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09화
“맙소사!”
“그럼 이제 초인의 시대가 열리는 건가?”
유태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캡틴 아메리카나 슈퍼맨 같은 초인이 지구인 중에서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만 하면 쉬이 믿어지지 않겠지요. 그래서 먼저 시범을 보여 드리지요. 방금 전 기자 분이 열심히 펼쳐 보였던 검술이 어떻게 현실에서 발현되는지 말입니다.”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금 전 기자가 휘두른 목검을 오른손에 쥐어보였다.
자세는 좀 전에 보여준 검술과 똑같았다. 아니, 곧고 바르면서도 조금도 흔들림 없는 안정된 자세는 그와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윽!”
“이 무슨 압박감이!?”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은 목검을 든 채로 자세를 취하자마자 느껴지는 위압감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아까처럼 직접 물리적으로 몸을 짓누르는 힘은 없었지만, 그 이상으로 강렬한 존재감이 자신들의 심령을 짓눌러오고 있었다.
우우웅!
유태진의 내부로 열띤 기세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느새 그의 체내에 소환된 불의 정령의 힘으로부터 비롯된 열양지기였다.
무공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스피릿 나이츠의 기초비전인 [스피리츠 블레이드]만의 힘으로 일으킨 정령력이 체내의 영력과 융합되는가 싶더니 더욱 거세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화아악!
“우왁! 피해!”
“사람의 몸에서 불길이 피어올라?”
갑자기 유태진의 전신에서 솟구친 강렬할 불길에, 기자들이 기겁을 하면서 일제히 수십 미터를 물러났다.
허나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몸에서 피어오른 맹렬한 불길에도 의복이나 목검이 조금도 타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진짜 불이 맞나?”
“어떻게 전혀 타지 않을 수 있는 거지?”
하지만 그의 발치에 있는 단상을 보니 불길이 가짜인 건 아닌 듯했다. 단상이 타들어가면서 점점 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의 전신을 휘돌던 화염이 어느새 목검으로 집결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휘두르는 목검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도되면서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절정에 이른 순간, 앞으로 내딛는 일보와 함께 벼락같은 기세로 검이 휘둘러졌다.
정령예운검(精靈曳運劍)
염정기(炎精氣). 화운절섬격(火運切閃擊)
콰아아앙!
그가 목검으로 허공을 가른 순간,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붉은 광채가 뻗어나갔다. 그것은 기자들의 머리 위를 스쳐지나가더니 저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을 그대로 강타하였다.
쿠구구구!
우르르르!
“하나님, 맙소사!”
“산이··· 허물어졌다고?”
기자들은 말 그대로 혼비백산한 표정이 되었다. 불길을 담아 휘두른 유태진의 일검이 놀랍게도 산 하나를 그대로 박살내버리고 만 것이다.
물론 저 산이 그리 높거나 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고작 한번 목검을 휘두른 것만으로 산을 무너뜨린다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었다.
“흐음, 생각보다 쓸 만한데?”
목검을 거둬들인 유태진은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처음 사용해보는 수법이었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교육생 시절 교관들로부터 이런저런 것을 배울 때 이런 수법도 다 있구나 싶어서 눈여겨 봐두었었는데, 오늘처럼 이런 식으로 사용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내부에 소환한 정령의 힘을 촉매로 삼아서 체내의 영력을 감응시키고, 이것을 체내에서 일정 형태로 순환해 위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군.’
아르탈 행성의 무예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초식의 정밀함보다는 힘을 어떻게 유도해서, 위력을 극대화하느냐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
게다가 검술이든 체술이든 전부 특정 이능을 전제로 창시되었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영능을 타고난 자가 아니면 전승받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나마 정령술을 기반으로 한 스피릿 나이트의 비전은, 배우는 것 자체가 어렵지 않은 대중화된 절예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전 세계가 보는 앞에서 제법 화려한 한수를 선보인 유태진은 기자들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자, 보셨겠지요. 이게 방금 기자분이 용을 써가면서 시범을 보였던 검술의 위력입니다. 제대로 힘을 발휘하면 이와 같지요.”
“그럼 이 검술을 배운 사람들은 다 이런 초인이 되는 겁니까?”
기자들 중 누군가가 그렇게 물었지만, 유태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다 같이 법을 공부한다고 해서 전부 판사나 검사가 되는 건 아니잖습니까? 타고난 재능과 노력 여부에 따라 얻는 바가 다르듯, 이능도 마찬가집니다. 제대로 익힐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얼치기로 배우거나 혹은 노력이나 재능이 부족하면 반쪽짜리만도 못한 결과를 얻게 되겠지요.”
“그렇군요.”
지목받았던 기자가 시범을 보였을 땐 그렇게나 어설퍼 보였던 검술이, 유태진의 손에서 구사되자 경천동지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 말은··· 배우는 건 누구나 가능하지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기자들은 납득했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긴 누구나 저 같은 초인이 될 수 있다면 말이 안 되는 거지.’
‘그래도 초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게 어디야?’
그랬다. 유태진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시해준 것은 어디까지나 기회의 평등이었다. 그가 각 개인이 성취할 결과의 평등까지 보장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카메라를 앞에 둔 채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 보신 것처럼 앞으로는 황혼과 새벽에서 가장 잘 적응하고, 높은 성취를 얻는 자들이 우대받는 세상이 될 겁니다. 그들이 게임 내에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현실로 반영되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러니 게임이라고 해서 너무 가볍게 보시지 마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는 이 게임이 곧 현실이 될 테니까요.”
