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05화
그리고 그 사정은 일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필이면 조센징 놈의 기업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기술이 나오다니! 어떻게든 손을 써야겠어.”
현재 일본을 좌우하고 있는 아비 총리는 KM사의 기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보고받고는 즉시 한국 정부를 압박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미국의 눈치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걸 고려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했다. 장차 세계의 패권을 논해볼 수 있는 미래기술들이었다. 저것들만 손에 넣는다면 저 강대한 미국이라 해도 한번 맞붙어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그래도 아주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던 아비 총리는 일단 한국 정재계에 있는 친일파들을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직접 압박하기보다는 한국 국적을 가진 그들이 나서서 자발적으로 기술의 독점을 포기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억지에 가까운 일이긴 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명분은 충분했다. 설령 미국이라 해도 한국이 일본에게 자발적으로 내놓는 기술까지 막을 순 없을 테니까.
‘아니, 솔직히 말해 저 기술들을 우리가 독점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우리 일본도 저 기술들에 대해 어느 정도 지분을 주장할 수는 있을 게야.’
상식적으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억지였지만, 국제정세는 어디까지나 약육강식의 법칙에 의해 좌우된다.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 하는 미국도 온갖 분쟁에 끼어들면서 얼마나 많은 이권을 취해 왔던가?
그 옛날 제국주의 시대와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정의를 위한다는 명분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포장한다는 정도의 차이일 것이다.
아비 총리는 즉시 사사키 재단 이사장을 불러들였다. 사사키 재단은 일본의 대표적인 우익 세력으로서, 히데오 사사키가 설립한 곳이었다.
이곳이 세워진 목적은 간단했다. 세계 각국의 권력자나 유명 인사들을 포섭함으로서, 각국의 여론이나 정치적인 행사를 일본에게 보다 유리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최근 미국이나 여러 선진 국가들이 일본에 대해 옹호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바로 암중에서 막대한 로비를 벌인 사사키 재단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에도 사사키 재단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자들은 적지 않았다. 한국이 일제 치하로부터 독립했을 때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들과도 깊은 연관이 있을뿐더러, 그들의 지원 하에 성장한 여론과 지식인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사키 재단이 지원해준 돈과 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라섰으며, 그런 자들을 통칭하여 사사키 장학생이라 부르기도 했다.
아비 총리의 호출에 응한 현 사사키 재단의 이사장 사사키 미데오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게 되었다.
“한국 내의 우리 장학생들을 움직여 줘야겠네. 그들을 총동원해서 KM사의 기술을 내놓도록 만들게.”
“으음, 쉽지 않을 겁니다. KM사는 엄연히 미국 기업 아닙니까? 괜히 미국을 자극할 수도 있는 문젭니다.”
“하지만 그 사장은 한국인이지.”
아비 총리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일본에게 있어 한국은 매우 만만한 상대였다. 경제력도 일본이 크게 앞서는 데다, 그 내부에는 일본을 우러러보는 친일파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움직여 여론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비 총리와 많은 일을 함께 진행해왔던 사사키 미데오 이사장도 이번만큼은 쉽사리 찬동할 수가 없었다.
“휴··· 명분이 부족합니다. 한국 국적이긴 해도, 그는 미국의 명예 시민권자입니다. 그런 자를 상대로 뭘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괜한 수작을 부리다가 자칫 미국을 자극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걱정하는 이사장에게, 아비 총리는 그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 미국이 반발하고 나설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미국의 눈치만 보고 있을 수가 없네. 자네도 알겠지만 KM사가 내놓은 기술들은 너무 앞선 시대의 것들이야. 가히 전 세계의 패권을 수십 년 이상 좌우할 만큼 대단한 기술들이지. 이것들을 놓친다면 자칫 우리 일본은 2-3류의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어!
특히 그 사장은 한국인이지! 한국인들 중 상당수는 일본에게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 혹시라도 그 자가 우리 일본을 신기술로부터 배제라도 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그건 너무 극단적인 생각입니다. 그자의 성향이 어떤지 아직 확인도 안됐을 뿐더러, 설령 일본에 반감을 가졌다 해도 특정 국가만 배제한다는 게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제아무리 미국 명예시민권자라 해도 전 세계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겁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그냥 어중간한 기술이었다면 자네 말처럼 그랬겠지. 하지만 이건 세상을 뒤엎고도 남음이 있는 기술들이야. 서로 독차지하지 못해 안달들일 게 틀림없을 텐데, 누가 누굴 비난할까? 그 옛날 제국주의 시대를 떠올리게. 식민지를 다른 이가 먼저 차지했다고 해서 전 세계가 비난하고 그런 경우는 없었네.”
아비 총리의 극단적인 말에, 미데오 이사장은 답답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자신도 극우의 한 축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억지를 써올 때면 참기 힘들 정도였다.
“그럼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장학생들을 움직여 뭘 어떻게 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장학생들에게 여론을 조성하라고 하게. KM사가 발표한 기술들은 어느 누가 독점하기엔 너무 엄청난 기술임을 강조하면서 말이야. 너무 앞선 기술은 오히려 한국을 위기와 고립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 될 게야.”
“어떤 뜻인지는 알겠습니다. 주제에 안 맞는 걸 손에 쥐고 있으면 오히려 자신의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될 거라고 그렇게 여론을 조성하란 겁니까?”
“그래 그런 셈이지. 인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술을 한국만 독점하지 말고 여러 국가들과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여론을 조성한 다음 기술을 공유할 국가들 중 일본을 언급하게 하면 될 것일세.”
