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06화
“그럼 저 기술들을 우리가 포기해야 한다는 겁니까?”
“포기한다기보다는 공유를 해야지요.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들과 공유하는 조건으로 기술에 대한 일정 지분을 보장받는 게 옳을 겁니다.”
아나운서의 물음에 그렇게 답한 전문가는 기술의 가치가 높은 것 자체가 위험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적당한 기술적 우위는 상대방과의 거래나 협상에서 득을 주지만,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게 없을 만큼 너무 압도적이면 오히려 극도의 위기감을 심어주게 됩니다. 바로 KM사가 발표한 4가지 기술들이 바로 그 예죠.
너무 지나칩니다. 대체할 수도, 그렇다고 흉내 낼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인 기술이니 말입니다. 아마 그와 관련된 업계들은 죄다 망할 겁니다. 지금 현재도 다양한 종목의 주가가 폭락을 거듭하고 있죠. 지금까지 절대적인 황금주로 손꼽혔던 석유업계의 주가를 보시면 실감나실 겁니다. 전무후무한 수준의 폭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요즘 유가도 폭락 중이라서 시민들께서도 어느 정도 체감이 되실 겁니다. 이런 기적 같은 기술이 한 가지만 나와도 세계가 들썩일 정돈데, 무려 4가지나 됩니다. 이젠 들썩일 정도가 아니라 세계의 기업과 정부가 위기감을 느껴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군요. 단순히 놀라운 신기술이 한국인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기뻐했는데, 순수하게 기뻐할 수만도 없겠군요.”
“예,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긴 하지만, 지금은 사태를 보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할 때입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와 전문가의 대화를 지켜보던 문광식 대통령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휴우··· 일이 꼬이는군.”
KM사의 기술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난리가 벌어질 줄은 미처 몰랐었다.
‘TPU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하긴 저런 미친 기술이 잇따라 3가지나 더 나왔으니 당연한 일인가.’
하지만 그 때문에 문광식 대통령만 입장이 곤란스러워졌다.
저 기술들이 한국인의 손에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KM사는 엄연히 미국 기업이었다. 한국 정부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온 사방에서 압박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저 방송이었는데, 일본을 배후에 둔 친일파와 우익단체들의 입김이 닿은 여론선동용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아주 근거 없는 소릴 늘어놓은 건 아니었지만, 현재의 상황을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한 내용이라 할 수 있었다. 아마 그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었다면 진작 전쟁이라도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저 배후에 있었다. 한국이 많이 발전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본의 힘은 무시하기가 어려웠다. 지리학적으로도 한반도의 바로 옆에 붙어있는데다, 한국의 산업 중 상당수가 일본의 정밀부품 분야에 의존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일본의 편을 들어주기엔 중국의 존재가 껄끄러웠다. 안 그래도 중국의 시젠타우 주석이 바로 얼마 전 비공식적으로 이런 제안을 해 왔었다.
“KM사의 기술을 우리 중국이 손에 넣을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게. 성공만 한다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시켜 주겠네. 금강산 관광은 물론, 핵무기도 폐기하도록 해주지. 당장 통일까지는 어려워도 이산가족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내왕할 수 있도록 손을 써줄 수도 있어. 그만하면 자네의 임기 중의 치적으로는 꽤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떤가?”
“···시젠타우 주석. 지금 농담을 하시는 게요?”
제안을 듣는 순간 문광식 대통령은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는지부터 의심했다. 그만큼 터무니없는 제안이어서였다.
하지만 상대는 진심이었다.
“이런 중요한 제안을 하는 데 농담을 끼워 넣을 이유가 없잖은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네.”
진심이라면 더 기가 막혔다. 실현이 가능할지의 여부는 그렇다 쳐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제안을 해왔단 말인가?
머릿속이 복잡해진 문광식 대통령은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
“농담이 아니라면 더 기가 막히는군. 북한이 귀국에 의존하는 바가 큰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엄연한 독립국가요. 귀국에서 힘을 쓴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될 것 같습니까? 다른 건 다 그렇다 쳐도, 김정은은 절대 핵만큼은 포기 못할 겁니다.”
“그 돼지야 그렇겠지. 하지만 북한 내에도 친중파가 적지 않다는 걸 알아두게.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의 돈을 갖다 쓴 자들도 적지 않지. 우리가 그들을 움직이면 머리를 교체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야.”
“···뭐, 뭐요!?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그냥 놔둔 거요?”
“말 잘 듣는 녀석을 굳이 제거할 이유가 없잖나? 하지만 필요 없으면 처리 해야지.”
“······.”
그 말은 김정은을 토사구팽 하겠다는 뜻이었다. 문광식 대통령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미쳤군. 중국이 가진 영향력이 그 정도였나?’
한국도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북한의 실정에 대해 많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북한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김정은의 목숨을 주머니 속 물건 다루듯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할 줄이야.
하지만 경악도 잠시 뿐, 문광식 대통령의 머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봤을 때, KM사의 기술은 한국이 어쩔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애당초 한국 기업도 아닐뿐더러, 사장이 한국출신이란 명분만으로 간섭하기엔 미국의 존재가 껄끄러웠다.
명예 시민권까지 수여할 정도면 미국도 그가 개발한 기술의 존재를 진작 파악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미국의 척을 지는 건 어려워. 하지만 일단 가볍게 밑밥을 깔아 놓을 순 있지.’
