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93화 (294/448)

12권-18화

이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김진수는 새로운 각성이능에 대해 전혀 인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듣고 난 직후부터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던 새 각성이능을 자각하게 되었다.

“아 이게 바로!”

김진수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체내를 타고 흐르는 낯설면서 익숙한 느낌.

처음 느껴보는 힘이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강체력?”

좀 전에 부상과 탈진으로 저항할 힘조차 없던 순간,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게 해준 그때의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밑바닥을 보였던 체력이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틴도 그런 변화를 눈치 채고는 입을 열었다.

“넌 보아하니 중립 타입인 것 같아. 모든 성향이 고르게 균형을 이루고 있어.”

“중립이라면.”

“그래 강체력을 이루는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거지.”

“그렇군요.”

김진수도 강체력에 대해 대략적인 상식은 알고 있는 터라, 그 말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강체력이라 뭉뚱그려 표현하긴 했지만, 이것도 조금 파고 들어가 보면 종류가 제법 다양했다. 이름 그대로 신체를 강화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의 성향이 어디에 치중되느냐에 따라 성질이 꽤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강체력은 신체를 단단히 하는 데에 비중이 높았고, 혹은 민첩성이 높은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이들은 재생력이나 체력회복, 반사신경 등 세분화 되는 종류만 해도 무척이나 다양했다.

“나 같은 경우는 경화 타입이지. 육체를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쪽이 더 비중이 높아. 강체력 보유한 능력자들 중에서도 가장 좋은 평을 듣는 타입이기도 하고.”

“그럼 중립은요?”

김진수가 그렇게 묻자, 마틴이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일단 초반에는 어중간하다는 말들이 많지. 이도 저도 아니라서 말이야.”

“···아, 예. 그렇군요.”

조금 실망한 낯빛을 보이는 녀석에게, 마틴이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너무 실망 마라. 당장은 어떨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중립 타입만큼 무서운 게 없어.”

“어째서죠?”

“어느 이상 경지에 올라서고 나면 모든 게 완벽해 지니까. 너도 상상해 봐라. 단단한데다가 빠르고, 무한 체력에다가 반사신경도 좋아. 심지어 다쳐도 금방 회복되는 재생력까지 갖추진 녀석이 얼마나 무서울지 말이야. 그야말로 죽지 않는 괴물이 따로 없지.”

“그 정도인가요?”

“그래, 그러니까 실망 말고 열심히 수련해라.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니까.”

그렇게 중립 타입의 강체력에 대해 추켜 세워주는 마틴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바로 엘레나였다.

“아저씨, 시간 없어요. 조만간 우린 테러범들을 잡으러 가야 한다고요. 어서 할 거나 하세요.”

“아, 그렇지.”

그녀의 뾰족한 목소리를 듣고서야 수다를 멈춘 마틴이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어이 마이클, 치료 좀 부탁해.”

그러자 한쪽 구석에 있던 오버러들 중 한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거구의 흑인 사내였다. 머리모양과 복장을 보면 당장이라도 랩을 흥얼거릴 것 같은 사람이었다.

그가 대뜸 김진수에게 말을 걸었다.

“헤이, 보이. 치료가 필요하다고?”

“예? 아, 예.”

“오, 좋아. 그럼 바로 치료 시작한다!”

치료라는 말에 김진수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기다렸다. 황혼과 새벽에서도 마법사나 사제들이 다루는 치료마법을 경험해보긴 했지만, 대체 이렇게 건장해 보이는 흑인청년이 무슨 수법으로 치료를 해줄지 짐작이 가질 않아서였다.

근데 마이클이라 불린 흑인 청년이 대뜸 랩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의 복장이나 머리모양이 그냥 보여주기 식의 컨셉이 아니었던 것이다.

[뒤지고사는건운에달렸지.뒤로자빠져도코가깨지는녀석이있는가하면누구는넘어저도동전을 줍지.이것이인생무상!자네가회복되고안고는너의운에달렸어.낫을든사신이네목을칠지안칠지어디한번나와내기를걸어볼까!]

