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21화
그들이 탄 아우기스는 카멜롯의 함체 위에 내려앉아 가볍게 도킹했다. 그리고 도킹으로 두 함이 연결된 통로를 통해 카멜롯의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정말 엄청나군.”
“내부에서 더 보니 더 거대한데?”
사람들은 카멜롯 내부의 거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우기스에서 보던 카멜롯의 외형을 보고 생각했던 추정치보다 더 거대해 보여서였다.
어지간한 대도시 규모의 함선. 그것이 바로 카멜롯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고 있는 격납고에 있는 각종 기체나 함선들은 더더욱 그들을 압도되게 만들었다.
이제는 확신했다. 이건 지구에서 만들어질 수 없는 종류의 과학력이었다. 외계인은 정말 실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때였다.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이게 누구야, 데이빗 아니야?”
사람들이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흰 가운을 입은 중년을 넘어 노년에 이른 사내가 있었다.
카멜롯을 방문하게 된 사람들은 낯선 사내의 등장에 의문을 떠올렸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곳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달리, 각 분야의 전문가들 중 일부가 동요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미국의 사절단으로 참석한 NASA의 데이빗 마크윌러 박사가 그러했다.
그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외쳤다.
“아니, 듀렌 박사 당신이 왜 여기에?”
듀렌 박사라는 명칭에 그제야 사람들도 놀란 반응들을 보였다.
“듀렌 박사라면 설마!?”
“NASA의 그 유명했던 박사 아니야?”
“아니, 실종되었다던 양반이 왜 여기 있는 거야?”
듀렌 박사는 우주공학 쪽에서는 가장 두각을 드러내던 유명 인사였다. 물론 그 분야에 관심 없는 자들이라면 그를 모르는 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과학에 종사한 자들은 대부분 그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를 보자마자 알아챈 데이빗 마크윌러 박사도 마찬가지로 NASA소속의 과학자였다. 그 둘은 서로 깊은 친분을 갖고 있었으며, 같은 우주공학을 연구하는 라이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를 보자마자 알아본 것이다.
“대체 어찌 된 거지? 자네가 실종된 후로 죽은 줄만 알았는데.”
“사정이 좀 길지. 나도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고 말이야.”
데이빗 박사의 물음에 듀렌 박사는 픽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얼버무림을 데이빗 박사는 달리 해석해 버렸다.
“···설마, 자네도 외계인이었나?”
“뭔가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엄연히 지구인일세. 단지 저들과 만나게 되었을 뿐이지. 자의는 아니었지만 말이야.”
“혹시 납치라도 당한 건가?”
“아니, 납치는 아니야. 나중에 듣게 되면 알게 될 걸세.”
그렇게 대답해준 듀렌 박사는 유태진과 함께 지구에서 온 손님들을 안내했다. 일단 며칠간 이곳에서 묵게 될 예정인 만큼 그들 개개인에게 숙소를 배정해준 것이다.
지구에서 온 정상들과 사절단의 수는 상당히 많았지만, 카멜롯은 그들을 충분히 수용하고도 넘쳐났다.
애당초 카멜롯만 하더라도 족히 수만 명을 수용하고도 남는 크기였다. 그들 고작 천여 명의 사절단이 더해진다고 해서 딱히 부담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숙소를 배정해준 뒤, 유태진은 그들에게 옷을 제공했다. 물론 평범한 옷은 아니었다. 우주에서 활동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하는 노멀 슈트였다.
그들에게 제공된 노멀슈트는 오버러들의 배틀슈트와 달리 대단한 방어능력은 없었지만, 맨몸으로 우주공간을 활동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사절단들은 노멀 슈트를 제공받고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왜냐면 유태진이 제공해준 노멀슈트라는 게 자신들이 평소 입는 옷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주비행사들이 우주공간에 나가기 위해 두터운 우주복을 갖춰 입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건 평범해도 너무 평범했다.
“정말 이런 걸 입고 나가도 되는 거요?”
누군가가 던진 질문에 유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보기에는 평범한 옷 같아도, 첨단 기술로 제작된 우주용 슈트니까요. 게다가 방호력도 상당합니다. 지구에서 사용하는 대물저격총 정도는 가볍게 방어할 수 있지요.”
“그래도 이건···.”
“정 의심스럽다면 슈트의 성능을 시험해보셔도 무방합니다.”
주저하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이해한 유태진은 따로 장소를 마련해 주었다. 총알의 도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였다.
그러자 러시아 출신의 경호원 마르코가 나섰다. 그는 카멜롯에서 제공해준 슈트를 입은 채 긴장된 얼굴로 섰다.
“자, 준비 됐나?”
“···그래, 쏠 테면 쏴 봐.”
각국 정상들이 포함된 사절단인 만큼, 그들을 경호하는 인력도 사절단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달의 뒷면으로 수송해준 아우기스의 수용인원을 생각해 경호인력의 비울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다들 권총 등 기본적인 무기들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러시아 출신 경호원이 마르코의 대답에 즉시 총구를 겨눴다. 그리고는 신중하게 허벅지 부근부터 쏘기 시작했다. 만약 슈트가 총탄을 막아줄 수 없다 하더라도 치명상만큼은 피하겠다는 뜻이었다.
탕! 탕!
순식간에 다섯 발의 총탄이 발사되었다. 서서 느긋하게 정 조준하는 만큼 쏜 총탄들은 정확하게 마르코의 허벅지를 가격하였다.
하지만 마르코의 얼굴에선 아무런 고통의 기색도 느껴지지 않았다. 총탄이 적중된 허벅지도 멀쩡하긴 마찬가지였다.
