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03화
“믿을 수가 없군요. 이런 사실감이라니······.”
“드래곤만 아니었어도, 우린 그곳이 현실인 줄 알았을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정말 놀라워요.”
마지막에 드래곤을 등장시킨 건 바로 그런 의도에서였다. 현실의 지구에서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생물체를 출현시킴으로서, 그것이 현실이 아닌 정말로 가상현실의 세계임을 사람들에게 확실히 인식시켰던 것이다.
“앞으로 가상현실은 많은 분야에 활용될 겁니다. 게임, 영화, 그리고 쇼핑, 여행 등 이제 없어선 안 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 컨텐츠가 되겠지요. 심지어 이 안에서는 체감시간조차 더 빠릅니다. 현실에서의 하루가 이곳에서는 무려 열흘이나 되지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시간비율을 최대한 가속시킬 경우고, 통상적으론 1:5 정도의 배율이겠지만 그 정도만 해도 우린 앞으로 현실의 몇 배나 되는 시간을 벌 수 있게 될 겁니다. 요즘 시대를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하지요? 아마 우리가 가상현실을 통해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시간은 그보다 몇 배로 늘어날 겁니다.”
“현실의 몇 배나 되는 시간배율이라고? 그게 정말 가능한가?”
“그야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지만··· 지금의 기술력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들었는데 그걸 어떻게···?”
“결과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저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앞으로 가상현실은 제 2의 삶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될 거야.”
그제야 사람들은 가상현실이 미치는 영향이 단순히 오락적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현실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가상현실에서도 똑같이 누릴 수 있을뿐더러, 방금 전 드래곤과 맞닥뜨렸던 것처럼 상상으로만 여겨졌던 비현실적인 일들도 얼마든지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게다가 가상현실 속에서는 현실에 비해 무려 5배에서 최대 10배까지 시간을 늘려서 사용할 수 있었다.
그 말은 1년 동안 하루에 5시간씩 가상현실을 즐겨도 무려 1년이란 삶을 추가로 더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고 그게 일평생으로 이어진다면 가상현실을 통해 추가로 누릴 수 있는 삶은 더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 적당히 즐긴다 해도 최소한 두 배의 삶을 살 것이고, 더 오랫동안 가상현실을 즐긴다면 그 이상도 가능할 게 분명했다.
이건 사실상의 수명연장이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저희 KM사에서는 가상현실을 통해 여러 컨텐츠를 내놓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 세계인들의 삶을 더 풍요롭고 즐겁게 만들어 나가겠지요.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오오!”
사람들의 수많은 박수소리가 유태진의 목소리에 호응하며 울려 퍼졌다. 그만큼 그가 발표한 가상현실에 대한 충격과 기대감이 컸다는 의미였다.
한동안 울려 퍼지던 박수와 환호성이 잦아든 뒤, 유태진은 다음 발표로 넘어갔다.
“그럼 다음 순서로 넘어가 보지요. 이번에 발표드릴 내용은 바로 에너지 관련 분야입니다. 조금 뜻밖이시죠?”
“에···에너지?”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대다수는 에너지란 말에 놀라워 했지만, 그 중 일부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까지 KM사가 발표한 내용들은 전자와 디스플레이 등에 관련된 것들뿐이었다.
헌데 여기서 갑자기 에너지라니!
특히 에너지 관련 업종과 관련된 자들의 안색은 딱딱할 만큼 굳어져 버렸다. 지금까지 KM사는 거의 세기의 혁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앞선 기술들을 연달아 보여주고 있었다.
헌데 그런 KM사가 발표하는 에너지 관련 기술이라니! 자칫 잘못하면 지금의 석유나 가스, 등 에너지 관련 업체들의 판도를 완전히 뒤엎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안과 초조, 그리고 분노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태진은 여전히 웃으며 발표를 진행해 나갔다.
