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89화 (290/448)

12권-14화

그는 아침식사를 마친 뒤 곧바로 현관을 나섰다. 부모님은 벌써 나가신 뒤였다. 할아버지 댁에 들러 할아버지와 할머니 두 분을 모시고 초인관리국에 먼저 등록을 하러 가신다고 하셨다.

“그럼 나도 슬슬 가볼까?”

집을 나선 김진수는 걸으면서도 계속해서 아르케베인 컨트롤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앉아서 정신집중 한 정자세로 하는 것보다는 못했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었다.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조금씩 쌓여가는 영력이 느껴졌다. 지금으로선 티끌만도 못한 수준이었지만, 이게 하루하루 쌓여나간다면 수년 뒤에는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다.

물론 초심자라면 영력을 축적하면서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김진수는 가상현실이라고는 해도, 황혼과 새벽 내의 세계에서 무려 수년 이상 수련해온 숙련자였다. 이 정도 쯤은 숨 쉬는 것만큼 간단했다.

물론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것도 금세 적응해냈다.

“···확실히 세상이 달라지긴 달라졌나보네.”

길을 가면서 주변을 돌아본 김진수는 세상이 변했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나게 와 닿고 있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전혀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멀쩡한 버스 내버려두고 그 옆으로 버스 속도에 맞춰 달리는 자기 또래의 애들이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무슨 부유 계통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 둥둥 떠서 날아가기도 했다.

그밖에도 이능을 사용해 담배를 피우면서도 연기를 사라지게 만드는가 하면, 복잡한 거리 대신 건물의 옥상을 뛰어넘으면서 이동하는 녀석들도 더러 보였다. 물론 정말 급해서 저럴 수도 있지만, 그 중 대부분은 관심종자로 보였다. 심지어 몇몇 녀석들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었으니까.

물론 어느 정도 이 사태가 안정되고 나면 저런 철없는 행동들도 제재 받을 테지만, 지금은 각성초기 시점인 만큼 다들 이능을 시험해 보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에휴, 가자 가!”

김진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실력을 보인다면 저들보다 더 나을 자신은 있었지만, 저렇게 대놓고 영능을 사용해 가며 거리에서 활보할 관심종자는 아니었다.

어느덧 큰 거리를 지나 약간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이곳을 지나면 곧장 초인관리국 지부가 나타날 것이다.

지름길을 이용해 이동하던 그때, 뭔가 소란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좌측에 있던 저축은행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뭔데 이 난리야?”

김진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박살난 문과 엉망이 된 저축은행 내부의 전경이 보였다.

“뭐야, 이건··· 설마, 강도야?”

김진수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저 박살난 문과 벽을 보면 그냥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게 아니야. 분명 이능을 사용했어. 진짜 어이가 없네. 무슨 각성하자마자 은행 강도짓이야?’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도 김진수는 저축은행 근처로 조용히 다가갔다. 평소라면 위험한 곳에는 절대 발길조차 들이지 않았을 테지만, 이능을 각성한 이후 그의 간담도 커졌다. 하긴 게임 상에서는 수많은 저급 인베이더들을 학살했던 경험이 있었던 그였다. 게다가 현실에서도 똑같이 이능을 각성하고 나니, 그때와 같은 담력이 생겨난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간 저축은행 안으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자자, 돈을 꺼내 놓으라고! 여기 있는 사람들 다치기 전에! 어서!”

“빳빳한 현찰로 준비해. 수표는 필요 없어! 어서 주워 담으라고!”

강도들이 은행 직원들을 협박해 돈 자루에 현금을 쓸어 담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강도로 추정되는 인물은 복면을 뒤집어 쓴 다섯이었다.

전부 다 이능을 각성한 자들로서, 그 힘으로 은행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걸 어쩌지?’

막상 가까이 접근하긴 했는데, 어찌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임 상이었다면 고민조차 하지 않고 나섰을 테지만, 여긴 현실이었다.