지금 현재 친일파 휘하의 우익단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은 국정원 요원들을 통해 확인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일지도 대충 파악이 되었다.
“제안은 대충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적극 나서진 못할 겁니다.”
“미국 때문인 건 알고 있네. 그래도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잊지 않도록 하지.”
그렇게 해서 문광식 대통령은 시젠타우 주석과 비공식적인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게 녹록치가 않았다. 적당히 여론을 조성해서 기술을 독점하면 안 된다는 논지로 흘러야 했는데, 우익단체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언론사가 전문가들을 데리고 떠드는 거야 이해 하지만, 태극기 집회 등을 총동원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워버린 건 너무도 큰 부담거리였다.
벌써 며칠 째 과격 시위가 계속되는 중이다. 경찰들이 총동원되어 시위대를 적절한 선에서 막고 있었지만, 워낙 시위대의 수가 많다보니 어떤 불상사가 일어날지 몰랐다.
일부에서는 너무 과분한 기술을 그냥 방치하는 바람에 한국을 위기로 몰아넣도록 조장한 문광식 대통령을 탄핵해야한다는 극단적인 성토까지 나오고 있을 지경이었다.
물론 그 배후를 캐내자면 누군지 뻔했지만, 문제는 이게 생각 외로 국민들에게 잘 먹힌다는 사실이었다.
지지도는 점점 추락하고, 여당 내에서도 이 사태를 너무 안일하게 대응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러다간 우익 야당의 뜻대로 일본 쪽에 유리한 형태로 기술의 지분을 넘겨줘야 하게 될지도 몰랐다.
한편, 유태진이 머물고 있는 노을 보육원에서도 이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리스티는 피식 웃고 말았다.
“KM사가 미국 기업이란 얘기는 쏙 들어가 버렸네요.”
“그러는 의도야 뻔하지. 굳이 날 한국인이라고 강조하는 건, 그만큼 한국이란 나라 자체가 만만하다는 뜻이니까.”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이미 만성이 될 정도로 겪은 유태진은 이쯤은 진작 예상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정말 우습네요. 저들은 저희 미국이 이 일을 가만 두고 볼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죠?”
엘레나는 입가에 조소를 떠올리며 그렇게 되물었다. 애당초 그냥 이대로 기술을 공유할 생각이었다면 유태진에게 미국 명예 시민권을 수여하면서까지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서겠지. 이 정도로 대단한 기술이면 제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홀로 독차지하고 있기엔 부담스러울 거라 여기는 모양인데, 아주 틀린 것도 아니야.”
일반 상식선에서 본다면 미국이라 해도 이런 초 첨단 기술을 독점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기술의 독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 기술을 사용해 인베이더의 침공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유태진도 미국의 협조를 받아 이 기술들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문명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그런 미래의 기술이 출현함으로서, 전 세계 각국 수뇌들에게 충격을 선사하는 한편 그들이 전부 한 자리에 모일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아무튼 떡밥도 뿌려지고 원하던 분위기도 만들어졌으니, 슬슬 준비를 해야겠지.”
그때 유문택 회장이 노을 보육원을 찾아왔다. 그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감이 떠올라 있었다.
“태진아. 벌써 녀석들이 움직였구나. 일본과 중국 쪽에서 압박이 들어왔어.”
“역시 그렇군요. 그놈들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들이죠.”
유태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올것이 왔다는 듯 말했다.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깡패 국가 중국. 그리고 항상 한국을 업신여기며 자신의 아래로 내려다보는 일본.
그들이라면 다른 나라들보다 더 거침없이 행동할 거라고 이미 예상했던 것이다.
현재 세화 그룹은 중국과 일본 양 국가의 기업들과 많은 거래를 하고 있었다. 헌데 지금까지 유지되던 거래들이 억지에 가까운 짓으로 죄다 차단되면서 그룹 전체가 경색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그룹 전체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 네 덕분에 주가도 안정적이고. 하지만 이래선 원자재조차 구하기가 힘들 것 같구나. 지금 비축량으론 2달을 최대의 고비로 보고 있다.”
“그렇군요. 그 전에 처리할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누가 누굴 걱정하겠느냐. 그래 우리 손주만 믿으마.”
유태진이 건넨 그 말에, 유문택 회장의 얼굴은 금세 밝아졌다. 손자가 가진 능력이 어떤지 잘 아는 만큼, 이런 압박 정도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부우우웅!
헌데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낯선 차량들이 노을 보육원 앞에 일제히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고급 세단들로서, 마치 한 대의 차량을 다른 수대의 차량이 경호하는 것 같이 보였다.
“누구지?”
저들이 탄 차가 보육원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은 진작부터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저 차에 탄 자들의 정체가 무엇이냐는 거였다.
유태진은 평소 미국과 긴밀히 정보를 주고받던 엘레나를 바라봤지만, 표정을 보니 엘레나도 제대로 모르는 듯 보였다.
그건 즉, 미국의 정보망을 속일 정도의 능력을 가진 국가나 세력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범위를 국한시켜 생각해보자 저들이 어디에 속한 자들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귀한 손님이 왔으니 일단 만나는 봐야겠지?”
유태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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