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92화 (293/448)

12권-17화

그리고 손가락을 튕기는 동작에서 발생했다고는 상상키 어려운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지켜보던 김진수가 입을 쩍 벌린 채 경악했다.

“따··· 딱밤 한 방으로?”

그랬다. 지금 백인 사내가 강도를 상대로 보여준 것은 바로 딱밤이었다. 그것이 방어막을 때리는 순간, 믿기지 않는 충격이 발생하면서 탄성 방어막을 뚫어버린 것이다.

심지어 그걸로 끝난 게 아니었다. 방어막을 뚫고도 여력이 다하지 않은 딱밤의 힘이 강도의 전신을 그대로 강타하였다.

“커어어!”

놈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며 멀리 날아가 처박혔다. 딱밤의 남은 힘이 얼마나 대단하던지 은행 한쪽 벽면에 그대로 파고들어가 잘 조각된 부조(浮彫)와 같은 형상이 되었다.

간간히 경련을 일으키는 걸로 봐선 죽지는 않고 정신만 잃은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이런 놈들이 치는 분탕에 우리까지 나서야 한다니. 한심한 일이야.”

그렇게 투덜댄 백인 사내는 은행 바깥쪽을 돌아보며 외쳤다.

“이보쇼. 다 끝났으니까 어서 들어와서 이놈들 좀 끌고 가.”

그러자 제복을 입은 다수의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와 강도들을 전부 체포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죄다 수갑을 채웠는데, 경찰들이 다루는 수갑과는 뭔가 다른 특제품인 모양이었다.

제복을 입은 사람들 중 책임자로 보이는 자가 백인사내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 왔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힘써주신 덕분에 무사히 잡을 수 있었습니다. 역시 연합에서 오신 분 답군요.”

“수고는 무슨. 내가 제압한 건 저놈 하나 뿐이야. 나머지는 이미 다 제압된 상태던데.”

“예? 그럼 누가?”

백인 사내가 그렇게 사실을 말해주자,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바로 이 녀석이야.”

백인사내는 바로 근처에 있던 김진수를 가리켰다. 마지막 강도 녀석에게 너무 심하게 당한 바람에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이 학생이요?”

“그래, 쓰러진 녀석들에게 남은 흔적을 보니 알겠더군. 게다가 마지막에 쓴 건 아르케베인 류의 진회일혼격이었지?”

백인사내의 그 말에 김진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마지막 순간에 얼핏 사용한 그걸 이렇게 단번에 알아볼 줄이야.

“이상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나도 너와 같은 아르케베인 류파니까. 알아보는 건 쉬웠지.”

“아, 그렇군요.”

그 말에 납득한 김진수가 백인 사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고전했던 상대를 딱밤 하나로 처리한 강자가 자신과 같은 유파라는 사실이 신기해서였다.

“아무튼 어린 녀석이 고생 많았다. 이제 막 각성한 수준으로 말이야. 덕분에 다친 사람도 없이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 다 네 덕분이야.”

백인사내는 김진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칭찬의 말을 꺼냈다. 하지만 정작 김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무안하다는 듯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의감 때문에 나선 건 아니었어요. 지나가다가 우연찮게 이 상황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제가 본의 아니게 휘말렸던 거죠.”

“뭐, 그랬을 수도 있겠지. 원치 않는 일에 휘말리는 건 나도 종종 있어왔으니까.”

김진수의 고백에 의해 그것이 자의에 의해 행한 일이 아님을 백인 사내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 사내는 김진수에 대한 평가를 낮추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어떤 의도였든 간에 넌 결과적으로 사람들을 지켰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 너, 혼자라면 언제든 몸을 뺄 자신이 있었지?”

“···예.”

김진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은행 안을 몰래 지켜보다가 강도의 공격에 휘말리긴 했지만··· 사실 그 시점에서라면 얼마든지 도망갈 수 있었다.

하지만 김진수는 그러지 않았다. 강도들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순간, 그는 보게 되었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움에 찬 그들의 눈동자는 누군가가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대상이 바로 자신임을 안 순간,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싸우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대체 무슨 만용인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마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저쪽을 봐라.”

