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72화 (273/448)

11권-22화

확인 절차를 끝마친 그들은 유태진을 따라 회의장으로 안내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다들 사전에 들어서 아실 거라 믿고 생략하겠습니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번 정상회담 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동참하지 못했었지만, 이미 대략적인 내용은 전달받았던 것이다.

“우리 아르탈 행성 연합은 인베이더의 침공을 앞둔 지구를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지원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기술 지원입니다.”

“기술지원이라면···?”

“인베이더와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점을 충족할 수 있는 군사 분야의 기술들이 주가 될 겁니다. 예를 들자면 전함 제조 같은 기술들이지요”

기술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자 사람들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이곳까지 오면서 연합의 기술력이 어느 정도인지 체험해본 만큼 기술 이전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지원해 주는 기술이라면··· 혹시 연합의 최신 기술은 어렵겠지요?”

먼저 입을 연 것은 NASA의 데이빗 박사였다. 그가 던진 물음에 유태진은 당연하다는 듯 답해주었다.

“물론이지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겠지만 기술개발이란 게 그냥 맨 땅에서 거저 되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막대한 자본이 투자된 뒤에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지요. 그래서 저희가 지구에 전수해줄 기술들은 현재 연합에서 쓰이지 않는 구세대 기술들 중에서 지구에 필요할 거라 생각되는 것들을 추려서 이전해줄 거니다.”

“오래된 기술이라면, 너무 효용성이 없지 않을까 우려되는군요.”

“저희 기준에서나 오래된 기술이지, 적어도 지구 기준에서는 족히 수백 년 이상 앞선 기술들입니다. 그 정도만 해도 인베이더의 본대가 직접 들이닥치지 않는 한은 충분히 지구를 사수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기 손짓하자 연합이 전수해줄 기술에 대한 목록들이 홀로그램 스크린을 통해 출력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구세대 기술이란 말에 보였던 실망감 대신, 기대에 찬 얼굴이 되었다.

“오오, 이건!”

“함 내의 인공중력 생성이라. 이게 중력 제어의 가장 기초 기술이란 거군.”

“전함 탑재용 레이저 핵융합로? 이런 출력이라니! 이런 소형화 된 크기로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 몇 개 이상의 출력이잖아!”

“힉스제로 현상을 이용한 가속 시스템이라니! 이게 정말 가능하다면 추진제가 필요 없어지잖아! 아니, 그 전에 이론상 최대 광속까지 가속할 수 있어? 진짜인가?”

상상을 초월하는 기술들의 향연이었다. 연합에서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기술이지만, 지구에서는 SF소설에서나 가능한 상상속의 미래 기술들뿐이었다.

이 기술들을 정말 전수받을 수 있다면 지구는 지금보다 엄청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이젠 지구를 벗어나 인간의 생활권을 우주까지 확장해 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두려움이 앞섰다. 이런 기술들을 구시대의 것으로 취급할 정도로 발전된 아르탈 행성 연합에서도 대적하기 어려운 적이라는 인베이더는 대체 얼마나 강력하다는 말인가?

“다 확인하셨습니까?”

“확인했습니다. 하나같이 대단한 기술뿐이더군요. 이런 기술들이 구세대의 것이라니··· 아르탈 행성 연합의 저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재삼 알 수 있겠더군요.”

푸튼 대통령이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 자리에 함께 동석한 러시아 출신의 전문가들의 설명을 토대로 연합에 제공해준 기술들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구세대의 기술이라 해서 그렇게까지 뒤떨어진 기술들은 아니지요. 그 정도만 해도 변두리 행성을 침공하는 인베이더의 분대들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기술들이니까요. 연합에서도 이런 기술을 특정 행성에 대가 없이 제공해준다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을 부디 아셨으면 합니다.”

유태진의 그 말에 정상들도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이 봤을 때도 하나같이 대단한 기술들이었다. 이런 기술을 아무 인연도 없는 행성에 무상으로 제공해준다는 건 제아무리 구시대의 것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그 말은··· 연합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구 출신의 사람들이 그만큼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다는 증거겠지.’

메켈린 대통령은 내심 그렇게 추측해 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연합이 거들떠 볼 것도 없는 지구를 이제와 새삼스럽게 도울 이유가 없었다.

그렇기에 유태진과 그 일행들이 새삼 더 대단해 보였다. 그들이 연합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해준 덕분에 이런 기회가 찾아왔다는 걸 들은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잘 살릴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이제 여러분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2년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총력을 다해 이 기술들을 흡수해서 인베이더와 싸울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합니다.”

“2년이라니···.”

사람들이 침음성을 삼켰다. 2년밖에 안 남았다는 소리는 이미 들은 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제공받을 기술들을 보고나니 그게 얼마나 턱없이 짧은 시간인지 실감이 난 것이다.

“그 2년이란 게 설마 우리 스스로 전함을 제조할 수 있는 시간이란 거요?”

“예, 어떻게든 2년 내에 해내야 합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 인베이더의 침공권이 가시화 되는 시점이 2년보다 더 이후일 수도 있지만, 저희는 2년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멸망당하고 싶지 않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겠지요.”

“으음 ···그래서 통합을 조건으로 내건 거였군.”

사람들은 연합에서 지구권의 통합을 바란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만일 그냥 기술만 제공해 줬더라면, 각국마다 제각기 따로 연구한답시고 막대한 돈과 시간낭비만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 기술들을 흡수해서 2년 내에 생산 단계까지 도달하려면, 전 세계 최고 연구진들이 한 마음이 되어 머릴 맞대도 쉽지 않을 일이었다.

그리고 유태진은 그 점을 이 자리에서 통렬하게 지적하고 나섰다.

