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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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모함마드는 그야말로 넋 나간 표정이 되었다.
“미친, 그 많은 대원들을 다 해치웠다고? 그것도 1분 만에?”
얼마나 많은 투자 끝에 육성한 정예대원들이던가. 그들을 정예화 하기 위해 유명한 특수부대들이 받는 훈련을 도입해 단련시켰고, 이능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가상현실기기를 대량 구매해서 그들에게 제공해주기까지 했다.
그 덕분에 대원들은 이능을 전투에 제대로 활용할 줄 알았다. 남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막 각성한 상태긴 하지만, 그것을 전투적으로 활용하는 데에 있어선 가히 전문가 수준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정예대원들이 손도 써보지 못하고 순식간에 당해버렸다. 그들 500명만으로도 거의 사단 병력에 필적하는 전력이거늘, 개미 짓밟듯 밟아버린 것이다.
“괴물 같은 놈들! 역시 저것들은 지구연방이 끌어들인 외계인 놈들이었나?”
그렇지 않고선 정예대원들을 단숨에 학살한 저 압도적인 무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어.”
500명의 정예 대원들은 전멸했지만 아직 자신의 옆에는 500명의 정예대원들이 건재했다. 그리고 각종 화기로 무장한 일반 대원들의 수도 무려 1만 명에 이르렀다.
물론 이 전력을 총동원한다 하더라도 저 외계의 괴물들을 감당한다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 등 각 나라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 않던가.
그렇지만 그에겐 아직 인질들이 남아 있었다. 인질들만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오버러들이 그가 점령한 시청으로 들이닥쳤다. 모함마드는 일부러 담대한 표정으로 나섰다.
“이제들 오시는군.”
두려움을 내보이지 않고 수하들과 함께 당당하게 나서는 그 모습에 엘레니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야 그 뻔뻔한 얼굴을 보게 되네요, 모함마드 씨.”
“흥, 뻔뻔함이라니. 이건 엄연한 성전이다.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고토를 되찾기 위함인데, 이 정도 각오 없이 될 것 같나? 우리는 알라의 이름 아래 떳떳하다. 그 누구도 우릴 치죄하거니 비난할 수 없다!”
모함마드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오버러들이 들이닥치면서 풍전등화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비틀린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 점이 몹시 불쾌하고 혐오스러웠다. 그건 마틴도 마찬가지였는지, 평소보다 더 차갑게 내뱉었다.
“궤변이군. 추악한 테러 행위를 신앙으로 포장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 같나?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네놈들은 테러를 저지른 악질적인 범죄자일 뿐이야.”
“테러? 그건 네놈들 기준에서겠지. 알라께서 내려주신 우리의 영토와 나라를 무단으로 합병한 네놈들의 무도함에 비한다면 우리는 정의 그 자체라 해야 할 것이다.”
“끝까지 제멋대로 떠드는군.”
자신들의 정당함을 주장하는 태도에 마틴은 기가 막혔지만, 그래도 이 말만큼은 해야 했다.
“네놈들에겐 이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 자리에서 항복해서 재판을 받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곳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죽는 길이다. 어느 쪽을 택할래?”
솔직히 말해 마틴도 모함마드를 살려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됐던 이 사태는 지구 내에서 벌어진 테러다. 지구연방에서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하더라도 일의 주체는 결국 지구연방인 만큼 어지간하면 지구연방의 심판대에 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대의 태도는 강경했다.
“들을 가치도 없는 소리군. 항복이라고? 그럴 것 같았으면 아예 시작도 안했을 거다. 정예대원들을 쓸어버렸다고 기고만장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라고 그냥 멍청하게 당할 것 같나?”
“···이제 막 영능을 각성한 네놈의 애송이들을 믿고 있는 거라면 헛된 생각이라고 해 두지. 수준을 보니 좀 전과 다를 바 없어. 저것들을 치우고 네 목을 따기까지 몇 초면 될 것 같나?”
