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99화 (300/448)

12권-24화

“먼저 사과부터 하고 싶구나.”

사과라는 말에 김진수가 마시던 걸 멈추고 무슨 소리냐는 듯 돌아보았다.

“사실 이번에 널 데려온 건 전투에 직접 참여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단지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견학시켜주고자 함이었지.”

“그랬군요.”

“그랬던 게 일이 생각보다 너무 커져버렸어. 너에게 못 볼 광경도 보게 해 버렸고.”

마틴의 말에 김진수는 저도 모르게 모함마드의 양팔과 양 다리가 탄화되어버렸던 광경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죽는 모습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그때의 광경이 더 인상 깊게 남았던 것이다.

잠시 표정을 굳혔던 김진수는 곧 쓰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죠. 제 본의 아니게 휘말린 데다, 그런 광경까지 보게 되었으니까요.”

“음, 다시 한 번 사과하지.”

미안한 마음에 다시 사과의 말을 건넸지만, 김진수는 뜻밖의 말로 화답해왔다.

“하지만 원망하진 않아요.”

“어째서?”

“하디안에게 들었어요. 앞으로 지구에 인베이더란 괴물들이 침공하게 된다는 사실을요.”

“······.”

“물론 전에도 몰랐던 건 아니에요. 이미 전 세계에 공표된 사실이니까요. 다만 하디안에게 좀 더 자세히 듣게 된 거죠.”

김진수의 그 말에 마틴은 일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지 대충 짐작이 가서였다.

인베이더의 침공이 된 성계의 말로는 대부분 좋지 않았다. 상당수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어떻게든 이겨낸다 해도 그 피해는 말할 수 없이 컸다.

지구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멸망하거나, 아니면 전멸에 준하는 피해로 놈들을 격퇴하거나.

현재 지구의 전력을 생각한다면 사실 인베이더의 침공 속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전에는 그냥 남의 일이라 생각했었죠. 외계인의 침공이라고 해도 그다지 현실감도 없었고요. 게다가 지구에 우호적인 손길을 내밀어준 아르탈 행성 연합이란 곳까지 있으니 별 문제 없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지요. 게다가 예전에 없던 이능이란 힘도 생겼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네요.”

인베이더의 침공 사실이 알려진 뒤에도 지구인들에게 큰 혼란이 빚어지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이능이라는 새로운 힘의 각성과 연합이라는 외계 세력의 우호적인 태도, 그리고 그들이 제공해준 미래의 기술들.

이것들이 서로 시너지가 되면서 침략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대부분 희석되고 만 것이다. 덕분에 지금 현재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김진수도 그런 이들 중 하나였었다. 하지만 오늘 일을 겪고 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죠. 앞으로 지구가 어떻게 될까 하고요. 그 정도 위기라면 군인들뿐만 아니라, 몸 성한 사람이라면 다 나서서 싸워야 할 것 같더라고요.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이능을 두 개나 각성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오늘 본 오버러들의 능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황혼과 새벽에서도 경험은 했었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직접 보고 겪으니 그 차이가 새삼 실감이 났다.

헌데 이런 강력한 오버러들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괴물이라니! 그런 것들이 지구로 쳐들어온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현재의 지구의 전력으로 과연 감당이 가능하기나 할까?

마틴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그 말에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지. 지금 이대로라면 아마 노약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 나서서 싸워야 될지도···.”

“그럴 거라 생각은 했어요. 온 우주를 들쑤시고 다닌다는 괴물들이 지구에 몰려오는데 싸울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전부 다 동원되겠죠. 그런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앞으로 다가올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게 이제 겨우 고등학생이 된 김진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이 마틴을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해요. 미리 예방접종 맞았다고 여기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죠. 앞으로 계속 싸워야 할 거라면 좀 더 능숙해지는 게 좋겠죠.”

“···그래.”

이것은 일종의 체념일까, 아니면 녀석의 성격 자체가 본디 긍정적이어서 나온 반응일까?

마틴은 아마도 둘 다일 거라 생각했다.

‘그에 비해 나는 어땠지?’

솔직히 되돌아본 자신의 인생은 하잘 것 없었다. 궁핍했던 가정 때문에, 누구보다 앞서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언제나 남들 위에 서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난한 그가 출세할 수 있는 길은 사실 한정되어 있었다. 배운 것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딱히 뭘 시도할만한 밑천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두 주먹만 믿고 음지로 스며들었다. 양지에서 출세할 수 없다면 적어도 음지에서만큼은 뭔가 이뤄낼 자신이 있었다.

그 결과 나쁘지 않은 결과를 이뤄냈다. 나름대로 싸움질에도 자신이 있어서, 지역구 내에서는 리더 행세를 하며 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너무나도 철없던 시절이었다.

그런 자신과 비교하면 김진수는 너무나도 조숙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사령관을 만나 몇 번이나 깨지고, 또한 인베이더들과 목숨 걸고 싸우면서 간신히 갖게 된 마음가짐을 이 녀석은 벌써부터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너에겐 그만큼 지원이 내려올 거다. 이번 전투에 참여한 만큼 전투수당도 따로 지급될 거고.”

돈이 지급될 거란 마틴의 말에, 김진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수··· 수당이요?”

“목숨이 위험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전투를 치렀으니 받는 게 합당하지.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고.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다.”

“···그렇군요. 하긴 싸우는 것도 직업이니 돈을 받는 게 맞겠네요. 위험수당도 있을 테고요. 이거 부모님이 알면 까무러치시겠네.”

