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권-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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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한 달 뒤, KM사는 가상현실의 상용화를 선언했다.
이에 사람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발표회 당시 가상현실을 선보였던 만큼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본격적인 상용화가 이루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완벽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서둘러 출시하는 것 아니냐는 주된 여론이었다.
가상현실 기술 자체는 놀랍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텔레비전이 있어도 수신할 방송 프로그램 채널이 없으면 의미가 없듯, 가상현실도 마찬가지여서 그걸 활용할만한 컨텐츠의 유무도 중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과 한 달도 안 된 사이에 과연 사람들을 만족시킬만한 컨텐츠를 다수 확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허나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KM사는 가상현실기기의 상용화와 더불어 다수의 컨텐츠를 동시에 내놓았다.
[뭐?]
[이거 진짜야!?]
[KM사가 미쳤나? 이 많은 걸 한꺼번에 출시한다고?]
KM사가 내놓은 컨텐츠들은 실로 다양했다.
마치 전세계 각 지역을 실제 가본 것처럼 체험할 수 있는 여행 레저는 물론, 직접 물건을 만지고 보는 것과 다름없는 쇼핑 등 다양한 컨텐츠들을 한꺼번에 쏟아낸 것이다.
심지어 영화 컨텐츠도 만들어졌는데, 가상현실을 통해 마치 영화 속에 직접 뛰어든 것 마냥 실감나게 관람할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가상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된 기존의 영화들도 얼마든지 자유롭게 컨버전시켜서 가상현실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게 정말 사실일까?]
[글쎄, 영화 저작권은 둘째 치고라도··· 컨버전이 그렇게 쉽게 될까?]
사람들은 그 발표에 반신반의했지만, KM사에서는 그런 사람들의 의문에 화답이라도 하듯 가상현실 형태로 컨버전 할 수 있는 전문 프로그램 툴까지 함께 내놨다. 이것을 다룰 줄만 알면 기존의 영상들도 얼마든지 가상현실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진짜 미쳤네. KM사가 외계인이라더니 이젠 막 쏟아내는구나.]
[난 먼저 캡슐부터 사러 간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정작 가장 주목받는 컨텐츠는 따로 있었다. 바로 게임이었다. 이번 상용화와 함께 KM사는 터무니없는 게임 하나를 출시했다.
타이틀은 단 하나 뿐이었지만, 이에 대한 기대감은 기존의 인기게임 수십 개를 전부 합쳐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같이 나온 게임은 우주배경의 SF판타지라지?]
[함대전도 있고, 괴물들과 싸우는 초능력자들도 있다던데?]
[아, PV영상 봤다. 진짜 쩔더라. 나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다. 아니, 이거 영화보다 더해! 이제 기존의 게임사들 다 망했네.]
[아악! 지난번에 사뒀던 게임사 주식, 아직 매도 다 못했는데!]
[쯧쯧, 주가 폭락하신 분은 이제 맨몸으로 한강물 수온 재러 가시고요. 우린 겜이나 합시다.]
[자아! 주식 망한 분들, 다 함께 마포대교 가즈아!]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줍시다! 오늘 무제한 과금해서 어떻게든 랭커 딴다!]
[이제 가상현실 게임에도 사업장 생기는 건가?]
[뭐, 소설 속에나 나왔던 가상현실 프로 게이머가 현실화 되는 거지.]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그 즉시 접속기를 사기 위해 공식 매장을 향해 몰려들었다. 판매처는 세화그룹의 전자매장이었다. KM사는 미국의 본사를 제외하고는 해외 지사나 판매처가 따로 없으므로, 세화그룹과 협력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길게 줄을 서가면서 수십 시간씩 기다렸다. 그만큼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KM사는 모듈밴더라는 놀라운 기기를 발매한 바 있었다. 그때 체험한 신기술에 대한 놀라운 경험은 이번 가상현실기기에 대한 기대감을 몇 배로 부풀려주었다.
“···그렇게 해서 총 32만원입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오오, 이게 그···!”
이제 고등학고 3학년인 김진수는 그동안 모아둔 세뱃돈과 용돈들을 탈탈 털어서 가상현실기기를 구입하고 말았다.
이것을 사기 위해 새벽녘부터 줄을 서서 지금까지 무려 15시간을 꼬박 기다리지 않았던가. 사실 이렇게까지 일찍 나오지 않았더라면 저 맨 뒤에 줄을 선 사람처럼 내일 이맘때까지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고 엄청 싸네. 가상현실기기가 고작 32만원이라니.”
