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78화 (279/448)

12권-03화

“그런 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인 지구를 사수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했다. 그리고 끝내 한 가지 가능성을 찾게 되었지.”

“가능성이라면?”

“너도 알고 있겠지? 갤러해드가 성배탐색을 나간 이야기를.”

“그래. 꽤 유명한 이야기니까.”

갤러해드는 원탁의 기사 중 최강자로 손꼽히는 자였다. 무욕한 성품 때문에 성배탐색원정에 선정되었으며, 사사롭게는 랜슬롯의 자식이기도 했다.

유태진이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랜슬롯은 곧바로 전설에 대한 내용 중 일부를 정정해 주었다.

“그건 정확히 말하자면 성배 탐색이 아니었다. 성검 탐색이었지.”

“성검 탐색이라고? 아서왕에게는 엑스칼리버라는 성검이 있었을 텐데 굳이 새로운 성검을 찾으려 했던 거지?”

아서왕의 성검 엑스칼리버는 너무나도 유명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성배가 아닌 성검 탐색을 위해 인베이더와 싸울 수 있는 가장 큰 전력인 원탁의 일부를 따로 움직였다는 것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건 전설이 와전된 탓이지. 처음부터 왕께서 엑스칼리버를 보유하고 계셨던 건 아니었어. 그건 꽤 후의 일이지.”

“그러면?”

“혹시 들어봤나? 창세성검의 전설 말이야.”

“아니.”

랜슬롯이 슬쩍 던진 그 말에, 유태진은 전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성검탐색부터 시작해서 지금 그가 꺼낸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금시초문의 것들이었다.

“창세성검은 창조주 데이마 디그 브라이드께서 일곱 차원을 창조하셨을 때, 같이 만들어졌다고 하는 일곱 자루의 강력한 성검을 일컫는 명칭이지. 일곱 자루의 성검은 각 차원을 의미하며, 해당 차원에 멸망이나 그에 준하는 상황이 닥칠 경우를 대비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

“내용을 보면 신화로 전해 내려온 것 같은데, 정말로 신빙성은 있는 이야긴가?”

“확실해. 나도 지구의 성계신으로부터 직접 들은 말이었지. 그 전까지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었어. 그는 창세성검의 존재를 확신하더군.”

“으음.”

지구의 성계신이 보증할 정도면 창세성검은 정말로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그 검이 정말로 인베이더의 성좌들을 감당할 정도가 될 수 있을까?

제 4 성좌인 오르쿤만 해도 그토록 강대함을 자랑했었다. 헌데 그런 성좌들을 아우른다는 제 1성좌인 그룬베일은 얼마나 더 강대할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런데 고작 검 한 자루로 대적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하지만 인베이더들을 지구에서 물리쳤던 걸 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 같진 않았다.

그렇지만 랜슬롯의 입에서 튀어나온 답은 기대와 전혀 어긋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성검탐색은 실패했지. 목표했던 초신성검 엘시어드를 찾아냈지만, 성검의 인정을 받지 못했어.”

“창세성검에도 자아가 있었군.”

“차원의 섭리마저 뒤흔들 수 있는 신기다. 그런 물건에 자아가 없다고 한다면 그것도 웃기는 소리겠지.”

“그런데 실패했다는 건······.”

유태진이 조심스럽게 묻자, 랜슬롯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성검의 자아는 우리에게 자신이 불필요하다고 했다. 때가 아니라더군.”

“때가 아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성검 본인만 알겠지. 정확한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랜슬롯은 원정이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그건 실패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곧 그 뒷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얻은 게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어. 성검탐사대는 하나의 씨앗을 받아왔다.”

“씨앗이라면 그냥 보통 씨앗은 아니었을 텐데··· 뭐였지?”

“성검이 말하길 혼의 결정이라더군.”

그가 말한 혼의 결정이란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것 한가지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인베이더를 지구에서 몰아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지금 언급하고 있는 그것에 있음을.

