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90화 (291/448)

12권-15화

이제 막 영능을 각성한 지금 상태에서는 도저히 무리인 기술이었지만, 지금으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강도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공격당한 상황에서, 김진수를 그냥 놔둘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주변에는 은행의 직원들과 고객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 싸움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영능력자가 아주 없는 것 같진 않았지만, 창백한 표정들을 보니 다들 전투에 관련해서는 경험조차 없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황혼과 새벽을 플레이하는 유저라고 해서 모두들 전투에 능한 건 아니었다. 그 중에서는 전투에 적합지 않은 계열의 영능을 각성한 자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단정 짓긴 어려웠지만, 전투에 익숙한 숙련자로 여겨지는 이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에라, 될 대로 되라!’

입술을 지그시 깨문 순간, 그의 오른 주먹이 곧게 펴졌다. 수도(手刀) 형상을 취한 오른손이 정면을 겨누자, 푸른 전류가 튀며 빠르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팔꿈치부터 시작해서 손가락 끝까지 이어지는 영맥을 따라 영력이 빠르게 순환하면서 영력이 증폭되었고, 그것이 수도에 집결하면서 일종의 고주파 진동 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우우우웅!

‘젠장, 역시 오래 못 버티겠는데?’

지금 현재 김진수의 손은 딱히 단련되지 않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손이었다. 제아무리 영력으로 손을 강화해 보호한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피륙으로 된 손으로 이런 무지막지한 초진동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부터가 애당초 상식 밖인 것이다.

‘속전속결로 끝내야 해!’

오른손에 가해지는 부담도 부담이지만, 쥐꼬리만 한 영력이 급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이러다간 강도들을 전부 쓰러뜨리기도 전에 전부 바닥날지도 모른다.

결단을 내린 김진수의 수도가 예리한 기세로 파고들었다.

아르케베인 류.

절뇌섬인(切雷閃刃)

촤아악!

눈앞의 방어막이 비단폭 찢기는 소리와 함께 갈라져 나갔다. 제아무리 대부분의 충격을 상쇄할 만큼 유연하다 해도 엄청난 속도로 진동하는 유사 단분자 커터가 된 김진수의 수도까지 막아낼 순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찢기면서 소실되기 시작한 방어막 뒤로 경악에 찬 강도의 두 눈동자가 보였다.

퍼억!

김진수의 왼 주먹이 단숨에 포탄처럼 뻗어나갔다. 좀 전과 마찬가지로 구사된 진회일혼격이었다. 방어막만 믿고 있던 강도는 처음 쓰러졌던 녀석과 마찬가지로 바닥에 엎드러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진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든 것을 쥐어짜 가면서 자신의 육신을 최대한 가속화 하였다. 놈들은 방어막을 부리는 녀석을 믿고 완전히 방심하고 있었다. 이럴 때 쓰러뜨리지 않으면 더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어어···?”

방아막 능력을 가진 동료가 쓰러지는 광경에 당황해하던 강도들은 곧바로 들이친 김진수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정상적으로 대치한 상황이라도 감당 못할 그의 공격을, 방심하고 있던 상황에서 막아낼 리가 없었다.

그 결과, 불과 1초 남짓한 짧은 순간에, 두 명의 강도가 나란히 급소를 내주면서 추가적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이제 하나.

하지만 김진수는 다른 강도들이 건재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욱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만만한 작자가 아닌데? 그 짧은 순간에 벌써 판단을 내리고 내 간격 밖으로 벗어나다니.’

그 말은 방금 쓰러진 강도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이라는 뜻이었다.

그에 반해 자신의 상태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무리하게 절뢰섬인을 사용한 탓에 오른손의 미세혈관이 파열되면서 부어올라 주먹을 쥐기 힘든 상태였고, 얼마 되지도 않던 영력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제법 무리한 것에 비한다면 부상 정도는 가벼운 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영력도 워낙 보유량이 작았던 만큼, 호흡을 통해 빠르게 차오르고 있긴 하지만··· 문제는 눈앞에 있는 마지막 강도가 정상적인 몸 상태로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짐작대로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강도의 태도는 궁지에 몰린 녀석 같지 않게 여유로웠다.