영화나 소설 같은 서브컬처에 등장하는 가상현실기기의 가격들은 대부분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어지간한 사람들은 쉽게 구입할 수조차 없었는데, KM사에서는 너무도 저렴하게 내놓았다. 가상현실에 사용되는 기술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가격이었다.
“아무튼 내 용돈 갖고도 살 수 있었으니 다행이지. 이 이상 비쌌으면 부모님에게 사달라고 해야 했을 텐데 말이야.”
김진수는 구매한 가상현실기기가 담긴 박스를 가져온 가방에 담고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KM사가 내놓은 가상현실 접속 기기와 단자는 사실 그렇게 크지 않았다. 이마에 쓰는 서클릿 같은 단자와, CD플레이어 수준의 기기가 전부였다.
가상현실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KM사가 준비한 세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슈퍼서버인 만큼, 개인이 보유한 접속기기와 단자가 클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KM사에서는 가상현실에 장기간 접속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가상현실 전용 캡슐도 추가로 내놓았다. 가상현실에 접속해 있는 동안 잠들어 있을 사람의 몸을 다양하게 케어해 줄 수 있는 기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척이나 고가인 만큼, 상당한 재력을 가진 부자들이 아니고서는 구입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평범한 일반 서민들은 이렇게 접속기기와 단자만 구입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가상현실 접속이라는 기본적인 기능면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김진수도 이에 대해선 별 불만을 갖지 않았다.
그는 집에 오자 마자 박스를 뜯고는 설명서를 펼쳐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접속은 그냥 무선으로 충분하다 이거지? 이점은 밴더하고 똑같네.”
KM사에서는 세화 그룹을 통해 각 지역마다 가상현실과 모듈밴더 용 기지국을 설치해둔 상황이었다. 그 성능은 실로 놀라워서 각 도마다 한기씩만 설치해도 해당 지역의 모든 사용자들을 감당하고도 여유자원이 넘쳐날 정도였다.
설명서를 읽고 난 김진수는 머리에 서클렛 모양을 하고 있는 접속단자를 썼다. 생각보다 큰 불편함은 없었다. 다만 긴고아를 머리에 쓴 손오공과 같은 모양새가 되었을 뿐이다.
“이거 쓰고 나면 머리모양 다 망가지겠는데? 바깥에서는 접속하기 좀 그렇겠어.”
작은 불만사항을 내뱉은 그는 곧바로 침대에 누운 뒤 접속기기를 작동시켰다. 그러자 기이한 소리와 함께 서서히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점점 흐릿해지면서 깊게 빠져든다고 생각이 든 순간, 정신이 갑자기 명료해졌다. 그리고 눈을 떴는데, 그의 시야에 처음 보는 낮선 장소가 들어왔다.
“어, 여긴? 방금 나, 내 방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잠시 당황했지만, 그는 자신이 가상현실에 접속했었다는 사실을 간신히 인지해냈다.
그렇다면 이곳은 현실이 아니라 바로 가상현실 안이 분명할 터.
“그럼 여기가 그 아르탈 행성 연합이란 곳인가?”
KM사에서는 이번에 발매한 가상현실 게임인 [황혼과 새벽]에 나오는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놓은 상태였다.
김진수도 이미 대략적인 내용은 확인해둔 터라, 처음 접속한 유저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게 될지 대충 짐작이 갔다.
주변을 살펴보니, 자신처럼 이제 막 접속한 걸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현실과 가상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혹은 얼떨떨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와, 진짜잖아. 이렇게 생생한 가상현실이라니.”
“이거 혹시··· 납치당한 뒤에 어딘가로 옮겨진 건 아니겠지?”
“말 같은 소리를 해라.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내서 어떻게 동시에 납치해와?”
“게다가 저 하늘을 봐! 달이 아닌 위성들이 무려 세 개나 있어.”
그 말 대로였다. 고개를 들어 올리니, 달보다도 더 큰 위성들이 대낮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곳이 현실이 아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이 장소는 거대한 연무장 같았다. 또한 이 주변엔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의 고층건물들과 거대한 우주선들이 다수 정박해 있었다.
“와, 현실감 쩌네. 이게 가상현실이라 이거지?”
“대박이다. 진짜 끝내주는데?”
사람들이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놀라 감탄하고 있던 그때, 단상 위에 서 있던 중년의 사내가 입을 열었다.
“흠, 이제야 정신들을 차린 것 같군. 제군들.”
“엉?”
“누구?”
“나는 지금부터 제군들을 인도할 총교관 [다이먼 맥듀르거]다. 지구라는 먼 행성에서 이곳으로 갑자기 소환된 터라 다들 혼란스러운 마음은 나도 알겠지만, 이제부터 제군들은 내 명에 따라 움직여 줘야 한다. 제군들은 앞으로 오버러가 되기 위해 6개월 간의 교육과정을 거칠 것이니 다들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아, 그렇지. 이런 설정이었지?”
