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의 검은 우주를 가르고-259화 (260/448)

11권-09화

“뭘 어떻게 말이오?”

솔깃한 듯 묻는 그에게, 유태진은 말했다.

“미국과 로스차일드 가는 내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상태지요. 당신과 러시아가 동참한다면 그리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푸튼 대통령의 표정은 그리 긍정적이지 못했다.

“으음, 미국과 로스차일드 가의 협력은 물론 당신이 가진 힘이 적지 않다는 것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소. 무려 함대의 사령관이라고 했으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무시무시한 무기쯤은 여럿 가졌겠지. 하지만 세계를 통합시킨다고 나선다면 결국 지구와의 전쟁이 되는 거요. 우리 러시아나 미국이 당신의 편을 들어봐야, 결국 외계인에게 지구를 팔아먹으려는 매국노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러니 전 지구적인 유혈사태를 피할 길은 없다고 보오.”

유태진도 푸튼 대통령이 어떤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제아무리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유태진이 끌고 온 함대의 힘이 강하다 해도, 일단 세계적인 전쟁이 벌어지면 지구 자체에 미칠 피해가 적지 않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마 내 생각대로라면 핵전쟁이 일어날 게 분명한데, 그걸 무릅쓰고서라도 지구의 통합을 꼭 이뤄야 하는 거요? 만일 전 세계 규모의 핵전쟁이 벌어지면 그 여파만으로도 지구 인구의 절반 이상은 줄어들 거요.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르지. 나로선 두렵기만 하오.”

계속해서 우려의 말을 내뱉는 그에게 유태진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말했다.

“푸튼 대통령, 당신의 말처럼 전쟁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 반드시 그러리란 법은 없지요. 앞으로 지구를 침공해올 인베이더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그들도 우리와 협조하게 될 겁니다.”

“휴··· 일이 잘 풀린다면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와 같은 지도자는 언제나 실패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오. 내가 볼 땐 오히려 당신이 너무 희망적인 관측만 늘어놓는 게 아닌 가 싶은데?”

평소 대담한 행보로 세계를 놀라게 해온 푸튼 대통령답지 않은 태도였다. 아니 어쩌면 이렇게 부정적이면서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는 성격 때문에, 더 철두철미하면서 무자비한 행보를 보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허나 유태진은 그가 걱정하는 바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말했다.

“오히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뭣 때문에 내가 이렇게 복잡하게 미국과 로스차일드 가, 그리고 푸튼 대통령 당신과 손을 잡아가며 통합을 유도하려 했겠습니까? 그런 최악의 상황들을 방지하기 위함이었지요.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하자면··· 푸튼 대통령 당신은 나와 내 동료들, 내 함대를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슨 뜻이오?”

과소평가라는 말에 뭔가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어 묻자, 유태진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이 되돌아왔다.

“솔직히 말해 나나 내 일행이 나선다면 지구를 제압하는 것쯤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달 뒷면에 대기하고 있는 내 함대까지 동원한다면 태양계를 파괴할 수도 있을 정도지요. 하지만 그렇게 점령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린 지구를 지배하러 온 게 아닌데. 지구를 떠맡아봐야 성가시기만 할 뿐입니다. 우리가 지구 출신이긴 하지만 아르탈 행성 연합에 몸담은 이상 우리는 외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는 겁니다. 당신들 스스로 통합을 이뤄 자립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런···.”

푸튼 대통령은 충격에 휩싸였다. 단순히 피를 적게 흘리기 위해 그런 게 아니라, 지구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들과 손을 잡으려 했다고?

믿기지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런 자신감을 보인단 말인가?

그래도 한편으로는 내심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그만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제할 만큼 욕심이 없다는 건 지구의 입장에서는 다행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각국의 지도자들이 어리석은 짓으로 그를 자극하는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지가 의문이었다.

“지구에 대한 당신의 배려는 잘 알겠소. 하지만 걱정이 되오. 지구는 백 수십 개의 국가로 나뉘어 있고, 그 지도자들이 그런 당신의 배려를 과연 배려로 받아들일지 말이오.”

