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66화 (267/448)

11권-16화

시젠타우 주석은 이미 반쯤 넋이 나갔지만, 그가 들어야 할 보고는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저 벼락이 내려칠 때부터 본국이 보유한 SSBN(탄도 미사일 원자력 잠수함)들도 전부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십년은 더 늙어버린 듯한 시젠타우의 물음에, 송구하다는 듯 나머지 보고를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아직 자세한 건 파악되지 않고 있지만 현재 정황을 보면··· 전부 격침된 걸로 짐작됩니다.”

“허··· 허허. 이게 말이 돼? 그 많던 미사일들은 물론 미사일 기지까지 죄다 박살나고, 이젠 전락원잠까지······.”

아무래도 자신이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현실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중국이 보유하고 있던 모든 핵이 무력화 되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다른 국가들은 어떻지? 이번 공격에 동참했던 나라들 말이야.”

“사정은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입니다. 미사일 기지들은 전부 전소됐고, 특히 한국 영해와 영공을 포위해주고 있던 일본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걸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대체 뭘 어떻게 한거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개념의 신무기? 아니면 속임수인지 뭔지 모를 초능력?”

애당초 이런 경우를 상정하고 일을 벌였던 게 아니었다. 이것이 자신들이 상상도 못했던 신기술인지, 아니면 초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간 알던 지구의 상식을 한참 초월한 것임에는 분명했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해.’

핵미사일은 물론 미사일 기지까지 전부 박살난 중국의 현재 전력은,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예전의 절반 수준도 못 된다 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타국이 중국을 노리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아니, 당장 미사일을 박살내고 미사일 기지와 전략원잠을 박살낸 유태진이란 녀석도 마음에 걸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능력인지 기술인지를 보유하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중국에 보복을 가해올 우려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일단 연락부터··· 어떻게든 놈과 타협을 해야 해!”

중국은 물론 일본과 인도 등 자신들과 뜻을 함께 한 국가들의 전력이 반 토막 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러시아들을 등에 업은 유태진과 적대하는 건 파멸을 향한 지름길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살을 좀 내주더라도 굽히고 들어가야 할 때였다. 일단은 어떻게든 위기를 넘겨서 후일을 기약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어차피 통합을 원하는 나라들은 그렇게 많지 않아.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그들을 뒤에서 꼬드긴다면 나라가 없어지는 것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

그렇게 계획을 세운 시젠타우 주석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순간, 커다란 굉음과 진동이 주석궁을 강타하였다.

콰아앙!

“어억!”

너무도 큰 흔들림에 시젠타우 주석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호되게 넘어졌는지 옆에서 부축해주는 자들이 없었다면 일어서기도 힘들 정도였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젠타우 주석이 당황해 외쳤다.

“무··· 무슨 일이냐?”

“···지, 지금 이곳으로 정체불명의 적의 공격이 퍼부어졌습니다. 지상에 있던 주석궁은 이미 박살났고, 지금도 계속 공격 중입니다.”

“뭐라고? 이게 대체 무슨 난리야! 적이 본국의 수도까지 다가올 때까지 어째서 파악을 못 한 거야?”

적의 기습을 허용했다는 사실에 하도 기가 막혀 소리를 지르자, 보고하던 오퍼레이터가 곧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그게··· 적은 단 하납니다.”

“뭐? 지금 뭐라고 했나?”

시젠타우 주석은 일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쳐들어온 적이 하나라니. 이해되지 않아 다시 대답을 요구하자, 오퍼레이터는 사실이라며 말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지금 주석궁을 부수고 있는 적이 하나라는 겁니다. 대규모 폭격기나 군 병력이 아니라!”

“뭐야? 이놈은···?”

시젠타우 주석은 모니터에 출력된 영상을 보고는 황당함에 물들었다. 오퍼레이터의 말처럼 적은 단 하나였다. 그런데 그 하나가 주석궁을 호위하는 병력들을 개미 짓밟듯 쓰러뜨리고 있었다.

더 기가 막힌 건 상대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저 시선만 향했을 뿐인데도 모든 무기들을 무력화 시켰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병사들을 강제로 그 자리에 무릎 꿇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힘으로 부대를 제압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저 자의 얼굴을 대조해 본 결과, KM사의 사장인 유태진 본인인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으음···.”

화질이 선명하지 않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설마 저 자가 유태진일 줄이야.

‘내가 멍청했군. 이 정도는 예상 했어야 했는데···.’

유태진은 핵미사일을 격추하고 미사일 기지를 전소시킨 힘을 보여준 자였다. 그가 직접 들이닥치는 경우도 생각했어야 했다.

위기감을 느낀 탓인지 이마 위로 식은땀이 흥건하게 흘렀다.

“주석궁을 호위하던 병사들은 어떻게 됐지?”

“이미 다 제압되어서 남아있는 병사들은 더 이상······.”

제대로 말을 다 잇지 못하는 그 모습에 시젠타우는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이제 주석궁 주변을 지켜줄 병력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른 지역의 부대라도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시간 내에 도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전시를 대비한 총군작전사령부이자 핵방공호 시설로 지어진 이곳은 깊은 지하에 위치하고 있어서 아무나 침입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설령 유태진이란 녀석이 이상한 기술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곳까지 뚫고 들어오진 못할 것이다.

그때였다. 영상 속의 유태진이 입을 열었다.

[시젠타우 주석. 당신이 어디 있는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두더지마냥 깊은 지하 구석지에 숨어 있더군. 그래서 자신만큼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저놈이 어떻게 알았지? 기밀이 유출된 건가?”

