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10화
그렇게 교수나 박사처럼 머리 좋고 학식 있는 자들까지 두 손 두 발 다 들자, 사람들은 우왕좌왕하며 방법을 찾아 헤매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있을 리가 없었다. 애당초 영능학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개념의 학문이다. 참고할만한 뭔가가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황혼과 새벽은 공략 없냐?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들어도 도통 모르겠어. 정말로 외계어를 듣는 것 같아.]
[야, 이 겜에 공략이 있을 리가 없잖아. 누구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데 말이야.]
[그럼 지금부터 삽질을 해야 한다는 말이네. 젠장, 게임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머릴 굴려야 하나?]
[애당초 평범한 게임이 아니잖아. 초능력자가 될 수 있다는 게임인데 쉽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럼 넌 포기해라. 애송아.]
[이 자식이, 누가 그만 둔대!]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초인이 될 수 있는데, 쉽게 포기될 리가 없었다.
덕분에 황혼과 새벽에 관련된 커뮤니티들이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 되었다. 다들 방법을 찾을 수 없자 서로 머리를 맞대며 다양한 방법들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 그러니까요. 거기서 호흡을 조금 가볍게 하시고요. 그 다음 동작에서 영력의 흐름을 조금 느슨하게 조절하는 게 중요해요.]
[근데 여기서 일심(一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래요? 교관이 자꾸 나더러 일심을 강조하면서 구박을 주더라고요.]
[잡념이 많다는 뜻. 생각이 많으면 네가 통제하는 영력의 흐름도 흐트러져. 그러니까 생각을 하나로 모으라는 거임. 딴 생각 좀 하지 말고. 이제 알간, 닝겐?]
[이래도 못 알아들으면 닝겐이 아니지.]
[아 진짜! 내가 가장 못하는 게 집중인데. 뭔가 방법 없어요?]
[정 안되면 폭포수 같은 데 가서 물이라도 맞으면서 잡념 지우는 수행이라도 하든가. 그것도 싫으면 돈 주고 명상 학원가서 배워. 배워서 남 주나?]
물론 쉽지는 않았다. 듣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학문을 공부한다는 게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각자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있었고, 사람들은 그런 경험들을 서로 공유하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게다가 영능학이라고 해서 지구에 있는 지식들이 아주 필요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 진짜! 오늘 NPC교관에게 병신 취급당했다. 나 스나(스피릿 나이트)인데 검의 파지법도 제대로 모른다고 지랄을 하더라. 그럼 어떻게 하라고? 내 지금까지 검은 쥐어 본적도 없었는데 말이야.]
[그럼 때려 치든가. 스나 말고 다른 것들도 많잖아.]
[이 노답 겜은 클체(클래스 체인지)도 안 돼. 무조건 자신이 가진 재능에 맞춰서만 배울 수 있어. 다른 거 배울 수 있었다면 당장 그렇게 했다.]
[애꿎은 NPC교관 탓 하지 말고 니가 알아서 배워. 검술을 배운다는 놈이 기본적인 것도 숙지 안하고 간 게 병신 짓이지. 주변에 검술도장 많잖아. 검 파지법 정도는 딱 한 달만 끊어도 배울 텐데, 그 정도 투자도 안 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와, 진짜 등신이네. 자기가 배우는 종목의 기초 정도는 좀 배워 둬라. 검술 기초 같은 건 현실에서도 배워 두면 황혼과 새벽에서 엄청 도움 되는데, 고작 돈이 아까워서 안 배워?]
현실에서 검술을 배웠던 자는 황혼과 새벽에서도 검술과 관련된 영능을 배우는 데 이점이 있었고, 그건 체술이나 그 밖의 것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투로나 형식은 지구의 것들과 판이하게 달랐지만, 그래도 그동안 수련한 게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기초가 잘 닦인 만큼 남들보다 훨씬 앞서나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영능의 종류는 많고도 많았다. 굳이 주류가 아니더라도, 비주류의 영능들 중에는 지구의 지식들과 서로 어우러질 수 있는 것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었다.
그림에 영능을 담아 초현상을 일으키는 학파도 있었고, 악기나 노래에 영력을 실어 마법과 유사한 결과를 내는 유파 등 지구인들에게도 친숙할만한 영능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전 세계적으로 배움의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배움은 한 방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종류와 분야를 불문하고 자신이 게임상에서 배우는 영능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거라면 닥치는 대로 배웠다.
심지어 식물 제어 쪽의 영능을 배운 어떤 사람은 곧장 시골로 귀농하여 전문 농사꾼들에게 직접 농사를 배우기도 했다.
그들은 게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고, 그것이 후에 자신의 성공한 장래로 이어질 것이라 믿었다. 그만큼 배운 대로 성과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장 현실에서 이능을 사용할 수는 없었지만, 게임에서 그만큼 성장한 자신의 아바타를 보면서 자신의 투자가 헛되지 않다는 사실에 더더욱 투자를 망설이지 않게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일부 기초 부분에서는 지구의 지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도움이 됐겠지만, 나중에 가선 그것도 어려우니까.”
유태진은 이렇게 상황이 흘러갈 것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지구인들이 벽에 막힐 것도 예상했다.
황혼과 새벽은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니었다. 기존의 게임처럼 단순히 싸우거나 경험치를 쌓아서 레벨 업을 통해 강해질 수 있는 게 아니라, 학습과 체험을 통해 자신이 배우고 있는 분야에 대한 이해와 습득이 이루어져야 다음 단계로 올라서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게임인 만큼 일단 레벨이란 단계는 존재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달성한 경지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숫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고로 일반적인 게임처럼 노가다로 레벨을 올리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하긴 깨달음의 벽을 넘는 게 쉬운 건 아니죠. 하물며 그런 경험은커녕 주변에 그런 전례조차 없는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니 더 어렵게 느낄 수도 있겠네요.”
