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83화 (284/448)

12권-08화

전 세계의 수많은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유태진이 드디어 단상 위에 올라섰다. 그는 자신을 향해 집중된 카메라와 기자들을 한차례 둘러본 뒤 입을 열었다.

“최근 저희 KM사가 발매한 가상현실 게임 [황혼과 새벽]에 대한 논란이 세간에서 계속되는 걸로 압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해명을 하기 위해 이렇게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말문을 열자마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상현실기기의 출시일에 맞추려고 너무 서둘러 오픈하는 바람에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는 말이 있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심지어 터무니없이 높은 난이도가 앞으로 과금을 유도하기 위한 KM사의 술수라는 소문도 있습니다. 진실을 말씀해 주시지요.”

“너무 터무니없는 난이도에 일부 유저들이 큰 박탈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보상책은 어떻습니까?”

중구난방으로 튀어나오는 기자들의 질문에 장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유태진이 더 말을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여간 기레기 놈들은 어쩔 수가 없군. 일단 소란부터 진정시켜야지.’

인상을 찡그린 유태진이 가볍게 기세를 일으켰다. 물론 기세를 기자들에게 직접 작용시킨 건 아니었다. 그랬다간 저들의 심맥이 전부 터져죽고 말 테니까.

하지만 가볍게 우회적으로 사용한 기세가 가져온 결과조차 결코 가볍지 않았다.

쿠우웅!

“욱!”

“뭐···뭐지!?”

“몸이, 몸이 갑자기··· 무거워지고 있어!”

“도저히 일어설 수가··· 으으.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전신을 짓누르는 압박감에 기자들은 신음을 토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주변의 공기가 천근만근이라도 되는 듯 온 몸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유태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기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은 KM사의 유태진 밖에 없었다.

누군가가 주저앉은 채로 이를 악물며 외쳤다.

“지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이건 언론탄압입니다. 우리 몸을 무겁게 하는 이 이상한 힘을 푸세요!”

언론탄압으로 몰아붙이는 그 말에, 유태진은 입가에 비웃음을 한껏 담아 말했다.

“언론탄압?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요. 그리고 기자회견이 시작된 직후 내가 언제 당신들에게 발언권을 주었습니까?”

“뭐요?”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마련한 기자회견자리라지만, 난 아직 해명 한 마디조차 못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내가 말을 하기도 전부터 막무가내로 질문 공세를 쏟아내어 진행을 막았죠. 객관적으로 봤을 때, 누가 잘못했습니까.”

“······.”

직설적인 그 말에 기자들도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기자회견의 진행 자체를 방해한 자신들의 잘못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은 닳고 닳은 기자들이었다. 어지간한 경우였다면 그 사실을 결코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언론탄압으로 몰아갔겠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못했다.

지금 자신들을 이상한 무게로 짓눌러버린 것처럼, 영능이라는 알 수 없는 초능력까지 부리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자신에게 반발하던 중국 등 여러 국가들을 무력으로 제압해버리기까지 한 전례마저 있는 만큼, 이 이상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질문은 나중에 받겠습니다. 그럼 다른 건 거두절미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요.”

바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겠다고 말한 유태진은 기자들에게 가한 기세를 풀어주었다.

그들은 전신을 짓눌러오던 무게감이 사라짐을 깨닫고 주춤주춤 일어섰지만, 아까처럼 기세좋게 질문공세를 쏟아내진 못했다. 다들 그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언급하신 것과 달리, [황혼과 새벽]은 난이도 조절에 실패한 것도 아니고, 과금 유도를 위해 난이도를 크게 상향해놓은 것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의 의도 대롭니다.”

“의도대로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기자들 중 누군가가 엉겁결에 그렇게 질문을 던졌지만, 유태진은 이에 대해 딱히 제지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말 그대롭니다. 애당초 이 게임의 목적 상 이런 난이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황혼과 새벽의 난이도가 그처럼 높은 이유는 실제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방송을 타고 나가자, 인터넷 상에서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안 그래도 유태진의 기자회견은 전 세계에 생방송되어 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특히 터무니없는 게임 난이도의 이유가 바로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라는 그 말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아니, 아무리 현실을 반영했어도 그렇지, 게임이 너무 현실적이면 누가 게임을 해? 즐기려고 시작한 건데 말이야.]

[능력 없는 흙수저는 결국 게임에서도 영원히 흙수저라는 거네.]

[재능 없는 사람은 게임도 하지 말라는 거냐?]

[와, 이 인간 좀 봐. 기레기들을 응징할 땐 아주 통쾌했는데, 이젠 뜬금없이 고구마를 박스 단위로 먹이네. 목 막혀 죽으라는 거냐?]

[KM사의 큰 그림을 이제 알겠다. 나중에 유저의 재능상승 팩 과금체계도 생기겠지?]

[그런 사탕발림식 과금 유도에 넘어가라고? 우린 흑우가 아니다!]

그 결과 홈페이지와 카페를 통해 무수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황혼과 새벽]의 난이도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들이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불만뿐만 아니라, 심한 욕설과 폭언도 적지 않았다.

유태진도 돌아가는 대강의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본사가 현실을 반영했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 활용되는 학문과 지식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뜻입니다.”

“예? 그건 무슨 뜻입니까? 실제 활용되는 지식이라니요?”