백인사내가 한쪽을 가리키자, 김진수의 시선도 그쪽을 향했다. 그곳에는 좀 전까지 강도들에게 위협 당했던 은행 직원들과 고객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김진수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백인 사내 때문에 섣불리 다가오진 못했지만, 그렇게나마 감사함을 전한 것이다.

김진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들의 감사인사에 비슷한 목례로 화답하였다.

그런 그에게 백인사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제 알겠지? 처음 시작은 네 본의가 아니었어도, 넌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고 맞섰어. 그건 네 안에 그만한 용기가 있었다는 거 아니냐. 그러니 네 스스로 이룬 공을 그런 식으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저들이 감사해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할 만큼 한거야.”

“그렇군요.”

김진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이제야 그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휘말렸다면 혹시 영능력자 등록하러 가는 길이었냐?”

“예, 등록하러 가던 도중이었죠.”

“일단 치료부터 해야겠다. 그 꼴로 어딜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백인사내의 말처럼 현재 김진수의 상태는 그리 좋지 못했다. 옷은 성한 곳이 없었고, 몸도 여기저기 입은 부상과 화상 때문에 엉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목숨이나 장애가 올만한 심각한 부상은 없었다는 점이다.

김진수가 자신의 몸 상태를 내려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던 그때, 백인 사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을 해왔다.

“일단은 나와 함께 가자. 등록은 이쪽해서 해줄 테니까, 일단 치료부터 받지.”

“예? 저도 함께 가자고요?”

“그렇게 놀랄 것 없다. 네 녀석이 강도를 상대로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잖아. 그 대신이라고 해두지. 설마 그 꼴로 집에 돌아갈 생각은 아니겠지?”

“아, 예. 그럼 아저씨의 신세 좀 질게요.”

김진수는 순순히 그를 따라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강도를 제압하고 시간을 끌어준 보답이라고 하니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물론 상대가 수상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생각해 봤을 테지만, 눈앞의 백인 사내는 외계에서 왔다는 아르탈 행성 연합 소속의 인물이었다. 설마 이런 걸로 자신을 속이진 않을 것이다.

“자, 그럼 가자. 여기 일은 저 사람들에게 맡기고.”

백인사내는 그렇게 말한 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김진수는 성치 못한 몸을 가누며 서둘러 그 뒤를 쫓아갔다.

고오오오!

은행 밖으로 나오자, 머리 위에서부터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묵직한 울림도 귓전에 들려왔다.

뭔가 싶어 그림자가 드리운 방향 쪽으로 고개를 들자, 전혀 상상치 못했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전함?”

그랬다. 지금 은행의 상공에 출현한 것은 바로 거대한 전함이었다. 영화나 서브컬처에서나 볼 법한 공중부양함이었다. 아니, 애당초 저들은 외계에서 왔다고 했으니, 우주전함이라고 보는 게 더 옳을지도 모른다.

반쯤 넋 나간 김진수에게 백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저기 바로 우리가 타는 기함 중 하나인 로버단 급 전함인 아우기스지. 자, 가보자고. 널 치료할 사람들도 저기 있으니까.”

* * *

얼떨결에 아우기스라는 전함에 함께 올라타게 된 김진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물론 황혼과 새벽에서는 아바타를 통해 비슷한 전함들을 여러 차례 타보긴 했지만, 현실에서 정말 실물을 타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런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 백인사내가 피식 웃어보였다.

“하긴 처음엔 다 신기하고 놀라워 보였지. 하지만 너무 어리바리 까진 마라. 멍청해 보일 수 있으니까. 여기 있는 녀석들에게 무시당할 수 있어.”

“아! 아, 예!”

그의 충고에 김진수는 겨우 정신을 되찾았다. 명색이 처음 타는 전함인데, 남들에게 멍청한 촌놈 취급을 받고 싶진 않아서였다.

그때였다. 저쪽에서부터 누군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요? 마틴 아저씨라면 이제 막 각성해 날뛰는 잔챙이들 따윈 1초도 안 걸렸을 텐데.”

