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17화
일본도 사정은 중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을 맡은 사람은 유태진 일행 중 클레브였다.
클레브는 일본에 도착한 즉시 도쿄로 진격했다. 도쿄는 일왕의 황거는 물론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 등 모든 국가의 중앙 기관들이 밀집해 있는 수도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이번 일로 자위대의 상당수가 전멸한 지금, 도쿄만 제압된다면 일본 전체가 제압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일본 정부에서도 뒤늦게야 클레브의 침입 사실을 깨닫고는 남은 병력을 총동원했지만, 그 정도로 그를 저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마··· 막아! 놈을 저지하란 말이야!”
“쏴! 어떻게든 놈을 멈춰 세워!”
“우리 뒤에는 도쿄가 있어! 어떻게든 이곳을 사수해야 해!”
자위대가 보유한 온갖 화기가 클레브 한 명을 향해 투사되었다. 그들도 나름 필사적이어서 화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클레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화약반발식 개인용 휴대화기라. 하긴 여긴 이런 무기를 쓰고 있었지.”
클레브는 픽 웃었다. 레일건 같이 전자기 추진 방식도 아니고, 고작 화약의 힘을 사용해 쏘는 딱총 따윈 피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가 입은 배틀 슈트의 액티브 배리어만으로도 지구상의 모든 병기는 막아낼 수 있으니까.
설령 핵을 사용한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영력이 담기지 않은 무기 따윈 애당초 큰 피해를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틀슈트의 존재를 모르는 자위대의 눈에는 클레브가 맨몸으로 자신들의 화력을 버텨내는 것처럼 보였다.
“미··· 미친!? 그걸 맨몸으로 맞고도 멀쩡하다고?”
“괴, 괴물이다! 인간일 리가 없어!”
대전차포든 무엇이든 죄다 통용되지 않았다. 심지어 옷자락은 물론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게 할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클레브의 공격은 무시무시했다.
내딛는 진각! 휘몰아치는 전신의 회전과 그 무게를 담아낸 일권!
그것이 작열하는 순간, 두터운 장갑을 두른 전자조차 그의 앞길을 막지 못했다.
콰우우우!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경라인(勁螺印)-경라주천(勁螺柱穿)
그의 팔뚝을 따라 일어난 맹렬한 권풍의 소용돌이가 일직선으로 뻗어나가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이것이 클레브가 유태진에게 전수받은 천중무한신공의 진수.
하늘의 무게를 그대로 담아낸다는 신공이 천중칠절예에 더해지면서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하는 영역에 도달하였다.
도쿄로 향하는 길목을 가로막던 전차들이 공깃돌마냥 날아가 사방에 처박혀버린 것이다.
“음, 역시 힘 조절은 쉽지 않아.”
사실 그가 제대로 펼쳤다면 전차들은 한순간에 가루가 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헌데도 이렇게까지 힘을 줄인 것은 불필요한 살생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위대의 저항은 생각보다 끈질겼다. 사망자가 거의 없다는 것도 이유일 테지만,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도쿄에 가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일왕과 아비 총리란 작자들이 도망가겠어.’
모듈밴더가 제공해주는 전장감지 센서에는 아직 그들이 도쿄에 남아 있음이 확인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그러란 법은 없었다.
“서둘러야겠군.”
그때부터 클레브의 대응이 변했다. 손속에 사정을 두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위대를 특별히 배려해주지도 않았다.
그는 진기를 담아 외쳤다.
“너희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하겠다. 지금부터 무기를 내려놓고 이곳을 서둘러 벗어나라.”
“뭐?”
“딱 1분의 시간을 주지. 무기를 놓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이제부터 사정 봐주지 않고 공격할 거다. 그러니 죽거나 다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이곳에서 빠져!”
“이런 미친놈이 있나!?”
자위대의 지휘관이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망치란다고 도망친다면 그게 군대인가?
물론 전차 등의 화기에도 상처 하나 나지 않는 저 괴물 같은 사내의 능력은 놀랍긴 하지만 그뿐이었다.
아직 죽은 자들도 거의 없었을 뿐더러, 이 뒤에는 도쿄가 있었다. 놈이 무슨 협박을 하든 어떻게든 버텨서 지켜내야 했다.
“지금부터 시간을 세지. 혹시라도 도망갈 생각이 없다면 1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져도 날 원망하지 마라.”
“어디서 되도 안는 개소리를! 자 총 공격해라! 1분이 끝나기 전에 저놈을 해치우는 거다!”
지휘관의 명에 따라 자위대의 공격이 재개되었다. 하지만 거센 포화에 직격당하면서도 클레브에게는 여전히 상처 하나 없었다.
1분이란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노려보며 말했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다. 너희가 선택한 길이니 이제부터 어떤 일이 벌어져도 후회하지 마라.”
그가 양 손을 내뻗는 순간 두 가지 힘이 서로 얽혀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눈에 보일 리 없는 인력과 척력을 구체화 한 형태인 인광부(引廣敷)와 절곡부(折曲敷)였다.
고오오오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2절. 둔중뢰벽인(鈍重雷壁印)
비의 뇌벽섬인(雷壁掞印)-공진뢰연폭(共振牢聯爆)
손에서 일어난 인광부와 절곡부가 맹렬하게 공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뒤섞여버린 인력과 척력은 얽히고설켜 중력을 교란하는 강대한 파장이 되었고, 그것은 대기를 공진(共振)시켜 고유진동수를 뒤흔드는 무자비한 역도(力道)로 탄생되었다.
“으으··· 이건!?”
