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61화 (262/448)

11권-11화

쿠우웅!

“우어억!”

마치 천근의 무게가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에 아비 총리가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에 처박혔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놈이 냉소를 터뜨린 순간,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뭔가가 온몸을 깔아뭉개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고 싶었지만, 뼈와 내장마저 짓뭉개는 듯한 이 압력은 그를 고통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유태진은 벌레처럼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아비 총리에게 차갑게 내뱉었다.

“내가 예의를 차려 좋게 말할 때 좋게 했어야지. 이래서 인간답지 못한 것들은 인간 취급을 해줄 필요가 없어.”

현재 아비 총리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유태진의 기세지도였다. 기세를 원격 투사하여 아비 총리에게만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물론 죽지 않고 고생할 정도로 조절하긴 했지만, 아비 총리로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일 것이다. 거기에 자신을 미지의 힘에 대한 공포도 한몫하고 있었다.

자신과 뜻을 함께 하기로 했던 아비 총리의 그런 비참한 모습에, 평소 담대하던 시젠타우 주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지··· 지금 그건 뭐요? 대체 아비 총리가 왜 저렇게······?”

“방금 전에 제가 외계 문명을 언급했을 때 다들 농담으로 들으셨습니까? 이게 바로 그런 기술들 중 하납니다. 그 결과물을 지금 벌레처럼 뒹굴고 있는 아비 총리가 경험하고 있지요.”

“마··· 마술이나 무슨 장치에 의한 조작 아닌가?”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시지요. 뭔가 특별한 조작이 있는지.”

그제야 정상들은 아비 총리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아비 총리의 몸을 건드려봤다.

“으윽··· 무슨 알 수 없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어. 그냥 무슨 장치나 마술 따위가 아니야.”

그들은 아비 총리에게 손을 뻗는 즉시 짓눌리는 압박감을 받았다. 놀라서 즉시 손을 빼긴 했지만 손이 으스러지는 듯했던 느낌만큼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세상에··· 이게 대체?”

“이해할 수가 없어.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고? 설마 초능력 같은 건가?”

다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납득 못하고 있던 그때, 유태진이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입을 열었다.

“예, 맞습니다. 일종의 초능력이라 할 수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게 무슨 심령현상이나 오컬트 같은 건 아닙니다. 외계 세력에게는 과학적으로 철저히 분석된 학문의 일종이라 할 수 있겠군요.”

“그 말은?”

“예, 이런 힘들이 어떻게 발동되는지,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원리들이 세세히 밝혀져 있다는 뜻입니다.”

“으음···.”

그제야 정상들은 유태진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에, 이제는 속임수로 여겨지지 않는 초능력까지!

이런 것들이 지구에서 발원한 기술과 능력일 리가 없었다.

“그럼 이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뭐요? 그리고 지구 멸망이 닥쳐왔다는 것이 사실이오?”

프랑스 에마닐 대통령의 물음에, 유태진은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사실입니다.”

“정말··· 믿기 어렵군.”

그건 에마닐 대통령뿐만이 아니었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유태진의 말을 아주 불신할 수도 없었다.

자신들이 지금 눈앞에서 본 건 엄연한 현실이었으니까.

게다가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다. 일본의 아비 총리가 막말을 하자마자 저런 비참한 꼴이 되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힘이 언제든 자신들을 폭력적인 형태로 억압할 수 있음을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왜 그런지 설명해 드리죠. 다 듣고 나시면 왜 미국과 러시아가 저에게 협력하게 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그때부터 유태진은 그들에게 지구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설명했다. 아르탈 행성 연합과 인베이더 세력이 어떻게 얽혀 있고 그 영향이 우주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그리고 지구 출신인 자신이 어떻게 외계 세력인 연합과 접촉하게 되었고, 지금과 같은 힘을 얻게 되었는지도 간략하게 이야기 해 주었다.

“허··· 정말이지 온통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 투성이군.”

영국 총리가 헛웃음을 지었다. 다 듣고도 전혀 실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들뿐이었다.

중간 중간 유태진이 제공해준 홀로그램 스크린을 통해 인베이더나 연합의 전쟁 영상도 보긴 했지만, 그것이 사실인지조차 확신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있었다. 지금 하는 소리가 아주 허튼 소리일 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미국과 러시아가 저렇게 적극적으로 이런 전 세계적인 정상회담 자리까지 만들어가면서 그를 돕지 않았을 테니까.

“믿기 어려우실 줄은 압니다. 하지만 이건 현실이지요. 그리고 조만간 다가오게 될 여러분들의 미래이기도 하고요.”

담담하기까지 한 그 목소리에 정상들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졌다. 인베이더가 정말 저런 괴물들이라면 지구의 전력으로는 감히 대적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 우리더러 뭘 어쩌자는 겁니까? 방금 전 영상대로라면 우리 지구가 그 인베이더란 괴물들에게서 살아남을 방법은 없을 것 같군요.”

“그래요. 이제 겨우 달과 화성을 탐사하는 수준에 불과한 우주기술밖에 없는 우리가 무슨 수로 우주에 나가 싸우겠소?”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에 유태진은 침착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을 이곳에 초대한 겁니다. 얼마 전 KM사의 이름으로 발표했던 기술들처럼, 앞으로 인베이더와 싸우기 위해 필요한 여러 기술들을 제공해 드릴 겁니다.”

“혹시 그것들도 아르탈 행성 연합이란 곳의 기술이오?”

“그렇습니다. 그곳에서 아주 오래 전에 사용했던 옛 기술들이지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구로 쳐들어오는 인베이더들을 상대로 생존을 모색해볼 만은 할 겁니다.”

“음.”