마르코가 놀란 얼굴로 외쳤다. 그도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했다.
“저··· 정말입니다. 이 옷, 정말로 총알을 막아주는군요.”
하지만 저 옷이 총탄을 막아냈다고 해서 의문이 가신 건 아니었다. 지구에도 총탄을 막을 수 있는 방탄복이나 방어구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혹시 그 안에 방탄복을 받쳐 입은 건 아닌가?”
“물론 혹시나 싶어 입긴 했지만, 방탄복 때문이 아닙니다. 방탄복을 입어도 총알이 가진 운동에너지 때문에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상당해야 하는데, 이건 그런 것도 없습니다. 아무 느낌조차 없군요.”
누군가의 질문에 마르코가 그렇게 대답하자, 이젠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기관단총을 꺼내 갈겨보기도 했고, 혹은 대물 저격총보다는 못해도, 휴대화기로는 제법 강한 총을 사용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화기로도 노멀 슈트를 뚫지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심지어 옷이 보호해 주지 못하는 머리 같은 곳을 쐈는데도, 총탄이 튕겨져 나왔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착용자를 전 방위로 보호해주는 모양이었다.
“이런 옷이라면 정말로 입고 우주로 나가도 괜찮을 것 같군요.”
사절단에 포함된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런 결론을 내렸다. 이 정도 보호력이라면 오히려 우주복보다도 더 견고했다.
경호원들이 휴대해온 화기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아, 더 강력한 화기로 시험할 수가 없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안전하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이제 저와 함께 바깥으로 나가봅시다.”
그들은 유태진을 따라 해치로 향했다. 외부로 나갈 수 있는 입구를 앞둔 사절단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기이잉!
함선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해치가 열리고 외부의 모습이 보였다. 그곳은 사진을 통해 본 적 있는 달의 정경이었다.
황폐하기 그지없는 회색빛 세상 앞에 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주저하고 말았다. 일반 옷이나 다름없는 이 노멀 슈트만 입고 우주공간이나 다름없는 곳으로 나아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을 듀렌 박사가 웃으면서 불식시켜주었다. 그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들의 심정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허허, 걱정들 말게. 두려워할 것 없어. 우주공간이라고 해서 딱히 별다른 것 없거든. 그 노멀 슈트만 입고 있으면 아마 심해에 빠져도 괜찮을 정도니까.”
“그게 정말인가?”
“지구의 기술과 비교하지 말게. 여긴 상상을 초월하거든. 게다가 이건 일반인 용 보호구일세. 진짜 전투용은 지구상의 핵이 터져도 무사할 정도지.”
“정말 엄청나군.”
호언장담하는 그 말에, 데이빗 박사는 혀를 내둘렀다. 일개 개인용 보호 장비가 그런 수준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심지어 일상용 옷과 다를 게 없다니.
어떻게 유태진 일행이 중국을 비롯한 각국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었는지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애당초 지구의 무기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는 이야기겠지.’
사실 유태진 일행은 배틀 슈트의 방어력이 아니더라도 각 나라들을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다는 사실까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거기까지가 그들이 논리적으로 끼워맞춰 상상할 수 있는 한계였던 것이다.
“자, 그럼 날 따라오게. 그리고 여러 정상분들도 절 따라 오시죠.”
그렇게 말하면서 듀렌 박사는 해치 문턱을 넘어섰다. 해치는 보이지 않는 역장의 힘을 일으켜 함 내의 대기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열어놓은 채로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이 오가는 것은 방해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듯 자유롭게 나가고 드나드는 게 가능했다.
“정말 맨몸으로 나갔잖아?”
“저 바깥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있어.”
“숨 쉬는 것도 자연스러운 걸 보니 이 슈트가 산소도 공급해준다는 게 사실이었나?”
사람들은 듀렌 박사가 달 표면을 천천히 걷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간신히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하나 둘씩 나서던 이들은 어느덧 점점 늘어나 모든 사절단이 달의 표면 위에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정말이었군. 이렇게 맨몸이나 마찬가지인 우리가 달 표면을 걸을 수 있다니.”
“상상을 초월하는군. 과학이 발전하면 이런 것까지 가능하다는 건가?”
사람들은 처음으로 달에 발자국을 남기면서 감상에 빠져들었다. 지구가 달에 진출한 지는 제법 오래 되었지만, 실제로 달에 가본 자들은 극소수였다.
제아무리 각 나라의 정상이자 대통령이라 해도 그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토록 감격스러워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누군가 저도 모르게 뇌리로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닐 암스트롱이 한 말이군.”
“그런데 우리는 그때와 달리 우주복도 없는 맨몸으로 달 표면을 두 다리로 딛고 있지. 이건 진짜 위대한 도약이군.”
물론 노멀 슈트의 기술은 아르탈 행성 연합이라는 외계인의 것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감동이 흐려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감상에 젖어 있을 순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지구로 전파를 보내서 실제 자신들이 달에 머물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고, 천문을 통해 현재 위치도 파악했다.
그리고 월석과 모래를 채취해 그 성분을 분석하였다. 지구에서 가져온 휴대용 간이 장비들이 있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그들이 이렇게까지 확인과정을 거치는 건, 혹시라도 자신들이 어떤 사실적으로 꾸며진 세트장으로 이동되어 속고 있는 것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 결과, 이곳은 정말로 달이 맞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달의 뒷면이라서 지구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러 조사 끝에 유태진이 해준 말들이 사실임이 확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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