대기를 진동시키는 기이한 파장의 흐름에 자위대가 당황해했다. 갑자기 자신들이 든 무
기들이 맹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일부 감이 좋은 이들은 자신이 든 무기를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몇 초 지나지 않아, 자위대 내부에서 무수한 폭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쾅! 콰앙! 콰콰콰쾅!
“커헉!”
“으아아악!”
수많은 비명과 함께 상상 이상으로 끔찍한 참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원인은 자위대가 보유한 무기에 있었다. 개인화기는 물론 전차나 헬기 등 여러 무기들까지 일제히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대··· 대체 이게···?”
자위대의 지휘관들 중 간신히 무사할 수 있었던 자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기 쓰러진 병사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무기들이 돌연 폭발을 일으키다니.
“악마 같은 놈! 지금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왜 이런 일이!”
지휘관이 악에 차서 소리 질렀지만, 클레브는 담담하기까지 한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무슨 짓이라고 할 것도 없어. 공진을 일으켜서 너희들이 가진 무기의 고유진동수를 일부러 자극했을 뿐이니까. 단기간에 진폭(振幅)이 급격히 커지면서 결국 지금처럼 폭발하게 된 거고.”
“마··· 말도 안 돼! 그런 게 가능하다고?”
“난 분명 경고했었다. 선택은 너희들이 했지. 그게 이 결과다.”
그 말을 남긴 채 클레브는 도쿄의 중심으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막을 자는 일본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일왕과 총리를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자들은 적지 않았지만, 자위대도 박살난 지금 그런 호위 따위는 숨 쉬는 것보다 더 간단히 처리할 수 있었다.
“여기 다 숨어 있었군.”
호위들을 짓밟고 들어간 곳은 거대한 방공호였다. 일왕이나 총리 등이 비상시에 몸을 피하기 위한 곳으로서, 핵전쟁이 벌어져도 장기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었다.
하지만 그래봐야 클레브에게는 일개 종잇장만도 못했다.
“고작 메가톤 급 핵폭탄에 겨우 견디는 걸 방공호라고 하다니. 이곳 기술 수준이 한심하긴 한심하군.
가볍게 혀를 찬 클레브의 주먹에 다시금 하늘의 무게가 실렸다. 그것은 모든 무게를 한 점에 담아서 목표 대상이 되는 물질의 입자나 세포의 결합 자체를 붕괴시키는 파괴적인 일격이었다.
천중칠절예(天重七絶藝)
제 1절. 연환천중인(連環天重印)
비의 만력강천(滿力鋼穿)-쇄격파혼붕(碎挌破魂崩)
투우웅!
공간을 울리는 파공성과 함께 그의 일권이 방공호의 입구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무수한 가루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특수 합금으로 두텁게 제작된 방공호의 거대한 금속문이 미세한 입자 단위로 붕괴되어 사라진 것이다.
“으아아아아!”
“으으··· 이런 괴물 같은!”
그 광경을 방공호 안에서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던 자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들이 바로 클레브가 찾던 일왕과 아비 총리인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몇몇 호위들이 그들 옆에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싸울 전의조차 없어 보였다. 하긴 자위대를 박살내고 방공호의 금속문마저 주먹질 한번으로 가루로 만든 자를 상대로 무슨 용기를 낼 것인가.
“이제부터 너희는 전범이다. 심판대에 오를 마음의 준비나 하는 게 좋을 거다.”
클레브는 그렇게 내뱉고는 일왕과 아비 총리, 그리고 몇몇 고위관료들을 포박하였다. 이제부터 이들은 국제재판으로 넘겨져 전범으로 처결될 것이다.
* * *
이번 한국 공격에 동참한 나라들은 유태진 일행에 의해 빠르게 제압되었다. 인도 쪽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리엔과 리스티, 그리고 엘레나까지 가세한 이상 제압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중국만큼 워낙 인구나 병력이 많은 탓에 유태진이 그들 셋을 함께 보냈는데, 수도인 뉴델리를 점령 하는 데엔 불과 1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인도군을 전부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 수도를 제압하면 되는 일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인도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정치인들을 제압해두었다.
너무도 쉽게 제압된 인도의 상황에 아리엔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생각보다 간단한데?”
“지구의 무기 체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야. 무슨 짓을 해도 너희 배틀 슈트를 뚫을 수 없으니까.”
“하긴···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핵도 우리 배틀 슈트를 못 뚫는다고 했지?”
“영능에 무지하니까.”
리스티의 말에 아리엔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제압된 자들을 훑어보았다. 그래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들인데도 꽤나 비굴해 보이는 모습들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보호하던 인도의 정예군을 마치 개미 짓밟듯 제압한 그녀들이다. 당연히 두려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엘레나가 약간 무거운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건 그렇고 윤재민씨하고 레이첸 씨가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네요.”
“왜 걱정하는 건데?”
“중동 쪽은 정세가 여러모로 복잡하거든요. 군벌들도 여럿 나눠져 있고, 테러단체들도 제법 많아요. 우리처럼 수도만 제압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전력 자체만 본다면 인도보다 못할 테지만, 하나의 나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워낙 많은 파벌과 집단이 존재하고 있어 제압하는 것 자체만 본다면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 걱정은 하지 마. 알아서 잘할 사람들이니까.”
리스티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윤재민, 그 사람이 간 이상 별 일 없이 해결될 거야. 내가 장담할게.”
“그런가요? 흐음.”
리스티가 이렇게까지 장담한다고 하니 엘레나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봐온 리스티는 철저하면서도 계산적이었다. 그녀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윤재민이 중동 방면으로 가게 된 것도 리스티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스티의 장담대로, 지금 현재 중동 방면은 윤재민과 레이첸 두 사람에 의해 빠른 속도로 장악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유태진이나 클레브, 그리고 아리엔들과는 전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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