“프롤로그는 이렇게 진행되는 건가?”
“젠장, 이건 꼭 군 입대 다시 하는 것 같아서 왠지 기분 더러운데?”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웅성댔지만, 총교관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예외는 없다. 이곳에 소환된 이상 교육은 반드시 받아야 하고, 내 명령에 따라야 할 테니까. 앞으로 인베이더와 싸워야 할 터인데, 그 험난한 싸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다면 제군들은 교육에 소홀하지 않는 게 현명할 게야.”
“완전 협박이네.”
누군가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교관의 말에 반박하고 싶진 않았다.
이 게임을 하는 목적 자체가 레벨을 올리고 강해져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는 랭커가 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그러기 위해서라도 게임 내에 적응에 필요한 기본교육은 확실히 받을 생각이었다.
“그럼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교육받기 위한 시설로 가보기로 하지.”
유저들은 총교관과 그 휘하의 교관들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각자 숙소를 배정받고 기본적인 기본생활물품을 받은 뒤, 곧바로 교육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감에 차 있던 유저들은 생각지도 못한 벽에 직면하고 말았다.
“이런 미친!”
“뭐야, 이런 걸 배워야 한다고?”
그들은 각자 타고난 재능에 따라, 다양한 교육을 받게 되었는데··· 그 교육이 너무나도 어렵고 난해하다는 것이었다.
처음 배우는 지식이란 것도 문제였지만, 그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대학교에서 받는 고등교육보다도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결국 그날의 첫 접속을 교육만 받다 끝낸 유저들은, 홈페이지나 카페 등에 게임을 성토하는 발언들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거 배경지식들이 문제야. 무슨 게임 하는데 이렇게 빡세? 무슨 초능력 하나 쓰는 데 대학 전공 과정 배울 때보다 더 어려워!]
[그냥 초능력은 그나마 낫지. 마법 같은 건 진짜 머리 터진다. 이건 무슨 유명 대학의 과학자 분이라도 모셔 와야 할 것 같아. 이것과 비교하면 미분적분 따윈 애들 장난이라니까.]
[머릴 써야 하는 재능을 가진 것들은 게임 포기하라는 말이냐? 그리고 이 재능 설정 누가 해놓은 거야? 난 차라리 검술같이 육체로 움직이는 게 하고 싶다고!]
[야, 검술은 쉬울 것 같냐? 이거 그냥 스킬 쓴다고 검술이 펼쳐지는 게 아니야! 직접 검술 동작을 일일이 체득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걸 직접 활용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고! 와, 진짜 무슨 이런 미친 겜이 다 있냐? 현실감은 대단한데, 설마 이런 곳까지 현실감을 진하게 넣으면 어쩌라고? 졸지에 게임 안에서 진짜 무술을 배우게 생겼네.]
[와, 이거 ㅈ망겜이네. 처음 접속만 봐도 망삘인데?]
사람들이 내놓은 불만처럼, KM사가 내놓은 [황혼과 새벽]은 기존의 게임과 달리 철저한 학습을 통해 능력을 체득해야만, 게임 내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법이나 술법 같은 이능은 그에 관한 기본 지식을 배워야만 기초운영법을 배울 수 있었고, 검술이나 체술 등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서 공부하고 운동의 기초를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난이도를 보면 그보다 훨씬 더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들 따라가지 못해서 난리가 난 와중에도, 이런 과정들을 여유롭게 통과하는 사람들이 더러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ㅋㅋ 멍청하기는. 게임을 할 때 나오는 설명들을 대충 생략해버렸으니까 그렇지. 설명만 잘 들어도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 아주 쉬워!]
[기초 검술 배우는 거 간단하잖아. 그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데 뭐가 어려워?]
[하여튼 빡대가리들!]
[다들 능지 멀쩡한지?]
[이런 젠장, 또 분탕러들 날뛰는구나!]
[꺼져!]
[황혼과 새벽은 흥할 거다!]
[갓겜입니다! 진짜로!]
그 덕분에 홈페이지나 카페 등 커뮤니티들은 온통 난리가 났다. 게임 내의 진행을 따라갈 수 있는 사람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로 우열이 나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부풀어 있던 사람들은 컨텐츠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박탈감에 분노했고, 끝내 온갖 항의가 KM사의 홈페이지 고객 서비스 센터로 날아들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게임을 어렵고 난해하게 만들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로 세상이 떠들썩하게 된 며칠 뒤, KM사는 공식적인 입장발표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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