“오래 전 인류는 불의 유용성을 깨달고 장작 등을 태워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그것이 인류가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에너지의 시초였습니다. 그리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것은 석탄과 석유, 그리고 가스에 이르는 화석연료의 사용 단계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이 모든 것들은 치명적인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되었습니까. 물론 화석 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여러 태양열이나 조수간만차를 이용한 여러 친환경적인 에너지 발전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지만, 그것도 완전하진 못했습니다. 효율도 높지 못할뿐더러, 이런 시설들을 갖추기 위해선 막대한 면적의 토지나 해안가를 갈아엎어야 하는 만큼 그에 따른 자연환경훼손도 무시하기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에너지 문제는 지금도 인류 전체가 고민하고 있는 분야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러 대안은 제시되었어도, 그것들이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확실한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환경훼손과 오염 때문에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 와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중세 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에너지 중 하나가 바로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원자력입니다.”
그 말과 함께 그들이 보는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여러 영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잘 아는 원자력 발전소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영상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바로 재앙을 일으킨 원자력 발전소와 그 일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원자력은 너무나도 불안정합니다. 후쿠시마와 체르노빌의 예를 봐도 그렇지요. 자연재해나 인재에 의해 언제든 재앙이 될 수 있는 게 바로 원자력이니까요.”
유태진의 그 말과 함께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다양한 참담한 광경들과, 방사능 피폭에 대한 통계 등이 스크린에 출력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전체의 암 발병률과, 아이들의 피폭 수준을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그 내용에, 일본기업과 관료들의 안색이 거의 썩어 문드러지듯 변하고 있었다.
“물론 안전하게 관리 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원자력을 사용하면서 발생되는 방사능 폐기물들의 처리도 큰 고민거리니까요. 당장은 어찌어찌 땅 속 깊이 묻어서 해결한다지만, 과연 그 많은 폐기물들을 언제까지 묻어서 처리할 수 있을까요? 이런 원자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좋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먼 후손들에게 막대한 빚을 대물림해주는 거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저희 KM사에서는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시대를 앞선 새로운 에너지 발전기술을 제시하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발전 기술?”
“대체 뭐길래?”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대감이 높아지는 가운데, 유태진은 그 실체를 짤막하게 공개했다.
“바로 핵융합입니다.”
“핵융합?”
“에이, 핵융합이라니! 이미 핵융합은 실용화만 되지 못했을 뿐, 연구단계에서는 이미 성공하고 있는 기술이잖아.”
잔뜩 기대하고 있던 사람들이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핵융합은 이미 한창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었다. 핵융합 상태를 오래 유지 못하는지라 채산성이 안 맞아서 문제지, 기술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아직 기대감을 거두지 않았다. 지금까지 KM사가 보여준 기술들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번 핵융합도 그냥 핵융합은 아닐 가능성이 컸다.
“물론 평범한 방식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핵융합은 대부분 토카막 방식이겠죠.”
토카막이란 도넛 형태의 차폐공간에서 전자기파 가열장치로 플라즈마를 형성시킨 뒤 자기장으로 제어하는 방식을 말한다.
하지만 기껏 해봐야 핵융합 상태를 수십 초 정도 유지하는 게 전부였다. 그 이상은 열차폐시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도 초고온상태가 아니라서 에너지 효율성은 극히 떨어졌다.
1억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즈마를 유지하는 건 고작 1.5초가 전부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하지만 저희의 방식은 다릅니다. 자기장의 제어와 공명을 통해 공간압축과 진동형태로 플라즈마를 형성합니다. 가벼운 원자핵들을 자기장으로 공명시켜 미세 제어하고, 이것들을 둘러싼 자기역장으로 압축함으로서 플라즈마를 일으키는 겁니다.”
이것이 유태진이 제시하는 [자장공명압축식 핵융합]기술이었다. 미시적인 영역까지 제어 가능한 자기역장으로 별다른 설비 없이도 핵융합을 간단하게 일으키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홀로그램 스크린 위로 자장공명압축식 핵융합 기술의 원리가 간단하게 공개되었다. 물론 이것만 가지고는 기술 자체를 습득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단지 이런 방식으로 핵융합이 가능하다는 간단한 설명에 가까웠다.
