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12화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 두 사람을 향해 집중되었다. 유태진이 초능력 같은 기이한 힘으로 아비 총리를 찍어 누른 게 불과 1시간도 채 안된 시점이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무턱대고 따지고 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어 모두가 주시하는 가운데, 유태진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세계가 하나로 통합된다면 일단 중국이란 국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겠지요. 그건 중국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다 마찬가지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민족의 역사와 주체성까지 운운하는 건 좀 과장된 것 같군요. 전 그런 문화적인 부분까지 건들자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은 존중해 줘야지요. 아직 구체적인 건 정한 바 없지만, 지금 현재의 구상대로라면 거의 미국의 연방체제에 가깝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젠타우는 가당치도 않다며 코웃음을 쳤다.
“우습군, 우스워! 국가를 없앤다는 녀석이 무슨 문화와 전통을 존중해준단 말이냐? 민족의 역사와 전통은 국가의 성립 없이는 자연스럽게 잊혀질 수밖에 없어! 연방정부라고? 그래놓고는 우리 중화를 갈가리 찢어놓을 생각이겠지.”
그 말에 일부 정상들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에는 미국과 같은 다민족 국가들 뿐만 아니라, 단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자신의 뜻에 공감하는 자들이 생겨나자, 자신감을 얻은 시젠타우 주석의 목소리도 그만큼 커졌다.
“정말이지 이게 대체 뭔 수작인지 모르겠군. 푸튼 대통령, 메켈린 대통령. 저런 허무맹랑한 소릴 하는 애송이를 앞세워서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 거요? 세계통합이라니! 세계연방정부라도 세워서 당신네들 둘이 장기 집권이라도 할 생각인가? 어림없는 소리! 나는 이런 거짓말에 놀아날 생각 전혀 없네.”
“그 말은··· 시젠타우 주석께선 지금까지 제가 설명한 내용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소리로 들리는군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 유태진의 그 말에, 시젠타우 주석은 단언하듯 내뱉었다.
“지구 멸망에 외계인 침공이라는 허황된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지. 아무튼 이런 어처구니없는 회담은 더 이상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군. 세계통합? 어디 맘대로 하라지. 우리 중화는 이 회담에서 어떤 결론이 나오든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한다!”
“옳소! 우리도 거부하겠소! 이런 강압적인 방식의 참여는 인정할 수 없소.”
시젠타우 주석을 시작으로 몇몇 국가의 정상들이 비로소 용기를 내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는 세계통합을 바라지 않는 자들이었다. 인도와 중동 등 몇몇 국가였는데, 국가 자체부터 종교나 민족 등으로 뭉쳐 성립되었다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유태진은 그들을 제지하거나 막지 않았다. 다만 분명히 말해주었다.
“뭐 좋습니다. 선택은 자유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흥, 조금 요상한 속임수로 아비 총리에게 위해를 가한 정도로 자신만만해하는 모양인데, 그 태도가 어디까지 갈지 두고 보지!”
시젠타우 주석은 그 말을 끝으로 국회의사당을 나섰다. 혹시라도 유태진이 자신에게 아비총리처럼 손을 쓸까 내심 두려워서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그에 동조하고 나섰던 다수의 정상들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유태진에게 된통 당했던 아비 총리도 비틀거리며 도망치듯 뛰쳐나갔다.
“한심한 것들 같으니라고. 민족의 전통과 주체성? 개소리지. 자기들 권력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싶은 마음뿐이라는 걸 누가 모를 줄 아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푸튼 대통령이 혀를 차고 말았다.
그도 러시아에서는 가히 무소불위에 가까운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였다. 저들이 어떤 마음으로 유태진의 제안을 거부한 건지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았다.
다만 푸튼 대통령이 그들과 다른 점은, 당장의 이득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대비할 줄 안다는 점이었다.
“그러게 말이오. 권력도 살아남을 수 있을 때나 누릴 수 있는 법이지. 눈앞에 죽음이 닥쳐왔는데도 여전히 욕심만 가득 차 있다니. 정말 한심한 일이야.”
그렇게 말을 받은 메켈린 대통령은 유태진 쪽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이미 회담은 거의 파장 분위기였다.
남아 있는 정상들이 훨씬 더 많긴 했지만, 시젠타우 주석을 비롯한 여러 정상들이 떠나면서 장내가 어수선해진 것이다.
유태진은 그런 분위기를 불식시키기 위해 나섰다.
쿠웅!
묵직한 파동이 국회의사당 내부를 뒤흔들었다. 단지 오른발을 살짝 내딛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큰 울림이 사방을 강타한 것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내질렀다.
“어엇!?”
“지··· 지진인가?”
“아니야. 지진이 아니야. 저 유태진이란 사람이 발을 굴러서 방금 이 진동을 일으켰소.”
“뭐? 그게 가능하긴 한 거요?”
지진을 방불케 한 진동의 진원지가 바로 유태진이 내딛은 발에서 시작되었음을 깨달은 사람들이 경외와 두려움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들 놀라셨겠지만,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 의견충돌이 있긴 했지만, 세계 통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단호한 그 말에, 누군가가 슬며시 우려의 말을 내비쳤다.
“하지만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정상들이 더 이상 동참하지 않게 되었지 않소? 그런데 이게 과연 제대로 되기나 하겠소?”
