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20화
하지만 극단 이슬람주의라고 해서 사고까지 굳은 건 아니었다. 그는 영능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이것을 무기화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ISIS대원들에게 정해진 시간동안 황혼과 새벽에 접속하게 하고, 그곳에서 실력을 갈고 닦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각성이 이루어졌다.
그동안의 성과가 헛되지 않았는지, 각성을 이룬 ISIS대원들의 힘은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동안 가상현실에서 훈련한 게 헛되지 않았는지, 사용 자체도 무척이나 능숙해서 당장 전력화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모함마드는 그 광경을 보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바로 알라의 보살피심이로구나.”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늘을 위해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가.
어차피 지금 현재 시점에선 지구연방이든, 자신들이든 각성자들의 능력이 미미한 수준인 것은 큰 차이 없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더 확실한 기회라 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ISIS가 전 세계를 뒤엎을 만큼 막강해진 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예전의 ISIS의 터전이나 다름없던 시리아의 도시 몇 개를 기습적으로 점령한 뒤, 시민들을 인질로 사로잡았다. 도시를 지키는 치안병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정도는 이능을 각성한 전사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인질들을 관리하기 쉽도록 각 도시마다 가장 넓은 장소를 선정해 죄다 몰아넣었다. 워낙 인질의 수가 많아서 여러 문제로 관리하기가 어려웠지만, 어차피 오래 붙잡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인질로 잡은 사람들을 이용해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지구연방과 협상을 이끌어내는 게 그의 주목적이었으니까.
그리고는 방송국을 협박해 전 세계에 성명을 발표했다.
[지구연방에게 고한다. 우린 전신이었던 ISIS의 뜻을 이어받은 새로운 알라의 전사, 신 ISIS다. 그리고 나는 신ISIS의 리더 모함마드 압둘라라고 한다.]
“뭐지 저건?”
“중동 쪽에서 무슨 테러가 벌어졌다던데?”
“또 IS야? 그놈들 망했다고 하지 않았어?”
사람들은 갑작스런 방송에 어리둥절했다. 오늘 새벽에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각성 사건 때문에 다들 거기에 정신이 쏠려 있었는데, 대뜸 이런 일이 터지니 황당했던 것이다.
[알라께서 약속하신 고토를 지구통합이라는 미명 하에 무단으로 합병한 무도한 짓을, 우리 알라의 전사들은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의 땅은 우리 손으로 사수하겠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우리의 고토를 포기하고 물러나라. 그리고 알라의 땅에서 우리의 자치를 인정하라. 우리 신ISIS는 아랍 민족들을 대표해 지구연방의 치제 하에 들어갈 것을 거부한다!]
“독립이라고? 제정신이 아니군.”
메켈린 연방수상은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금의 성명 발표는 지구 연방의 수뇌부도 함께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구연방이 세워진 이유는 인베이더라는 외계인의 침공을 대비해서였다. 이제 놈들의 침략권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독립을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니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건가?’
그럴지도 몰랐다. 현재 시민들 중에서도 인베이더의 침공에 대해 믿지 않는 자들도 제법 많았으니까.
특히 서방이나 다른 종교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을 보여준 아랍과 이슬람교의 특성을 생각하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고심하던 그때, 모함마드의 본격적인 성명내용이 발표되었다.
[현재 우리는 시리아의 다섯 도시를 점령 중이다. 지구연방이 우리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지금부터 이들의 처형을 시작하겠다. 앞으로 한 시간 뒤부터 순차적으로 거행할 예정이니, 지구 연방은 속히 결론을 내놓는 게 좋을 것이다. 만일 우리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결론을 내놓는다면, 오늘 벌어질 불행한 사태의 모든 책임은 지구 연방 스스로 감당해야 할 것이다.]
“미친 것들!”
“역시 광신도들은 어쩔 수가 없군.”
“기껏 각성한 영능으로 저딴 짓거리라니!”
“역시 이슬람 광신도들로 넘쳐나는 아랍은 믿을 수가 없소.”
다들 분노하며 욕설을 내뱉었지만, 이성을 잃진 않았다. 지금까지 아랍권의 테러단체들이 자행해온 인질극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패턴이었다. 단지 그 규모가 커졌을 따름이니 놀라거나 당황할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메켈린 수상이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로 이미 희생되신 분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조속히 사태를 수습하기로 합시다. 작전에 동의하시는 분들은 찬성을 눌러 주십시오.”
그러자 회의장에 모인 각 지역의 대표들이 자신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기 시작했다.
메켈린 수상이 지구 연방의 최고통수권자이긴 했지만, 수만 명에 달하는 인질의 목숨이 걸린 상황인 만큼 단독 결정을 내릴 순 없었던 것이다.
“동의합니다.”
“저도 찬성하지요.”
“저도 수상의 결정을 존중하겠습니다.”
모든 대표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메켈린 수상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작전 개시를 선언했다.
“그럼 작전을 승인하겠소.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커.”
그러자 그의 옆으로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유태진의 얼굴이 떠올라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은 하지 않았지만, 작전 승인을 위해 지금까지 원격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작전 인계 받았습니다. 오퍼레이션 스핏 브레이커. 지금 즉시 시행에 들어가지요.]
“철저히 응징해주길 바라겠소.”
메켈린 대통령은 더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 * *
지구연방의 승인 하에, 연합 소속인 전함 아우기스는 작전 지역의 상공에 도달했다. 현재 비가시화 모드를 활성화 한 상태라, 신 ISIS가 확보한 레이더나 대공감시망에도 포착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작전개시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오버러들은 일제히 강하를 시작했다.
