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19화
윤재민은 자신 앞에 나선 사람의 눈을 바라보았다.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나선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신앙이 공허함을 깨닫고,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신을 찾아 이렇게 나선다는 건 보통 용기를 가지고는 불가능했다.
물론 그것이 루네리아를 향한 신앙이라 하긴 어려웠지만, 신을 찾고자 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라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여신에 대한 신앙은 차차 알아가면서 자라나게 될 일이다.
“예, 물론입니다. 앞으로 당신은 저의 형제입니다.”
화아악!
윤재민이 눈앞의 사내를 여신의 신도로 받아들이면서 손을 얹은 순간, 압도적이라 할 만큼 찬란한 빛이 그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아앗! 이 빛은!?”
“이 무슨!”
난데없는 빛의 출현에 사람들이 놀라 바라보았다.
사람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다니! 상식적으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선지자라 여겼던 자가 이적의 힘을 발휘하면서 종종 은은한 후광을 뿜어낸 적은 봐왔지만, 이렇게까지 강렬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허나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저 빛이 선지자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같은 알라를 섬겨온 사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늘 저 높은 곳까지 치솟더니 곧 온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구름마저 그 빛에 밀려 사라지고, 이젠 하늘과 땅이 온통 빛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허나 강렬하면서도 눈부시지 않았고, 너무도 고결하고 아름다워서 사람들이 방금 전까지 품고 있던 낙담과 좌절, 그리고 분노의 감정들마저 그대로 씻어내 버렸다.
“아아!”
윤재민 앞아 나섰던 사내, [바사르 무아마딘]은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수십 년의 세월동안 알라의 이름을 외쳐도 응답해주지 않았고, 절망에 몸부림치게 되었을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제아무리 신을 크게 부르짖어도 호응해주지 않는 공허함에 언젠가부터 회의감을 느꼈다.
신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이토록 간절히 그 이름을 불러도 신은 어째서 우릴 외면하시는가!
선지자인줄 알았던 윤재민이란 자가 던진 물음처럼 알라는 영영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체 무엇이 부족했기에! 자신의 신앙이 부족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하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애당초 전제 자체부터가 잘못되었던 것이다.
자신이 빛에 휩싸인 순간부터 전해져오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만감!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신과 인간이 소통한다는 느낌일 것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슬픔과 아픔을 위로하고 쓰다듬어주는 그 따스함에 눈물마저 새어나왔다.
그리고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찾고 부르짖던 신의 음성이었다.
비록 그동안 신앙의 대상이었던 알라는 아니었지만, 신이 자신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줬다는 것만으로도 더는 바랄 게 없었다.
빛은 더욱더 멀리 퍼져나갔다. 하늘부터 땅 끝까지 온통 빛으로 가득 채운 순간, 바사르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아니 전 세계의 사람들이 똑같은 음성을 들었다.
[나,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이제부터 지구에도 광명이 임하리니, 그대들은 저의 가호 아래 스스로의 힘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청아하면서도 신성한 그 울림! 그것은 전 세계를 두덮은 권능의 빛과 함께 모두의 뇌리에 깊게 메아리 쳤다. 이것이 지구에서 첫 발아하게 된 여신교단의 시작이자, 후에 홀리 임팩트라고 불리게 될 어느 날이었다.
* * *
중국과 일본, 인도 등이 하나하나 제압되면서 전 세계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처음에는 미국과 러시아 등 군사강국이 본격적으로 나섰나 싶었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니었다.
그 나라들을 제압한 것은 불과 열 명도 채 되지 않는 소수의 인간이었다.
“이게 뭐지?”
“지금 우리가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거야?”
“말도 안 돼! 설마 이거 CG아니야?”
사람들은 SNS나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오는 각종 영상과 사진에 경악과 불신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개 인간이 맨몸으로 현대 화기들을 상처 하나 없이 견뎌내고, 초능력과 같은 압도적인 힘으로 군대를 제압해 버렸다. 이건 기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각종 증거들과 영상이 계속 올라오면서 불신하던 사람들도 점점 반신반의하는 태도로 돌아섰다.
요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개인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있는 시대였다. 한두 사람도 아니고, 북경이나 도쿄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죄다 찍어 올리고 있는 판국이니, 이걸 CG나 조작이라 보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정말로 마블의 초인이 실제 하는 거였나?”
“저 영상 봐! 검으로 고층건물을 베어버렸어!”
“맨주먹으로 탱크를 뭉개버리다니. 정말 사람 맞아?”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동에서는 기적을 베푸는 신의 선지자가 나와 수많은 중동인들이 그 뒤를 따르는 광경마저 찍혀 나돌았다. 그가 보여주는 기적은 그 옛날 마호메트나 예수의 재림이 아닐까 싶을 만큼 믿을 수 없는 것들 천지였다.
그제야 사람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그런 신비로운 힘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일개 개인으로서 국가를 제압하는 초능력자에, 기적을 발현하는 선지자까지 등장하니 믿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놀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중동 쪽에서 시작된 갑작스런 빛이 온 세상을 일순간 뒤덮어 버렸다. 위성에서도 관측된 이 현상은 기적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은 듣게 되었다. 일평생 동안 한 번도 들은 적 없던 신의 음성을.