막무가내인 것처럼 보여도 아비 총리가 내놓은 계획은 생각보다 철두철미한 면이 있었다. 물론 주장 자체는 억지에 가깝지만, 이에 동조하는 국가들은 아마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과연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론 조성까지는 그리 어렵지만은 않겠군요. 억지 치고는 명분도 그럴 듯 하고요.”
“거기까지만 된다면 우리 일본이 KM사의 기술에 대해 어느 정도 지분을 주장할 수 있을 게야.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그 말을 끝으로 미데오 이사장은 그곳을 나섰다.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아비 총리는 한층 더 무거운 얼굴이 되었다.
“과연 이 수가 잘 먹혀들어야 할 텐데. 유태진이라··· 그놈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강경책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어.”
* * *
푸튼 대통령은 KM사의 새로운 발표회 내용을 보고받고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기가 막히는군. TPU에 이어 이젠 홀로그램에 가상현실이라고?”
“그 뿐만이 아닙니다. 핵융합도 포함하셔야 합니다.”
KGB국장의 첨언에 푸튼 대통령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래. 핵융합도 있었지. 그 말도 안 되는 방식 말이야. 설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허공에 핵융합 플라즈마를 높이 띄우다니···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가히 수백 년 뒤에나 나올 법한 미지의 기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할까? 미국이나 우리 러시아 같이 과학 기술이 앞선 나라들도 감히 상상도 못할 수준의 기술이었어. 이렇게 되면 정말로 그 외계인 운운하던 첩보가 현실성 있게 느껴지는데?”
그때는 그냥 헛소리로 여겼지만, 지금은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기술이란 건 순차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있는 법이다. 이렇게 예외적인 게 과정을 무시한 채로 불쑥 튀어나올 순 없었다.
KGB국장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KGB내에서 내놓은 결과를 입에 담았다.
“지금 정보 분석관들도 다들 그런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미국 정재계에서 떠도는 이야기들이 농담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외계인 침공설이라. 설마 미국 놈들이 정말로 외계인을 붙잡아 놓고 고문하는 바람에, 외계인 세력의 노여움을 사서 지구를 침공하게 된 건가?”
“그것도 여러 가설들 중 하나로 보고 있습니다. 꽤 유력한 편이지요.”
“이런 허황된 가설이 이젠 유력한 가설이 되다니··· 그 KM사의 사장 녀석을 한번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군.”
“여기로 불러들일까요?”
KGB국장이 당장이라도 유태진을 러시아까지 연행해 올 것처럼 물었지만, 푸튼 대통령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놔두게. 괜히 미국과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곤란해. 놈들도 명예 시민권자를 그냥 놔두진 않았을 테지.”
“하지만 세계 각국에서 지금 그 자를 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일본과 중국은 아주 작정하고 달려들더군요. 한국 정계를 압박하고, 여론을 조장해서 기술을 자발적으로 내놓게 만들려고 공작을 벌이는 중입니다.”
“미친 것들. 강압책도 먹힐 상대에게 그래야지. 한국 정부야 본래 호구이니 그렇다 쳐도, 상대는 미국 명예 시민권자야. 미국도 그 자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에 대한 대비책이 없을까? 유태진이 한국을 돌아다니게 놔두는 것도 다 이유가 있겠지.”
“그럼 저희 러시아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한번 만나 봐야겠군. 그 유태진이란 자를 직접 봐야, 그 의도와 계획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생각지도 못한 그 말에, KGB국장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럼 직접 한국으로 방한하실 생각입니까?”
“뭐, 상관없지 않나. 나도 한번쯤 한국에 방문할 때도 되었지.”
푸튼 대통령은 그렇게 말하면서 채비를 갖추라고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에서 그의 말은 곧 법이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모스크바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한 대가 떠올랐다.
* * *
KM사가 발표한 기술들로 전 세계가 들썩이는 가운데, 한국은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KM사의 사장인 유태진이 한국 국적을 가진 미국 명예 시민권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야기들로 언론과 인터넷에 가득했었지만, 그것들은 어느 순간부터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들로 가득 차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광화문 광장 앞에는 태극기를 펄럭이면서 유태진을 성토하는 시위대들로 가득했다.
“KM사는 기술을 독점하지 마라!”
“한국이 독점하기엔 너무 과분한 기술이다! 기술을 공유해서 인류 발전을 위해 공헌해야 옳다! KM사는 욕심 부리지 말고 기술을 공유해라!”
“북한과 같은 핵보유 국가들이 국제적으로 고립되는 이유를 봐라! 우리도 그 기술을 점유하면 그 꼴이 날 거다!”
“이 빨갱이들아!”
시위대뿐만이 아니었다. 언론은 물론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KM사가 보유한 기술에 대해 하나같이 우려를 나타냈다.
“KM사가 개발한 4가지 기술은 인류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기도 합니다.”
“어째서 위험하다는 말씀입니까? 저희 한국인이 개발한 자랑스러운 기술들 아닙니까?”
아나운서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지만, 전문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힘이 없는 자에게 보물은 죄가 된다는 말이 있지요. 저 기술들은 세계의 어떤 국가나 기업들도 만들어내지 못한, 시대를 훨씬 앞선 기술입니다. 가히 패권을 뒤엎을만한 힘을 갖고 있지요. 그런 기술들을 저희 한국이 보유한다고 생각하면 위험천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 세계의 국가들이 KM사의 기술을 노리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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