마틴은 그렇게 말하면서 모함마드 주변을 돌아보았다. 놈이 지금 거느린 병력이라고 해 봐야, 좀 전에 정리한 500명보다 딱히 나은 점도 없었다. 실력 면에 있어선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막 각성을 끝낸 애송이들이었다.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영능을 갈고 닦아온 오버러들에 비할 바는 아닌 것이다.
“딱 5초면 충분하지. 네 수하들을 치우고 널 박살내기에는.”
“······.”
모함마드도 아주 현실감각이 없었던 건 아닌지, 그 말에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포기한 얼굴도 아니었다.
“그래, 외계에서 기어들어온 네놈들 같은 괴물이라면 충분히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다.”
모함마드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가 그려졌다.
“우리가 네놈들이 개입할 경우를 상정하지 않았을 것 같나?”
오버러들의 개입을 고려했다면, 나름대로 책략을 세워뒀다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엘레나는 같잖다며 비웃음으로 되돌려주었다.
“아, 그러신가요? 그렇다면 우리 생각보다 더 멍청했던 모양이네요. 우리가 개입할 경우를 고려하고도 저질러 버렸다? 그건 뇌가 얼마나 우둔해야 가능한 판단인거죠?”
“더 권유할 필요도 없을 것 같군. 어지간하면 좋게 재판대에 올릴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왔으니 우리도 네놈들을 살려서 데려가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겼으니까.”
마틴도 더 이상 이야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처음의 항복 권유는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이었다. 그도 잔학무도한 테러범들을 살려서 데려가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나왔음에도 모함마드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다렸다는 자신이 숨겨온 패를 꺼내들었다.
“꽤나 자신만만하군. 우리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그 태도 말이야. 하지만 비웃는 것도 거기까지다. 네놈들이 허튼 짓을 하면 사로잡아둔 인질들부터 죽일 테다.”
“흥, 역시 궁지에 몰리니 바로 인질을 앞세우는군.”
인질을 죽이겠다는 협박에 마틴은 한 차례 코웃음을 친 뒤 조소하듯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나? 네놈이 다섯 도시에 모아두었던 인질들은 이미 우리 대원들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거.”
그건 즉, 모함마드가 시도한 이번 테러 자체가 전부 무의미한 짓이 되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인질이 구출되었다는 소리를 듣고도 모함마드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그럴 거라 예상은 했지. 네놈들에겐 인질 구출이 최우선이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린 모함마드가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지만 네놈들이라 해도 그 많던 인질들을 이동시킬 시간은 없었겠지. 인질을 감시하던 우리 대원들을 처리한 정도로 안전을 확보했다고 착각하고 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는군. 너희의 오만함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우리가 인질들을 모아둔 장소들은 하나같이 넓다는 공통점이 있지. 워낙 숫자가 많아서 수용인원이 넉넉한 넓은 장소를 선정하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폭탄을 매설하기 수월하다는 점이지.”
“폭탄? 그딴 게 통할 것 같나?”
기가 막힌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는 마틴에에게, 모함마드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화답했다.
“물론 너희들에게는 폭탄 따위가 통하지 않겠지. 하지만 인질들은 어떨까? 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지구연방에 연락해서 우리의 조건을 수용하라 일러라. 그러면 인질을 해방하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거나 우리가 내건 조건을 하나라도 수용하지 않는다면 바로 폭탄을 작동시킬 것이다.”
무려 십 수만 명에 달하는 인질들의 목숨을 내건 도박! 이것이 바로 모함마드가 믿고 있던 마지막 패의 정체였다.
하지만 상대방의 반응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당황하거나 초조해하는 표정이 아니라, 자신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며 혀를 차는 것이 아닌가.
“정말 한심스런 이야기네요. 고작 폭탄으로 우릴 협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니··· 참.”
“그 말은··· 설마, 인질들의 신변을 포기하겠다는 거냐?”
