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86화 (287/448)

12권-11화

유저들이 40레벨에 올라선 이후부터 성장이 두드러지게 정체되었다. 50레벨까지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방법을 찾지 못해서였다. 심지어 상위권 중 일부는 벌써 50레벨에 도달해 그 다음으로 넘어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태.

무공으로 말한다면 3류에서 2류로 넘어가는 고비라 해야 할 것이다. 기감을 일깨우고 토납법으로 기를 축적하는 것까진 성공했지만, 이걸 실제 활용하는 단계에서는 다들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머릴 맞대며 고민했지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경험하던 유저들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대체 게임을 어떻게 하란 거야?]

[KM사는 뭔가 대책을 내놔라!]

[NPC교관들에게 물어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아. 이론은 빠삭한데, 실전은 영 아니라고 해야 하나? 이런 놈들에게 뭘 배워?]

[이거 KM사 놈들이 일부러 떡밥만 뿌려놓고, 우리가 영능을 익히지 못하게 그러는 거 아니야? 제대로 된 교육 방법조차 없잖아.]

[그럴 리가. 그랬다면 애당초 영능의 존재를 공개 하지도 않았겠지.]

[답답해 미치겠네. 이거 이러다가 후발주자들에게 따라잡히겠어. 그동안 죽어라 노가다 한 게 황이 되어 버렸다고!]

[아니면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 업데이트가 안 되었다든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안 될 리가 없잖아.]

[야, 느긋하게들 하자. 뭘 그렇게 서둘러 해?]

[오픈한지 이제 겨우 한 달 지났다, 미친놈들아.]

[50레벨 달성! 아, 겜 ㅈ나 할 게 없네. 컨텐츠가 부족하네.-토끼공듀-]

[망겜이 다 그렇죠.]

[인생을 살아주세요, 콘~!]

[야, 다들 고려해라. 이것들은 하루에 20시간 이상씩 게임을 쳐 하고도 항상 재밌길 바라는 등신들이다.]

[저것들은 인간이 아님.]

물론 대부분의 유저들은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입장이었지만, 성격 급한 자들은 벌써부터 난리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은 대부분 한국 출신이었다.

유태진은 그런 상황을 확인하고는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예전부터 한국 출신 게이머들이 유독 더 극성이라더니, 그게 정말이었나.”

게임 자체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보육원 아이들 때문에 어느 정도 귀동냥은 해서 알고 있었다. 오죽하면 게임 업계에서 코리안 컨텐츠는 난이도부터 다르게 잡아야 한다고 했을까?

그만큼 한국인은 경쟁요소가 개입되면 미친 듯이 앞서 나가려는 경향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서둘러 준비했는데, 딱 시기가 맞는 것 같군.”

유태진이 앞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지금 시기에 맞추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유저들의 성장속도는 예상 밖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서비스를 시작해볼까?”

“예, 사령관 님.”

이미 이번 서비스에 관한 기사는 내놓은 상태였다. 지난번 발표 때 스피릿 나이트의 검술을 전 세계인 앞에서 시범을 보였던 그 기자에게 약속대로 단독 인터뷰를 해준 것이다.

그는 신이 나서 인터뷰를 진행했고, 이를 토대로 곧장 기사화 시켰다.

[황혼과 새벽! 새로운 서비스 등장!]

현재 유저들의 평균 레벨이 40대에 거의 근접하고, 최상위권이 50레벨을 달성한 지금 가장 유저들이 고대하고 있는 컨텐츠는 바로 50레벨 이상의 경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영력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되는 51레벨부터는 급격한 난이도 상승과 더불어 영능에 대한 높은 이해를 요구하는 탓에 지금까지 선두를 달려온 유저들조차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KM사에서는 이를 위해 새로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유저들이 가장 막막해하고 있는 영능학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담은 강의인데, 바로 이틀 뒤 23일부터 유튜브를 통해 공개 방송할 예정이라고 했다.

