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25화
이미 이에 필요한 기술들은 전부 제공해 주었다. 연합의 최신 기술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구 기준에서 볼 때는 당장 소화하는 것도 벅찬 오버 테크놀러지들이었다.
현재 전 세계에서 모여든 각 방면의 석학들은 유태진이 공개한 기술들을 연구하고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고작 한두 해 만으로 어떻게 될 문제가 아니었다. 기존의 것보다 한층 더 발전된 차세대 병기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도 거의 십수 년 이상 소요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건 한두 세대 앞선 것도 아니고 무려 수백 년 이상 앞선 기술들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서 본격적인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선 적어도 수십 년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이마저도 아르탈 행성 연합에서 세세한 부분까지 그들을 지도해줬을 때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유태진은 가상현실을 활용했다. 현실의 1시간을 가상현실에서는 무려 10시간으로 가속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그들을 학습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었다.
거대한 동력원을 선보이면서 듀렌 박사가 유태진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야 그럭저럭 틀을 갖췄네. 중형 함에 탑재될 초기형 핵융합로지.”
“흐음··· 나쁘진 않군요. 첫 시제품 치고는 말입니다.”
지구의 현재 과학력으로는 실용화가 불가능한 핵융합로였지만, 여기에 연합의 기술이 더해지면서 이렇게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평범하게 완성한 것도 아니고, 전함에 탑재할 수 있는 최소 기준치에 준하는 출력까지 달성하게 된 것이다.
“자네도 알겠지만 자장공명식 초밀도 핵융합 방식을 도입했지. 이거 하나면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의 전기 소모량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야.”
실로 어마어마한 발전량이었다. 작은 건물 한 채 크기의 핵융합로 하나로 한국 전역의 전기 소모량을 감당할 수 있다니.
그렇지만 유태진은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부족합니다. 중급 전함을 기동시킬 수는 있겠지만, 각종 무장이나 배리어 등에 소요될 출력까지 감안하면 에너지 부족에 허덕이게 될 게 눈에 보이는군요.”
말이 중형 전함이지, 실제 그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전장만 하더라도 무려 500미터 이상인데다, 고출력 빔포와 주포, 그리고 함체를 보호할 배리어까지 감안하면 상상 이상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었다.
유태진의 지식과 안목으로 볼 때, 지금 개발된 핵융합로 정도로는 간신히 함을 띄우는 게 고작일 것이다.
그리고 듀렌 박사도 그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자네 말처럼 우리가 목표한 수준보다는 출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게 지구에서 제작된 첫 번째 프로토 타입이란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야.”
“그건 압니다만··· 적어도 이보다 두 단계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느 정도 싸워 볼 수 있을 겁니다.”
“흠, 두 단계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걸세. 방금 말했다시피 이건 시제품이거든.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개념을 이해했으니, 이보다 나은 결과물을 내놓는 데까지는 더 이상 시행착오도 없을 게야.”
“알겠습니다. 그럼 박사님만 믿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지구의 석학들과 과학자들을 가르치고 주도한 것은 지구 출신이었던 듀렌 박사였다. 그는 리스티와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지구의 연구진들을 지도하기엔 충분할 정도의 지식을 쌓았다.
그가 이렇게까지 장담하는 걸 보면 일단은 믿고 맡겨 봐도 좋을 것이다.
* * *
듀렌 박사의 장담은 곧 현실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지구의 연구진은 얼마 지나자 다음 단계의 핵융합로를 완성해냈다. 그동안 배운 지식들이 슬슬 그들의 머리에도 제대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에 반해 전함의 다른 부품이나 무장 등의 개발은 순조로웠다. 물론 핵융합로처럼 단번에 완성형 프로토 타입이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차근차근 개발 완성도를 높여나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예정했던 기한 내에 목적한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보였다.
반면 유태진이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앞으로 영능력자들이 사용하게 될 무구들의 개발이었다. 이건 기존의 과학 기술과는 전혀 다른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개발진들에 비해 진척도 가장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서, 진척 속도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력이라는 생소한 개념 때문에 어려워했던 과학자들이지만, 황혼과 새벽을 체험하고 이젠 현실에서도 각성을 이루면서 영력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초기형 배틀 슈트와 소울 웨폰이 완성되었다. 물론 첫 시제품인 만큼 유태진의 눈에는 조잡하기 그지없었지만, 일단 완성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쩌엉!
처음으로 완성된 소울 웨폰을 테스트 용 금속제 기둥에 휘둘러본 유태진은 미묘한 얼굴이 되었다.
일반적인 검보다는 낫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다고 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소울 웨폰의 기본적인 기능인 영력의 증폭은 물론, 예기를 강화해주는 기능도 변변찮았다. 지금 테스트 용 금속 기둥을 완전히 베어내지 못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영력의 증폭 기능은 그렇다 쳐. 이건 연구하다 보면 차츰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니까. 하지만 기본적인 게 다 틀려먹었군.”
“예?”
“검의 균형조차 제대로 맞지 않아. 그리고 사용자를 전혀 배려하지도 않았어. 쥐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불편한데, 이게 전장에서 쓰이면 미묘한 이질감 때문에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 영능력자의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어.”