리스티도 그 말에는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합에서는 벽에 막힌 사람들을 이끌어 주거나 조언을 해줄 사람들이 널려 있지만, 지구에서는 다 같은 출발선상에 놓여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딱히 누가 누굴 이끌어주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 같은 방식으로 어떻게든 50레벨까지는 꾸역꾸역 올라가겠지. 하지만 그 이상은 어려울 거야.”
“그래서 다시 카멜롯으로 귀환하는 거군요. 그것도 서둘러서요.”
“생각보다 사람들의 성장 속도가 빨랐어. 설마 벌써부터 40레벨을 넘어선 경우가 나올 줄이야.”
50레벨 이전까지는 해당 영능에 대한 대략적인 원리를 이해하고, 기초수련법으로 형(形)을 체득해서 잠재되어 있던 영감(靈感)을 일깨우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체화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영능을 배웠다고 여긴 유저들은 게임 내의 연합에서 추천하는 소규모 전장에 참전하여 최하위 인베이더를 상대로 실전경험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덕분에 유저들의 평균 레벨이 급속도로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배운 것을 실전을 통해 체화시키다 보니 성장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빨라졌던 것이다.
[억! 또 죽었다! 인베이더 놈들 너무 강한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오더니 심장이 뽑혔어!]
[젠장 나도 죽어버렸네! 난 갑자기 뒤통수를 맞아서 머리가 박살났어. 이걸로 오늘은 전투 불가야! 방안에 처박혀서 또 수련만 해야 하나?]
[그래도 아예 접속 불가가 아닌 게 어디야? 또 복습이나 해야겠군.]
유저들은 죽음을 거듭 반복해가면서, 성장해 나갔다. 그들에게 있어 죽음은 짜증의 대상일 뿐, 현실이 아닌 게임 내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결과, 지구에서 상위권 유저들은 이미 40레벨을 넘어서고 있었다. 실로 믿기지 않는 성장이었다. 물론 가상과 현실에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 만큼 현실에서의 성취도 그렇게까지 빠르진 않을 테지만, 그래도 영능을 처음 접해본 자들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도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그렇지만 유태진이 볼 때, 이런 성장도 한계에 이르렀다.
50레벨 이전까지는 우격다짐 식 성장이 가능했지만, 영력을 본격적으로 운영해서 51레벨부터는 그런 방법도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능을 배우는 자들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마의 장벽이 51레벨이었다.
물론 NPC교관들이 유저들을 교육시켜주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NPC는 어디까지나 인공지능이 주관하는 인격들인 만큼, 영능에 대한 해석도 객관적이고 이성적이었다.
만일 영능이란 게 그렇게 논리와 이성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면, 연합에서 가장 뛰어난 영능력자는 머리 좋은 과학자나 교수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허나 그게 아니니 문제였다.
그래서 가상의 NPC가 아니라, 정말로 각 분야의 영능을 직접 몸으로 체화한 사람들이 필요했다.
달 뒷면에 정박 중인 카멜롯에 도착한 유태진은 함대의 부대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무려 수만 명에 이르는 숫자였지만, 카멜롯은 워낙 거대해서, 그들을 한데 모으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자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어차피 최근에는 인베이더와의 전투도 없어서 개인적인 수련이나 연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함 내에서 빈둥대고 있는 처지들이었다.
다들 모였음을 확인한 유태진이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에게 할 일이 생겼다.”
“뭡니까, 대장?”
“할일이요?”
부대원들은 뭔가 임무가 생겼다는 사실에 오히려 반색하는 기색을 보였다. 안 그래도 좀이 쑤셔 죽을 판인데 뭔가 할 일이 생겼다는 사실에 다들 의욕이 흘러넘쳐 보였다.
함 내에서 수련하는 것도 어느 정도지, 이젠 지긋지긋할 지경이었다.
그런 부대원들에게 유태진이 웃으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이제부터 너희는 교관이다. 지구의 사람들에게 각자 익힌 전문 분야들을 가르치도록 해.”
“교··· 교관이요?”
“저희가 말입니까?”
“그래.”
유태진의 말이 너무 당황스럽고 얼떨떨했던지 부대원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의문을 표했다. 난데없이 교관이라니, 자신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 아닌가?
물론 이 중에는 전투요원들도 있고, 기술 관련이나 생산 방면의 능력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경험을 해본 자들은 극히 드물었다.
그나마 오래 전에 교관직을 경험해 본 자가 나서서 말했다.
“저··· 사령관님. 지구의 인구만 해도 무려 수십억이나 됩니다. 저희가 나서봐야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어떻게 가르칩니까? 그리고 그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지요. 장소적인 제한 문제도 큽니다.”
물론 그 말도 틀리진 않았다. 하지만 유태진은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해 두고 있었다. 그것도 현재 지구인들의 문화와 가장 잘 맞는 형태로.
“일종의 강사가 되는 거지. 일단 유튜브 강사부터 되어 보는 건 어떨까?”
“예?”
부대원들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유태진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어차피 저들도 곧 알게 될 일이었다.
‘요즘은 유튜브가 인기라지? 이걸로 게임 육성 공략을 해주면 인기 하나는 끝내주겠군.’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부대원들을 바라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