김진수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갑자기 랩을 부르는 것도 당황스러운데, 가사의 내용도 어처구니없어서였다. 이게 대체 무슨 치료법이란 말인가?

그러자 그 황당해하는 표정을 본 마틴이 슬쩍 끼어들어 설명해주었다.

“이 녀석은 버퍼야. 지금 사용한 건 바로 자가치유 효과를 극대화하는 버프지.”

“아!”

그제야 김진수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안 그래도 강체력의 재생능력 효과로 회복되어가던 상처가 더욱 빨리 아물고 있었다.

어찌나 빠른지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회복속도가 올랐다. 그리고 불과 1분도 지나지 않아 회복이 완료되었다. 너덜너덜해진 옷은 그대로였지만, 상처와 화상은 말끔히 치료된 것이다.

“생각보다 효과는 꽤 괜찮지?”

“그렇네요. 벌써 다 회복되다니.”

마틴의 그 말에, 김진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이클의 치유버프가 괜찮은 편이지. 물론 네 강체력과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덕분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저 녀석의 랩 솜씨는 너무 형편없어. 가사도 구리고. 아마 랩 가수로 데뷔했다면 분명 망했을 거야.”

“오, 브로! 너무해! 이래 뵈도 난 유망한 랩 가수 지망생이었다고!”

마이클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지만, 마틴의 평가는 그야말로 가차 없었다.

“그 ‘유망함’이라는 표현 자체부터가 자칭이잖아. 미국의 가요 관계자 출신 오버러 중에 널 아는 녀석은 하나도 없더만.”

“그건 브로가 뭘 몰라서 그래. 이 몸의 솜씨는 다들 인정했다고.”

“그래, 그 실력으로 나중에 한번 데뷔해보던가. 그럼 내가 인정해주지.”

진짜로 데뷔해보라는 그 말에 마이클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평소 스스로 랩 가수라고 자칭은 하고 있어도, 본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자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 녀석 버프 솜씨만큼은 진짜니까, 잘 알아둬.”

마틴은 김진수에게 그렇게 당부하고는 다 회복된 김진수에게 몇 가지 옷가지를 던져주었다.

“자, 입어. 우리가 갖고 있던 여분의 옷이다. 그 꼴로 어디 돌아다닐 수는 없을 테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김진수는 고맙다는 얼굴로 그가 건넨 옷가지를 받아들었다. 너무 많은 도움을 받는 것 같아 부담스럽긴 했지만, 옷이 넝마가 된 지금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었다.

“그리고 등록 절차도 시작하자. 초인관리국에 갈 시간도 없을 테니 말이야.”

“시간이 없다니요?”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김진수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초인관리국 지부는 자신의 집이 있는 위치에서 보도로 15분 정도만 걸어가면 있었다. 그런데 갈 시간이 없다니 대체 그게 무슨 의미인가?

그러자 마틴이 조금 미안하다는 얼굴로 이유를 말해주었다.

“지금 이 함은 중동 쪽으로 가고 있다. 널 한국의 초인관리국 앞에 내려줄 틈이 없었거든.”

“예? 중동이요!?”

* * *

김진수가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놀라고 있는 사이, 로버단 급 전함 아우기스는 중동의 상공에 도달해 있었다.

그들의 목적은 바로 최근 발호하게 된 유명한 테러단체 ISIS를 토벌하는 것.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거듭된 토벌로 지리멸렬한 상태였지만, 최근 다시 규합하는 조짐을 보였었다. 그리고 영능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그 움직임은 더욱 본격화 되었다.

황혼과 새벽에 접속하면서 영능을 체험한 그들은 오늘 새벽, 현실에서도 진정한 각성을 이루면서 본격적으로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알라의 부름에 따라 성전을 일으키겠다! 세계통합? 외계인이라고! 웃기는 소리! 알라의 이름 앞에선 그 무엇도 앞에 설 수 없음을 알아라!”