유태진의 냉랭한 평가에 연구진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곧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배틀 슈트도 그래. 연합의 최신형 배틀 슈트처럼 어지간한 핵도 막을 수 있는 수준까진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적어도 지구상의 일반화기 정도는 막을 수 있는 수준은 되어야 해. 이래선 저출력 레일건만 날아와도 뻥뻥 뚫리겠군. 이거 믿고 싸웠다간 오히려 더 많은 영능력자가 죽어나가게 생겼어.”
심지어 그들이 개발한 배틀 슈트는 아직 플로트 윙이나, 여러 가지 보조 기능은 하나도 첨부되지 않은 말 그대로 액티브 배리어만 작동하는, 이름 그대로 순수한 방어구였다.
그런데도 성능이 이렇게나 미진하니 유태진으로서는 마뜩치 않았다.
“물론 여러분들의 노고가 크다는 건 나도 알고 있지. 특히 생소한 영능에 관한 분야를 이해한다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하지만 영능력자들은 여러분들이 만든 무구를 착용하고 전투에 나가야 해. 헌데 전력이 미치지 못해 죽거나 패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어도, 사용하는 무구에 문제가 있어서 죽게 된다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또 있을까?”
“······.”
“그러니 다들 분발하도록.”
연구진들은 풀죽은 기색으로 물러났다.
물론 그들이 노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개발속도가 좀 느리긴 했지만, 그건 너무 생소한 개념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사용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기와 방어구를 제작하면서도 정작 전투를 경험해본 적 없었으니 그런 실책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문제를 지적해 줬으니 나름대로 해결책을 내놓을 것이다. 그리고 차차 보완된다면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까지는 만들어내겠지.
유태진은 연구실에서 걸어 나오면서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5개월 전까지는 어떻게든 되겠군. 전함 생산이 시작되면 본격적인 전쟁 준비에 들어가야 해.’
지금의 진척 속도라면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였다.
물론 기술 습득과 개발이 마무리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 개발된 기술로 전함 등을 양산하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그 정도는 인피니티 킹덤과 함께 온 공업함만 동원해도 충분히 양산이 가능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지구인들이 자체적으로 전함 등을 생산할 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언제까지 연합이 일일이 손발 붙잡고 지구만 도와줄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이 슬슬 결실로 맺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지구의 문명 레벨도 진정한 우주 진출이 가능해지는 5레벨로 넘어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재판일이었지?”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유태진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그 자리에서 홀로그램 창을 열었다. 요즘 워낙 바빠서 자잘한 문제들은 신경 쓰지 못한 상태였다.
홀로그램 창 위로 재판정의 광경을 비추기 시작했다.
지구연방의 중앙법원재판소.
오늘 이곳에서 각성일 당시 벌어진 범죄자들과 테러범들을 재판하고 있었다. 그들의 범죄를 증명할 증인과 증거는 이미 모두 준비되었고, 남은 것은 판사의 판결이 내려지는 일 뿐이다.
당시 모함마드와 그 수하들은 대부분 죽거나 제압된 상태였고, 그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초인관리국을 통해 지구연방으로 전부 인계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재판정에 섰다.
[···무함마드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재판장이 내린 판결에 무함마드가 악을 쓰며 소리질렀다.
“웃기지 마라! 우린 알라의 전사들이다! 네놈들 이교도들이 내뱉는 판결 따윌 인정할 것 같으냐? 이건 네놈들이 내린 사형이 아니다. 알라께서 내린 시련이고 순교지. 그리고 이 순교의 대가는 조만간 네놈들에게 큰 재앙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
그가 발악적으로 외치자, 다른 테러범들도 잇따라 악을 썼다.
“알라의 저주가 네놈들에게 있으리!”
“오오! 알라시여! 당신을 부정하는 저 흉악한 이교도들에게 응징을!”
마틴에게 팔다리가 날아간 후에도 무함마드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알라를 신봉하는 광신자였고, 그 태도는 재판정 앞에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사형이 선고된 것이다. 예전이었다면 인권 문제를 언급해 가면서 감형 없는 무기징역으로 살려뒀을지도 모르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든 테러범인데다, 심지어 테러에 이능까지 사용하였다.
앞으로 발생할 이능범죄에 대한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엄격하고 단호히 처벌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우리가 도맡아 주는 것도 앞으로 2개월뿐이야. 그 이후부터는 지구인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해.”
초인관리국이 출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이능이 사용된 강력범죄와 테러들을 유태진과 인피니티 킹덤이 도맡아 처리해주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3개월이란 시한을 두었다. 그 이후에는 체계가 미흡하든 어쨌든, 그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며 보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헌데 그때, 리스티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유태진이 무슨 일인가 싶어 홀로그램 창을 열자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아저씨, 관리국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무슨 일인데?”
[지난번에 지구의 영능력자들을 데리고 싸울만한 전장을 찾았잖아요. 상부에 문의해보니까 그 중 몇 군데를 우리에게 배정해 줬어요.]
“아, 그래?”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던 소식이었다. 적어도 며칠 뒤에나 연락이 올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보다 답변이 빨리 돌아왔다.
[그런데 이걸 상부에 뭐라고 말해두면 될까요? 견학? 아니면 실습? 일단 배정은 해줬지만 행정적인 절차는 따로 밟아야 하거든요.]
어떤 명목으로 행정 절차를 진행하냐고 묻는 그녀에게, 유태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떼었다.
“그냥 현장체험학습 정도로 해두면 되겠군. 지구의 병아리들에게 실전이 어떤 건지 몸소 체험시켜줄 생각이었으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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