시젠타우 주석의 안색이 일순 딱딱하게 굳어졌다. 주석궁 지하에 만들어진 총군작전사령부의 존재는 공산당 간부 중에서도 상위 서열 20명 안에 드는 자들만이 알고 있는 기밀 중 하나였다.

헌데 유태진이 그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면 그 중 누군가가 누설한 경우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 가지만 묻지. 그곳은 안전한가?]

“···이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그곳이 정말 안전하다고 확신하냐고 물었다.]

지상에서 이곳의 말소리가 들릴 리 없을 텐데도 거듭 묻는 유태진의 모습에 시젠타우 주석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게다가 안전을 확신하냐니? 그럼 이 핵방공호가 뚫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전략 핵미사일 수십 발이 떨어져도 무사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어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으며, 비상시에는 이곳에서 10년 이상 생활할 수 있는 모든 식량과 물자가 갖춰져 있기도 했다.

하지만 놈의 태연한 모습에 시젠타우 주석은 이곳을 철옹성이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깃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잡듯 강하게 내뱉었다.

“미친 녀석! 내 말이 들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곳이 뚫릴 일은 없을 거다. 결단코!”

헌데 들릴 리 없는 그 말에 유태진이 반응했다. 마치 알아듣기라도 한 얼굴이었다.

[그래. 알았다. 그 믿음이 얼마나 헛된지, 그리고 당신이 아는 상식이란 게 얼마나 얄팍한 건지를 그 몸으로 직접 깨닫게 해주지.]

“뭐? 지금 내 말이 들리···!?”

놀란 시젠타우 주석이 뭐라 말하려는 순간, 유태진의 손 위로 선명한 광채가 기다란 형상으로 떠올랐다. 그것은 크고 눈부셨는데,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일종의 검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지상을 향해 그어지는 한 줄기 궤적이 되었다.

삼절검(三絶劍)

제 2식. 낙인참(落刃斬)

콰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격렬한 진동이 지상과 지하를 함께 뒤흔들었다. 얼마나 거세던지, 방공호 안의 물건들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여기저기 비치된 기구들이 넘어지고 있었다.

“이 미친! 이게 뭐야?”

대체 놈이 무슨 짓을 한 거란 말인가? 손 위로 무슨 광선검 같은 걸 만들어내고, 그걸 휘둘렀더니 이런 지진 같은 게 일어났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건 또 뭐고?’

이젠 핵방공호도 더 이상 안전할 수 없게 되었다. 놈이 이런 공격을 몇 번 더 전개할 수 있다면 이곳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워낙 충격이 커서인지 천장의 전등도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서 깜빡거렸다. 그것이 신경 쓰여서 위를 올려다 본 시젠타우 주석은 일순 강렬한 위화감에 사로잡혔다.

“어?”

순간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지 의심이 들었다. 대체 저게 뭔가? 핵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천장에 길게 갈라져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지만, 그의 시야에 보이는 현실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자네들도··· 저게 보이나?”

옆에 있던 보좌관들이나 군사령부 인물들에게 그렇게 물었지만, 그들도 넋이 나가긴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무려 수km에 달하는 깊이의 지각이 단 한 번의 휘두름에 갈라졌다. 그리고 핵방공호 시설까지 그대로 베어버리다니.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천장의 갈라짐은 바로 유태진이 휘두른 참격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심검을 형상화한 형태라는 의기검형(意氣劍形)으로 전개된 낙인참의 위력이었다.

“이, 무슨···괴물 같은···!?”

위력도 위력이지만, 어떠한 붕괴도 일으키지 않고 지각과 핵방공호시설을 정확히 베어낸 그 솜씨는 더 기가 막혔다. 마치 신장이 하늘에 닿을 정도로 거대한 거인이 검을 휘두른다면 이럴까.

두터운 지각과 핵방공호의 천장을 함께 베어낸 흔적은 날카로우면서 매끄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 갈라진 균열 저 너머로 아주 작은 점이 보였다. 그것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사람 형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유태진이었다. 어떠한 장비도 없이 허공을 하강해 내려온 그는 시젠타우 주석 앞에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섰다.

이곳에는 그에게 충성을 다하던 인물들로 가득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유태진을 막아서는 이가 없었다.

무방비 상태에 놓인 시젠타우 주석에게 다가간 유태진은 조소하는 얼굴로 다시 아까와 같은 질문을 던졌다.

“시젠타우 주석. 다시 한 번 묻지. 아직도 이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나?”

“······.”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유태진이 보여주는 능력과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내가··· 이런 괴물과 대적하려 했다고?’

너무도 무지했다. 아비 총리를 제압한 수법이 그냥 눈속임일 거라 여겼거늘, 정말로 이런 초능력 같은 힘이 실제할 줄이야!

이런 걸 몰라보고 대적하려 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건 무지한 수준을 넘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었던 것이다.

유태진은 시젠타우 주석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는 숨이 콱 막힌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유태진은 그의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다.

그리곤 자신의 눈앞으로 끌어당겨서 그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시젠타우 주석. 잘 들어라. 네놈은 이제부터 전쟁사범으로 취급받을 거다. 그리고 곧 심판대에 오르게 되겠지. 그러니 판사 앞에서 무슨 유언을 남길지 잘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이것으로 중국은 유태진의 손으로 완전히 제압되었다. 시젠타우 주석과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사로잡힌 이상 그에게 대적할 자는 중국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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