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70화 (271/448)

11권-20화

* * *

그날 이후 너무도 많은 게 바뀌었다. 이능이란 게 전혀 존재하지 않던 이 지구에 처음으로 영능을 각성한 자가 탄생한 것이다.

아르탈 행성으로 소환되지 않은 경우로는 이번이 첫 사례였다.

윤재민 앞에 나섰던 [바사르 무아마딘은] 조상 대대로 섬겨왔던 알라를 포기하고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를 자신의 신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힘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바사르는 말 그대로 이슬람교를 믿던 자들의 새로운 선구자가 되었다. 그가 여신교로 개종하면서 얻게 된 성스러운 힘, 신성력의 발현.

그것은 온갖 이적을 보여주었던 윤재민과 동일한 종류의 힘이었다.

물론 힘의 종류가 같다고 해서 그 크기까지 똑같은 건 아니었다.

바사르가 보유한 신성력으로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미약한 상처의 치료 뿐. 윤재민이 보여준 죽은 자를 되살리는 이적은 발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신성마법을 배우지 않으면 그 이상의 결과물은 나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신성력이 발현되었다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까지 중동인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알라를 부르짖어 왔지만, 신이 직접 응답해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것도 종교가 생기던 시초의 마호메트나 몇몇 선지자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일 뿐, 그 후대에 가서 알라를 영접했다거나 신의 음성을 들었다는 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윤재민이 섬기는 여신은 전혀 달랐다. 자신이 바치는 신앙에 대해 신성력이라는 확실한 결과물로 보답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 아무리 알라에 신앙심이 투철한 자들이라 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있을까.

결국 바사르 무아마딘을 시작으로, 중동의 아랍인들 중에서 이슬람교를 포기하고 여신교로 개종하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들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옆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보게 된 레이첸은 헛웃음을 지었다.

“진짜 기가 막힐 일이네. 졸지에 저 많은 사람들을 포교 해버린 거야?”

“이게 다 여신님의 뜻입니다.”

오늘도 루네리아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설파하고 온 윤재민은 웃으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휴, 아무튼. 여신이 직접 간섭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어. 지구는 아직 4레벨 문명이라서 간여가 불가능했던 것 아냐?”

“물론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나나 태진 형은 지구 출신입니다. 아르탈 행성 연합에 다녀왔다 해도 이곳 출신의 정명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죠.”

“그렇군. 여기 출생이 이곳이니 그런 제약은 아무 상관이 없다 이건가? 하지만 지구 출신 이 아닌 나나 아리엔이 이렇게 개입하고도 별 일이 없는 걸 보면 좀 마음에 걸려.”

레이첸과 아리엔 같은 연합 출신들이 지구에 대대적으로 개입하는 건 본래라면 섭리에 의해 제재 받을 일이었다.

물론 지구 출신인 유태진 일행과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 어느 정도 그 제약을 무디게 해주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도 제약이 아예 내려지지 않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했다.

물론 자신들이 지구를 침략하거나 해할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지구를 돕기 위해 온 거라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방치하는 건 뭔가 맞지 않았다.

“그건 지구의 특수성 때문일 겁니다.”

“지구의 특수성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윤재민의 그 말에, 레이첸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바이우드 가의 장자로서 많은 비밀들을 들어왔었던 자신이지만, 지금처럼 섭리의 제약을 무시할 수 있는 특수성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이곳은 유니버셜 코어. 이곳이 바로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 * *

“일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여신이 개입하는 경우는 전혀 상정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야.”

유태진은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그렇게 감상을 내뱉었다.

지구인들은 이능 자체를 각성할 수가 없었다. 자신들처럼 오로라 시스템에 의해 외계로 소환되어 각성하지 않는 한 지구 내에서는 결코 불가능했다.

유태진 자신조차 파악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힘이 작용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신성력을 각성하다니. 그건 어떤 변화가 지구에 새롭게 작용했다는 증거나 다름없었다.

혹시나 싶어 보육원의 아이들에게 기초적인 토납법을 알려줬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그렇지만 예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달라진 점이 눈에 띄었다.

‘미약하지만 진기가 축적되고 있어. 물론 정상적인 내공 축적에 비한다면 너무 미약하지만, 그래도 아무 효과도 없던 예전에 비한다면 확실히 달라.’

그 말은 지구의 영능을 금제하던 힘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뜻이었다.

아마도 여신 루네리아의 권능이 지구에 임한 순간, 그 힘이 크게 흐트러진 게 분명했다. 일단 한번 흐트러진 금제는 점점 붕괴되기 시작할 터. 어느 정도 시일이 지난다면 지구인들도 영능을 각성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게 문제지.”

앞으로 인베이더의 침략권이 지구에 미치기까지 불과 2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이 금제가 완전히 무너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니 지금 당장 금제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2년 안에 지구인들을 쓸 만한 수준까지 영능력자로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재민이 녀석이 잘 해주고 있긴 한데··· 문제는 신성력을 각성할 만큼 신앙심이 투철한 자들은 많지 않단 말이야.”