그리고 그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는 창세성검이 넘겨준 그 결정을 기초로 강력한 결전신기의 제조에 들어갔다. 성계신이 남은 여력을 쏟고, 지구의 사상과 인류의 상념을 불어넣어서 완성되었지. 그렇게 해서 만들어낸 게 결전성검 엑스칼리버. 너희들에게도 잘 알려진 나의 왕 아서의 성검이지.”

“그랬군.”

전승과는 전혀 다른 엑스칼리버의 탄생 비화를 듣게 된 유태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전래된 신화와 사실이 다른 경우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그리고 왕께서는 그 검을 들고 인베이더의 성좌들과 대적하셨다. 수많은 희생을 전제로 한 장렬한 전투 끝에 성계신마저 자기를 희생해 틈을 만들고, 왕의 성검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들을 베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정말 믿기지가 않는군. 그 성좌들을 베어냈다고?”

크게 놀라 묻는 그 말에 랜슬롯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 당시의 엑스칼리버는 정말로 강력했다. 강력한 신격이라 거들먹거리던 성좌들의 권능을 완전히 봉쇄해 버렸으니까. 게다가 이곳이 우리의 홈그라운드라는 어드밴티지 때문에 놈들은 신격마저 한 단계 격하되었지. 그런데도 수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놈들을 베어내는 게 전부였다.”

베어내는 게 전부였다는 말이 유태진의 귀에는 너무도 무겁게 들렸다. 지금 현재를 생각하면 그때의 전투가 어떤 형태로 결말을 맺었을지 뻔히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하긴 성좌들이 지금까지 멀쩡히 활동하고 있는 걸 보면 큰 타격은 없었던 모양이지?”

“그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놈들을 태양계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진 우주로 추방하는 게 고작이었다. 창세성검의 작은 혼의 파편으로 만들어진 엑스칼리버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강력했지만, 그걸 다루는 왕의 역량이 그에 한참 못 미쳤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

안타깝긴 해도 유태진으로서는 납득되는 결과였다.

본디 병기란 신외지물이라고 했다. 제아무리 강력한 무기라 하더라도 그걸 다루는 자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위력을 다 발휘할 수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먼 우주로 추방당했어도, 그들이 다시 지구를 침공하는 건 언제든지 가능했으니까. 엑스칼리버에 입은 타격이 상당하긴 했지만, 그거야 오래지 않아 회복이 가능하니 지구가 다시 침공당하는 건 그야말로 시간문제였지.”

신적 존재들은 격이 높을수록 시간과 공간을 아득히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인베이더들의 성좌라면 그 먼 수천만 광년 거리의 우주공간을 뛰어넘는 것도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 놈들의 재침공을 막기 위해 우린 지구를 완전히 봉인하기로 했다.”

“봉인이라면···?”

“멀린이 고안해낸 성계 규모의 의례주법이었는데, 외부와의 모든 연결을 끊어냄으로서 지구를 우주로부터 완전히 격리하는 거였다. 물론 물리적으로 지구에 접근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이능이나 권능을 통해서는 절대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었지. 그리고 이 특수한 봉인은 섭리에도 영향을 미쳐서 지구의 좌표를 그 어떤 초월자들도 인식 못하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봉인은 성공적으로 완성되었어.”

“그래서 1500년 동안 인베이더 놈들이 지구를 침공하지 못한 거였군.”

유태진으로선 그런 봉인이 가능하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초월자들에게도 인식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봉인이라니··· 자신도 적지 않은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어떻게 해서 그런 봉인이 가능한지 쉬이 이해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대신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 봉인의 영향으로 더 이상 사람들이 이능을 자각할 수 없게 된 게 문제였다. 이미 기존에 이능을 배운 자들에게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것을 후대에게 전승할 수 없게 된 거지. 모든 영능은 기본적으로 영력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음, 그렇게 해서 지구의 이능이 사라지게 된 거였군.”