“대단해. 내 친구들을 이렇게 단숨에 쓰러뜨리다니 말이야. 그 정도면 황혼과 새벽에서도 보기 드문 상위권 수준인 것 같은데 말이야.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다음은 당신 차례야. 영능력자 씩이나 돼서 유치한 강도질이라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대체?”

“다 나름의 사정이란 게 있어서.”

김진수가 상대에게 빈정대듯 말을 던졌지만, 마지막 강도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가볍게 받아 넘겼다. 도발에도 쉽게 넘어오지 않는 것만 봐도 다른 녀석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오히려 김진수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상태를 살피고 있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제법 무리를 한 것 같던데 말이야. 그런 몸 상태로 나와 싸울 수 있겠어?”

복면에 뚫린 두 구멍 위로 드러나는 차가운 시선. 그것은 상대의 빈틈만 보이면 언제든 독니를 박아 넣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독사의 눈빛이었다.

그렇지만 김진수는 기죽지 않고 응수했다.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먼저 덤비지 그래? 이제 경찰이든 뭐든 당신네들 잡으러 올 텐데 말이야. 그렇게 여유부릴 시간이 있어?”

“···그래, 어서 끝내야겠어. 돈을 챙기고 쓰러진 이 머저리들도 데려가려면 시간이 없긴 하지.”

그제야 강도의 여유로웠던 태도가 사라졌다. 김진수의 말에 시간을 끌어 좋을 것 없는 상황임을 재삼 인지한 것이다.

하지만 김진수는 내심 혀를 찼다.

‘역시 만만치가 않네.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조급해져서 빈틈이라도 드러낼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일단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태세를 정비했다. 자신은 이미 네 명을 상대로 싸우면서 어느 정도 소모한 상황이었다. 정직한 정면 대결로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더 곤란한 건 자신이 능력을 드러낸 것과 달리, 상대의 영능은 여전히 불명이란 사실이었다.

‘온다!’

어느 순간, 강도의 눈빛이 변했다. 김진수야 이대로 시간을 끌어도 상관없었지만, 공권력을 고려해야 하는 놈의 입장에선 더 시간이 흐르면 곤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위이잉!

갑자기 대기가 이지러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출현한 것은 바로 좀 전에 경험했던 바람의 탄환이었다.

‘이건!?’

휘오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무형의 탄환들이 김진수의 전신을 겨냥해왔다.

‘설마, 똑같은 능력을?’

김진수는 조금 당황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대처했다. 이미 한번 경험해 본 바 있는 능력이었다. 처음 봤을 때도 쉽게 막아냈었는데, 좀 전과 똑같은 능력을 막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퍼퍼퍼펑!

다친 오른손 대신 왼손을 사용해야 한다는 게 조금 까다롭긴 했지만, 그는 성공적으로 다 막아냈다. 그리고는 멈추지 않고 지면 위를 미끄러지듯 앞으로 전진했다.

전기신호를 제어해서 전신의 반응속도를 끌어올린 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한발 내딛는 순간 무려 몇 미터의 거리를 좁혀 들어가, 마지막 남은 강도를 완전히 사정권 안에 넣었다.

파지지직!

김진수의 왼손으로 작은 전류의 흐름과 함께 또 한 번 진회일혼격이 장전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전류의 회전과 함께 일직선으로 빠르게 뻗어나간 순간!

투우우웅!

갑자기 반투명한 무언가가 나타나 이를 가로막았다. 어지간한 일로는 당황하지 않던 김진수조차 일순 눈동자가 크게 흔들릴 정도였다.

‘아까 그 탄성 방어막까지? 이게 대체!?’

그랬다. 그의 진회일혼격을 막아낸 것의 정체는 쓰러졌던 강도가 사용했던 유연성을 지닌 탄성 방어막이었다.

하지만 이에 당황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강도가 이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 방어막 너머로 불길이 밀려들었다.

