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13화
그로부터 얼마 뒤, 연방 직속 기관인 초인관리국이 출범하였다. 직관적으로 지어진 명칭 그대로 앞으로 각성하게 될 영능력자들을 관리하기 위한 연방의 공공기관이었다.
영능력자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막고, 그들에게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는데, 이를 위해 막대한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었다.
그리고 인피니티 킹덤이 보유하고 있던 기술 중 일부가 더해지면서, 초인관리국은 완벽에 가까워졌다. 이능의 사용 발생과 위치를 감지하는 것은 물론, 그 종류까지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 EAS(Ether Action Scanner)감지기가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이 도입되면서 지구연방은 이제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온 지구인들의 영능 각성에 대해 조금이나 한시름을 덜게 되었다.
하지만 방심하기엔 일렀다. 전 세계 사람들이 영능을 동시에 각성하는 일은 그야말로 전례가 없던 대사건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만큼 지구연방에서는 더더욱 철저한 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공서 등의 긴장된 분위기를 느끼면서도, 다들 기대에 차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바로 내일이지?”
“그래, 맞아. 내일이 각성일이야.”
“현실에서 이능을 사용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뭐, 그거야 황혼과 새벽에서 하고 별 차이 없지 않을까?”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
“정말 믿기지가 않아! 현실에서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니 말이야.”
현실에서 이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많은 것이 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황혼과 새벽을 통해 이능이 존재하는, 앞선 미래 사회가 어떤 형태인지 다들 체험해 본 상태였다.
과학기술은 물론, 의료, 정치, 문화, 예술, 레저 등 사회의 모든 문명이 거의 천지개벽하는 수준으로 바뀌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런데 각성한 다음에 근처에 있는 관공서에서 등록을 해야 한다고 했지?”
“맞아, 등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능을 쓰면 범법자로 취급한다고 하더라.”
연방정부에서는 사람들에게 이능을 각성하게 될 날짜와 시간을 고지해주는 한편, 그들에게 반드시 초인관리국의 각 지점에서 등록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것은 주민등록이나 마찬가지라서, 지구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필수였다.
물론 이에 대해 거부감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에 찬동했다. 그들도 황혼과 새벽에서 경험해 봤기 때문이었다. 이능이란 힘이 사용하기에 따라 얼마나 강력하고, 악용될 수 있는지를.
특히 이능이 아예 존재하지 않던 지구에서 이능에 의한 범죄가 발생할 경우, 더 무서운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구연방의 대처도 꽤 단호했다. 정해진 기한 내에 자신의 이능을 초인관리국에 등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조건 무기징역수에 해당하는 범법자로 등록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러니 등록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사람들은 자신이 각성하게 될 이능을 상상하며 단 꿈에 젖어들었다.
그것은 김진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돈을 털어 가상현실접속기기를 구입한 이후, 열심히 황혼과 새벽에 접속해온 그는 나름대로 상위권에 준하는 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게임 상에서 랭커가 되지 못한 건 안타까웠지만, 앞으로도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현실에서만큼은 반드시 랭커가 되겠어!”
그는 주먹을 불끈 쥐면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초인관리국에서 발표한 각성 예정 시각은 새벽 5시였다. 어느 정도 오차가 있을 수 있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봐야 10분 정도라고 했으니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4시를 넘어섰다. 이제 1시간만 지나면 현실에서도 각성이 이루지게 된다.
“아, 진짜 떨리네!”
게임 상에서 이능을 각성했을 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힘의 실체가 자신 안에서 용솟음 칠 때 얼마나 놀랍고 신비로웠던가?
아마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할 것이다. 황혼과 새벽은 유저들의 안전을 위해 감각 싱크로율 설정을 크게 낮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고통 등 유저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감각들을 중점으로 낮추고 있긴 하지만, 영감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만큼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 감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KM사에서 발표했었다.
어서 각성시간이 되길 1초 1초 기다리던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하아암, 아직 안자고 있었니?”
뒤를 돌아본 김진수의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주무시다가 잠시 목이 말라 나오신 건지 손에는 컵이 들려 있었다.
“네, 엄마. 이제 곧 각성 시간이거든요. 이제 30분 정도 남았어요.”
“그래, 꼭 좀 잘 됐으면 좋겠구나.”
어머니는 아들 김진수의 열망에 찬 모습에, 짧은 격려의 말을 건네고는 다시 방안으로 들어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부모님은 딱히 영능에 대한 자질이 없었다. 아버지는 간단한 신체 강화가 전부였고, 어머니는 가벼운 질량의 물건만 들어 올릴 수 있는 염동력자였으니까.
물론 이것들도 성장시키기에 따라 얼마든지 대단한 능력이 될 수 있을 테지만, 재능 자체가 최하위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제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F랭크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아들이 잘되기만을 바랬다. 김진수는 그들과 달리 뛰어난 재능을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황혼과 새벽 내에 있는 교관의 말에 따르면 성장하기에 따라선 C랭크에도 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많은 노력이 따라야 할 테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대할만 했다.
“돼··· 됐다! 시간이 됐어!”
새벽 5시를 넘어 5시 8분을 넘기는 순간, 김진수는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옴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살아오면서 다룬 오감 외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그런 변화였다.