아르탈 행성 연합 출신의 현직 능력자들이 다수 강사로 출연할 예정이며, 각 학파나 영능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채널을 개설해 강의를 진행할 예정인 만큼, 현재 진행이 막힌 유저들은 필수적으로 청강하는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이 기사가 나간 직후, 전 세계인들은 그야말로 열띤 환호를 보내왔다. 안 그래도 어떻게 레벨을 올려야 하나 막막해 하던 판국에, KM사에서 적당한 해결책을 제시해준 것이다.

물론 강의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NPC에게 의존해 배우는 것보다는 적어도 백배는 더 나을 거라 믿었다.

그것은 김진수도 마찬가지였다. 용돈으로 가상현실기기를 구입한 후, 첫 접속으로 자신의 영적 재능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에도 매일같이 들어가 실력을 갈고 닦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진수가 게임에만 빠져 사는 줄 알고 강력히 반대했지만, 이젠 전 세계가 영능을 수련하는 것이 대세가 된 터라 더 만류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해서 부모님의 지원 하에 황혼과 새벽을 시간 날 때마다 플레이 할 수 있었고, 지금은 유저들 중에서는 제법 고수라고 불릴만한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그의 레벨은 49레벨. 현재 최고 레벨 유저들이 달성했다는 50레벨과는 불과 하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하지만 레벨이 오를수록 쉽지 않음을 느꼈다. 레벨 하나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격차를 지닌 것인지 새삼 절감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장이라도 50레벨이 되고, 마의 벽이라 불리는 51레벨에 오를 것 같으면서도 좀체 닿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KM사가 주관하는 유튜브 강의가 시작된다는 정보를 접하자마자 본방사수를 위해 홀로그램 스크린을 켜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봐야 할 채널이 이건가?”

시간이 되자 강의가 등록되기 시작했는데, KM사가 유튜브에 등록한 강의 숫자는 무척 많았다. 황혼과 새벽에서 취급하는 영능의 수만큼, 강의 종류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김진수는 그 많은 목록 중에서 자신이 청취해야 할 강의를 찾아냈다. 모듈밴더는 놀라운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있어서 그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원하는 강의를 찾아내 열어주었다.

강의 영상이 펼쳐지자마자 그의 눈앞에 보인 것은 긴 금발을 늘어뜨리고 있는 꽤나 핸섬한 사내였다. 그가 손을 흔들면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지구인 여러분. 저는 아르탈 행성 연합의 관리국 휘하 독립함대, 인피니티 킹덤의 강습전대 소속 C+랭크 오버러 [루겔린 론하우드]입니다. 제 전문 분야는 바로 일렉트로닉 컨트롤러. 바로 전기제어능력자지요. 앞으로 같은 계통의 재능을 타고나신 여러분들과 함께 강의를 진행하게 될 겁니다.]

김진수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같이 인사할 뻔했다. 상대가 자신의 눈앞에 존재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너무 생생한 나머지 잠시 착각했던 것이다.

강사의 인사말이 나오자, 같은 강의를 청취하고 있던 사람들이 쏟아낸 리플들이 우후죽순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말로 외계인 맞아요?]

[우리와 다를 게 없네. 신기하다.]

[님은 레벨 몇인가요?? 실력이 어느 정돈데요?]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얼마나 많은 말들이 쏟아지는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그들이 단 리플에는 강의와 관련 없는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영상 속의 루겔린은 그들로서는 난생 처음 접하는 순수 토종 외계인(?)이었으니까.

물론 KM사의 사장인 유태진이 몇 번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지만, 그의 출신은 지구라고 했다. 그렇다면 외계인 세력에 몸담고 있다 하더라도 그를 외계인이라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루겔린은 올라온 리플들을 한 차례 죽 훑어보더니,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일단 제 개인 프라이버시나 혹은 강의와 관련 없는 질문은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제 레벨이 궁금하신 모양인데, 저의 오로라 시스템 주관 레벨은 182입니다. 50레벨 이하의 심해에서 헤엄치고 있는 여러분들과 비교하면 한참 높은 고수지요. 앞으로 여러분들을 가르치기에는 충분할 겁니다.]