“윽!”

뜨거운 열기에 김진수는 재빨리 물러섰다. 옷이 타들어가면서 상체의 일부에 화상을 입었지만 간신히 직격은 피할 수 있었다.

‘젠장, 더럽게 아프네.’

황혼과 새벽이 현실과 다름없는 가상현실이긴 했지만, 통각에 대한 부분은 상당부분 감소시키고 있었다. 그곳에서 제아무리 전투 경험을 많이 겪었다 하더라도 진짜 통증에 익숙할 리 만무했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김진수는 신체의 전기신호를 제어해 임의적으로 통각을 둔화시켰다. 전기를 다루는 일렉트로닉 능력자들에게나 가능한 신체 제어수법 중 하나였다.

어쨌든 간격을 벌린 탓에 화염능력을 사용한 강도 녀석도 재차 공격을 가해오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공격으로 상대적인 우위를 빼앗긴 것도 사실이었다.

김진수는 상대방을 노려보며 물었다.

“당신 그 능력 어떻게 된 건데? 다중 스킬을 각성한 것 같지는 않고··· 설마 동료들의 능력을 빼앗거나 복사하기라도 한 거야?”

“뭐, 비슷하지. 방금 이 파이로키네시스도 그 중 하나고.”

이젠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는지, 진한 살기마저 풍기기 시작했다. 좀 전까진 사람을 죽이지 않고 적당히 강도질로 끝낼 생각이었다면, 지금은 확실하게 김진수를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다.

* * *

유태진이 초인관리국에 제공해준 EAS감지기는 단순히 이능 사용 반응과 위치만 감지하는 게 아니다. 영능을 사용할 때 자연스럽게 섞이는 의념의 성향을 분석해서, 이것이 불온한 생각에서 사용되었는지의 여부까지 명확하게 판별한다.

그것은 즉 음지에서 영능을 활용해서 은밀히 불법을 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대응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제아무리 이능범죄가 벌어진 시간과 위치를 상세히 파악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에 대처할 인력이 부족하면 말짱 헛일이 되는 것이다.

지금 초인관리국의 상태가 그러했다.

“EAS감지기 반응. 불온조짐 포착했습니다. 32구역의 00저축은행입니다.”

“뭐야!? 은행이라면 설마 각성한 영능력자가 은행 강도짓이라도 한다는 거야?”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근처 파출소에서도 이제 막 신고가 들어온 모양이고요.”

“하아··· 감당이 안 되는군. 인력이 부족해.”

전 세계 곳곳에서 무수한 범죄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영능을 각성한 데에 대한 흥분 때문인지, 애당초 범죄자였거나 본래 그런 성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자제심을 잃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일을 저질렀다.

문제는 그것을 처리해야 할 초인관리국의 조직력도 완전치 않다는 것이었다. 인력도 크게 부족한데다, 그들도 오늘 막 각성한 상황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방금 각성을 마친 시민들과 사정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각성한 시민들이 등록을 위해 일제히 몰려들면서, 초인관리국의 각 지역의 지부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미리 대비를 했어도 가용인력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범죄자들까지 극성이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어서 사람 보내! 00은행을 그냥 놔둘 순 없잖아.”

“전해온 정보에 의하면 영능력자가 무려 다섯이랍니다. 섣불리 대응할 수가 없어요.”

“이런 젠장!”

초인관리국이든 이능을 범죄에 사용한 놈들이든 영능을 각성한 시기는 바로 오늘이었다. 능력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으니, 결국 놈들을 확실히 제압하려면 그 이상의 인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럴 인력이 어디 있겠는가? 인력도 부족하고, 오늘 첫 출범이라서 다들 우왕좌왕하고 있는 상황이거늘.

결국 갈등하던 지부장이 결단을 내렸다.

“휴···그들에게 연락해! 지금 우리로서는 도저히 감당 불가다.”

“예.”

EAS담당 오퍼레이터가 즉각 연락을 취했다. 그들이 도움을 청한 곳은 다름 아닌, KM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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