“하긴 그렇겠지요. 자신의 세를 믿고 경거망동하는 자들은 언제나 있는 법이니···. 우리가 진실을 이야기해도 그저 신기술이란 보물에 정신이 팔려 뺏으려는 작자들은 제법 있을 겁니다. 아마 그때는 보시게 되겠군요. 제가 말한 저희의 힘이 어떤 수준인지를 말입니다.”

“······.”

푸튼은 그 말이 너무나도 섬뜩하게 와 닿았다. 어떠한 살기나 악의도 담기지 않은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만큼 지구의 국가가 가진 군사력 따윈 안중에 둘 가치도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조만간 큰 일이 벌어지겠군.’

푸튼 대통령은 곧 지구를 뒤흔들만한 폭풍이 닥쳐올 것을 예감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고 말았다.

* * *

“허? 뭐라고? 전 세계 정상 회담이라고?”

“예, 러시아와 미국이 주도해 연다 합니다.”

시젠타우 주석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어리둥절했다.

평소 앙숙처럼 으르렁대기만 하던 두 국가였다. 물론 냉전시대만큼 사이가 안좋은 건 아니었지만, 이렇게 사이좋게 회담을 개최할 만큼 가깝지도 않았다.

‘거기에 세계 정상들을 모두 초대했다 이거지?’

시젠타우 주석은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대체 회담을 개최하게 된 이유가 뭐지?”

“아무래도 이번 KM사의 신기술 문제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과 러시아 대사관에서도 그런 운을 내비치기도 했고요.”

“흐음··· 신기술이라. 설마 그놈들이 서로 손을 잡고 그 기술들을 날름 집어삼킬 생각인가?”

혹시나 싶었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미래의 패권을 좌우 할 만큼 앞선 기술들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국가들이 주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도 혼자 독점하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를 끌어들인 게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아마 이번 회담이 두 국가에 의해 개최되는 것도 신기술에 대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임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그 기술들만큼은 호락호락 넘겨줄 순 없지. 앞으로 천년중화를 위해선 반드시 필요해.”

러시아와 손잡은 미국을 상대하려면 중국도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다른 국가를 아군으로 편입하는 게 좋을 터.

잠시 고민하던 시젠타우 주석은 곧 보좌관에게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군. 일본의 아비 총리에게 연결하게. 왜놈들과 손을 잡는 건 싫지만, 어쩔 수 없지.”

* * *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참석한다는 국제 회담이 대한민국의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크게 들끓어 올랐다.

특히 한국 사람들의 자존심은 그 어느때보다도 드높아져 있었다.

[세상에! 그냥 평범한 국제회의 수준이 아니잖아!]

[전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전부 참석하기로 했어!]

[이번에 회담이 열리게 된 게 바로 그 KM사의 신기술 때문이라던데!]

[대단하네. 그 사람이 개발한 기술 때문에 이런 많은 거물들이 움직인 거야?]

[당연하지. 유태진 저 사람이 미국 명예시민권자라고. 그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면 어떻게 명예시민권을 수여받았겠어?]

[와, 미쳤다! 이게 바로 국위선양이네!]

[오오, 뽕이 차오른다!]

하지만 흥분에 찬 국민들과 달리 한국 정재계는 혼란스러웠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문광식 대통령을 위시한 진보와, 우익보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을 지지하던 중국과 일본이 갑자기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무슨 이유로?”

“아무래도 중국과 일본이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항상 앙숙처럼 굴던 그 놈들이? 그게 말이 되나?”

측근중의 누군가가 내놓은 말에, 문광식 대통령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예,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이번 회담을 주도한 국가들이 그들의 걸림돌이 될 테니 말이지요. 바로 미국과 러시아 말입니다.