“알라께서 점지해주신 우리의 땅을 사수하자!”

“자, 봐라! 알라께서 내려주신 기적을! 이제 우리는 알라의 사도가 되었다! 기적의 힘으로 저 이교도들과 외계인들을 물리치자!”

그야말로 광기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새로 각성하게 된 이능을 알라가 내려준 기적이라 믿으며 무차별적인 테러를 자행하기 시작했다.

물론 해당 지역에도 지구연방이 파견해둔 병력과 인력이 상주하고 있었지만, 대거 운집한 ISIS의 전력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각종 화기로 무장한 것은 물론, 이젠 이능이라는 새로운 힘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군대보다도 더 막강한 전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친 광신도들 같으니라고! 각성하자마자 테러라니! 제정신들인가?”

시리아의 초인관리국 지부장인 테일 윈스터가 이를 갈아붙였다. 어느 정도 테러의 조짐은 보였지만, 그래도 움직임이 본격화 되려면 이능에 대한 적응이 이루어진 시점에서 벌어질 거라 예측하고 있었다.

헌데 놈들은 이쪽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허를 찔러버렸다. 설마 각성 당일에 거사를 일으킬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테일 윈스터 지부장은 모든 역량을 동원해 놈들을 진압하려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오래 전부터 은밀하게 세력을 규합해온 신ISIS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아마 중동에 남아있던 극단이슬람주의자들은 죄다 모여든 것 같았다.

“그렇군. 중동 사람들이 최근 알라를 버리고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로 대거 개종하면서 놈들도 위기감을 느꼈던 거구나.”

그제야 놈들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규합하게 된 이유를 알아챈 테일 윈스터 지부장은 더 이상 자신이 손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현재 이능력자들의 난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다. 그는 즉시 연락을 걸었다.

그리고 연락을 취한지 30분이 지난 뒤, 드디어 저 먼 상공으로부터 거대한 형상이 비치기 시작했다. 바로 인피니티 킹덤의 로버단 급 전함 아우기스였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들어온 전함은 곧장 그곳을 지나쳐 서쪽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ISIS가 발호한 지점이었다. 놈들은 이미 도시 몇 개를 점령하고는 그곳에서 농성 중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에 관련된 데이터는 테일 윈스터 지부장이 이미 아우기스 편에 보내둔 상태였다. 테일 윈스터 지부장은 목적지를 향해 멀어져가는 전함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젠 그들을 믿을 수밖에.”

* * *

아우기스 내의 격납고에서도 슬슬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ISIS와의 싸움을 앞두고도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자, 3분 뒤 슬슬 작전 지역에 돌입한다. 자, 각오들 해두라고.”

“각오는 무슨, 이제 막 각성한 병아리들을 상대로 말이야.”

“자, 몇 명을 제압하는지 내기라도 할까? 누가 가장 많이 제압하는지 말이야.”

“좋지, 안 그래도 막 각성한 애송이들을 상대해야 해서 시시하던 차였는데, 그런 내기라도 해야 덜 지루하지.”

하지만 그때였다. 그들의 여유로움을 누군가가 조용히 지적하고 나섰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들은 좋은데요. 좀 신중하셨으면 좋겠네요. 도시의 시민들이 테러범들에게 인질로 붙잡힌 상황입니다. 괜히 방심하다가 희생자의 수만 키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엘레나가 그렇게 핀잔을 주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임무에는 철저해야지요.”

“암요. 죽는 사람이 없도록 철저히 하겠습니다.”

엘레나는 사령관인 유태진의 제자이자, 그들의 상관이었다. 자신들보다 어리긴 해도 실력으로는 한참 위인만큼, 그녀의 말을 존중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들 가운데 김진수가 얼떨떨한 모습으로 끼어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째서 이런 곳에 끼게 되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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