“당장은 어렵겠지요. 하지만 조만간 동참 안하고는 못 배길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 나라들은 앞으로 신기술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될 테니까요. 저희는 동참하지 않는 국가에겐 기술을 제공하지 않을 겁니다. 결단코 말입니다.”
“오, 그렇군!”
유태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KM사가 발표한 4가지 기술들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그 아르탈 행성 연합에서 비롯된 기술이 제공된다면, 그 혜택을 받는 나라들과 받지 못하는 나라들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제아무리 중국과 인도 일본, 그리고 산유국인 중동과 아랍 국가들이 상당한 국력을 가졌다곤 하지만, 기술에서부터 뒤떨어지게 되면 그것도 옛말이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원과 인구만 넘치는 최빈국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회담을 거부한 저들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을 겁니다. 아마도 조만간 시비를 걸어올 테지요.”
“···전쟁이 벌어지겠군.”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것처럼, 그들도 참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신기술로부터 배제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면, 그렇게 되기 전에 전쟁을 일으켜 기술을 강탈하려 할 게 분명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을 강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술을 공유하지 않으면 전쟁을 일으켜 같이 죽겠다고 협박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큰일이지 않소? 중국과 인도는 핵보유국이오. 그리고 다른 국가들도 군사력이 상당하지. 자칫 잘못하다간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지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구려.”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근심에 찬 목소리를 내놓았다. 그의 말대로 중국을 비롯한 국가들은 전 세계로부터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위험을 감수할 게 틀림없었다.
허나 유태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들이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지구에 큰 인명피해가 발생할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합니까?”
“그땐 저희가 개입할 테니까요.”
“아!”
사람들은 그제야 탄성을 내질렀다. 유태진의 말이 사실이라면 현재 달의 뒷면에는 연합의 전함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
그것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고작 중국이나 인도 따위가 제아무리 전쟁을 일으킨다 해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여러분들께 조금 맛보여 보여드리죠. 인베이더와 싸워 온 자들의 힘이 어떤 것인지를 말입니다. 저들은 그 본보기가 될 겁니다.”
유태진은 그렇게 공언하면서 더없이 싸늘하게 웃었다.
* * *
국회의사당을 벗어나자마자 아비 총리는 즉시 자신이 타고 왔던 전세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즉시 귀국길에 올랐다.
“감히! 날 그런 꼴로 만들어?”
아비 총리는 핏발 선 눈으로 이를 갈아붙였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때 당했던 고통과 치욕을.
놈이 무슨 수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당했던 그것이 초능력일 리가 없었다. 이 세상에 초능력이라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어디 있는가?
“무슨 야료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두고 보자!”
아비 총리는 즉시 연락을 취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중국의 시젠타우 주석이었다.
서로 원수지간이나 다름없었던 두 국가의 정상이 유태진이라는 공동의 적을 만나 서로 뜻을 합치게 된 것이다.
* * *
중국과 인도, 일본 등의 정상들이 한국을 떠난 뒤에도 정상회담은 며칠 간 지속되었다. 앞으로 어떻게 기술을 제공할 것인지, 그리고 지구권을 어떤 형태로 통합하고 각 지역을 어떻게 나눠서 자치 형태로 운영하게 될지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헌데 그때, 믿기지 않는 급보가 전해졌다.
“뭐··· 뭐야? 선전포고라고!?”
문광식 대통령은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외쳤다. 보좌관이 그에게 들고 온 서류에는 일본과 중국, 그리고 인도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성명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회담에 참여 중인 국가 정상들에게도 바로 전해졌다.
“선전포고라니!”
“이것들이 제정신이 아니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정상회담에 참석 중인 그들은 이를 갈며 분개했다. 지금 유태진이 크게 전개한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중국의 시젠타우 주석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의 수반들이 선전포고를 발표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는 정상회담에 참석 중인 전 세계의 정상들에게 고한다. 우리는 앞선 신기술들을 무기로 삼아 세계 각국을 핍박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그들에게 무력으로 대항할 것을 결의했다. 이것은 우리 중국만의 뜻이 아니며 일본, 인도··· 등 여러 국가들이 뜻을 한데 모은 굳건한 결의이며, 정의롭지 못한 이들을 응징하기 위해 일어선 것이다.]
시젠타우 주석이 읊어대고 있는 내용을 들은 푸튼 대통령은 기가 막힌다는 듯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 것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서 그런 헛소리를 선전포고라 지껄이는 거지?”
그런 와중에도 시젠타우 주석의 선전포고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재 우리가 보유한 탄도 미사일들은 한국을 겨냥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이라도 아무 조건 없이 신기술을 공유하겠다면 한국을 겨눈 미사일의 방향을 돌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미사일들은 즉시 발사대를 떠나 한국을 초토화시키게 될 것이다. 물론 한국에 있는 정상들이 도망칠 조짐을 보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도망치는 자가 있다면 즉시 격추할 것이다.]
“세상에!”
“오 마이 갓! 지금 우릴 인질로 삼겠다고?”
“크레이지!”
한 마디로 말해, 한국의 정상회담에 참석 중인 각 국가의 정상들을 인질로 삼은 선전포고라 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기술공유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즉각 미사일을 발사하여 이곳에 머물고 있는 세계정상들과 함께 한국 째로 날려버리겠다는 막무가내의 협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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