어째서 오늘날 지구의 영능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인지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된 유태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제야 오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런 희생을 치른 덕분에 우리 지구는 인베이더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게 되었지만, 왕께서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한탄하셨다. 자신의 무력이 조금만 더 강했어도, 인베이더의 성좌들을 확실하게 물리치고 희생을 최소화 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셨지.”

“그런데 그 대단한 봉인이 왜 이제 와서 깨지고 있는 거지?”

유태진은 최근 빛의 여신 루네리아가 개입하면서 지구인들 중 일부가 신성력을 각성하기 시작한 현상을 봉인이 붕괴하고 있는 조짐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와 함께 분석했던 리스티도 같은 결론을 내놓았었다.

랜슬롯도 곧 그 사실을 시인했다.

“솔직히 말해 지구의 봉인술식은 지구의 멸망을 먼 훗날로 지연시킨 것에 지나지 않았어. 봉인이란 건 어디까지나 임시조치일 뿐, 그것이 영원히 유지될 순 없는 법이니까. 그 시기를 대략 1500년에서 2000년 사이로 계산하고 있었는데, 요즘 상황을 보면 얼추 맞아 떨어진 모양이군.”

“그래서 이에 대한 대책은 있나? 아서 왕은 어떻게 된 거지? 방금 당신 이야기대로라면 죽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자신이 아서 왕이라면 시한부 인생이나 다름없는 지구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을 것이다. 인베이더의 성좌들과 결전을 벌일 만큼 각오를 할 수 있는 자라면,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래, 죽지 않으셨지. 그분은 지구를 봉인하는 것만으로는 놈들로부터 완전히 지켜낼 수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지금처럼 소극적으로 대처해봐야 결과가 달라질 수 없다고도 하셨지. 그래서 직접 우주로 나가셨다.”

“우주로?”

“그래, 우주로 나가서 힘을 기르기로 결심하신 거지.”

무려 1500년 전의 시대에 무슨 우주행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영능의 힘이 개입된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랜슬롯만 하더라도 충분히 단독으로 우주를 활보할 수 있는 작자였으니까. 아서왕이 그와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강자라면 우주로 나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라 보았다.

단지 유태진으로서는 아서왕이 우주로 나아갈 생각을 했다는 게 조금 뜻밖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행성들을 떠도셨다. 그리고 지구에서 볼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익히셨지. 물론 그 과정 중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왕께서는 인베이더의 침공을 받던 여러 성계들의 힘을 규합하고, 자신들과 맺었던 인연들의 도움으로 끝내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세우는 데에 성공하셨다.”

하나의 거대한 세력이란 랜슬롯의 그 말에 유태진은 퍼뜩 깨달았다. 인베이더와 적극적으로 대적하고 있는 우주적인 세력! 그런 곳은 그가 아는 한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 세력이란 게 설마?”

“그래. 바로 너도 가본 바 있는, 지금의 아르탈 행성 연합이지.”

랜슬롯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명칭에, 유태진은 크게 경악하고 말았다. 설마 연합을 세운 자가 같은 지구 출신인 아서왕일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만일 그 말이 진짜라고 치자. 어째서 연합에서 아서왕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거지?”

유태진이 연합에서 기초교육을 받을 때 연합이 어떻게 성립되고 세워진 건지 배운 바가 있었다. 하지만 연합의 시초를 연 설립자들 중 아서 팬드래건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혹시 랜슬롯이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했지만, 그는 왜 알려지지 않은 건지 그 이유를 밝혔다.

“그분께서는 우주에서 활동하실 당시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셨으니까. 혹시라도 당신이 지구 출신인 게 밝혀지면 인베이더들의 집중 표적이 될까봐 일부러 가명을 사용하셨지.”

“혹시 그 가명이 뭔지 들을 수 있을까?”

유태진의 조심스런 물음에, 랜슬롯은 분명한 어조로 내뱉었다.

“제노디안 리피라이터. 그게 그분이 쓰셨던 가명이었지. 이젠 당신의 본명보다 더 유명해지셨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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