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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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는 말 그대로 비상이 걸렸다.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정상회담 때문에 각 국의 정상들이 타고 올 수많은 비행기들이 일제히 몰려올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인천국제공항의 규모도 작지 않은 편이긴 했지만, 그들이 타고 올 전세기들이 한두 기가 아닌 만큼 수용 능력을 한참 넘어선 상황.
그래서 서둘러 확장 공사에 들어갔다. 임시방편으로라도 활주로를 새로 닦고, 주기장도 추가로 더 건설해야 급한 불이라도 끌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일이 촉박해질수록 인천국제공항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김포공항 등 다른 공항들의 국내선 운항도 중단하고 각국 정상들이 타고 올 비행기를 받는 걸로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국제정상회담 하루 전날. 수많은 비행기들이 한국으로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어지간한 국력을 가진 국가의 정상들은 죄다 전세기를 타고 왔으니, 그 수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은 전 세계로 생방송 되었다.
[와, 이 많은 사람들이 진짜 다 모이잖아!]
[하나같이 전 세계적인 거물들뿐이야. 이런 거물들이 한꺼번에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날이 올 줄이야.]
[대체 무슨 회담이지? 뭘 의논하려고 이 많은 정상들이 모이는 건데?]
[몰라. KM사의 기술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돌던데 확실하진 않아.]
[젠장, 궁금해 죽겠네. 뭔데 그렇게 꽁꽁 숨기는 거지?]
[아무튼 보통 일로 모이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해.]
[젠장, 저것들이 전부 담합해서 기술 뺏으려고 죄다 모이는 건 아니겠지?]
[하긴 한국이나 미국이 독점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기술들이긴 했지. 가상현실에 형태나 전개가 자유로운 홀로그램이라니. 이런 게 정말로 현실화 될 줄은 몰랐어.]
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정상회담의 목적에 대해 사람들이 이런저런 추론을 하는 동안, 계속 좌불안석인 사람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현 대통령인 문광식이었다.
“진땀이 다 나는군. 이번 회담이 끝날 때까지 아무쪼록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그건 보좌관도 마찬가지 심정인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호응했다.
“일단 경찰과 수도방위군까지 동원해 철저하게 지키고 있으니 별일은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만···아마 이곳에 있는 정상들이 죽기라도 한다면 전 세계가 당분간 통제 불능이 될 겁니다.”
물론 대통령 등 국가 정상들에게 피치 못한 유고가 발생할 시, 그것을 대행할 수 있는 비상체계가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그것도 한두 명일 때의 이야기다. 이곳에 온 거물들이 한꺼번에 몰살하기라도 하면 수습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문광식 대통령이 이렇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그건 미국이나 러시아 쪽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개최지는 한국이라 할지라도, 이번 회담을 주도한 것은 두 국가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양국의 정보요원들도 현재 바쁘게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 전역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는 상태.
혹시라도 ISIS같은 테러단체들이 개입할 것을 우려하고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인지 수많은 정상들이 입국한 날은 아무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국회의사당에 모이기 되었다.
본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국가 정책을 논하는 곳이었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전 세계 정상들의 회담을 위해 제공된 것이다.
이윽고 회담이 시작되었다. 일단 사회자는 문광식 대통령이 맡았다. 그래도 엄연히 주최지의 주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금부터 국제정상회담을 시작하기로 하겠습니다. 이번 회의의 주제는 바로 KM사가 개발한 4가지 신기술에 대한 것입니다.”
그때 시젠타우 주석이 손을 들었다.
“시젠타우 주석께서 손을 드셨군요. 말씀하시지요.”
발언권을 얻은 시젠타우 주석이 입을 열었다. 그의 시선은 러시아 푸튼 대통령과 미국 메켈린 대통령을 향하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를 이 자리에 불러들인 이유가 뭐요?”
“무슨 소리요?”
메켈린 대통령의 반문에 시젠타우 주석이 묘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 아예 대놓고 말하지. 이번 회담을 개최하게 된 이유 말이오. KM사의 기술의 지분 문제를 두고 나누기 위함이 아니오? 여기 이 자리에 참석한 자들도 대충은 짐작하고 있는 사실일 텐데.”