나름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거나, 혹은 심보가 비틀린 자들이었다. 그들이 악의에 찬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흥, 이 겜의 만렙이 500렙이라며!? 그에 비하면 182렙은 찌끄레기 아니야?]

[182렙? 나도 요령만 터득하면 그깟 레벨은 금방 달성할 수 있어.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겜이 스무 가지가 넘는데, 항상 한손에 드는 랭커였지. 몇 년만 지나면 난 한 250레벨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걸?]

올라오는 리플들이 아주 가관이었다. 자신들이 다른 게임에서 대단한 실력자였으며, 이 게임도 어느 정도 시간만 지나면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슬쩍 강사인 루겔린의 실력을 폄하했다.

그러자 루겔린이 곧 냉소적인 웃음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과연 그럴까요? 자신감이 너무 과하군요. 당신이 언급한 500레벨은 무려 하급신의 영역입니다. 여러분들이 몇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경지지요.]

하급신이라는 말에 청취자들 중 일부가 의문을 표했다.

[하급신? 하급신이라니 그게 뭐야?]

[그거 몰라? 황혼과 새벽의 세계관에 있잖아. 거기엔 신도 정말 존재하고, 신들도 나름 등급이 존재한다는 거.]

[그럼 하급신이면 별로 대단치 않은 거 아니야? 하급인데?]

[미친 하급 신이라고 우습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신은 신이야. 지구 따윈 그냥 손바람으로도 박살낼 수 있는 존재라고.]

황혼과 새벽의 배경지식과 세계관에 대해 나름 통달한 몇몇 유저들은 무지한 유저들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그제야 다른 유저들도 500레벨이 얼마나 까마득한 경지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덕분에 상황이 어느 정도 조용해지자, 루겔린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250레벨을 운운하신 분이 계시던데, 솔직히 250레벨만 되도 무려 마이스터 급입니다. 여러분들은 마이스터 급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아십니까?]

그의 물음에 어느 유저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이 배경 지식을 안다 하더라도 그건 대략적인 수준일 뿐, 구체적인 내용을 아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인베이더에서는 그와 동급의 개체를 성멸 급이라고 표현하지요. 왜냐면 성멸 급은 단독으로도 성계 하나를 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와 같은 하위 문명이라면 더 간단하지요. 아마 성멸 급 하나만 이곳에 들이닥쳐도 지구가 멸망하는 데엔 불과 며칠도 안 걸릴 겁니다. 헌데 그런 성멸 급과 동 레벨의 고수가 바로 마이스터입니다. 그런데도 250레벨이 우습게 보입니까?]

[······.]

사람들은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비로소 실감이 난 것이다. 지구를 단독으로 멸망시킬 수 있는 이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 그것이 바로 250레벨의 마이스터라니. 그렇다면 182레벨이라고 밝힌 루겔린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실력자란 의미였다.

그리고 250레벨을 운운했던 그 유저의 발언이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도 깨달았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달성한 50레벨은 기나긴 영능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제 겨우 시작점에 불과합니다. 51레벨부터는 본격적으로 영능을 운영하는 법을 배우며, 사실상 제대로 된 영능력자로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100레벨은 되어야 합니다. 연합에서 나눈 등급으로 표기한다면 D-랭크라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그 정도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들조차 연합 전체의 인구에 비한다면 고작 0.0001% 수준입니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떨까요?]

0.0001%라면 적어도 너무 적었다. 지구 인구가 70억이라면 고작 700만도 채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

하지만 이것도 루겔린이 아주 높게 잡아 이야기한 수치였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비율이 낮았다. 그래서 리스티와 유태진이 개발한 기간트가 발표된 직후 연합 전체가 열광했던 것이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여러분들이 제대로 된 영능력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겁니다. 그럼 강의 시작하겠습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