엘레나의 말에 모함마드의 안색이 변했다. 저들이 인질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들을 제거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진 엘레나의 대답은 그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포기하진 않아요. 단지 구할 필요가 없을 뿐이죠. 폭탄? 당신이 믿고 있는 폭탄이 인질들을 해칠 수 있는 게 맞긴 한가요? 당신이 우릴 협박하는 이유가 그것 하나뿐이라면 더 이상 우린 더 이상 시간낭비 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게 무슨 소리냐? 설마 우리가 매설한 폭탄까지 전부 제거했다는 소리는 아닐 텐데. 그 위치는 나도 다 파악 못하도록 철저히 비밀로 붙였다. 네놈들이라 해도 이 짧은 시간 안에 찾아냈을 리 없어.”
인질 주변에 매설해둔 폭탄은 이번 작전의 핵심인 만큼, 모함마드는 더욱 심혈을 기울였었다. 헌데 지금 하는 말을 들으면 폭탄 자체가 제거되거나 무용지물이 됐다는 것 같지 않은가?
“정 못 믿겠다면 눌러보던가.”
“이놈들!”
마틴의 조소어린 그 말에, 모함마드는 이를 갈며 핏대를 세웠다. 인질을 위협하는 폭탄은 어디까지나 지구연방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강압용었다. 그런데 놈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니, 폭탄을 당장 사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기로에 서게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물러설 순 없어.’
그렇지만 한번 폭탄을 터뜨리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들의 잡은 인질의 목숨은 어디까지나 일회용이니까.
그렇지만 인질을 신경 쓰지 않는 저 외계인들의 태도를 보면, 이대로 버틴다고 해도 과연 지구연방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어차피 인질을 모아둔 곳은 다섯 곳이다. 그 중 하나만 터뜨려 봐야겠군. 인질이 죽는 꼴을 본다면 놈들도 생각을 달리 먹겠지.’
꾸욱!
결국 결단을 모함마드는 그 즉시 손에 쥔 리모콘의 버튼을 눌렀다. 점령한 다섯 개의 도시 중 하나에 매설된 폭탄의 원격기폭 스위치였다.
그들이 매설한 대량의 폭탄은 버튼을 누르는 즉시 기폭되며, 그 충격은 이곳까지 전해질 것이다. 다섯 도시는 꽤 인접해 있으며, 폭탄의 위력은 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할 테니까.
그렇지만 기대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도 조용했다. 폭발의 굉음은커녕, 아주 작은 진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대체 뭐지? 어떻게 된 거야!?”
모함마드는 당황해하면서 다른 버튼들을 연이어 눌렀다. 방금 누른 도시의 폭탄뿐만 아니라 다른 네 곳의 폭탄들도 전부 기폭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묵묵부답이었다. 폭발은커녕 비슷한 조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네놈들 무슨 짓을 한 거냐? 설마 매설해둔 그 많은 폭탄을 전부 찾아 제거했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폭탄의 양도 양이지만, 절대 단기간에 제거 할 수 없도록 일부러 분산시켜서 매설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설령 인질이 도주한다 해도 쉽사리 폭탄의 타격 범위로부터 벗어날 수 없도록 광범위하게 설정해 놓았다.
그런 폭탄을 전부 찾아내 제거한다? 이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버러들이 인질을 구출하기까지는 5분도 채 걸리지 않은 상황에서,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기 전혀 때문이었다.
마틴이 비웃음을 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거한 게 아니라 무력화 시킨 거다. 네놈들 상식에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뭐라? 무력화?”
“너희들이 가진 폭탄의 물질 자체를 무해한 것으로 전부 치환시켰다. 그런 원시적인 무기가 우리에게 통할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지.”
연합의 기술력은 기존의 물질이 가진 원소들을 재조합해서 새로운 물질을 제조하는 것도 가능한 영역에 다다라 있었다. 심지어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에 사용된 우라늄조차도 한순간에 납덩어리로 만들 수 있는데, 폭탄에 사용된 화약 따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것이 바로 원소전환기술. 어떤 물질이든 그 구성을 재조합함으로서 다른 원소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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