신성력은 특정 신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비롯되는 힘이다. 그렇기에 영능의 금제가 어느 정도 붕괴된 지금, 가장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신과 소통하면서 신이 내려주는 신성력의 근원을 씨앗으로 삼아 자신의 신성력을 신앙으로 키워내는 것이니까.

그래서 윤재민도 꽤 적극적으로 포교를 하고 있지만, 그게 생각만큼 쉬울 리가 없었다.

신성력이라는 신앙의 기적이 존재하는 연합에서도, 루네리아라는 여신이 존재하는 것은 믿지만 그들 전부가 그녀에게 신앙심을 바치는 건 아니었으니까.

지구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그나마 중동 쪽은 알라를 섬기는 이슬람교의 광신자들 덕분에 포교가 더 쉬웠을 뿐이다. 그들로서는 그렇게 바라 마지않던 신의 기적을 직접 보게 된 이상,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아저씨, 시간 다 됐어요.”

불쑥 찾아온 리스티의 말에 유태진은 고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슬슬 올 때가 됐지.”

전 세계 각국 정상들은 지금도 서울에 남아 있었다. 한국을 미사일로 공격했던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유태진 일행에게 제압된 이상 굳이 귀국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태진이 그들에게 따로 한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며칠이 지난 지금도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유태진과 각국 정상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바로 판문점 인근. 휴전선을 지키는 병사들을 제외한다면 세상의 안목이 가장 적은 곳이기도 했다.

판문점 바깥으로 나서자, 각국 정상들이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그나마 유태진과 면식이 있던 메켈린 대통령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정말 오는 겁니까?”

“예, 곧 올 겁니다. 아, 저기 오는군요.”

고오오오!

유태진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무시무시한 굉음이 닥쳐왔다. 그것은 대기를 가르는 파공성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빛이 굴절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굴절된 형태가 곧 어떤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전함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광학 스텔스 해제. 지금부터 착함에 들어갑니다.]

그 형상은 곧 고유의 색을 띄더니, 완전한 형태를 드러내었다. 바로 인피니티 킹덤에 소속된 로버단 급 전함인 아우기스였다.

연합 기준에서 보면 중형에 불과한 전함이긴 했지만, 전장만 무려 500미터에 이르는 거체는 지구인들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이기도 했다.

“이··· 이게!?”

“세상에··· 진짜였구나.”

하나같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태진 일행이 신기술들을 내보이고, 손에 꼽는 강국들을 초능력으로 제압하는 것을 각종 영상을 통해 똑똑히 목격하면서도, 정말로 외계인이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까지 저만한 힘을 가진 초능력자가 드러나지 않고 세계의 이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함의 존재까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더 이상 외계 지성체의 존재 유무에 대해 의심하는 게 무의미한 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저렇게 거대한 전함을 지구상에서 건조했다면 그 흔적이 각국의 정보망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하물며 저런 전함이 한두 척도 아니고 수십 척에 이르는데다, 저것보다 훨씬 큰 모함까지 존재한다고 하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 그럼 슬슬 탑승하시지요. 이제 저희 인피니티 킹덤의 모함 카멜롯으로 향하겠습니다.”

각 국 정상들은 여전히 넋 나간 얼굴로 하나둘씩 전함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동행한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중에는 우주 방면을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도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전함에 탑승한 뒤엔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너무 안정되어 있어서였다.

심지어 출발한다는 말과 함께 아우기스가 중력권을 이탈하기 시작했는데도, 아무런 느낌도 받지 못했다.

그 말은 이 함 내에 중력이나 관성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로선 상상도 못할 그런 오버 테크놀러지군. 외계인은 정말로 실제하고 있었어.”

누군가가 내뱉은 그 말에 다들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그들은 전함이 지구권을 벗어나는 광경을 커다란 창을 통해 똑똑히 목격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대기권을 이탈한 전함은 어느새 우주 공간에 존재했다. 그리고 저 멀리 존재하던 달이 급격하게 가까워졌다. 달과 지구는 무려 10만km이상 떨어져 있는데, 그 먼 거리를 단숨에 가로지른 것이다.

그리고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아 달의 뒷면에 도착하고 말았다.

“너무 놀라워서 이젠 더 할 말도 없을 정도야.”

“우리 과학 수준하고 어느 정도로 차이가 나는 거지? 봐도 이해를 할 수가 없어.”

“이 전함은 대체 어떤 추진 시스템을 쓰는 거지? 이렇게 빠를 수가 있는 건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그런 의문들을 떠올렸지만,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데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 뒤, 그들은 더욱더 압도적인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세상에 맙소사!”

“저게 정말로 전함이라고?”

“오 마이 갓!”

전장만 무려 수십 킬로미터 달하는 그 거대한 크기는 우주를 여행하는 인공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게 바로 우리 인피니티 킹덤의 모함 카멜롯입니다. 여러분들이 우주로 나오게 된 목적지이기도 하지요.”

유태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 가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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