잘못 손을 썼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강도들은 물론, 자칫하다간 인질로 잡힌 사람들까지 위험했다.

부서진 벽 뒤에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내부의 상황을 살피던 그때, 어떤 파공성이 들려왔다.

쿠아아아!

“윽!”

김진수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이 그의 머리가 있던 벽의 잔재를 박살내었다.

콰아앙!

‘칫, 들켰나? 근데 지금 그건 뭐지? 보이지 않았는데. 그냥 영력을 쏜 건가? 아니면 염동력? 아니면 대기제어?’

황혼과 새벽을 플레이하면서 상당한 실전을 경험한 김진수는 당황하기보다는 냉정하게 상황을 읽어나갔다. 거기서도 여러 영능력자들과 대련해 보면서 꽤나 많은 이능들을 체험했었다.

“뭔 쥐새끼가 숨어 있었네.”

이번 공격에 박살난 벽 뒤에서 김진수가 튀어나오자, 강도들 중 하나가 흉흉한 기색을 드러냈다. 방금 그것은 보통 사람이거나, 비전투능력자라면 결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이를 피해냈다는 건 상대도 제법 한가락 하는 영능력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김진수의 모습을 확인한 강도가 이내 갖잖다는 듯 중얼거렸다.

“뭐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녀석이잖아?”

“임마! 어리다고 얕보지 마! 상대가 전투계 영능력자라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알았어! 잔소리는!”

옆에서 경고하는 또 다른 동료의 말에, 강도는 성가시다는 듯 투덜대면서 김진수를 향해 다가왔다.

‘···이렇게 된 이상 싸워야 하나?’

한편 점점 다가오는 강도의 모습에, 김진수는 싸울 대비를 하면서도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됐는지를 한탄했다.

정의감이라곤 한 톨도 없던, 평범한 소시민인 자신이 강도를 상대로 싸우게 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애당초 이능을 각성했다고 가벼운 흥분감에 행동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냥 후회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미 강도들은 자신에게 적대감을 비치고 있었다.

“자, 죽이진 않을 테니 얌전히 있어! 움직이면 크게 다칠 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강도가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그러자 대기가 이지러지는 느낌이 드나 싶더니, 어떤 파공성과 함께 무언가가 앞으로 쇄도해왔다.

하지만 김진수는 그 광경을 똑똑히 보았다. 아르케베인 컨트롤이 본격적으로 운용되면서, 전신의 반응속도가 대폭 상승된 탓이었다.

파직! 파지직!

‘보이지 않는 탄환!? 대기가 일그러지면서 날아오는 걸 보니 역시 대기제어 쪽인가?’

뚜렷하진 않았지만, 대충 무형의 탄환이 지나가는 궤적이 파악되었다. 허공이 약간 이지러지면서 흔적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눈에 보인다면 피하는 건 어렵지 않다. 김진수는 즉시 일보 옆으로 움직이면서 탄환의 궤적으로부터 종잇장 한 장 차이로 벗어났다.

황혼과 새벽에서는 이보다 더 빠른 탄환도 피한 적이 있었다. 물론 신체는 게임상의 아바타보다는 못했지만, 그 경험이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이놈이!”

바람의 탄환을 피해낸 김진수의 모습에 강도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반응해왔다. 이젠 하나가 아니었다. 다수의 탄환이 동시에 생성되면서 허공에서 일그러짐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의 위력은 어지간한 총탄에 버금갔다. 제대로 맞는다면 몸이 성하긴 어려워 보였다.

‘젠장! 게임 상에서는 이딴 탄환 따윈 그냥 맨몸으로 뚫고 지나가는 건데.’

그렇지만 생각과는 달리, 김진수는 빠르게 탄환들의 궤적을 캐치한 뒤, 대응에 나섰다. 그의 주먹 위로 흐릿한 전류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맹렬한 기세로 허공을 때리기 시작했다.

팡! 파파파팡!