“예, 그렇습니다. 지구권 통합은 우리 연합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들을 위해서지요. 인베이더의 침공까지 2년도 채 남지 않은 지금, 각국이 분열된 채로 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 짧은 시간동안 이런 기술들도 미처 다 소화하지 못할 텐데.”

“······.”

“그러니 기존의 국가개념의 인식을 벗어나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 눈앞에 닥친 인베이더 문제가 굳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우주에 진출하게 되면 많은 행성들과 교류를 하게 될 텐데, 그때도 지구만 사분오열 된 상태로 각 국의 이름을 앞세워 교류할 생각입니까? 아마 타 행성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겁니다. 조그만 행성에서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는 것들이 우주로 나와 설치고 있다고 말입니다.”

다들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국이 개별적으로 연구를 진행하기엔 너무 앞선 미래기술들이었다. 전 세계가 한데 힘을 모아도 벅찬 상황에서, 각 나라의 주권을 주장하며 현재의 국가체계를 고수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컸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뒤,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그는 스웨덴 출신의 과학자였다.

“통합이야 그렇다 칩시다. 그래도 너무 무리한 일입니다. 아무런 설비도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기반지식이 전무한 기술을 실전도입 단계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여기 나와 있는 레이저 핵융합 하나만 하더라도 최소한 7년에서 10년이 걸릴 겁니다. 그나마 이건 우리가 상상으로 생각해오던 개념에 가깝기 때문에 그 정도로 예측하고 있는 거지요. 이 중에서 감도 안 잡히는 기술들은 아마도 그 이상의 시일이 걸릴 겁니다.”

“우려하는 바는 잘 압니다. 저희도 그에 대한 대책을 어느 정도 준비해 놓고 있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일단 기본적인 생산 라인은 지구 현지거점인 저희 KM사와 세화 그룹에서 맡겠습니다. 그러는 사이 여러분들은 이곳 카멜롯에서 기술들을 습득하면서 생산 라인을 복제하는 방법을 차차 배워나가는 겁니다.”

이게 가능한 건 그가 인피니티 킹덤과 함께 끌고 온 수송함과 공업함 때문이었다. 그곳에 있는 설비와 물자를 동원한다면, 생산 라인을 확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혹시 이 함대에는 생산 설비도 갖추고 있는 거요?”

“예, 여러분들은 못 보셨겠지만 대형 공업함 한 척이 대기 중입니다. 그곳의 설비를 사용하면 전함의 제조도 가능하지요.”

유태진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자, 누군가가 또 황당한 소리를 꺼내들었다.

“그럼 굳이 2년이란 시간이 목멜 게 아니라, 그곳에서 전함이든 뭐든 그냥 생산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소리였다. 물에서 건져주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당장은 거저먹는 것 같아도, 결국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인 법이다.

유태진은 그 점을 강조해 말했다.

“그렇게 되면 지구는 연합의 일원이 아니라 그냥 식민지 형태로 스스로 종속을 자처하는 겁니다. 혹시 그렇게 되길 바라십니까?”

“그··· 그럴 리가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 주시지요.”

자신이 얼마나 황당한 소리를 했는지 깨달은 그 사람은 결국 꼬리를 말고 물러났다. 그리고는 사람들의 눈총 속에서 자리를 옮겼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었다. 각 국 정상에다가 나름대로 지구에서 뛰어난 전문가라는 자들을 선별해서 데려왔더니, 저런 생각 없는 자들이 여전히 섞여 있을 줄이야.

한 차례 한숨을 내쉰 유태진은 사람들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기술을 얼마나 습득할 수 있을지의 여부는 여러분들에게 달렸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얼마나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도 여러분들의 능력에 달렸지요. 저희는 기회만 제공해줄 뿐입니다.”

“물론이요. 만들어서 갖다 주기까지 했는데 떠먹여달랄 수는 없지.”

프랑스의 에마닐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다른 국가의 정상들도 다들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이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 만큼, 국가의 구분을 뛰어넘어서 서로 협력할 때인 것이다.

“그리고 이미 정보를 입수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앞으로 지구에는 영능을 각성한 자들이 조금씩 나타나게 될 겁니다.”

유태진이 덧붙인 그 말에 메켈린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중동에서 벌어진 그 기현상 때문이오? 스스로를 신이라고 자처하던 존재의 목소리가 들렸던 그···.”

“예, 맞습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하신 그 기현상도 어느 정도 기여를 했지요.”

“······.”

그때의 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의 뇌리에 들려온 신의 음성. 그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신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지구에는 제각기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로 넘쳐났지만, 그때와 같이 인상 깊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여러분들은 모르셨을 테지만 지구에는 어떤 정체불명의 금제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지구 출신들은 영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금제였지요. 이게 왜 존재하고 있었는지는 저희도 구체적인 건 모릅니다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약화가 됐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신의 권능이 지구에 임하면서 이젠 유명무실한 상태에 이르렀죠. 그래서 지금처럼 중동에서 신성력을 각성하는 이들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그 신성력이란 건 뭐요?”

“그건 신앙심을 지표 하는 힘입니다. 신을 섬기는 대신, 부여받는 힘이라 보시면 되겠군요.”

“허··· 신이라니.”

이탈리아 출신의 사내가 헛웃음을 흘렸다. 카톨릭의 본산지인 교황청이 존재하는 아탈리아 출신인 그에게 있어, 또 다른 신이 실제한다는 말은 지금까지의 신앙을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여러분들께는 생소하겠지만 신은 분명 존재합니다. 우주에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고, 그 중 일부는 세상에 직접 개입하고 있지요. 인베이더들도 엄연히 보면 신의 수하들이라 해야 할 겁니다. 물론 그쪽은 엄연히 악신이라고 해야겠지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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