“자, 이제부터 보여드리죠. 핵융합이라는 에너지 발전이 얼마나 간단해졌는지 말입니다. 자, 저 위를 보시죠?”
유태진의 오른손이 저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짓을 따라 시선을 옮긴 사람들의 눈에 어두운 밤하늘이 보였다.
현재 시각은 저녁 9시. 해는 진작 져서 이젠 어둠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오늘은 달도 뜨지 않는 날이라서 더욱 캄캄함을 더하고 있었다.
“아니, 우리더러 대체 뭘 보란 거지?”
“아무것도 없잖아!”
하지만 그건 섣부른 판단이었다. 아무것도 없던 저 어두운 상공 위로 작은 불빛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반딧불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것은 점차 커져만 가더니, 이젠 거대한 빛의 구체가 되어 하늘 정 중앙에 자리했다.
그것은 마치 작은 태양이 밤하늘을 불사르며 떠오른 것 같았다.
“아앗! 저건!?”
“플라즈마야! 핵융합 플라즈마가 틀림없어!”
“미친! 아무런 설비도 없이 저토록 거대한 플라즈마를 하늘에 생성시킨다고?”
너무도 환한 플라즈마의 광채에 이젠 더 이상 조명이 아니어도 어둡지가 않았다. 그만큼 저 하늘에 떠오른 핵융합 플라즈마는 거대했다.
저만한 크기라면 대체 얼마나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단 말인가?
아니, 그보다는 별다른 설비 없이, 저 하늘에 플라즈마 덩어리를 띄울 수 있는 기술력 자체가 믿기지가 않았다.
“그렇게 놀라실 것 없습니다. 자장공명역장을 만들어 낼 수만 있다면 핵융합은 이런 식으로도 얼마든지 구현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지금 형성한 플라즈마는 1억도 이상의 온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열기가 느껴지십니까?”
그 물음을 듣고서야 사람들은 미약한 열기를 느꼈다. 그것은 대낮에 태양빛을 쐬었을 때 정도의 열기였다. 무려 1억도나 된다는 말이 무색해 보였다.
유태진이 덧붙여 말했다.
“자장공명역장은 핵융합에 의해 발생되는 열과 방사능을 완벽하게 차폐합니다. 지금 느끼신 열기도 제가 그렇게 열기를 느낄 수 있도록 제어해서 그렇지, 마음만 먹는다면 단 한 점의 열기도 빠져나가지 않게 만들 수도 있지요. 그만큼 안정성은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후, 정말 사기로군···.”
지금까지 평생 동안 핵융합 연구를 매진해왔던 학자 하나가 무겁게 탄식을 토해내고 말았다. 대체 어떻게 자장을 역장 형태로 만들어서 공명시키기에 이토록 완벽하게 핵융합을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들이 연구해온 핵융합은 수많은 기술과 설비가 더해져야 겨우 수십 초간 제어할 수 있거늘, 저 역장에 의한 제어는 너무도 간단하게 초월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KM사가 외계인을 고문시켜서 기술을 만든다더니··· 이젠 그 말을 정말 믿고 싶어질 정도야.”
이건 고작 수십 년 정도의 차이로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적어도 백년 이상,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앞선 미래의 기술이었다. 이런 기술을 한두 개도 아니고 연거푸 발표하는 KM사의 정체가 대체 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특히 석유나 화석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의 얼굴은 극히 어둡다 못해 암담함으로 일그러져버렸다. 저건 말 그대로 기존의 화석에너지 자체에 종언을 고하는 불빛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인간은 태양마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공태양은 장차 전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찬란한 인류의 미래에 저희 KM사가 함께 하겠습니다.”
인공태양의 환한 불빛 아래서 유태진은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오늘의 모든 발표는 마무리 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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