지상을 향해 떨어지면서 부딪치는 세찬 바람이 온몸을 압박해 왔지만, 배틀 슈트의 액티브 배리어는 이마저도 깔끔하게 상쇄시켜주었다.
“자, 시작한다. 비가시화 모드 작동.”
마틴의 명령에 따라 다들 배틀 슈트의 비가시화 모드를 작동시켰다. 비가시화 모드에는 스텔스 기능까지 포함된 만큼 레이더에서도 이쪽을 포착하지 못할 것이다.
“작전에 대해선 다들 숙지했을 것이라 믿는다. 모두들 은신한 상태에서 최우선적으로 인질부터 구출하기로 한다. 각자 정해진 강하 포인트를 향해 이동하고, 인질을 구출한 뒤에는 바로 테러분자들의 소탕에 들어간다.”
“예!”
“놈들은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는 종자들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지. 저항하는 놈들은 사정 봐주지 말고 죽여라. 내가 책임진다.”
마틴의 살벌한 말에도, 오버러들은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테러범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베이더로부터 지성체들을 지켜내기 위한 기적인 영능을 한낱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자들을 어찌 용납한단 말인가.
거기에 이슬람의 비틀어진 종교관까지 더해지면서 혐오감만 더욱 커졌다. 같은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무리라면 죽여도 무방하다는 생각들이었다.
그 광경을 숨죽여 지켜보는 김진수에게 옆에 있던 사내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이제부터 잘 지켜보고 있어. 앞으로는 너희들이 도맡아 해야 할 일들이니까.”
“예?”
“지금은 각성 초기라서 초인관리국도 체계가 안 잡힌 상태지. 경험도 전무하고. 그래서 이번 사태는 우리가 도맡아 수습해 주게 된 거야.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순 없잖아. 앞으로는 지구인들 스스로 해결해 나가야 해.”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싶었던 김진수도 곧 이어진 설명에 납득하고 말았다. 상식적으로 보면 이번 테러도 지구인이 지구 내에서 벌인 테러였다. 그러니 지구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전에 없던 이능각성에 의한 테러라는 점 때문에 이번만큼은 인피니티 킹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납득하기에 앞서 의문이 떠올랐다. 김진수는 사내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혹시···지구인이 아니셨나요?”
마틴이 지구 출신이라고 해서 눈앞의 사내도 지구 출신일 거라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구인들이라고 표현을 명확히 구분하는 걸 보면, 지구인과 생김새는 같아도 다른 행성 출신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사내는 그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면서 대답해 주었다.
“나? 하하하··· 마틴 씨와는 달리 난 태생부터 연합 출신이야. 이곳에서는 아주 먼 이데르안 성계가 내 고향이지. 지구 밖에도 사람은 많다고.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지구에만 사람이 사는 건 아니잖아. 어이쿠, 슬슬 다 와 간다. 플로트 윙 쓸 줄은 알지?”
“예.”
플로트 윙의 사용법도 황혼과 새벽 내에서 이미 몇 번 사용해 본 바 있었다. 사용하는 방법도 꽤 간단해서 한번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플로트 윙을 전개하자마자, 오버러들이 몇 무리로 나뉘면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각자 인질들이 모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리고 김진수는 자신을 도와주는 사내와 함께 마틴의 뒤를 따랐다. 마틴은 엘레나라고 불린 소녀와 함께 오버러들의 핵심 부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에 내려와 착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흩어졌던 오버러들로부터 보고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제 1섹터 구출 완료. 현재 생존중인 인질 모두 무사합니다.]
[제 2섹터도 구출 완료. 인질 모두 무사히 구출. 구출한 사람들을 지킬 인원만 빼고 즉시 제압작전에 들어갑니다.]
[제 3섹터도 무사히 종료. 바로 다음 작전 개시합니다.]
[제 4···]
옆에서 듣고 있던 김진수는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상에··· 강하한지 1분도 안 됐는데?”
“오버러들을 평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비교하지 마. 우린 일반인의 수십에서 수백배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어. 그런 사람들이 벌이는 전투인데 압도적인 게 당연하지. 게다가 놈들의 주력이 인질을 지키고 있던 것도 아니었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김진수는 사내의 설명을 이해는 했지만, 생각보다 실감은 크게 나지 않았다.
영능력자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는 이미 황혼과 새벽을 통해 체험해 봤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은 현실이었다.
헌데 이런 결과를 보고 있자니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질 구출이 완료되자, 작전은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엘레나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오버러들을 돌아보면서 냉정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제압작전에 들어가겠습니다. 필요하다 싶으면 다들 손속에 사정을 두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대답하는 오버러들의 눈빛도 그녀와 다를 것 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지금까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장난끼를 보였던 태도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그리고 엘레나의 옆에 서 있던 마틴이 김진수가 있는 쪽을 돌아보며 말을 건네 왔다.
“하디안. 그 꼬맹이 좀 부탁해. 앞으로 잘 가르쳐야 하니까.”
“염려 말아요, 마틴. 내가 고이고이 모실 테니까. 아마 털끝 하나 다치는 일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케어를 좀 해줬으면 좋겠어. 제아무리 오로라 시스템의 정신보호가 있다 하더라도, 솔직히 보기 안 좋은 일이잖아.”
“명심하지요.”
김진수는 하디안이라 불린 사내에게 자신을 부탁하는 마틴한테 몇 마디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꾹 참기로 했다. 중요한 작전 중에 사담을 꺼내는 것은 금물이었다.
하디안에게 김진수의 신변을 부탁한 마틴은 곧 차가운 기세로 선언했다.
“그럼 시작하기로 하지. 인간에서 짐승으로 전락한 무리의 토벌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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