그 말에 이 자리에 참석한 정상들의 눈빛도 슬며시 탐욕에 젖었다. 다들 그런 생각으로 이 자리에 참석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 그리고 중국 같은 강대국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지분을 양도받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켈린 대통령은 그런 시선들의 집중 속에서도 담담하게 입을 뗐다.
“일단 명분은 그랬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소.”
“중요한 것? 이 회담의 목적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단 말이오?”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들을 이 자리로 불러 모으기 위한 대외적인 명분이었지.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있소. 그것을 논하기 위해 이렇게 어렵게 자리를 마련한 거요.”
그러자 영국 총리가 인상을 찡그렸다.
“흠, 전혀 듣지도 못한 말이군. 전혀 기별조차 없이 다른 의제라니? 불쾌하구려. 그렇게 우릴 속여서 이곳에 불러 모았어야 했소? 그것도 전 세계의 정상들을 말이오.”
“그렇군. 의도가 심히 의심스러워. 지금 여기 모인 분들은 말 그대로 세계를 좌우하는 정상들이오. 혹시라도 여기서 위해라도 가할 생각은 아니겠지? 메켈린 대통령은 그렇다 쳐도 푸튼 대통령까지 더해지니 더 의심스럽소.”
영국과 앙숙이라는 프랑스의 대통령마저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푸튼 대통령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내 악명이 어지간히 높긴 한가 보군. 에마닐 대통령마저 날 이토록 경계하는 걸 보면 말이야. 혹시라도 방사능 홍차라도 대접할 것 같아 그러는 거요?”
“당신!”
비웃음 섞인 그 대답에 프랑스 대통령이 발끈했지만, 푸튼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싸늘했다.
“망상은 집어 치우시오, 에마닐 대통령. 그런 어설픈 흉계를 꾸밀 생각이었다면, 이런 자리를 마련할 필요도 없었을 거요.”
그건 마치 당신을 죽이려 했다면 굳이 이런 번거로운 수작을 부릴 필요조차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서 더 섬뜩했다.
‘역시 악명은 높고 볼 일이군.’
메켈린 대통령은 내심 실소하고 말았다. 자신의 명성이나 힘도 만만치 않긴 했지만, 푸튼 대통령이 나선 순간 그의 수많은 악명을 들어온 자들이 숨을 죽이는 것이 아닌가.
가끔은 저 막나가는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잘 들으시오. 이 자리를 마련한 건 내 목적을 위해서도 아니고, 미국의 목적을 위해서도 아니오. 세계를 위함이니, 자꾸 이상한 말로 호도하지 마시오. 이 회담에 세계의 명운이 걸려 있소.”
“명운? 신기술 문제로 세계의 명운이 어떻게 좌우된다는 거요?”
그나마 푸튼 대통령을 두렵지 않게 여기는 시젠타우 주석이 그렇게 되물었다. 지금 푸튼 대통령이 한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구가 멸망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놓였다고 보면 될 거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푸튼 대통령. 갑자기 멸망이라니.”
“이제부터 설명해줄 사람이 나올 거요. 기다리시오.”
누군가가 당황하며 던진 물음에, 푸튼 대통령은 그렇게 답하고는 단상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지금까지 비어있던 그 자리로 누군가가 나타났다.
그는 전형적인 동양인이었는데, 이곳에 참석한 자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세계의 모든 정상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바로 KM사의 사장의 자리에 있는 유태진입니다.”
그의 등장에 문광식 대통령은 갈수록 혼란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사회자 역할을 하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뭔가 상황이 알 수 없게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가 튀어나오더니, 이번에는 KM사의 사장이라고?
자신의 나라에서 개최하는 회담인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이건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정계에서 잔뼈가 굵어온 그는 그렇게 느꼈다.
“KM사의 사장이라.”
“이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지구멸망을 운운하더니 이젠 KM사의 사장이 나와? 그 둘이 뭐가 어떻게 연관이 있다는 건지, 원.”
“푸튼 대통령이 이런 곳에서 헛소리를 할 리는 없고···.”