기술을 제공해준다는 말에 모두가 고민에 잠겼다. 그들도 영상을 통해 봐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다. 아르탈 행성 연합의 문명 수준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자신들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것들이 그곳에선 현실화 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이 가진 최신 기술이 아닌 오래된 기술을 제공해준다고는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지구 입장에서는 감지덕지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문제는 그에 대한 반대급부였다.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게 있는 법. 저 연합이란 곳에서도 그냥 도의적인 차원에서 돕진 않을 터였다.

그에 대해 의심을 품은 독일 총리가 물었다.

“그렇다면 연합에서는 우리 지구에게 뭘 원하는 거요?”

“원하다니 무얼 말입니까?”

“그런 기술을 그냥 제공해줄 리는 만무한 일 아니오. 그런 거대 세력이 대가 없이 도움을 줄 거라 믿지 않소.”

“하, 이걸 또 지구 관점에서 해석하시는군요.”

유태진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들은 아직도 지구가 어지간히 가치가 있는 곳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착각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교정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솔직히 말하죠. 지구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습니다. 아르탈 행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는 기껏 해봐야 겨우 석기시대를 벗어난 원시 행성이나 다름없지요. 그런 곳에서 무슨 대가를 바랍니까? 설마 이곳에서 나는 자원이나 기술이 무슨 가치 있을 거라 생각한 겁니까? 아니면 지구란 행성 자체가 탐낼 만큼 귀할 것 같았나요?”

“그 무슨!?”

당혹을 금치 못하는 정상들에게 유태진은 냉혹하게 이야기 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전부 착각입니다. 지구는 연합 기준에서는 하등 가치 없는 곳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지요.

여러분도 몇 번 기부 같은 걸 해보셨겠죠? 특히 아프리카나 여러 빈곤 지역에 말입니다. 연합에서 지구를 돕는 것도 그런 자선 행위와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아니, 자선이라니! 그건 좀!?”

“듣기 거북해도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들 입장에선 낙후되긴 했지만 그래도 지구의 지성체들이 무의미하게 죽는 게 안타까워서 손을 내밀어준 거지요. 그런데 대가라니요? 우린 그들에게 치를만한 값어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는 알거지나 다름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불쌍해서 동정하는 마음에 몇 푼 동냥 해준 걸 가지고, 상대에게 이걸 무슨 대가를 원해서 준 거냐고 따질 생각입니까?”

정상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유태진과 연합의 관점과 자신들이 보던 관점 사이에 엄청난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시지요. 지구에서는 당신들을 국가의 정상이니 권력자이니 떠받들어줘도, 연합에서 보면 일개 동네 촌장 수준도 못됩니다. 통합된 행성의 지도자라 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연합 내에서 별다른 발언권조차 없을 판국인데, 지구처럼 사오분열 된 행성은 아프리카 난민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받는다는 걸 알아두셨으면 좋겠군요.”

“······.”

현실을 깨달은 정상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구에서 아르탈 행성 연합에게 대가를 치를만한 능력이 없다는 사실도 뼈저리게 절감하고 말았다.

잠시 뒤 영국 총리가 푸념처럼 내뱉었다.

“참으로 비참한 이야기군.”

영국은 나름대로 지구에서는 강대국으로서 행세해온 국가들 중 하나였다. 심지어 태양이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라 불리면서 전 세계를 누비기도 하지 않았던가?

헌데 그런 자랑스러운 조국이 우주적인 세력의 관점에서 보면, 원시인 부락만도 못한 취급이라니 어찌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의 현실을 외면할 순 없는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유태진은 한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다만 여러분들에게 연합의 요구사항이 있다면 단 하나 뿐입니다. 바로 통합이지요.”

“통합?”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건에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대가는 바라지 않는다더니, 그 대신 요구하는 게 통합이라는 게 이해가 안 가서였다.

“예, 지구의 의사조차 제대로 통일되지 못한 상태에서 도울 이유가 없다는 게 연합의 뜻입니다. 하나로 힘을 합쳐도 생존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판국에, 이렇게 국가들이 사오분열 되어 있으면 가망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지요. 지구권 통합. 그게 연합이 내세운 최소 기준입니다. 만일 이 조건을 충족할 수만 있다면 행성연합에서도 지구를 일원으로 받아줌과 동시에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유태진의 설명에 핀란드 대통령이 설마 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 통합이란 게 결코 평범한 통합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그 말은··· 지금과 같은 UN을 말하는 건 아니겠구려.”

“UN은 세계적인 국가 기구이긴 합니다만, 무언가를 결정할 때 절차나 과정이 복잡한 편이죠. 게다가 강제성도 그리 높지 못하고 말입니다. 전례는 여럿 있을 텐데요. UN의 결의안을 무시한 경우 말입니다. 힘 있는 강대국들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는 국제기구 따윈 연합에선 통합으로 치지 않습니다. 지금 존재하고 있는 국가들의 경계선을 정말로 없애야 연합이 바라는 통합인 겁니다. 여러분들은 그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으음···.”

“통합이라니.”

유태진이 던진 물음에 모두가 무거운 표정으로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들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뽑은 지도자일 뿐, 국가의 존망을 결정짓는 통합을 정할 권한은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 중에는 독재자들도 없진 않았지만, 그들도 국가의 소멸이나 다름없는 통합을 바랄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태진의 제안을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그의 말대로 지구를 멸망시키기 위해 다가오는 인베이더의 존재가 정녕 사실이라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통합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유태진의 말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시젠타우 주석은 분기탱천한 얼굴로 외쳤다.

“지금 네놈이 무슨 허튼 수작을! 우리 위대한 중화 민족의 역사와 주체성을 포기하고 통합된 세계의 일개 지역으로 전락하란 소리더냐?”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