, 그것이 전생의 삶을 통해 노력해서 얻은 결과라면 억울해하거나 부러워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 전 왜 이런 거죠? 제 전생들이 보잘 것 없었던 거였나요?”

“그건 아서, 당신이 거의 순백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야. 그만큼 전생을 거친 횟수가 적다는 말이지. 영혼들도 출발점이 다 같진 않거든. 오래된 영혼이 있는가 하면, 탄생한지 얼마 안 된 영혼들도 있지. 아서, 당신이 그런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

“그랬군요. 그래서 제 재능이 이 정도밖에 안 됐던 거군요.”

이제야 모든 의문이 명확하게 해결되었다. 왜 재능이란 게 이렇게 제각기 차별화 된 건지도 알게 된 이상 더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

“혹시 낙담이라도 한 거야?”

조심스럽게 묻는 멀린의 그 말에, 아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후련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오히려 개운한 기분이 됐습니다. 재능이란 게 그냥 운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면, 억울해할 필요도 없다는 걸 깨달았으니까요.”

그랬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해서 억울해할 것도, 부러워 할 것도 없었다. 재능 있는 자들은 그만큼 전생에서 노력했던 대가를 받았을 뿐이니까.

아서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전에 없던 의욕을 드러내었다.

“멀린, 덕분에 이제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어요. 전생의 업이 부족해서 재능이 없는 거라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없는 재능을 만들어갈 겁니다.”

“그래, 그래야 나의 왕 답지. 아서, 응원할게.”

그때부터 아서는 더욱 악착같이 수련에 매진했다. 예전에는 타인의 재능에 비해 뒤떨어지는 자신의 자질에 대해 박탈감이 생겨 의욕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이젠 그럴 이유가 없었다.

타고난 재능이란 결국 오랜 수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 그러니 세상을 원망할 것도, 타인을 질시하거나 부러워할 이유도 없었다.

물론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그 과정 중에 무수한 실패가 뒤따랐고, 고통과 좌절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런 실패와 노력이 결국 후세에 재능이란 형태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아서는 가상현실 속에서 무려 천년에 달하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천년의 시간을 수련만으로 보낸다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는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텨낸 것이다.

심지어 가상현실을 구현시켜준 당사자인 멀린조차 이에 혀를 내둘렀다.

“내가 선택한 왕이지만, 정말이지 믿어지질 않아. 인간이 어떻게 천년을 수련만 하며 버틸 수 있는 거지?”

물론 그가 정신계 마법이나 조언을 통해 어느 정도 정신적인 케어를 해줬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인간의 정신력이라 하기 어려웠다.

아마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채 백 년도 못가서 정신이 붕괴해 죽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서는 불굴의 정신으로 이를 버텨냈고, 납득할만한 결과를 손에 쥐게 되었다.

천년의 수련 끝에 그가 도달한 경지는 인간의 한계점이라는 마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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