“뭐··· 뭐야, 전부 쳐내!?”

바람의 탄환을 쏘아낸 강도가 당황하며 물러섰다. 설마 음속에 달하는 탄환들을 죄다 맨주먹으로 쳐낼 거라고는 상상도 못해서였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빨랐다. 바람의 탄환을 쳐낸 김진수의 신형이 어느새 그의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아르케베인 류.

진회일혼격(震廻一魂擊).

신체에 흐르는 전류가 맥동하면서 회전하고, 그것은 고스란히 오른 주먹에 실린다. 그 양은 미약했지만, 위력만큼은 한 사람을 쓰러뜨리기엔 차고도 넘쳤다.

투웅!

“커으···!”

복부에 가해진 통렬한 일격에 강도의 몸이 기역자로 꺾였다. 그리곤 끝이었다.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곧 의식을 잃고 축 늘어졌다.

“뭐!?”

“쓰러뜨렸어?”

강도들이 대경하며 김진수를 돌아보았다. 지금 당한 녀석도 나름대로 황혼과 새벽에서 괜찮은 실력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일격에 쓰러질 녀석은 결코 아니었다.

그제야 강도들이 김진수에 대해 경각심을 드러냈다. 어려보이는 나이와 달리 가진 실력만큼은 자신들을 웃도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아무리 방심했다 해도 저렇게 간단히 일격만으로 쓰러질 순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경계하기도 전에 이미 김진수의 신형은 그들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이놈이!”

강도들도 마냥 당하고 있진 않았다. 그들도 황혼과 새벽을 플레이 하면서 나름대로 실전을 경험한 자들이니까. 비록 가상현실 속의 경험이라 해도, 거의 현실과 다름없어서 우습게 볼 건 아니었다.

쿠우우!

가장 가까운 강도를 공격하려는 순간, 김진수는 갑자기 알 수 없는 무게가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이 순식간에 몇 배로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대기가 날 짓누르는 게 아니야. 염동력도 아니고. 그럼 중력계?’

중력계라면 생각보다 고차원적인 이능이었다. 영능력자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인원만 각성할 정도로 귀했으며, 그 쓰임새도 그러했다.

헌데 그런 인재가 고작 강도짓에 참여하다니!

내심 기가 막혔지만, 그의 몸은 이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대응에 들어갔다. 신체에 흐르는 전류가 변화하더니, 외부로 방출되면서 주변에 전자기장을 생성시켰다.

이것이 바로 전자기장의 변화에 의한 중력장의 상쇄였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자들이나 인베이더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 이런 대응기술은 숙지해두는 것은 필수였던 것이다.

“아니, 이렇게나 빨리?”

중력장을 전개해 김진수의 움직임을 묶어두려 했던 강도는 깜짝 놀라 외쳤다. 중력장을 상쇄하는 기술들이 여럿 있는 건 알고 있지만, 그걸 이 짧은 새에 성공시키는 것은 어지간한 실력 가지고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틈을 타 김진수가 깊게 파고들어왔다.

“그냥 멍청히 있지 마!”

우우웅!

하지만 나머지 강도들도 그냥 멍청이들은 아니었다. 동료가 당할 것 같자, 즉시 개입해 들어왔다. 누군가가 펼친 능력인지 중력장을 사용한 강도의 전신에 반투명한 둥근 방어막이 형성되어 있었다.

쾅!

김진수의 주먹이 그 위를 강타했지만, 방어막은 표면 위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면서 충격을 모조리 흡수해내고 말았다.

그의 눈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방어막 능력자야? 하필이면 그냥 단단한 방어막도 아니고 유연한 타입이라니······.’

충격을 흡수해 상쇄하는 유연한 방어막 타입은 뚫기가 꽤 까다로운 종류 중 하나였다. 그냥 주먹질을 강하게 한다 해서 뚫는 건 사실상 무리였다.

그렇지만 방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이건 되도록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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