이해할 수 없는 그 말에 기자들이 그렇게 되물었다. 실제 활용되는 지식이란 사실이 게임의 난이도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황혼과 새벽]에 접속하신 유저들은 가장 처음부터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거기에 맞는 수련을 하게 되지요. 그 중에는 마법도 있고, 정령술이나 검술, 체술, 주술, 그밖에도 여러 이능들이 존재합니다. 그 중에서 검술을 예를 들어 설명하지요.”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기자들 중 하나를 손가락으로 지적해 물었다.

“거기 기자 분, [황혼과 새벽] 해보셨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발매되자마자 시작했지요.”

갑작스럽게 지적당한 해당 기자는 깜짝 놀라면서도 곧장 대답하였다.

“거기서 재능이 뭘로 판명 났습니까?”

“스피릿 나이트라고 했습니다.”

“아, 정령검사 말이군요. 그렇다면 일단 처음에는 검술부터 배우셨을 텐데요.”

“예, 정령력을 쌓고 그것을 활용할 수 있는 검술이라고 하던데, 엄청나게 어려웠습니다. 다루는 방법도 난해했고요.”

정령검사라면 정령의 실체를 직접 소환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 정령의 힘만을 소환함으로서, 그것을 검술을 통해 발현하는 영능학의 한 분야를 뜻한다.

정령을 직접 소환해 부린다는 정령술 분야에 비한다면 비주류이긴 했지만, 타고난 정령친화력이 낮은 자도 강해질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하지만 정령술과 더불어 검술도 함께 수련해야 하는 만큼, 일정 이상의 경지에 오르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 지금 그 검술을 한번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

생각지도 못했던 유태진의 요구에, 기자의 표정이 일순 멍청하게 변했다.

“지··· 지금 말입니까? 이 자리에서?”

그로서는 유태진의 요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이때에 게임 내에서 배운 검술을 펼쳐 보이라고?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지?

기자는 결국 거절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을 지목해준 건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광대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미처 거절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유태진이 다른 말을 덧붙였다.

“예, 보여만 주신다면 나중에 단독 인터뷰를 할 기회를 드리죠.”

“물론입니다! 바로 시작하지요.”

기자는 그 제안에 바로 응낙하고 말았다. 저 아르탈 행성 연합의 외계인들과 큰 연관성을 가진 신비한 인물인 유태진과의 단독 인터뷰라니!

전 세계 기자들 중에서도 어느 누구 하나 따내지 못한 그런 기회 아닌가! 이대로 거절하기에는 너무도 큰 제안이었다.

유태진은 그 기자에게 목검 한 자루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기자가 용을 써가면서 게임 내에서 배웠던 검술을 전개해 나가기 시작했다.

“훕, 후웁!”

기자는 유태진의 제안이 자신의 인생에서 둘도 없는 기회임을 깨닫고는, 거친 호흡을 내뱉어가면서 필사적으로 검술을 펼쳤다.

하지만 보는 사람들이 다 애처로울 정도였다. 검술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기자가 얼마나 초심자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검로는 어디선가 배운 대로 겨우 흉내는 내는 것 같은데, 동작 하나하나가 엉망이었던 것이다. 검을 쥐는 파지법은 물론 호흡하는 방식까지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그 나름대로는 배운 바대로 펼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남들이 보기엔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보다 못한 유태진이 이를 중단시켰다.

“그쯤이면 됐습니다. 목검은 이리 주시지요.”

“헉헉! 예···.”

잠시 움직였을 뿐인데도 숨을 몰아쉬는 기자는 목검을 돌려주고는 주저앉았다. 이상하게 이 검술을 펼칠 때마다 이렇게 전신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게임 상에서만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 유태진의 제안으로 현실에서 처음으로 펼쳐보니 게임 내에서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체력부진이라 해도 그렇지. 고작 막대기 좀 잠깐 휘둘렀다고 이렇게 기진맥진이라니······.’

기자가 숨을 돌리는 사이 유태진은 다른 기자들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자, 보셨을 겁니다. 게임 내에서 배운 스피릿 나이트의 검술이 어떤 형태인지 말입니다. 하지만 이 검술이 고작 게임 내에서만 사용되는 검술일까요?”

“지금 그 말씀은 혹시··· 그 검술이 현실에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겁니까?”

그제야 유태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은 기자들이 긴장어린 얼굴로 물었다.

자신들의 짐작이 사실이라면 이건 세기의 특종이었다.

그리고 유태진의 대답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제가 말했었던, 게임이 현실을 반영했다는 게 바로 그런 의미지요.

“그··· 그럼 그 영능학이라는 것이 정말로 현실에서도?”

“예, 맞습니다. 황혼과 새벽에 적용된 기술과 능력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물론 지구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능력들이지만, 저희 아르탈 행성 연합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일종의 기술이나 다름없지요.”

[세상에!]

[오 마이 갓! 그럼 게임상의 초능력이 현실에서도 사용된다는 거야?]

[미쳤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없지.]

[게임에서 난데없이 사람의 재능을 따진다는 게 이상하다 했는데,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유태진의 발언이 전파를 통해 퍼져나간 순간, 온 세계가 발칵 뒤집혀졌다. 게임의 난이도가 너무 터무니없다고 여겼던 사람들도,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현실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실존하는 초능력 학문! 그게 바로 게임 내에 등장하던 영능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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