지금 현재 정황을 볼 때 아마도 KM사의 기술의 주도권을 놓지 않기 위해 미국이 러시아를 끌어들인 걸로 사료됩니다. 그래서 중국도 단독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하고는 일본과 손을 잡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우리는 끝까지 들러리 역할만 했군.”

문광식 대통령은 무겁게 중얼거렸다.

북한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그 말에 지금까지 열심히 일본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중국에게는 우호적인 행보를 걸어왔거늘, 이제 와서 일본과 손을 잡는다면 지금까지 한 것들이 다 뭐가 되겠는가?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으니 과연 중국이 약속이나 지킬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제 보름도 남지 않은 국제정상회담부터 준비해야 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야 하네.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초국가적인 국제정상회의네. 어떤 문제가 벌어지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게.”

지금까지 한국에서 국제회의가 개최된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이번 정상회의는 그런 차원을 넘어섰다. 기껏 해봐야 10여개 국가 정상들이 모이는 차원을 넘어 수십, 수백에 달하는 국가의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이었다.

만일 여기서 테러라도 벌어진다면 그 결과는 전 세계는 대공황 시절보다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자신과 한국이 다 떠안게 되겠지.

‘절대 그럴 순 없지!’

문광식 대통령은 결연한 얼굴로 각오를 다졌다. 지금까지는 적당히 부패하고 안일한 태도로 일관해 왔지만, 이번만큼은 철저하게 해낼 생각이었다.

* * *

“결국 이렇게 되는군.”

대통령전용비행기에 탑승한 메켈린 대통령은 쓰게 웃고 말았다. 러시아의 움직임을 한번 놓친 것이 결국 그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그래봐야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으니 마찬가지였을까?’

이 회담이 열리게 된 이유는 바로 유태진에게 있었다. 러시아와 손을 잡기로 결정한 그가 회담을 개최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앙숙이었던 러시아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그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만일 미국과 러시아 두 국가가 손을 잡지 않았다면, 국제정상회담을 개최해도 이렇게까지 많은 국가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KM사의 기술이란 떡밥이 주요하게 먹혔지.’

평소 이런 자리에 잘 참석 안하던 국가의 정상들도, 이번만큼은 참석할 의사를 내보였다. 앞으로 KM사의 기술혜택으로부터 배제되기라도 하면 자국이 얼마나 도태될 수 있을지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정상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기적이 벌어졌다. 불참한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지.”

일단 전 세계 정상들이 모이는 계기는 만들었지만, 그들을 어떻게 설득해서 어떻게 지구통합에 이를지는 바로 유태진에게 달렸다.

그가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것이다.

‘물론 잘된다면 괜찮겠지만··· 이에 반발하는 자들이 나온다면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그리고 메켈린 대통령은 본보기가 될 가장 유력한 대상으로 중국과 일본을 꼽았다. 그들의 평소 성향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이성적이지 못하고 억지를 쓰는 것이 그러했으니까. 물론 일본은 강자인 미국에게는 항상 한수 접어주니 다행이었지만,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는 한국 문제만 얽히면 전혀 달라졌다. 논리고 뭐고도 없었다. 그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극우들의 행태만 봐도 그러했다.

최근 기술을 양도받고 싶어서 한국 내에서 공작하던 것들을 보면 가관도 아니었다.

‘중동 쪽도 좀 염려는 되지만··· 그쪽은 우리도 방법이 없지.’

애당초 아랍세력인 중동 쪽은 논외였다. 극단 이슬람 테러주의자들로 가득한 그곳은 설득 자체가 불가능했으니까. 아마 이번 회담에 참석한 자들도 그 지역을 제대로 대표한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메켈린 대통령도 이 문제에 대해 유태진에게 말해봤었지만, 그는 웃으면서 알겠다고만 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대책이 있는지는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외에도 불안요소는 여럿 남아 있지만, 그 정도는 크게 고려할 바도 아니었다. 미국과 러시아의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찍어 누를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휴···당분간 꽤 고단하겠어.’

메켈린 대통령은 작게 한숨지으며 좌석에 깊게 몸을 맡겼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