다들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 웅성대는 가운데, 유태진의 말이 시작되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나타난 건지 납득이 가지 않는 분들이 꽤 많으실 겁니다. 그리고 방금 푸튼 대통령이 말한 지구 멸망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울 테고요. 이제부터 그에 대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려드릴까 합니다.
일단 저희 KM사의 기술에 대해 말씀 드리지요. 여러분들은 저희가 발표한 신기술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갑자기 돌아온 질문에 다들 제각기 중얼거렸다.
“그야··· 엄청났지.”
“저 머나먼 미래에서 현실로 뚝 떨어진 기술 같았소.”
여기저기서 들린 대답은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현재로서는 재현이 불가능한 수준의 기술이라는 것이었다.
유태진은 그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맞습니다. 각국의 정부 부처에서도 분석해보셨을 테지만, 현실의 기술수준으로는 도저히 개발될 수 없는 것들이지요. 그런데 우리 KM사는 그런 기술들을 한 가지도 아니고 어떻게 여러 가지를 내놓을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 말엔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어떻게 개발되었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근본을 알 수 없는 기술.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계속 품어온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모두의 의문에, 유태진은 속 시원하게 진실을 폭로해버렸다.
“바로 이 기술은 지구의 것이 아닙니다. 저 외계의 것이지요.”
“외계?”
“뭣!?”
“지금 외계라고 했지?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야?”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다. 여기서 설마 외계라는 말이 튀어나올 줄은 전혀 상상도 못해서였다. 그나마 미 정재계에서 떠도는 첩보들을 입수했던 중국을 비롯한 몇몇 강대국들의 정상들은 설마 그때 듣던 이야기가 여기서 튀어나올 줄 몰랐다는 듯 허를 찔린 기색이 역력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곳 태양계를 넘어, 아주 먼 우주에 자리하고 있는 세력이 보유한 기술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저희 KM사의 기술은 바로 그곳으로부터 왔습니다.”
그 말에 잠시 국회의사당 내부가 정적에 휩싸였다. 너무도 황당하고 충격적이어서였다. 지금 무슨 악질적인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시젠타우 주석이 불쾌하다는 듯 입을 뗐다.
“농담을 하는 겐가?”
“진심입니다. 이런 기술이 아무런 기반도 근본도 없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정말 황당하군. 이런 곳에서 외계인이라니. 그래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자네도 외계인이라는 말이군.”
“저에 대해 조사해보신 분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저는 지구 출신입니다. 뭐 현재 소속은 이미 외계의 세력에 속해 있는 상태지요.”
그러자 누군가가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섰다. 바로 대표적인 극우 세력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일본의 아비 총리였다.
“어디서 미친 소리를! 저 조센징을 당장 끌어내시오! 문광식 대통령! 사회자라면서 뭘 하고 있는 게요? 당신네 국가의 멍청이가 지금 회담을 망치고 있소!”
노골적으로 조센징이라는 비하 단어까지 사용한 그는 작정하고 나섰다. 이 기회에 대한민국과 KM사를 깔아뭉개버림으로서 주도권을 쥘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모두가 지켜보는 이런 커다란 회담에서 비하 발언을 쓰는 건 좋지 못했지만, 어차피 상대는 일본보다 열등한 한국인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기세만 잡을 수 있다면 나중에 돌아올 후폭풍쯤은 일본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무마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의도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비 총리를 향해 시선을 옮긴 유태진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본능적으로 섬뜩함을 느낀 아비 총리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지만, 유태진의 시선은 이미 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떼어진 입술로부터 냉랭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쪽은 좀 닥치고 있어 주셔야 겠군요. 조센징이라니, 너 따위에게 발언권을 주지도 않았다. 이 천박한 것아.”
“뭣! 지금 네놈이 누구에게 망발을! 내가 누군지 알고···!?”
되돌아온 냉소에 아비 총리가 화가 치밀어 나섰지만, 그는 하던 말을 미처 다 잇지도 못했다. 왜냐면 그에게 갑자기 닥쳐온 보이지 않는 압력이 전신을 짓눌러 왔기 때문이었다.
쿠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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