김진수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긴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녀석이 졸지에 전투요원이 되어야 할 판이니 심사가 복잡할 만도 했다.

게다가 아직 미성년자였다. 본격적으로 활동하려면 부모의 동의도 필요했다.

허나 그 과정이야 어쨌든 김진수는 결과적으로 오버러가 되어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그 문제는 우리 쪽에서 처리하도록 하지. 네 부모님도 사정을 아시면 그렇게까지 반대하시지만은 않을 테니까.”

“예.”

김진수가 전투요원이 되든 안 되든, 어차피 지구는 인베이더의 침략에 노출될 것이다. 싸우지 않고 숨는다 해서 마냥 안전한 게 아니었다. 오히려 인베이더의 침입을 허용할 경우 무방비 상태로 학살당할 수 있는 게 비전투능력자들인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김진수의 부모도 무작정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마틴은 김진수의 머리를 매만져주며 말했다.

“앞으로 많은 싸움을 해야 할 거다. 때론 두렵고 힘들기도 하겠지. 그러니 지금부터 각오는 해두는 게 좋을 거야.”

* * *

“흠, 생각보다 인재들이 많군.”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서와 자료를 훑어본 유태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구인들의 각성과 함께 이런저런 사건들도 많이 터지긴 했지만, 덕분에 많은 인재들을 발굴해낼 수 있었다.

그런 사례들 중 하나가 바로 김진수였다. 은행강도 사건을 진압하러 출동한 마틴에 의해 발견된 그는 이능을 사용하는 강도들을 상대로 싸우던 중 두 번째 고유스킬을 각성했다.

실로 보기 드문 사례로서, 그만큼 뛰어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게다가 강도들을 상대로 보여준 배틀센스도 상당해서, 앞으로의 장래가 기대되었다.

“그런데 마틴과 아주 쏙 빼닮았군.”

생김새가 닮았다는 게 아니었다. 둘이 가진 고유스킬과 재능이 비슷하다는 뜻이었다.

물론 깊게 파고 들어가 보면 그 둘의 전투방식은 판이하게 달랐다.

경화 타입의 강체력을 보유한 마틴은 마치 중전차 같은 돌파력으로 적들의 진형을 파괴하는 전투방식을 선호했고, 중립 타입인 김진수는 빠르고 정교한 공격으로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형태였으니까.

물론 둘을 비교하기엔 까마득할 정도의 수준 차가 났지만, 재능 면만 본다면 비슷했다. 아마 김진수란 녀석도 좀 더 체계적인 가르침을 받은 뒤 몇 번 실전을 겪다 보면 빠르게 성장할 것이다.

“[황혼과 새벽]이 생각보다 효과가 좋네요. 이런 인재들도 다 나오고.”

“가상현실에서 미리 선행체험 할 수 있다는 게 그만큼 많은 도움이 된다는 거겠지. 거기서는 죽어도 상관없으니 더 험하게 구른다 해서 두려울 것도 없고.”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우리 연합에서도 이만한 성과가 나왔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황혼과 새벽의 근간이 된 [전투모의 시뮬레이션]은 연합 내에서 그리 큰 성과를 내진 못했었다. 물론 사전에 전투를 체험한다는 이점은 있었지만, 지구인들이 이를 통해 얻은 체험학습의 성과만큼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흥미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흥미?”

“지구 사람들은 이걸 게임처럼 받아들였잖아요. 재미도 있고 즐거우니 더 열성적으로 파고든 것 같아요.”

“그렇군.”

그 말을 듣고 보니 유태진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게임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이걸 게임이라 하지 않고 전투모의 시뮬레이션으로 공개했더라면 사람들에게 이렇게까지 관심과 흥미를 끌지 못했을 것이다.

“하긴··· 일리가 있어.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었지. 그게 이런 경우에까지 적용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야.”

“그리고 지구는 오랫동안 이능이 금제되어 왔어요. 그 때문에 영력의 반응에 더 민감해졌을 수도 있죠.”

“뭐 그럴 수도 있겠지.”

이유야 어쨌든 그들에게는 희소식이라 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지구인들의 성장세가 더 높다면, 그만큼 전력향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조롭게 성장할 때의 이야기다. 이대로 놔둔다면 정체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뛰어난 재능을 보인 녀석들도 대충 추려진 것 같으니, 이놈들을 굴릴 방도를 찾아봐야겠어. 지금까지처럼 게임만 붙잡는다고 성장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선 것 같으니 말이야.”

“그렇죠. 이 사람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실전이니까요.”

유태진의 말에 리스티도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인들이 황혼과 새벽을 통해 어느 정도 전투를 체험해봤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상 속의 체험이었다. 가상현실이 제아무리 실감난다 하더라도 현실과 완전히 같을 순 없었다.

“이 근처에 싸울만한 곳이 있나? 이 녀석들 수준에서 그럭저럭 싸울 수 있는 전장이었으면 좋겠는데···.”

“없진 않을 거예요. 수천 광년 내에 인베이더의 침공을 받기 시작한 행성 몇몇 곳을 저도 알고 있고요. 지구인들이 가볼만한 곳을 한번 추려 볼게요.”

“그래, 부탁한다.”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부터는 개발 현황을 살펴볼 때였다.

지구인들이 인베이더와 싸우기 위해선 두 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다. 바로 영능력자들에게 지급해줄 개인무구와 방어구, 그리고 우주전함의 개발이었다.

‘이런 최소조건조차 충족할 수 없다면, 지구는 멸망할 수밖에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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