그러자 이 생방송을 보고 있던 전 세계 사람들이 각종 커뮤니티와 SNS상에 무수한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와, 끝내주네! 게임의 능력을 현실에서도 발휘할 수 있다고?]
[그렇다면 황혼과 새벽은 그냥 게임이 아니잖아!?]
[저게 현실에서 저런 위력을 보이다니! 나도 저 검술 배웠는데, 절대 저런 게 아니었다고?]
[니 능지가 처참해서 제대로 못 배운 거겠지.]
[지가 못한다고 남도 못할 거라 생각 하냐?]
[앞으로 내 인생은 무조건 황혼과 새벽에 올 인이다! 가즈아! 초인이 되어보자!]
[와, 게임폐인들 개 신났네.]
다들 흥분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유태진이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듯 말했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가지 명심하실 게 있습니다.”
명심할 게 있다는 말에 사람들이 다시 그의 입을 주목했다. 이번에는 또 무슨 말이 나올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황혼과 새벽] 내에서 습득하게 된 지식을 불법적인 일에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며, 상업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게임 내에서 알려주는 지식들은 해당 유파나 학파의 소유이며, 적발될 시 연합법에 의해 처벌받게 될 겁니다. 그 점을 잊지 마셔야 할 겁니다.”
“예?”
기자들이 당황하는 얼굴로 그렇게 소리를 내었다. 게임에서 배운 영능으로 초인이 될 수 있다고 해놓고서는, 갑자기 지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게 금지된다고 하니···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였다.
“어렵게 생각하실 것 없습니다. 지구에도 저작권이나 특허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게임 내에 구현된 지식들은 특정 집단이나 학파에서 오랜 세월동안 연구를 통해 완성된 결실인 만큼, 법적으로 등록된 지식이 법으로 보호되는 건 당연하지요.”
초능력을 배우는 방법에도 저작권이 있다? 사람들은 일순 당황스러웠지만, 곧 납득하고 말았다.
지구에서도 별 사소한 것까지 저작권이나 특허를 주장하고 있었다. 하물며 사람을 초인으로 만들 수 있는 수련법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럼 게임에서 능력을 배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게임에서 능력을 배운 순간부터 그 사람은 해당 학파나 유파의 일원으로 자동 가입됩니다. 물론 당장은 연합과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없는 만큼, 임시 등록자로 오를 테지만, 앞으로 연합과 직접 교류를 하게 되면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될 겁니다.”
황혼과 새벽을 조금이라도 플레이 해본 사람들은 대충 무슨 뜻인지 이해를 했다. 그곳에서 그들이 듣고 경험한 이능력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런 이능들을 수련하는 방법들이 그냥 거저 생겼을 리가 없었다. 누군가가 오랜 세월 동안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대를 이어가면서 연구했을 게 틀림없었다.
“이능을 배우는 과정도 여러 가지로 복잡하군요.”
“자세한 건 나중에 따로 상세히 공지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기자회견에서 법적인 내용까지 세세하게 파고들기엔 너무 복잡하니 말이지요. 하지만 유파나 학파에 소속된다는 것에 크게 거부감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가지 조항들만 잘 살펴보고 조심한다면 딱히 불이익 당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것으로 기자회견이 마무리 되었다. 황혼과 새벽의 난이도에 대한 해명이 끝난 만큼 더 이상 기자회견을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쓴 수많은 기사들이 그 자리에서 즉석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초능력자가 우대 받는 세상이 온다?]
[황혼과 새벽! 현실 고증된 게임! 게임 내에서의 성취, 현실에서도 그대로 적용돼!]
[이제 지구에도 초인이 나온다! 우리의 세상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
[초능력 수련법에도 저작권이 있다? 우리 어떤 유파가 어떤 조건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알아보자.]
물론 그들이 가진 정보가 적은 만큼, 기사의 내용은 대부분 추측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비슷하게 적어놓았다.
앞으로 초능력을 어떻게 배워야 하고, 그렇게 양산된 초인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그 파급력에 대해 우려하는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우려보다는 기대감에 가득 찼다. 초능력은 기존의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보다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 신분향상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 이후로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도 다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가상현실 자체에만 관심을 가졌지, 게임과 같은 유흥에 관련된 컨텐츠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게임 내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실제 초능력을 배울 수 있다고 하니, 학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연구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유명한 과학자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내놓았다.
“이능의 이론을 보면 과학적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우리가 알던 기존의 상식만으로 이해하려면 넘어야 할 관문이 너무나 많아 보입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우린 우물 안 개구리였습니다. 차라리 기존의 상식이나 과학적 지식은 깨끗이 잊고 백지에서 시작하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구가 이룬 물리학은 괜찮은 수준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물질에 국한된 영역일 뿐이다.
영능은 상당부분이 논리적이기도 했지만, 정신과 영적 세계를 다루는 형이상학적이고 감각적인 개념이기도 했다. 단순히 논리와 합리만을 따진다면 이해 못할 부분들이 많았다.
그나마 과학적인 이론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마법조차도 어느 정도는 감각적인 부분을 요구할 정도니, 다른 이능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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