그건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낮에 활동하는 사람들도 밤이라서 잠을 자던 사람들도 모두 그 음성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음성을 들은 자들은 어느 누구 하나 의심하지 않았다. 어떠한 증거나 까닭도 알려진 바 없음에도 그것이 진정한 신의 음성임을 모두들 직감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흠, 결국 이런 식으로 개입을 한 건가? 덕분에 봉인의 균열이 더 커졌군. 어차피 오래 가지 못할 봉인이었지만 말이야. 덕분에 더 수월하겠어.”
그리고 그 음성을 들은 자들 중 하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들 신의 권능이 담긴 영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만, 그는 냉정한 이성으로 그것을 판단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야 겨우 때가 이르렀어. 하긴 1500년의 기다림도 이제 슬슬 끝날 때가 되었지.”
이름 모를 그 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가 걸어가는 경로 앞에는 거대한 돌들이 세워져 있는 스톤헨지가 우두커니 자리하고 있었다.
* * *
아르탈 행성 내에 존재하는 여신교단의 성지.
그곳은 빛과 생명의 여신 루네리아가 실제 기거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신을 언제든 배알할 수 있는 사도, 베르다인은 자신의 여신에게 탄식과도 같은 말을 내놓았다.
“여신이시여. 이번만큼은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그 말에 여신 루네리아는 그저 흐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안타가운 이들이었어요. 도저히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어요.”
그녀는 자신을 섬기는 윤재민을 통해 그들의 울부짖음을 보았다. 신을 갈구하면서도 보답 받지 못하는 그 삶은 이제 방황에 이르러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삶의 이유가 되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개입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그리고 조만간 지구는 인베이더들의 침략을 받게 되어 있어요. 관리국에서 그를 통해 지원한다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해요.”
“압니다. 지구가 그분과 관여된 곳이라는 것도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 일로 한 번에 너무 많은 간섭력을 소모하셨습니다.”
루네리아 같은 상위신이 발휘할 수 있는 권능은 절대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한하진 않았다.
아니 신의 권능은 무한할지언정, 실질적으로 물질계에 간섭할 수 있는 데엔 많은 제약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다른 신들에 비해 비교적 많은 권능을 행사할 수 있는 편이었다. 여신교단은 우주적인 규모의 세력이었고, 그들이 보내오는 신앙은 그녀가 물질계에 권능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어주었으니까.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과 같은 급격한 간섭력 소모는 위험했다. 그녀는 1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베이더의 성좌들을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자칫 대응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었다.
베르다인은 바로 그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여신은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듯, 괜찮다며 말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베르다인. 지구의 사람들이 제 마음에 응답해 주고 있으니까요.”
“예? 설마···.”
베르다인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응답해준다는 건 그들이 진심으로 루네리아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기로 마음먹었다는 의미였다.
“오랫동안 신이 응답해주지 않았던 곳이에요. 그런데도 아직까지도 신을 부르짖으며 신앙을 찾아 헤매고 있었죠. 하지만 오늘 저와 연결되면서 그들은 잃었던 길을 겨우 되찾게 된 겁니다.”
“그렇군요.”
베르다인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설마 일이 이런 식으로 해결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우주는 루네리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사람들도 신이 어떤 존재이고 그들의 권능이 어떤 것인지 아는 만큼, 권능을 내보인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진 않았다.
하지만 지구는 그와 사정이 전혀 달랐다. 신앙을 부르짖으면서도 신에 대해 무지몽매했으니, 권능을 체험한 것만으로도 크게 감복하여 그녀를 진심으로 따르게 된 것이다.
“지구에서도 당신을 섬기는 자들이 늘어난다면 소모한 간섭력 정도는 금방 충당되겠군요.”
“이걸 의도한 건 아니지만요.”
졸지에 자신의 신도가 크게 늘어나버린 상황에 루네리아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아무튼 이걸로 지구인들의 영능을 봉인하고 있던 힘은 크게 깎여나가게 되었어요. 지구인들도 오래지 않아 하나둘씩 영능을 일깨우게 되겠죠. 그건 지구의 전력에 큰 보탬이 될 거에요.”
“하지만 정작 그분은 기억을 못하고 계시니 어떻게 될지 모르겠군요.”
베르다인은 한 사내를 떠올리고는 푸념처럼 그렇게 내뱉었다. 자신이 섬기는 여신이 그를 위해 이렇게 수천 년 동안 애를 써왔건만, 그것을 원했던 당사자는 기억을 되찾지 못한 채로 태연하게 지내고 있으니 그것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던 것이다.
“곧 깨닫게 될 거에요. 저와 그렇게 약속했으니까요.”
루네리아는 자신의 사도를 그렇게 달래면서 저 먼 곳을 응시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저 멀리 수십만 광년 이상 떨어진 지구에까지 닿고 있었다.
그녀는 그곳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그리움을 담아 중얼거렸다.
“이 오랜 기다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요. 정말이지 다시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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