그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비하면서도 영롱한 무형질의 힘이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아아··· 이게!”
이것이 바로 영능을 가능케 해주는 힘의 정체인 영력! 눈에 보이지 않고, 현재의 과학력으로는 관측조차 할 수 없는 무실체의 영적 에너지였다.
그것이 지금은 손에 닿을 것처럼, 아니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몸 안과 밖을 들락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후우읍!”
그는 진하게 여운을 남긴 각성의 여파를 떨쳐내기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즉시 호흡하기 시작했다. 영능은 단순히 각성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각성은 겨우 시작일 뿐, 앞으로 수련을 통해 성장시켜 나가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교관을 통해 배우고, 유튜브에 출연했던 연합의 강사로부터 가르침 받았던 운용법을 전개해 나갔다.
1단계 아르케베인 컨트롤. 전격 능력자들만이 배울 수 있다는 아르케베인 유파가 보유한 기초 운용법이었다.
호흡과 함께 심장을 중심으로 전류를 전신에 퍼뜨렸다가 회수하는 방식으로 영력을 축적해 나가며, 그와 동시에 영력에 대한 제어력을 키울 수 있게 해준다.
김진수는 황혼과 새벽에서 했던 방식 그대로 행해나갔다. 이미 게임 상에서 수도 없이 경험해 본 터라, 운용법을 다루는 건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처음 시도해보는 거였지만, 그는 어렵지 않게 성공했다. 단지 현실의 감각이 더 예민한 탓에 운용법을 시전하던 도중, 약간 움찔 놀랐을 뿐 그 외에 별 탈은 없었다.
“이제 진짜로 현실에서도 영능력자가 됐어.”
파직!
김진수는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보였다. 그러자 손끝에서 일어난 전류가 푸른 빛을 토하며 방전을 일으켰다.
지금 수준으로는 정전기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지만, 이걸 어떻게 발전시키느냐에 따라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현재 황혼과 새벽에서 달성한 그의 레벨은 72레벨. 최상위 권이라는 80레벨 대에는 못 미쳤지만 이 정도만 해도 어디 가서 크게 꿀리진 않는다.
“그런데 게임상의 실력을 따라가려면 아직 한참 멀었네.”
이제 막 각성한 탓인지 김진수의 현재 실력은 20레벨 대에도 못 미쳤다. 아니,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10레벨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도 그가 게임 상에서 쌓은 실력과 경험이 아니었다면, 5레벨 이하의 수준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래도 이만하면 초인이지. 그래봐야 리얼계 수준이겠지만.”
그가 일으킬 수 있는 전력의 수준은 별 거 아니었지만,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인간의 육체는 전기신호에 의해 움직인다. 그렇다면 이 전류의 흐름을 제어해서 신체의 움직임을 강화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아르케베인 유파에서 가르치는 기초운용법의 실전활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영력의 양이 이렇게 작아서야 몇 번 쓰지도 못하겠네.”
이제 막 체내에 그릇을 만든 시점이었다. 그 안에 쌓인 영력의 양은 먼지만도 못했다.
김진수는 문득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현재 시간은 어느덧 6시를 넘기고 있었다.
“오늘 학교는 휴교였지? 그리고 초인관리국 지부는 9시에 연다고 했고.”
그가 다니는 고등학교뿐만 아니었다. 전국에 있는 초중고는 물론 대학교까지 모든 학교들이 휴교령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전 세계 사람들이 동시에 이능을 각성하는 날이었다. 그러니 학교가 정상 운영될 리 만무한 것이다. 회사들도 대부분 오늘 쉰다고 공언하였고, 은행과 같은 중요한 금융기관이나 관공서를 제외하면 대부분 여는 곳이 없었다.
오늘 가장 바쁠 곳이 있다면 아마도 해당 지역 사람이 몰려오게 될 초인관리국 지부가 될 것이다.
“그럼 그때까지 운용법이나 하고 있어야겠네. 어서 키워야지.”
김진수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두 눈을 감고 아르케베인 컨트롤에 빠져들었다. 밤새 잠을 자지 않았지만, 영력을 운용할수록 신체가 더욱 활발해지고 쌓였던 피로가 완전히 가시는 느낌이었다.
조금이라도 영력을 더 쌓기 위해 그는 8시까지 운용법에 빠져들다가, 부모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겨우 자리를 떨치고 일어나게 되었다.
만일 부모님이 부르지 않았다면, 정오가 될 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이거 큰일이네. 한번 빠져들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김진수에게 있어 영능은 마약과도 같았다. 일단 몰두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련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게임 상의 교관들도 그런 자신의 모습에 독종이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말이 과히 나쁘진 않게 느껴졌다.
‘이제야 내 길을 찾은 것 같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김진수는 무언가에 열중해본 경험이 없었다. 공부는 물론 예체능이나, 아이들과 같이 즐겨 노는 일에도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냥 이상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남들 하는 만큼만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황혼과 새벽을 시작하면서 그는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느꼈다.
“뭐 나쁜 일은 아니겠지. 이건 그냥 게임중독도 아니니······.”
게임 내에서의 성취가 바로 현실의 이능의 성취와 연결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부모님들도 나름 염려하면서도 아들을 말리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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