목소리의 주인은 이제 막 15세쯤 되어 보이는 소녀였다. 금발을 길게 기른 백인 소녀의 모습에 김진수가 다시 긴장한 낯빛을 드러냈다.

“뭐, 그렇기야 한데··· 조금 사정이 생겼지.”

백인 사내, 아니, 마틴이란 이름으로 불린 그는 약간 난처한 얼굴로 화답했다. 그의 눈은 김진수를 향하고 있었다.

그제야 소녀도 김진수 쪽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 사람은 누군데요? 왜 외부 사람을 전함에 들인 거죠?”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강도 녀석을 상대로 싸우던 용감한 시민이지. 이 녀석 덕분에 다친 사람이 하나도 안 나올 수 있었어.”

“아, 그래요?”

“얼마나 혼자 분전했던지 보다시피 이 꼴이더군. 그래서 치료라도 해주려고 데려온 거야. 엘레나 양.”

“흐음.”

엘레나란 소녀가 김진수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는 낯선 소녀의 시선에 어쩔 줄을 몰라 당황한 모습이 되었다.

그렇게 잠시 품평해본 엘레나가 곧 입을 열었다.

“뭐, 좋아요. 시민을 위해 나서서 싸운 분이라니, 나쁜 분은 아닌 것 같네요. 그리고 이렇게 어수룩한 반응을 보면 누굴 속일 수 있을만한 성품도 아닌 것 같고요.”

생각보다 그녀의 평가가 좋자, 마틴이 김진수를 더욱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나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 엘레나 양. 이상한 녀석을 이곳으로 데려올 리가 없잖아. 그리고 이 녀석, 꽤 괜찮은 인재라고.”

“괜찮은 인재라니요?”

엘레나가 무슨 말이냐는 투로 되묻자, 마틴이 자신이 직접 확인한 사실을 그녀에게 밝혔다.

“이 녀석, 나와 같은 듀얼 스킬 능력자야. 두 종류의 이능을 각성했어.”

“듀얼스킬이라고요? 그게 확실해요?”

“그래, 정말이야.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죽을 뻔했던 순간에, 갑자기 각성하더군. 그리고는 상대의 공격을 부수고 탄성 방어막까지 한꺼번에 뚫어버렸어. 아마 몸이 멀쩡했을 때 각성했더라면 저 녀석 혼자 강도들을 전부 제압하고도 남았었겠지.”

마틴의 설명을 듣고 난 엘레나는 놀랍다는 표정으로 김진수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작 놀란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당사자인 김진수였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듀얼 스킬이라니? 지금 그 말이 사실인가요? 새로운 이능을 각성했다니···.”

당황한 어조로 묻는 그 말에, 마틴이 픽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긴··· 너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무의식중에 각성했을 테니까.”

“그럴 리가.”

김진수로서는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자신이 그때 새로운 이능을 각성했다고?

뭔가 알 수 없는 힘이 잠시나마 샘솟는 바람에 강도의 공격과 방어막을 뚫어내긴 했지만, 그게 설마 새로운 이능의 각성이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넌 분명 그때 새로운 이능을 각성했어. 일렉트로닉 유저로서의 능력이 아닌 바로, 강체력이란 새 능력을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알죠? 아직 검사도 안했는데.”

“보면 한 눈에 알 수 있지. 바로 내가 너와 같은 듀얼 스킬 보유자니까.”

묻는 그 말에 마틴은 그렇게 대답해주면서 자신의 양 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한 손에서는 파르스름한 전류가 방전을 일으키며 피어올랐고, 다른 한손에서는 굳건한 힘이 일어나 신체를 강화시켰다.

일반인이라면 눈치 못챘겠지만, 김진수는 달랐다. 황혼과 새벽에서도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진 유저들과 맞닥뜨려 본 만큼, 마틴의 또 다른 손에서 일어난 변화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강체력!”

“그래, 잘 봤다. 바로 맞추는군. 이제는 너도 다룰 수 있게 된 능력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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